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보통 언챗으로 많이 줄여 부르는 은 초능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 정보 사이트로, 초능력자 전문 사이트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헌터들의 활발한 활동을 바탕으로 변이종 전담 기업의 구인구직이나 정보 교환, 변이종 최신 소식까지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초능력자라면 대부분 이용하는 곳이었다.
“넌 안 해?”
“저도 하기야 하죠…….”
일부 게시판 열람을 위해서는 초능력자 인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연 역시 underCH에 가입이 되어 있었다. 정보 수집을 위해 종종 들어가긴 했지만 게시글이나 리플을 전혀 쓰지 않는 눈팅 유저였고, 보는 게시판이라고 해 봤자 정보 게시판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재경은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경쾌한 손길로 그가 이동한 곳은 <자유 게시판>. 재경은 금세 게시 글을 하나 뚝딱 작성해 올렸다.
제목: 오늘 오변 본 사람
작성자: 변이종지지를철회
내용: 한창 공생화합 밀더니 왜 갑자기 정색하죠 뭔일났나요?
* * *
댓글(2)
┗ 걍 어그로
┗ 태세전환 일상이죠 ㅋ
“재경 씨 닉네임이 변이종지지를철회예요?”
“맞아.”
“왜 지지를 철회해요? 재경 씨 변이종 좋아하잖아요.”
“그, 밈 중에…… 그런 게 있어.”
인터넷 문화를 전혀 모르는 듯한 이연의 물음에 불현듯 이유 모를 부끄러움을 느낀 재경이 당당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대강 말을 돌렸다. 이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재경 씨도 초능력자였죠…….”
“80만 1단이 들고 일어날 만한 발언 자제해 줘.”
“아뇨, 그게 아니라.”
이연이 손사래를 치며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데는 헌터만 쓰는 줄 알았어요.”
사이트 내에 아무래도 변이종 처치 업무를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많다 보니 생긴 편견이었다. 재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야? 여기 헌터 아닌 사람도 많이 들어와. 엔지니어나 연구자도 엄청 많고. 명의 도용한 일반인도 엄청 많을걸?”
“정말요?”
명의 도용이라니,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일반인이면 쓸 만한 정보도 없을 텐데…….
“재경 씨는 여기서 변이종 정보를 얻는 거예요?”
“응.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도움이 많이 돼. 아무래도 학술지나 공식 정보로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과연. 납득이 됐다.
“이게 재경 씨 취미군요.”
“응. 하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
underCH 사이트 이용자라. 이 정도면 이연도 해 볼 만했다. 사이트 가입은 이미 되어 있으니 출발선은 진작에 넘겼고, 거기서 커뮤니티 활동만 조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무 글이나 쓰면 되는 거예요?”
“자유 게시판에서는 그렇지? 주제 있는 게시판에선 그 주제로만 쓰고.”
술술 대답해 주던 재경이 돌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왜요?”
이연이 화면을 향해 몸을 조금 숙이고 재경이 클릭한 게시 글을 읽었다.
제목: ㅈㅅㅇ 목격영상 뜬거 봤냐?
작성자: 귀신이고칼로리
내용: (동영상)
지림 ㄷㄷ 걍 혼자서 세계평화 이룩할 듯
* * *
댓글(32)
┗ 와 인간이냐..
┗ 나 아는 4단한테 물어봤는데 5단들은 걍 같은 인간으로 보지말라더라 ㄷㄷ
┗ 하루만 제산오로 살아보고싶다 대체 어떤기분일까
┗┗ 제산오 능력이면 빈땅 사다가 주택 존나 세워서 부동산장사 쌉가능
┗┗┗ 걍 땅에 있는 보석들 캐다 팔면 되는ㄱ ㅓ아니냐
┗┗┗┗ ㅁㅊ...그러네......
┗ 영상봣는데 제산오가 대체 어디잇음?????? 뭐 땅만 꿀렁이고 보이지가 않아
┗┗ 나무 위에 계속 서 있음
┗┗┗ ?? 나무장식 아니고 저게 제산오라고? 아예 안움직이는데???
┗┗┗┗ 손 휘적대잖음
┗┗┗┗┗ ㅅㅂㅋㅋ 지휘자세요?
[더보기..]
종희가 찍었던 도호 처치 영상이었다. 재경을 따라 함께 시청해 보니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화면에 희미하게 노이즈가 낀 화질, 바람 소리가 가득한 음향의 조화가 완벽했다. 품질을 내리는 데에 보통 정성을 들인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형상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작은 화면 속에서도 산오는 단연코 빛나고 있었다.
“대단하긴 하네요.”
저도 모르게 나간 이연의 중얼거림에 재경이 뚱하게 영상 페이지를 닫았다.
“난 얘 싫어.”
“예?”
