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이연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종찬과 종희의 열정은 단순히 상사를 향한 충성이라고 보기엔 과했다. 직업이 제산오 관리인데 취미도 제산오 관리라니. 보니까 특기도 제산오 관리인 것 같았다.
“산오 님이 저희를 구해 주셨습니다.”
“죽이려고 한 게 아니고 구해 줬다고요?”
이 자식, 나는 보자마자 죽이려고 들더니……. 이연이 불쑥 드는 억울함을 곱씹을 새도 없이 종희가 말을 이었다.
“초능력 발현 연구소라고 아십니까?”
초능력 실험 금지법이 발효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 심지어 법이 생기고 나서도 사람들은 공공연히 불법을 자행해 왔다. 초능력자가 됐을 때 생기는 많은 혜택은 차치하고서라도, 초능력자는 초능력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길바닥에 썩어 널렸던 탓이다.
종찬과 종희는 그 욕심의 피해자였다.
“거기에 계속 있었더라면, 산오 님이 구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죽었을 겁니다.”
“제산오가…….”
초능력 관리청이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대대적인 불법 연구소 소탕에 커다란 예산을 쏟아붓고 나서야 음습한 욕망은 자취를 감췄다.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고 음지로 숨어든 거지만, 크게 움츠러들었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게 한 4년 전. 제산오가 초능력자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다.
“우리가 오갈 데 없다는 걸 안 산오 님은 우리를 고용해 주셨어.”
걔가 그렇게 기특한 짓을 했다고? 분명히 두 사람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갔을 것이다. 이연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조금 놀라긴 했다.
“그 후로 산오 님을 보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왔지. 우리가 산오 님에 대해 모르는 건 없어, 요.”
뻐기는 종찬의 얼굴에 대고 이연이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제산오 밝은색 좋아하는 거 알아요?”
“뭐!”
듣도 보도 못한 정보에 종찬이 냅다 포효했다. 진짜냐고 열 번은 물은 후에야 수첩을 꺼내 새로운 정보를 소중하게 적어 넣었다. 그 옆에서 열 번이나 같은 대답을 하며 달달 볶인 이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개피곤했다.
“참, 그리고 산오 님이 이번에 구하신 사람들 말입니다.”
얼마 전 새벽에 운반되었던 열일곱 분, 하고 종희가 덧붙였다. 아, 클럽 연구소.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산오가 연락한 사람이 종희인 모양이었다.
“지속적인 기력 갈취에 몸이 쇠약해지긴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푹 쉬면 나을 거라는 진단을 받아 현재 요양 중입니다. 요양이 끝난 후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런 걸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편하구나. 머쓱하게 감사 인사를 하자, 종희가 딱 부러지는 어투로 덧붙였다.
“그리고 차후에 그분들을 만나시더라도, 산오 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네? 왜요?”
“산오 님의 추종자는 포화 상태입니다.”
“…….”
지들이 제산오를 좋아한다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제산오 발닦개가 될 거라는 커다란 착각을 정정해 줘야 하나 고민했으나, 이연은 가만히 화제를 돌렸다. 괜히 한마디 했다가 같은 대답을 열 번이나 했던 과거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마침 산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고.
“제산오가 인분이 필요하다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아세요?”
이연의 물음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종찬의 얼굴이 딱딱하게 변했다.
“……해, 해 드려.”
“예?”
“산오 님이 뭘 원하든, 해 드려.”
“……예?”
굉장히 불길하게 들리는 발언이었다. 안색이 다소 창백해진 이연이 종희를 바라보자, 종희가 흔들림 없이 이연을 응시했다.
“카드값은 하십시오.”
“…….”
보아하니 이 인간들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이연이 애써 말귀를 외면하고 돌아섰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뒤통수가 뚫릴 것 같아서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필사적으로 피하며 여기 언제까지 있냐고 징징거린 끝에 이연은 차에 다시 탑승할 수 있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길. 이연은 창밖 구경을 하다가 흘리듯이 중얼거렸다.
“……은혜라고 꼭 모든 걸 바쳐 가며 갚을 필요는 없는 거 알죠?”
핸들을 돌리던 종찬이 피식 웃었다.
“이건 은혜 갚는 게 아니라 취미라니까, 요.”
*
“취미?”
“응. 어떤 건지 보여 줄 수 있어?”
“응!”
