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그래서, 여긴 웬일이야? 뭐 고칠 거 있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냥 놀러 왔죠! 오랜만에 미래 보니까 어땠어요?”
“할 일도 없다.”
D.S는 뚱하게 대답하고 말았지만, 그리 화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큰일 났다. 거의 95%의 확률로 고글에서 유출된 정보였다. 이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D.S 씨. 많이 위험하면 국장님한테 보호를 요청하는 건…….”
D.S가 코웃음 쳤다.
“대가리 깨지기 전엔 거기 안 가.”
“머리가 어느 정도 깨지면 되는 거죠?”
“네 머리통부터 깨 줄까?”
“농담이에요.”
D.S의 태도도 그렇고 그녀의 보안 시스템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테니 크게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흘린 곳이 흘린 곳이다 보니 걱정이 되긴 했다. 이연의 낯이 조금 심각해지자, D.S가 개의치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왜요? 국장님이 그렇게 싫으면 국장님하고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래랑 같이 산다고 생각해요.”
이연은 무례하게 느껴질 만한 말도 기분 나쁘지 않게 내뱉는 재주가 있었다.
“진희수를 왜 싫어해? 나 걔 좋아해.”
“그럼 더 잘됐네요.”
이연이 다 해결된 것처럼 박수를 쳤다. D.S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집에 끔찍한 게 드나들어서 그렇지.”
“변이종이라도 키워요?”
“너처럼?”
“저희 뭉치는 귀엽거든요.”
귀엽기는. 코웃음 친 D.S가 순순히 대답했다.
“초능력자 아니면 쳐다도 안 보는 인간들이 드글드글해.”
그렇게 말하는 D.S는 정말로 질린다는 얼굴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태어난 것들이 거들먹거리는 꼴들이란…….”
초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 당연히 ‘초능력자 집안’이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희원의 자손 중 초능력자가 많이 있는 건 그야말로 운이다. 그중 진희수처럼 강한 초능력자가 나온 것은 천운이고.
그런데 그걸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
“친한 무당이 초능력 없으면 쫓아내라고 했대요?”
“비슷한 말은 했다더라.”
무속 유착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미래는 왜 뺏어갔는데요?”
“일단 쫓아내긴 했는데 자식한테 초능력이 발현되면 그건 아쉽거든. 안전을 위해 클 때까지는 지들이 키우겠다고 했어.”
“안전은 무슨…….”
보편적인 초능력 발현 시기는 2차 성징 이후. D.S가 미래와 함께 살 수 있는 건 아무리 빨라도 5년 이후였다. D.S라면 가족이 뭐라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것 같았는데, 순순히 넘겨준 게 의외다. 그런 이연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D.S가 말을 이었다.
“워낙 큰 집안이라 어린애에게는 위험하긴 해. 걔한테는 거기가 더 안전한 환경일 거야.”
최희원이라는 이름 하나로 커진 가문은 초능력자를 다수 배출해 내면서 오랫동안 권위를 지켜 왔고, 그 과정에서 잡음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휘말려 들기 딱 좋았다.
분위기가 갑자기 축 처졌다. 눈치를 보던 이연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D.S 씨, 취미 있어요?”
“갑자기 웬 취미?”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신경을 다른 데에 쏟을 수 있는 취미가 있으면 좋대요.”
이연의 말에 D.S가 흠, 하고 드라이버를 만지작댔다.
“취미라. 기계 개조?”
“……그건 일 아니에요?”
“그거랑 달라. 의뢰를 받아 만드는 초능력자 전용 장비가 아니라, 시중에 파는 기계에 심심풀이로 이런저런 기능을 만들어 보는 거거든.”
……그래도 계속하던 일이랑 비슷한 거 아닌가?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될 듯 말 듯 했다.
“그럼 지금 해 봐요. 저 사실 취미 만들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 취미를 같이 체험하고 있었거든요. 바빠요?”
“여유가 조금 있긴 해.”
“제가 도울게요. 잡일 같은 거라면 도울 수 있잖아요.”
이연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D.S가 눈을 깜빡였다. 그가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는 선명했다. 기름때가 묻은 뺨이 작게 실룩였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D.S가 공방 안쪽 창고에서 가져온 것은 고장 난 로봇청소기였다. 새까맣고 동그랗고 납작한, 평범하게 생긴 고철을 책상에 올린 D.S가 말했다.
“너무 험하게 다뤄서 그런지 금방 고장이 났던 거야.”
“그 먼지는 뭐예요?”
