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41화 (41/250)

#41

“어서 와. 뭉치는 데려왔어?”

재경이 환한 얼굴로 문을 열어 주었다. 이연에게 인사하기도 전에 바로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폼이 손꼽아 기다린 듯했다.

뭉치는 재경과 눈이 마주치자 새침한 얼굴로 이연의 종아리에 고개를 묻었다. 낯을 가리나? 이연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연이 움직이자 뭉치 역시 쫄래쫄래 따라왔다.

재경의 집은 전형적인 원룸이었다. 좁은 현관 바로 근처에 주방과 화장실이 양옆으로 붙어 있고, 그 너머에 거실 겸 침실이 있는 구조. 안쪽에 있는 가구라곤 침대와 컴퓨터가 놓인 책상, 그리고 간단한 서랍장 외에는 책장이 전부였다.

책들이 어찌나 꽉꽉 들어차 있는지 책장을 전부 채우고도 모자라 남는 윗 공간에도 빼곡하게 쌓아 놓았고, 바닥에도 두꺼운 서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슬쩍 보니 대부분이 변이종 전문서였다.

반투명한 서랍의 내용물도 모두 서적류인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수납하겠다고 가지런히 두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으나, 원룸에 담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보니 결국 이게 사람 집인지 도서관인지 모르는 꼴이 되어 버렸다.

“책이 엄청 많네요…….”

“이것도 자리 없어서 많이 버린 거야.”

두 사람이 방 안쪽으로 들어서자 침대에서 놀고 있던 변이종 네 마리가 고개를 들어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연구소에서 구한 하급 변이종들이었다. 알록달록한 변이종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마치 인형들이 침대에 널려 있는 것 같았다.

앉을 곳이 없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자, 변이종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자기들끼리 모여들었다. 묘하게 겁을 집어먹은 기색이었는데, 이연 본인보다는 그의 발치에 누운 뭉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자, 내줄 게 없네. 주스 괜찮아?”

“고맙습니다.”

머그 컵에 가득 담긴 오렌지 주스를 몇 번 홀짝인 이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뭉치는 왜요?”

내내 조용하던 재경의 첫 연락은 어제저녁이었다. 대뜸 메시지로 뭉치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는데, 무려 변이종 전문가가 하는 말이다 보니 무언가 큰일이 났나 걱정이 돼 다음 날 바로 재경의 집에 들른 참이었다.

“아니, 그게. 혹시 뭉치 말이야.”

재경의 얼굴이 금방 진지해졌다. 보통 심각한 기색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털 관리는 어떻게 해 줘?”

“예?”

재경이 둑이 터진 호수에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말을 뱉어 냈다.

“아니, 그게. 변이종들은 음식물을 필수로 섭취해야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럼 잘 먹고 잘 잔다고 외형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는 건데, 연구소에서 봤을 때도 그랬지만 뭉치는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더라고. 혹시 특별한 관리 비법이 있나 해서. 팁이 있으면 전수 좀 해 줘. 설마 상급 변이종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뭉치는 뭘로 씻어? 빗질하는 브러시가 따로 있어? 아니면 쓰는 에센스가 있다든가.”

“갈게요.”

“아, 이연 씨!”

일어나려는 이연을 질척대며 잡아 붙든 재경이 헛소리를 계속했다.

“우리 애들이 진짜 순하고 귀엽거든. 근데 털이 조금 푸석해서 신경 쓰인단 말이야. 내버려 뒀다가 개털이 되면 어떡해? 잠깐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 마음 아파.”

“개털이 된 건 제 마음이에요. 심각한 문제인 줄 알고 바로 달려왔잖아요.”

“난 심각해!”

퍽이나.

“자꾸 이러면 방송국에 변이종 키우는 사람 있다고 제보할 거예요.”

“치사하다. 비밀이라 이거지?”

질시에 가득 찬 시선이 날아왔다. 이연이 영혼 없는 눈알로 휴대폰을 든 후에야 재경은 난리를 멈추었다.

쓰잘데기없는 설전에 심력을 소모하느라 목이 탔다.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켠 이연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침대 구석에서 이연을 흘끔대던 하급 변이종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연도 아는 변이종이었다.

제 9급 변이종 긴귀제비. 귀가 긴 족제비처럼 생긴 조그만 변이종이다. 강한 전투 능력은 없으나, 외형이 귀엽고 개체 수가 많아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변이종 중 하나였다.

