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50화 (50/250)

#50

“이번엔 좀 쉬운 조에 걸렸으면 좋겠는데.”

이연이 초능력 관리청 앱을 열어 초전력에 신청하며 구시렁댔다. 저번 분기 초전력에서는 랭커를 두 명이나 마주친 탓에 정신없이 도망 다니느라 다음 날 근육통으로 한참 고생했다.

“원래 초전력 대진은 퐁당퐁당이잖아. 이번엔 쉽겠지. 산오 형도 이번에 참가해요?”

이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산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봐서.”

하긴, 랭킹 1위가 등급 재심사를 받을 일은 없을 테니 참가하지 않아도 큰 상관 없을 터였다.

“귀찮아 죽겠네…….”

매번 하는 거라고는 해도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연이 한탄하며 소파에 엎어지자 혜강이 달래듯 위로했다.

“에이, 잘하면서. 저번 초전력에서도 상위권이었잖아.”

“그것도 대진운 싸움이지, 뭐.”

회사 소속 헌터들의 초전력 성적이 저조한 상태를 장기 유지하면 회사 혜택에도 불이익이 있다. 헌터가 이연밖에 없는 차금으로서는 이연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이연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초전력을 치렀다. 변이종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하는 모의 전투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그렇단 말이지.”

산오의 중얼거림이 묘한 뉘앙스를 품고 있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이연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렇게 대단한 활약을 하지는 않아…….”

“보러 가겠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질 않는다. 이연의 얼굴이 구겨졌다.

무궁화 4단 이상의 초전력이 보안상 비공개로 치러지는 것과 달리—듣기로는 시험 방식도 좀 다르다고 한다.— 3단 이하의 경우, 초능력자에 한해 관전이 허용되었다. 명목은 타인의 능력 응용력에 대한 시청각 교육이었지만, 관중들의 절대다수가 1단이며 2단의 초전력 시험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기 일쑤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행사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보라고 있는 시스템이라고는 해도 5단이 2단 경기를 굳이 볼 필요는 없지 않는가. 특히나 같이 일하며 이연의 실력을 죄다 알고 있는 산오로서는 더더욱.

“보러 올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D급 변이종 임무도 허덕이는 네가 어떻게 상위권을 하는 건지 궁금해서.”

산오의 말투는 마치 그가 부정행위라도 한다는 것 같은 어조였기 때문에, 이연이 말리다 말고 조금 발끈했다.

“임무랑 초전력이랑은 다르거든?”

“그러니까.”

산오가 이연의 전신을 수색하듯 눈으로 훑었다. 꼼꼼한 시선에 이연이 움찔했다.

“하급 변이종보다는 사람 지능이 더 높은데 말이야.”

“……그, 런 문제라기보다는…….”

“와, 산오 형 관전 가게요? 그럼 저도 갈래요.”

이연이 멈칫한 틈을 타 혜강이 냉큼 동조하며 일어섰다. 평생 초전력에 관심도 없는 것처럼 굴다가 이럴 때 갑자기 따라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연이 떨떠름하게 혜강을 바라보았다.

“뭘 또 관전까지 해.”

“난 맨날 화면으로만 봤잖아. 현장에서 보는 것도 궁금하긴 해.”

그렇다고 혼자 보러 갈 정도로 간절한 건 아니고. 기회 있을 때 가면 좋잖아? 응원도 할게. 혜강이 다다다 쏟아 내는 말에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혜강은 아닌 척해도 제법 궁금했는지 눈이 반짝반짝했다.

“대진 나오면 알려 줘. 다 같이 가자.”

“그래라…….”

이연이 항복하듯 손을 내저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안 된다고 해도 별로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았고, 막을 방법도 없었다.

뭘 하든 제산오 기준에는 택도 없을 게 빤하니 응원과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제발 행운의 가호가 함께해 대진이 그나마 괜찮기를 바랄 뿐이었다.

*

초전력은 매회 9만 명가량의 사람이 참여한다. 다대일의 모의 전투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수였기 때문에, 하루 만에 끝내는 건 불가능했다. 보통 진행에만 2주에서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신청 기간까지 합치면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시험은 초호시 전역의 전투 구역에서 나눠서 치러졌으며, 변이종 출현에 대비해 모든 전투 구역을 시험에 사용하지는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런 걸 일 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시행하는 것으로 초호시가 얼마나 전투 초능력자 양성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 충분히 체감이 가능했다.

