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55화 (55/250)

#55

잠시 후, 검은 후드를 쓴 남자는 다시 제가 지나왔던 골목 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리번거린 검은 후드는 멀리서 그의 동향을 살피던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검은 후드가 다시 골목 쪽으로 사라지자, 동료들은 조심스레 그쪽으로 이동했다.

첫 초전력에서, 헌터들은 보통 혼자 다니다 박살 난다. 관례처럼 보일 정도로 대다수의 헌터가 겪는 일이었다. 그렇게 현실의 쓴맛을 본 헌터들은 다음 초전력에서 자신과 힘을 합쳐 점수를 딸 동료를 만든다.

조금 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초전력 경험이 있는 2단 헌터들이 진작 그렇게 박살 나지 않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게 훨씬 좋았지만, 희한하게 그런 말을 귀띔해 주는 헌터는 거의 전무했다. 참으로 기묘한 심리였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쌓인 경험은 다음 초전력 때에 이용하게 되고, 점점 더 성장해 나간다. 시험의 취지와도 얼추 맞는 방향이긴 했다.

슬금슬금 움직인 헌터 무리가 골목으로 진입했다. 저 멀리서 다른 골목으로 꺾으려는 검은 후드 뒤통수가 보였다. 미끼하고 너무 가까운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먼 것도 의미는 없었다. 무리는 까만 머리통을 따라잡기 위해 조금 과감하게 발을 내딛었다.

그 뒤를 훌쩍 따라붙는 움직임이 있었다.

단번에 무리의 뒤를 잡은 영이 맨 뒤의 여자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악, 여기……!”

타격당한 날갯죽지의 표식이 스르르 사라짐과 동시에 비명이 터졌다.

“뭐야?”

“다들 조심해!”

무리는 허둥대며 뒤를 돌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골목이었다. 뒤에는 자신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뒤를……. 그렇게 생각한 무리는 반 박자 늦게 깨달았다. 골목은 담과 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담을 넘은 것이다.

“침착해요, 상대는 한 명이니까!”

그래도 허투루 헌터 생활을 한 건 아닌 모양인지, 무리는 금세 전투 자세를 취했다. 남자 셋에 여자 둘. 두 줄로 나뉜 진형을 보니 앞에 있는 단발머리의 여자 하나와 짧은 머리 남자, 노랗게 염색한 남자가 물리 공격에 능한 모양이다.

길쭉한 손이 봉을 가볍게 털었다. 완연한 수적 불리에도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펑!

채찍 같은 덩굴이 영의 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녀는 크게 점프해 공격을 피하고 옆에서 막 저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는 짧은 머리 남자를 향해 발길질했다.

“윽……!”

고통에 비틀거리는 남자를 엄호하기 위해 뒷줄에 있던 여자가 염력으로 띄운 쇠 구슬을 날렸다. 영은 유도 미사일처럼 저에게 달려드는 쇠 구슬을 강하게 쳐 냈다. 몇 개는 바닥으로 처박혔지만, 몇 개는 앞줄에 있던 사람들에게 튀었다.

“조심하세요!”

산발적으로 튀는 공격에 뒤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졌다. 초능력을 쓰려던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졌다. 영은 다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처럼 날쌘 몸이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기다란 봉이 우아하게 휘돌 때마다 사람들의 표식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퍽!

“악!”

강하게 후려치는 힘에 비명이 터지는 것은 덤이었다.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몇 분 전에 막 결성된 임시 동맹이다. 처음부터 합이 잘 맞기는 힘들었다. 영은 그 빈틈을 적절하게 이용했다. 발밑을 필요할 때에만 순간 빙결시키며 공격 리듬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전투 방식은 일대다 전투에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어느새 앞줄의 헌터들은 표식이 최소 하나 이상 사라졌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뒷줄은 멀쩡했다. 공격의 사정거리가 길어 봉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공기를 압축해 쏘아 보낸 탄과 신발에 엉겨 붙는 진흙을 떨쳐 낸 영이 앞줄 남자의 표식을 하나 더 없앴다. 이제 앞줄 사람들의 표식은 하나씩밖에 남지 않았다.

무려 다섯 명을 상대하면서도 영이 크게 밀리지 않다 못해 이쪽 표식만 하나둘 잃어 가자, 무리의 분위기에 초조함이 번졌다.

“아……!”

아까와 달리 행동에 신경질이 섞이기 시작했다. 손발이 맞지 않아 제 실력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일그러지는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앞줄 사람들의 행동은 눈에 띄게 소심해졌다. 무리하게 굴었다가 표식을 하나만 더 잃으면 바로 탈락이었다. 이제 막 동맹을 맺어 무언가를 해 보려는 참이다. 허무하게 탈락하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주춤거릴수록 유리한 건 영이었다.