조막만 한 손이 알록달록한 가방을 뒤적였다. 아이의 몸이 전부 덮일 정도로 커다란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은 휴대폰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얼굴만 한 휴대폰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미래가 곧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삼춘이 취미를 보여 달라고 해서 켰습니다. 미래입니다!”
“어어…….”
“삼춘, 인사!”
“안녕하세요. 정이연입니다…….”
이연이 카메라 렌즈에 대고 떨떠름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는 어디냐면요, 삼춘 일하는 곳이에요! 이연 삼춘 말고 그냥 삼춘인데, 어…….”
미래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 희수에게 닿았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희수가 세 박자 후에 대답했다.
“……초능력 관리청.”
“초능력 관리청입니다! 삼춘은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해요.”
해맑게 변이종대응국장의 과로를 폭로한 미래가 다시 이연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미래 취미는 브이로그 만들기예요!”
“오오, 대단하다.”
이연이 박수를 짝짝 쳤다.
“오늘은 학원 쉬는 날이라 삼춘이랑 있는 날이에요. 이따 맛있는 거 먹을 거예요!”
야무지게 말을 마친 후 녹화를 종료한 미래가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소파에 앉았다. 옆자리에 이연이 따라 앉으며 물었다.
“그냥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웅! 일상을 담으면 돼. 일기 같은 거야! 미래는 학교 가는 거랑, 친구들이랑 노는 거랑, 먹는 것도 찍어. 어제 밥도 찍었는데…….”
“미래야. 식탁에서 휴대폰 쓰면 안 된다고 했잖니. 아주머니도 열심히 준비해 주신 밥 앞에서 딴짓하는 미래를 보면 슬플 거야. 할머니도 걱정하실 거고.”
서류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말하는 희수의 모습에 미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삼춘은 잔소리만 해.”
“미래야!”
희수가 그제야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충격 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잔소리라니, 삼촌은 그냥 미래가 걱정돼서.”
“미래랑 밥도 같이 안 먹으면서.”
“그, 그건 일이 바빠서…….”
“미래가 밥 뭐 먹었는지도 모르잖아.”
“그건…….”
“그래서 브이로그로 알려 주는 건데, 삼춘은 아무것도 모르고.”
“미래야……!”
느닷없이 감동적인 무드가 형성되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래를 끌어안은 희수가 사실 브이로그 잘 보고 있다며 애독자임을 고백했다. 유튜버에 재능이 있다는 둥, 골드 버튼을 받는 건 금방일 거라는 둥의 아첨을 늘어놓자 미래가 의기양양하게 커다란 등을 토닥였다. 그는 이후로도 우리 미래 예뻐 죽겠다는 요지의 말을 5분간 주절대고 나서야 미래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연과 눈이 마주쳤다.
“…….”
“…….”
“…….”
“……의뢰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갑자기요?”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돌연 정색하며 일어난 희수가 근엄한 얼굴을 유지하며 책상에 다시 앉았다. 미래에게 놀자고 연락했는데 얼결에 국장실로 안내받았을 뿐인 이연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러나 미래를 사랑하는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넘어갔다.
“아직 별다른 진전 사항은 없어요.”
처음 보고를 했을 때, 희수는 그야말로 대경실색했다. 근절한 줄 알았던 불법 실험 연구소에 변이종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의 얼굴색은 돌아올 줄을 몰랐고, 보고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입을 떼지 못했다.
연구소를 다운시키기 전 데이터베이스를 통째로 복사한 혜강의 조사 결과, 클럽의 불법 연구소의 변이종 실험 기록에는 연기여우가 없었다. 클럽 연구소에서 취급한 변이종들은 모두 7급 이하의 하급 변이종이었다.
변이종에게 초능력 주입 실험을 한 연구소인데도 정작 의뢰의 계기인 연기여우 자료는 없었다. 그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명확했다.
이런 연구소가 하나가 아니다.
즉, 클럽 연구소는 허탕이었다. 그러나 클럽 연구소에서 행해진 실험 역시 연기여우 사례와 거의 비슷하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에, 아예 연관이 없는 건 아니었다. 김 박사를 캐다 보면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희수는 침묵을 깨고 의뢰 내용을 바꿀 것을 요청했다. 그 의뢰를 받아들여, 차금은 유일한 단서인 김 박사의 행적을 감시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