“고치기 귀찮아서 넣어 뒀는데 잊고 있었거든.”
자욱이 쌓인 먼지를 슥 쓸자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했다. D.S가 해체해서 부품을 넘기고 이연이 마른 수건으로 닦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조금 깨끗해진 부품들이 책상을 가득 채웠다.
“뭘로 개조할 건데요?”
“흐음……. 일단 인공 지능을 달고.”
D.S가 옆에 서 있던 커다란 칠판을 끌어와 슥슥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단어는 너무 전문적이라 이연의 지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대략적인 기능 정도는 한국어만 할 줄 알면 알아볼 수 있었다.
“인공 지능, 물걸레, 유리창 청소, 화장실 청소, 의류 관리 기능에…… 식기 세척 기능도 있다고요?”
너무 꿈같은 기계라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이연이 뱁새눈을 하고 의심스레 칠판을 뜯어보자, D.S가 대수롭지 않게 펜 뚜껑을 닫았다.
“내 능력 의심해?”
“아니, 이걸 고장 난 로봇청소기로 하루 만에 만들 수가 있다고요?”
“처음부터 만드는 건 아니야. 원형이 있으니 기능 이식은 쉬워.”
“원형이요?”
이런 최첨단 기계를 만든 게 처음이 아니라고? 나도 진작에 의뢰할걸! 이연이 통탄하며 외쳤다. D.S가 턱을 까딱여 공방 구석을 가리켰다.
“저거야.”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린 이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의심스레 내뱉은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사람?”
“기계야. 이름은 FT-0.”
이연이 홀린 듯 다가갔다.
겉보기로는 차렷 자세로 얌전히 눈을 감고 서 있는 듯한 FT-0는 이연하고 거의 비슷한 신장의 남성 외형이었다. 언뜻 보면 실제 사람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였다.
“이런 걸 만들 줄 아는데 용케 스카우트가 안 됐네요…….”
“뭐라 했냐?”
직장 생활은 능력보다 성격이라는 좋은 예시였다.
“언제 만드신 거예요?”
“꽤 됐어.”
“저는 왜 이걸 처음 보죠?”
이연이 D.S와 거래한 지는 벌써 몇 년이나 됐다. 장비 수리나 업그레이드 같은 의뢰 때문에 꽤 자주 들락날락하는 편이었고. 공방에 계속 있던 기계라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걸 손님 중 누군가가 사 갔었어.”
“근데 왜 다시 돌아왔어요? 수리 중?”
이연이 요리조리 살펴보며 질문 세례를 퍼붓다가 뺨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차가운 감각이 손끝에 닿자 확실히 기계는 기계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동시에 조금 섬찟하게 느껴져 D.S에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반 발짝 물렀을 때였다.
별안간 FT-0의 눈이 반짝 뜨였다. 어,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틈도 없이 이연과 FT-0의 눈이 마주쳤다. D.S의 심드렁한 대답이 뒤통수에서 건너왔다.
“불량으로 반품됐어.”
[외부인 발견. 경계 모드.]
FT-0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이연을 덮쳤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이연이 쓰러졌다. 쿠당탕 하는 소리가 멎자, 이연은 자신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검은색 선이 수없이 교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물이었다.
“……폐기는 왜 안 했는데요?”
순식간에 포획된 이연이 뚱하게 물었다. 로봇청소기 부품을 분류하던 D.S가 흘끗 뒤를 돌아보고 대답했다.
“폐기를 왜 해. 그렇게 정정한데.”
[주인님의 반응으로 지인임을 확인. 경계 모드를 거둡니다.]
그물을 걷어 주는 FT-0을 D.S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봐, 착하잖아.”
“착하긴 개뿔이 착해요? 쟤가 그물을 갑자기 던져서 넘어졌잖아요. 엉덩이가 아프다고요.”
[엉덩이 통증 호소 확인. 털어 드리겠습니다.]
“저리 가요!”
이연이 기겁하며 FT-0의 손길을 피했다. 굴하지 않고 엉덩이를 노리며 다가오는 FT-0와 책상 주변을 다섯 번쯤 술래잡기한 후에야 D.S가 짜증을 냈다.
“정신 사납게 굴지 마.”
[알겠습니다.]
FT-0는 다시 얌전해졌다.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듯 D.S의 옆에 차렷 자세로 선 기계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새 체력이 반쯤 다한 이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호흡이 진정되었을 즈음, 이연이 불쑥 중얼거렸다.
“이 기계, 누구 닮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