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28화 (28/250)

#28

“클럽 가 본 적 있어?”

“아니.”

그럴 것 같긴 했다. 클럽 가서 몸을 흔드는 제산오라니, 인지부조화를 넘어서 인지 능력 파괴범 수준이다. 간단한 회식 때 주는 맥주도 안 먹는 놈이 클럽에서 술을 먹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고.

“너는.”

“나야 뭐……. 한두 번 정도?”

그 말에 산오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온갖 유흥을 다 즐기고 다녔군.”

“야, 뭘 또 온갖 유흥을…….”

“방탕아.”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반듯한 얼굴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이연 자신이 정말로 삐뚤어지게 논 과거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스라이팅에 특출난 재능이었다.

“됐다, 됐어.”

입을 삐죽인 이연이 걸음을 재게 놀렸다. 그러나 다리 길이 차이로 보폭을 조금 넓힌 산오에게 금방 따라잡혔다. 괜한 반항은 빠르게 무산되었다.

클럽은 큰길의 안쪽으로 들어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술집의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조금 멀어진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도밖에 없는 도롯가와 맞닿아 있었다.

뭉치처럼 지구 동물과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면 모를까, 무리불새나 연기여우처럼 확연한 외형적 특징이 있는 변이종들은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로 오기엔 눈에 띄었을 터다. 이쪽에 차를 잠깐 대서 진입하는 방법을 주로 썼겠지. 그럴듯한 구조였다.

입구에는 제대로 된 간판이 없었다. 어차피 전부 초대받고 오는 사람들이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연이 문 쪽으로 다가가자, 앞에 서 있던 장정이 그를 막아섰다.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초대장 있어요.”

이연이 휴대폰 화면을 들이대자, 바코드 기계 같은 것으로 화면을 찍은 장정이 이내 물러서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문 너머에서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심장 리듬과 비슷한 비트가 쿵쿵 울렸다. 이연은 산오에게 눈짓하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뭉치 역시 눈치 빠르게 이연을 따랐다.

내부는 일반적인 클럽과 비슷했다. 무대에는 DJ가 음악을 틀어 주고 있었고, 어둑한 공간을 사이키 조명과 스테이지 조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부분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좁은 복도를 따라 계단 아래로 반 층 내려가면 나오는 커다란 홀의 가장자리에는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홀이 있는 1층뿐만 아니라 가운데가 뚫려 스테이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까지 알뜰하게 채운 테이블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목줄을 채운 채로 나와 있는 변이종도 몇 마리 보였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잔뜩 앉은 테이블 근처에는 스툴만 한 케이지가 하나 이상 마련되어 있었다.

‘저게 그 케이지겠군.’

이연이 주변을 가볍게 둘러본 바로 빈 케이지는 거의 없었다. 거기다 뭘 놔뒀는지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했다.

“전부 초능력 변이종일까?”

“글쎄.”

저 정도 크기의 케이지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변이종이라면 보통 고등 자아가 없는 하급 변이종이다. 그러나 아무리 등급이 낮아도 변이종은 변이종. 일반 사람은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 생물들이었다. 이연이 보기엔 클럽 내부에 썩 대단한 초능력자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요약하자면, 멍청해서 용감한 인간들의 집합소인 셈이다.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얼핏 봐도 백 명은 넘는 것 같았다. 명목은 회원제 클럽인데 보통 클럽만큼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니.

미간을 조금 찌푸린 이연이 고글을 꺼내 머리 위에 썼다. 눈에 착용하는 건 너무 눈에 띄니 임시방편이다. 대충 레트로 패션이라고 우길 요량이었다.

“혜강아, 많이 시끄러워?”

- 괜찮아. 이퀄라이저 조정하면 돼.

다행히 음악 소리가 커서 이연이 혜강과 통신하는 소리는 충분히 묻힐 것 같았다. 산오의 귀에도 어느샌가 통신기가 걸쳐져 있었다.

“술부터 사 올게. 뭉치 좀 데리고 어디 앉아 있어.”

“웬 술.”

“그게 클럽 문화야, 짜샤. 오늘 형님만 믿고 따라와.”

“가지가지 하는군…….”

이연은 산오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하며 사이드에 마련된 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따라가려던 뭉치는 산오가 발로 당겨서 저지되었다.

둘이 얌전히 있는 모습을 흘끗 확인한 이연이 위스키를 두 잔 주문했다. 사람이 몰린 탓에 바텐더는 고개만 겨우 끄덕이고는 곧 다른 주문을 받기 위해 가 버렸다. 좀 기다려야겠네. 이연이 바 앞에 마련되어 있는 높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귀가 벌써 먹먹했다. 여기서 나가고 나서도 반나절은 청각을 포기해야 할 터였다. 귀 건강은 날아갔으니 음악이나 즐기자. 이연이 무념무상의 자세로 고개를 리듬에 맞춰 까딱이고 있을 때였다.

“고글 예쁘네. 어디서 샀어?”