앞에서 적극적으로 몸을 쓰며 공격해야 할 사람들이 개인 방어에 치중하자, 영의 공격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급기야 뒷줄에서 원거리로 공격을 지원하던 곱슬머리 여자는 봉에 맞을 뻔했다. 눈앞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간신히 피한 곱슬머리에게서 짜증스러운 외침이 터졌다.

“제대로 좀 막아 주세요! 그래야 저도 공격하죠.”

순식간에 날카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이 잠깐 자세를 정비하기 위해 뒤로 빠진 틈을 타, 예민해진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이 급조된 팀에 커다란 신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제 몫을 못 하는 사람이 끼어 있다면 더더욱.

영이 다시 달려들었다. 무리의 가장 왼쪽에 있던 노란 머리 남자를 노린 공격이었다. 커다란 궤적으로 휘둘러지는 봉을 피하려면 공격을 포기하고 굴러야 했다. 노란 머리가 숨을 들이켜며 급하게 몸을 던졌다.

그 과정에서 노란 머리의 후방이 완전히 비었다. 허벅지 뒤에 있는 동그란 표식에 눈길이 간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침묵이 흘렀다.

팟.

그곳을 공격하는 것은 선착순에 가까웠다.

[무궁화 2단 이선규. 표식을 모두 잃어 탈락하셨습니다. 즉시 시험장에서 퇴장하십시오. 지금부터 이탈 외의 모든 행동은 부정행위로 간주하며, 퇴장에 시간이 지체될 경우 강제 연행 될 수 있습니다.]

“뭐야?”

후방에서 덮쳐든 공격에 노란 머리 남자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탈락이라니, 뒤에는 우리 팀만…….

그러나 이미 탈락한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격한 사람은 짧은 머리 남자. 그러나 노란 머리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표식을 따는 것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이었을 터였다.

“이게 무슨…….”

“제정신이에요?”

공격하지 않은 사람들의 기함이 뒤늦게 터졌다.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조금 전의 동료들에게 떨어진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같은 팀이었던 사람을 공격한 이상, 이미 무리는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계 어린 시선이 교차됐다. 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앞줄에 있어 표식이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사람과 뒷줄에 남아 표식이 아직 여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눈빛이 오갔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살기 위한 협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서로를 믿지 않았다.

영에 대한 관심은 눈앞의 사람들을 감시하느라 조금 줄었다. 정작 공격한 당사자는 버려두고 저들끼리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영은 흥미롭다는 듯 지켜볼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녀가 원한 상황이 이거였으니까.

너무 강하게 몰아치면 팀의 결집력이 세지므로, 영은 의도적으로 다섯 명을 모두 살려 두었다. 아무도 죽지는 않지만 상대를 꺾을 수도 없으면 초조함이 번지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쉬워진다. 보통 2단 헌터는 팀의 막내 포지션. 누군가를 이끌어 본 일이 없으니 이런 상황에 타인을 다독여 팀워크를 상기할 여유도 없었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조금 더 많은 변수가 있겠으나, 이건 인간의 목숨에 지장이 없는 시험이다. 신뢰보다는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것에 어느 정도의 합리화가 가능했다.

이건 점수를 많이 따야 이기는 시험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내분이 벌어졌다. 서로를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하느라 골목은 금세 난장판이 됐다. 그때쯤 골목 너머에서 슬그머니 검은 후드가 고개를 내밀더니,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에 슬쩍 참전했다. 자신을 위협해 희생양으로 쓴 사람들이니, 자신이 기습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합리화 역시 쉬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영이 골목 벽에 등을 기댔다. 어느새 그 위의 담벼락 위에 올라앉아 있던 이연이 거리에 뿌려 두었던 종이 뭉치들을 확인했다. 영이 잘 몰아넣어 준 덕에 정확히 범위 내였다.

그것을 슬그머니 실체화하자, 원통형 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연이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그물망이 싸움 한복판을 덮쳤다. 여러 개가 중첩된 그물은 골목을 모두 덮을 정도로 거대한 범위였다.

다섯 명의 헌터는 내리누르는 그물망에 덮여 얼결에 넘어졌다. 예상치 못한 일에 냉정하게 판단 내리지 못하고 허우적댈수록 그물은 그들의 몸을 조여 왔다.

무리 중 직접적으로 그물망을 걷어 낼 만한 능력은 하나였다. 물체를 녹일 수 있는 약한 독 분사.

이미 탈락한 노란 머리 남자의 능력이다.

“갑시다.”

그러니 모든 사람의 표식을 없앨 만한 시간 정도는 충분했다. 담벼락에서 폴짝 뛰어내린 이연과 벽에 기댄 몸을 일으킨 영이 그물에 갇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노란 머리 남자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궁화 2단 장해인. 표식을 모두 잃어 탈락하셨습니다. 즉시 시험장에서 퇴장……]

[무궁화 2단 박진호. 표식을 모두 잃어……]

[무궁화 2단 이……]

[무궁화 2단……]

[무궁……]

두 번째 초전력에서, 헌터들은 보통 무리하게 많은 동료를 만들어 박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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