이연의 초전력 시험 장소는 제5구역. 오전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진행되는 오전 2차조였다. 조 이름은 248…… 너무 길어서 까먹었다.

“형!”

이제 9시가 겨우 넘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제5구역 앞에 선 이연이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혜강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분명히 출근 시간 정할 때 자기는 아침에 절대로 못 일어나니까 알아서 하라고 배를 쨌는데……. 고용 몇 년 만에야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기분이 엄습했다.

“용케 일어났네…….”

“어제 일찍 잤어. 내 거 사는 김에 아메리카노 사 왔는데, 먹을래?”

“고마워.”

“자, 산오 형도.”

산오와 이연이 각각 커피를 한 잔씩 받아 들었다. 컵 캐리어를 야무지게 접은 혜강이 뒤에 맨 가방에 집어넣었다. 얼핏 보니 노트북도 가져온 것 같았다.

혜강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트레이닝복 세트이긴 했으나, 색상이 화사하기 짝이 없었다. 핫핑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도 흔치 않은데 대단했다.

보들보들하고 섬세한 미소년과 날카로운 기세의 미남이 한곳에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절로 모였다. 이쪽을 힐끔이며 속닥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연예인이 구경 온 것 같다는 말소리가 이연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하긴, 혜강과 산오 조합이면 연예인이 아닌가 헷갈릴 정도로 화려한 라인업이긴 하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이연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시험 보는 사람은 난데……. 이연이 근본 없는 쓸쓸함을 느끼며 제5구역 안으로 입장했다.

원래는 회색 아스팔트 바닥만 휑하니 있었을 전투 구역엔 커다란 시험장 건물이 야무지게 세팅되어 있었다. 높은 벽에 가려져 중앙의 시험장은 보이지 않았고, 입구에서 관중석으로 가는 복도와 대기실로 가는 복도가 갈라져 있었다. 지형 설정 기능을 이용해 아예 경기장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와, 나 지형 설정 기능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리는 혜강의 모습에 이연이 놀리듯 물었다.

“왜, 너도 만들고 싶어?”

“아니. 이건 프로그래머보다는 엔지니어 영역에 가깝지. 난 그쪽은 잘 몰라서.”

혜강이 검사라도 하듯 복도의 벽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개발자가 비공식 5단급이었다며? 그렇게 강한 능력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심지어 도시 내 전투 구역이 쉰 개가 넘잖아. 어지간히 박애주의가 아니고서야…….”

혜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연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모르긴 몰라도 만들면서 기력을 엄청나게 쓰긴 했을 것이다. 아무리 5단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었고, 이 정도의 기력이라면 아마…….

“태평한 소리.”

싸늘한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그놈은 도망자일 뿐이야.”

단지 눈썹 사이가 눈과 조금 가까워진 것뿐이었으나, 산오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흉악한 기운이 풍겼다. 물론 개발자가 잠적한 것에 여러 가지 소문이 돌고 있긴 하지만…… 단순히 나쁘게만 볼 수는 없는 문제였다. 이연이 슬그머니 반대표를 던졌다.

“그래도 도시 발전에 기여했잖아.”

산오가 눈알만 굴려 이연을 바라보았다. 초록색 눈동자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해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잘도 그런 소리를 하는군.”

“……아니, 뭐…….”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뚫어 죽일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저렇게 화낼 필요까지야…….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한 인간을 보는 시선에 찔끔한 이연이 빨대에 고개를 처박으며 웅얼댔다.

“왜? 다들 개발자에 대해서 아는 거야? 무슨 일인데?”

느닷없이 풍기는 대치 분위기에 혜강이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혜강이 스물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깜빡했다. 개발자가 잠적을 탔을 시기에 혜강은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터였다.

“지형 설정 개발자가 원래 전투 구역 개발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아, 맞아. 지형 설정 기능은 추가된 지 얼마 안 된 기술이라며?”

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구역 자체는 초호시가 만들어질 당시에 함께 설계되긴 했지만, 지형 설정 기능이 추가된 것은 불과 7여 년 전이었다.

어느 날 초호시에 홀연히 나타난 천재는 세상을 뒤집어 버릴 만한 기술을 내놓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행동은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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