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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9화 (9/250)

#9

쾅!

먼지 구름 사이에서 채찍 같은 무언가가 산오에게 날아왔다. 피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산오가 그대로 맞은편 폐건물로 날아갔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했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제산오!”

제 역할을 마친 꼬리는 다시 먼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놀란 이연이 허겁지겁 뛰면서 청호 쪽을 흘깃 확인했다. 흙먼지 사이에서 거대한 것이 어슬렁 일어서는 게 보였다.

“괜찮아?”

폐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 산오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포탄처럼 부딪히는 모든 걸 부수고 안착한 덕이다. 다행히 후려 맞는 순간에 방비한 듯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아마 신체 강화를 썼겠지.

“그럭저럭.”

뚱한 얼굴은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이연이 달래듯 물었다.

“할 만해?”

“생각보다는.”

“지원을 요청할까?”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초록색 눈이 이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어쩐지 긴장이 되어서, 이연은 남몰래 침을 삼켰다.

“아니.”

느릿하게 떨어지는 대답은 단호했다. 산오가 몸을 일으키자 건물의 파편과 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선 산오는 폐건물 바깥, 청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해 보도록 하지.”

산오는 그렇게 말하고 튀어 오르듯이 낮게 점프해 단번에 폐건물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곧 쿵, 하는 둔탁한 충돌음이 폐건물을 흔들었다. 으르렁대는 짐승 소리 역시 선명하게 들렸다.

계획이 있는 건가? 아니면…… 아니, 이런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고개를 약하게 흔든 이연 역시 건물을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예상은 했지만 거의 산오 혼자 싸우는 형국이었다. 아무리 5단이라고 해도 2급 변이종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생각해, 정이연. 이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의 능력 선에서 산오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전화가 온 것은 그때였다.

띠로링 하는 벨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바쁜데 눈치도 없이 누구야?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이연이 발신인 확인도 하지 않고 냅다 전화를 받았다.

“왜?”

[뭐가? 먼저 전화한 건 형이잖아.]

남은 개고생 중인데 막 일어났는지 목소리가 나른했다. 그제야 이연이 전화를 받은 사람을 확인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 혜강이었다.

“야! 너 내가 전에 부탁했던 분기 임무 완료 안 했어?”

[어? 아, 그거……. 웬 미친놈 때문에 나중에 한다고 잠깐 미뤄 놓고 깜빡했네. 미안. 지금 넣을까?]

“이미 보류 처리 돼서 날아갔거든?”

쾅! 투덜대며 건물을 막 나온 이연의 바로 앞에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철근이 떨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한가하게 잘잘못이나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방금 뭔 소리야? 의뢰 중?]

“혜강아, 당장 노트북 연결해.”

[엉?]

“나 지금 32 전투 구역이야. 2급 변이종이랑 있어.”

[……어엉?]

“연결되면 말해. 끊는다!”

휴대폰을 급하게 집어넣은 이연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전투 잔해들을 피하며 뜀박질을 시작했다. 혜강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이긴 했지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곧 신호가 올 것이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에 연락이 왔다. 이연이 줄곧 목에만 걸고 있던 고글을 당겨 착용했다. 시야가 익숙한 푸른 렌즈로 덮였다.

이연의 동업자, 이혜강은 헌터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없다면 사실상 차금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전직 해커인 혜강은 회사 내 디지털 시스템을 총괄했다. 뿐만 아니라 직업적 기술을 바탕으로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며 전투 정보 기록, 데이터 수집, 상황 분석 및 판단 등의 후방 지원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유능한 오퍼레이터다. 사무실에 있는 커다란 책상 역시 이연이 아닌 혜강의 것이었다.

변이종 임무 시에도 혜강은 사무실에 남아 상황과 전력을 파악하고 작전을 지시하며 이연을 보조했다. 이연의 전투 장비, 고글이 바로 혜강과 연결되는 통신기였다.

- 아, 아. 들려?

“들려.”

혜강 역시 초능력자지만, 무궁화 1단이라는 최하급 판정을 받았다. 기력도 능력 응용력도 나쁘지 않았던 혜강이 고작 1단으로 그친 원인은 단 하나, 능력의 종류였다. 변이종에게 대응할 때 활용도가 아주 낮다는 이유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초능력은 전파 간섭. 전기 기술을 쓰지 않는 변이종에게는 하등 쓸모없었고, 실제로 혜강은 초능력 심사 때 변이종 대응 가상 테스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 왜 그렇게 멀리 있는 거야? 전파 안 닿아서 옥상 뛰어오느라 죽는 줄 알았네…….

“고생했어.”

각종 통신의 데이터 처리 및 인터셉트가 가능한 이 능력은 현대 사회 안에서 누구보다 유리했다. 가까운 아무 회선이나 가로채 사용하는 혜강의 통신은 도시에 전기가 흐르는 한 절대 끊기지 않았다.

- 대체 2급 변이종 처리하는 데에는 왜 껴들어 갔어?

“끼고 싶어서 낀 게 아니거든?”

- 뭔데? 정체는 알아?

“청호라는데, 혹시 알아?”

- 아……. 한번 찾아볼게.

어떤 회선이든 가로챌 수 있다는 말은 모든 서버에 접근 권한이 있다는 말이었다. 공식적인 문서는 물론이고 기사나 커뮤니티 글, 아주 사소한 개인의 기록까지. 혜강은 인터넷에 올라온 데이터라면 모조리 열람이 가능했다.

이런 능력이 고작 1단 판정이라니. 아무리 시스템을 체계화해도 허점이란 존재하는 법이다.

- 대충 찾긴 했는데.