모여 있는 변이종들은 재경이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죄다 때깔이 고왔다. 사실 이연이 보기엔 털도 그다지 푸석하지 않았다.

재경의 집은 깔끔하진 않았지만 그건 변이종이 아니라 인간의 소행인 것 같았다. 얌전하게 잘 지내나 보네. 이연이 조심스레 손을 흔들자, 긴귀제비가 경계를 줄이고 슬금 거리를 좁혀 왔다.

“얘네는 어때요? 따로 뭐 하고 있는 거 있어요?”

“처치는 연구소 터지기 전에 다 했고 지금은 경과를 보는 것뿐인데, 다행히도 괜찮아. 별문제는 없는 것 같아.”

듣던 중 다행인 사실이다. 변이종을 위한 의료 시설 따위가 있을 리가 없고, 있다고 해도 불법에 연루된 변이종들의 사정을 전부 말할 수는 없었다.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재경 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 사실상 요원한 일이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안 물어봐요?”

이연의 말에 내내 조잘대던 재경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서 변이종들이 꿈질대며 자리를 잡느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났다. 째깍. 째깍. 어디서 희미한 시계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흘러나온 목소리는 조금 낮았다.

“나는 다시 돌아가도 사람보다는 변이종을 택했을 거야.”

“그랬겠죠.”

“난 사람이 싫어.”

“그래 보여요.”

갇힌 인간과 갇힌 변이종 중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한 건 살아온 삶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일 것이다. 환경, 경험, 인식, 뭐 그런 것들.

“재경 씨의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죠.”

뭐라 할 마음은 없었다. 뭐라 할 자격도 없었고.

이연 역시 준법 시민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한 위법 행위를 전부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면, 생의 반은 감옥에 있어야 할 터였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삶은 이연과 가장 먼 단어였다.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쓸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궁금할 수는 있잖아요.”

그는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진짜 하나도 안 궁금해요?”

조그만 목소리는 한참 후에 나왔다.

“……어떻게 됐는데?”

이연이 빙긋 웃었다.

“전부 살아 있고, 멀쩡해요. 회복만 좀 하면 된대요.”

재경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이연은 괜히 그의 등을 두어 번 토닥였다.

“재경 씨도 어쨌든 그 사람들 구하는 데 일조했잖아요. 비록 변이종이랑 거래하긴 했지만.”

“……말에 뼈가 있다?”

“변이종을 우선하긴 했지만, 어쨌든 구한 건 구한 거죠.”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거지?”

재경이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드러누웠다.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이야. 개인적으로 변이종 연구를 계속하고 싶긴 하거든.”

“뭐가 문젠데요?”

“돈이지.”

“아.”

재경이 하고 싶은 변이종 연구라면 수익이 날 만한 종류도 아닐 터였다. 투자해 주겠다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시무룩하게 누워 있던 재경이 팔을 뻗어 변이종들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었다. 짧은 시간 새 꽤 친해졌는지 변이종들은 피하지도 않고 얌전히 손길을 받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해 봐야지. 안 되면 알바라도 하든가…….”

재경의 의지는 단단했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리는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힘내세요. 저도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요.”

“아, 그럼.”

“대출 빼고요.”

“힝…….”

다 큰 어른이 힝은 무슨. 야멸차게 선을 그은 이연은 재경이 진짜 돈 달라고 조를까 싶어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재경 씨도 취미 있어요?”

“갑자기 웬 취미?”

“저도 취미를 하나 가질까 싶어서요. 만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있어요.”

재경 씨 취미라고 해 봤자 변이종에 관련된 거겠지만……. 이연이 재경의 자취방을 슥 둘러보았다. 방에 꽉꽉 들어찬 책들을 보면 참 일관된 사람이었다.

“참나, 내 취미는 여기 있어.”

이연이 별 기대 없이 물었다는 걸 재경도 알아챘다. 벌떡 일어나 책상 쪽으로 다가간 재경이 손을 뻗은 것은 컴퓨터였다.

“……책 쇼핑이요?”

“난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는 주의야.”

재경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컴퓨터를 부팅했다. 익숙한 폼으로 브라우저를 열고 들어간 곳은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 이연도 아는 곳이었다.

“언챗? 재경 씨 언챗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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