그래도 룸메이트가 앞에 있는데 너무 솔직하, 까지 생각하던 이연이 멈칫했다.
설마 재경은 제 옆에 있던 게 누구였는지 모르……나? 떠올려 보니 재경의 앞에서 산오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마음에 안 들 것까지야…….”
“딱 봐도 성격 나쁘게 생겼잖아. 반말이나 찍찍 싸고 다닐걸.”
구린 화질만 봤으면서 통찰력이 대단했다.
“그래도 국가 영웅이잖아요.”
“영웅? 날 믿어. 쟤는 사람 구하는 데에 관심도 없어.”
……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는 건가? 이연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재경을 바라보았다. 그때도 제산오의 행동이 제멋대로긴 했지. 일부러 돌려서 욕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전에 이연 씨랑 같이 있던 그 무서운 친구 있잖아.”
“예, 네?”
놀라서 삑사리가 튀어 나간 이연이 헛기침으로 무마했다.
“그 친구보다 제산오가 훨씬 더 인성 바닥일걸.”
“그, 그건 아닐걸요……. 동급이 아닐지…….”
“뭐어? 이연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동료한테 너무하네?”
둘 다 까고 있는 주제에 입은 살았다.
“제산오 실드를 왜 그렇게 쳐 줘? 팬인가 봐?”
“아니, 팬이라뇨!”
이연은 펄쩍 뛰었지만 재경은 마뜩잖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연 씨 보는 눈이 없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제산오를 좋아하다니.”
그 뜻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아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안절부절못하던 이연이 급기야 빽 소리쳤다.
“안 좋아하거든요? 개싫어하거든요? 저런 성격 나쁜 인간을 제가 왜 좋아해요?”
“뭐야, 이연 씨 제산오 알아?”
침묵이 흘렀다.
“……아니요. 그냥 성격 나빠 보이게 생겼잖아요.”
제산오 미안.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앞으로 둘을 만나게 하지 말자. 이연은 굳게 다짐했다.
“좋아. 그럼 의견이 맞았으니…….”
재경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며 키보드 위에 올렸다. 곧 빠른 타자 소리가 이어졌다.
┗ 변이종지지를철회: 5단이면 저정도는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언제까지 올려치기할건지 ㅎㅎ;
“의견 맞은 기념으로 악플을 다는 거예요? 재경 씨는 성격이 왜 그래요?”
“진짜 제산오가 보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커뮤니티에 누군가를 과하게 숭배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안 좋다고. 재경이 아무렇게나 주절대며 페이지를 나가려는데, 답 리플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 귀신이고칼로리: ㅋㅋ 척봐도 1단찌끄레기가 열폭지리죠?
“와, 저 사람은 재경 씨가 1단인 걸 어떻게 안 거예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 자식이.”
재경이 이를 갈며 타자를 두드렸다.
┗┗┗ 변이종지지를철회: 5단이 도호 하나 못죽이면 그게 5단인가요? 대단한 사람인건 대단한 사람인거고 사실은 사실이죠. 초능력자 인식을 탈인간으로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어요 결국 초능력자도 사회에 살긴 살아야 하는데; 우상화같은건 제산오한테도 아무도움도 안돼요
거의 실시간 채팅에 가까운 수준으로 키배가 이루어졌다.
┗┗┗┗ 귀신이고칼로리: 응 산오님 너보다 잘먹고 잘살아~ 부족한거 하나도 없어~ 4급을 한번에 죽일 수 있는 헌터가 대체 누가 있다고 정치질인지 기도 안 차네 ㅋㅋ
산오 님. 어디서 듣던 호칭이다. 불길한 예감에 이연의 눈동자가 데구룩 굴렀다.
┗┗┗┗┗ 변이종지지를철회: 산오님ㅋ 모르는 사이에 한국이 봉건제로 바뀌었나요?? 역시 1단보고 찌끄레기 운운하는 계급주의자는 좀 다르네 ㅎㅎ; 좀 있으면 산오전하도 나올 듯
┗┗┗┗┗┗ 귀신이고칼로리: 할말없으니까 별걸 다 가지고 걸고넘어지네 밖에 나가서 현생을 좀 살아 ㅠ 방구석에서 이러고 있지 말고
┗┗┗┗┗┗┗ 변이종지지를철회: 혹시 동족혐오라고 아시는지? 그런소리하는거 보니까 님인생도 알만하네요 ㅎㅎ
┗┗┗┗┗┗┗┗ 귀신이고칼로리: 이게 진짜
“저, 재경 씨.”
“가만히 있어 봐. 나 지금 바빠.”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런 싸움은 그만하는 게……. 그러나 그 말을 이연이 채 내뱉기도 전에, 새로운 리플 알림이 떴다.
┗┗┗┗┗┗┗┗ 김종희: 곧 댁으로 내용증명 서류가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