통신이 들려온 것은 잠시 후였다. 그가 뒤지는 범위가 도시 전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속도다.

- 공식 문서는 별 내용이 없긴 해. 전달해 줄 테니 봐 봐.

곧 푸른 렌즈에 혜강이 띄운 텍스트가 줄줄이 떴다. 이연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2급 변이종 청호. 약 10M가량의 몸체. 푸르게 빛나는 털을 가진 호랑이 형상. 거대한 신체를 이용한 물리 공격을 주로 하며, 뇌전 계열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 최초 발견 시 무궁화 4단 2인이 대응했지만 단시간에 전원 전투 불능으로 만들고 도주. 차후 발견 때 무궁화 4단 6인 및 무궁화 3단 3인이 대응했지만 역시 따돌리고 도주.

혜강의 말대로였다. 이렇다 할 전투 특징조차 없는 것을 보니 속수무책으로 말린 모양이었다.

최상급 위험 변이종에 속하는 1급과 2급 변이종은 수십 년에 달하는 변이종 역사 속에서도 출현 횟수가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습성 혹은 약점을 알아낸 사례는 더 드물었고, 처치한 적은 고작 두 자릿수에 그쳤다. 최상급 변이종을 상대할 때에는 처치나 제압이 아니라 쫓아내는 게 기본 원칙일 정도였다. 그들을 단순히 적공 안으로 돌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쓸 만한 정보는커녕 청호가 생각보다 더 세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게다가 뇌전……. 금속을 주로 다루는 산오와는 최악의 상성이었다. 이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글자 더미를 노려보았다. 그나마 사람 죽인 적은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호전적인 성향은 아닌가? 그런데 우린 왜 공격한 거지?

- 청호는 어쩌다 만난 거야? 형이 청호 만날 일이 뭐가 있어?

“아니, 만나려고 만난 게 아니…….”

투덜거리던 이연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거 사실 무리불새 임무였거든. 혹시 무리불새가 미끼종이야? 아니면 청호랑 관련이 있다든가.”

변이종 중에는 간혹 위험에 처하면 다른 변이종을 부르는 습성을 가진 놈들이 존재했다. 보통 미끼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무리불새가 미끼종이라는 정보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지만, 현시점의 변이종 연구가 완벽하지 않으니 있을 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었다.

- 엥?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소리 사이로 타닥, 하고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 어……. 미끼종은 아닌데 그냥 사고를 많이 치긴 하나 봐.

그 말과 함께 혜강이 보낸 게시 글이 고글 화면에 떴다.

제목: ㅁㄼㅅ 얼마냐?

내용: 우리 회장이 새에 미쳐서 변이종이어도 얻고싶다 ㅇㅈㄹ 중인데 가능? 회장 말로는 위험하진 않다는데

* * *

댓글(6)

┗ 야시장가보셈 파는놈 있을듯

┗ 배때지가 처불러서 변이종 키우려는 놈도 있고 ㅋㅋ 도시 꼬라지 잘돌아간다

┗ 무불 알아주는 사고뭉치인데 회장 자신있대냐?

┗┗ ?? 뭐하는데

┗┗┗ 걍 눈치보면서 사고치기 고수임 내 두살짜리 조카랑 하는짓 똑닮

┗┗┗┗ 엌ㅋㅋㅋ

*

제목: 무불 임무맡지마라

내용: 날아다니는거 잡기도 개같은데 잡고 난 이후에 온동네 난장판을 시발 ㅋㅋㅋ 존만이들 죽일수도 없고 어휴

* * *

댓글(3)

┗ 전에 임무땜에 잠깐 맡았는데 얌전히 길가는 척하다 지나가는 시민한테 치댐 ㅋㅋ 가방 물어뜯고 귀걸이 잡아당기고 난리도 아니었어가지고 결국 관리소홀로 회사에서 배상하고 시말서썼음 ㅅㅂ

┗┗ 야너두? 우리 회사 동상도 물어뜯더랔ㅋㅋㅋ만든지 얼마 안대서 빤딱반딲한 새거였는데 하루만에 만신창이 된거 보고 우리 사장 뒤로 넘어감

┗ 진짜 무불은 절대 맡지 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다

- 꽤 까다로운 놈인가 본데, 임무가 이거밖에 없었어?

“…….”

무리불새의 숨겨진 진실을 이제야 알게 된 이연의 낯이 거무죽죽해졌다. 그냥 예쁜 새인 줄만 알았지……. 어떻게 하고많은 것 중에 뽑아도 이런 걸 뽑냐? 대단한 통찰력이었다.

“다른 건 없어?”

- 음……. 특이한 건 없는데. 방금 보내 준 것 정도가 다야.

혜강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없는 거였다. 미치겠네. 투덜거리며 뭐라도 생각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 커다란 바윗덩이가 귓가를 스치고 날아갔다. 뒷 목에 소름이 섬찟 돋았다.

제멋대로 휘날리는 앞머리를 누르며 앞을 보니 폭발음과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풍경이 번쩍였다. 굉음은 멈추지 않았고, 이미 주변 건물은 반이 걸레짝이었다.

- 조심 좀 해. 그러고 보니 저건 누구야? 지원 요청은?

혜강은 고글을 통해 이연이 보는 시야를 그대로 공유받을 수 있었다. 앞에 펼쳐진 난장판에서 뭐가 자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으니 상황을 모르는 혜강으로서는 의아하게 느낄 만했다.

“안 했어. 한 명 더 있고.”

- 엥? 2급인데 둘만 있다고?

“걔가 괜찮다고 했어.”

- 걔가 누군데?

이연도 불안하긴 했지만,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니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큰 무리도 없었고.

“제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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