난데없이 느끼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뭐야? 이연이 훅 다가온 인기척에 미간을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남자가 건들거리며 웃고 있었다.

음악 소리가 크니 가까이서 말을 해야 들리는 건 알겠지만,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숨결까지 닿을 정도였다. 부담스러운 작태에 이연이 상체를 조금 물리는데, 혜강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리 형 플러팅도 받고, 인기 많네.

이게 지 일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괜찮은 게 없어서 커스텀했어요.”

남자가 무슨 속셈으로 온 건지는 몰라도 분위기 정도는 맞춰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적당히 대화하는 거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뺨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하자 클럽남이 역시, 하고 소리쳤다.

“멀리서 봤는데 패션 피플의 냄새가 나더라고~ 너 우리 테이블 올래?”

- 진짜 플러팅 아냐?

“제가 일행이 있어서요.”

영화 관람하듯 코멘트하는 혜강을 무시하며 거절해도 클럽남은 포기하지 않고 재미있을 거라며 계속 꼬드겼다.

“에이, 술 내가 살게. 원래 이런 데에 오면 전부 찢어져서 각자 놀다 집에만 같이 가면 되는 거지. 응? 같이 가자.”

“아니, 그게…….”

“기분이다! 술 먹고 싶은 걸로 골라 봐! 내가 다 쏜다!”

“…….”

진짜?

- 아. 형 혹했다.

아니, 비싼 술 마실 기회가 흔치 않긴 하잖아. 정보 수집도 해야 하니 저 남자 테이블에 잠깐 앉아서 대화 나눠 보는 것쯤은 괜찮지 않나? 이연이 고민하는 척하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술 나오는 데에 오래 걸리니까 잠깐 들렀다가…….

“뭐 하냐.”

어깨동무하며 살갑게 굴던 클럽남의 손이 강제로 떨어져 나갔다. 시끄러운 음악을 뚫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목소리는 흔치 않았다.

이연이 고개를 돌리자 산오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서 있었다. 가파르게 치켜 올라간 눈썹이 험악했다.

“와, 진짜 잘생겼네…….”

클럽남이 홀린 듯 중얼거렸다. 시선이 산오의 얼굴로 못 박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소곤대며 산오를 흘끔대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얼굴이긴 했다.

“믿고 따라오라더니 버리려고 했군.”

“뭉치는 어쩌고?”

높은 의자에 앉아 있으니 눈높이가 딱 맞았다. 땡땡이 현장을 딱 걸린 이연이 맹한 척 딴소리를 하는데 의자 밑에서 부스럭대는 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니 뭉치가 상체를 들어 올리고 이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이게 당신 거? 교육받았나 봐?”

산오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구경하던 클럽남이 그제야 뭉치에게로 관심을 옮겼다. 케이지에 들어가 있거나 목줄을 찬 다른 변이종과는 달리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연이 적당히 대꾸해 주었다.

“네. 귀엽죠.”

“종류가 뭐야?”

“잘 몰라요. 아직 발견이 안 된 종 같아요.”

“멋있다!”

곧이곧대로 청호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다행히 클럽남은 의심 없이 믿는 듯했다.

“가자.”

어느새 자신의 뒤에 바짝 붙은 산오가 말을 할 때마다 진동이 등에 닿았다. 퍼스널 스페이스 개념이 어떻게 되는 거야…….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갈 뻔한 이연이 간신히 온기를 무시하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보셨죠? 제가 이쪽 일행을 챙겨야 해서요.”

시킨 일은 안 했지만 좋은 타이밍이다. 클럽남을 죽어라 노려보는 산오를 가리키자, 살벌한 시선에 클럽남은 조금 찔끔하는 듯했으나 손뼉을 치고는 호쾌하게 외쳤다.

“둘 다 와! 난 또, 일행 챙기길래 일행이 모자라는 줄 알았지 뭐야.”

제산오 눈빛을 보고도 기 죽지 않다니, 이쯤 되면 이 클럽남이 웬만한 변이종보다 대단했다. 이연이 속으로 기개에 박수를 보내며 대답했다. 바라던 바다.

“아, 그럼 그럴까요?”

냉큼 수락하는 꼬락서니에 산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뭐 하는 거야.”

위협적으로 을러도 이연은 태평했다. 오히려 산오의 귓가에 바짝 얼굴을 붙여 속삭이기까지 했다.

“야, 이거 좋은 기회야. 저기서 비싼 술 잔뜩 먹어도 된대.”

“…….”

이미 클럽남의 테이블에 가서 남의 지갑을 털어 버릴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굶고 자랐나 싶을 정도로 남의 재정 파탄에 열정적인 파트너를 둔 산오만 피곤해졌다.

“돈만 주면 아주 나도 팔아넘기겠군.”

클럽남의 안내를 나란히 따라가는 길에 내뱉은 산오의 목소리에는 강한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정색했다.

“얼마나 제시하는지 일단 들어 보고…….”

“쓸데없는 거나 듣는 귀를 굳이 달고 있을 필요가 있나?”

“우리 산오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해야지.”

산오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이미 삐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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