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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7화 (7/250)

#7

사실 이연이 무궁화 2단인 데에는 이 부분 역시 크나큰 작용을 했다.

만약 시간이 들더라도 그림을 정교하게 그릴 수만 있었으면 다소의 제약이 있다고 해도 괜찮은 대우를 받았을 터였다. 실제로 초능력 관리청 내에서는 이연의 능력을 처음 접수했을 때 꽤 화제가 되었고, 초능력자등급심사위원회에서도 오랜만에 최소 무궁화 4단 이상의 인재가 나타났다며 기대에 가득 찼다.

초능력 심사는 능력의 종류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세기 단위인 기력, 그리고 능력 응용력,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측정 및 분석해서 단을 분류한다. 그리고 실체화의 경우 타 초능력자와 비슷한 기력을 가졌다고 했을 때, 오로지 능력 그 자체만으로 단이 하나 이상 오르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능력 시연 영상을 본 위원회는 할 말을 잃었다. 이연의 그림 실력은 유치원생을 밑돌았다.

열심히 그린 종이에서 뭐가 튀어나오긴 하는데,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위원들은 모니터를 눈이 빠지게 들여다봐야 했다. 나중에 이연이 설명해 줘도 도저히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그나마 간결한 그림들은 기능적으로 얼추 비슷하게 돌아가는 듯했으나, 조금이라도 구조가 복잡해지면 기능이고 나발이고 철 수세미를 공들여 그린 것 같은 결과물만 나왔다.

심지어 실체화할 수 있는 그림은 본인이 그린 것만 해당되었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 프린트, 사진 전부 실체화가 안 된다는 정보는 모든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처음에 위원회는 너무 못 그려서 이연이 장난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실제로 초능력자 중에 간혹 그런 컨셉을 잡고 심사를 받는 사례가 있다.— 그림을 보여 주는 이연이 너무 자신만만했다. 놀라울 정도로 진실 되게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림 실체화 능력자가 그림을 못 그리다니. 신의 농간 같은 상황이다. 오히려 이연의 기력 수치나 응용력은 나쁘지 않았으나, 이 경우는 능력의 특수성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심도 있는 논의 후 위원회는 이연에게 무궁화 2단을 부여했다.

“잠깐만.”

종이비행기의 앞부분에 펜을 댄 이연이 어린아이 낙서 같은 두꺼운 십자 모양과 동그라미 몇 개를 그렸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는 선이었으나 단순한 도형이라 그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게임패드의 버튼 같은 형태였다.

“이게 조종간.”

그 말과 함께 버튼들이 조금 부풀어 올라 누를 수 있는 형태로 변했다. 어디선가 잔뜩 구겨진 빈 종이를 한 장 꺼낸 이연이 종이비행기를 하나 더 그렸다. 지금 타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르게 추상적으로 생긴 비행기였다.

“난 이걸 타고 갈게. 둘이서 잡자.”

말을 끝낸 이연이 종이에 손을 대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종이비행기가 종이를 잔뜩 우그러트리며 탈출해 옆에 떴다. 구겨진 종이에 그렸는데 다행히 비행기는 못생기기만 했을 뿐 구겨지지 않고 매끈했다.

옆으로 이연이 건너가자 산오가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 무시무시한 속도로 종이비행기가 비상해 무리불새 중 한 마리에게 돌진했다.

“……왜 저렇게 빨라?”

창조주도 몰랐던 창조물의 성능이다. 잠깐 감탄한 이연 역시 비행기의 고도를 높였다. 가볍게 바람을 일으킨 종이비행기가 날쌔게 머리를 쳐들고 무리불새와 가까워졌다.

탈것이 있어도 무리불새를 잡는 건 어려웠다. 일단 무리불새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다가갔다 싶으면 농락하듯 방향을 휙휙 틀어 버리니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가 않았다.

심지어 이연이 그를 놓치면 무리불새는 잠시 멈춰서서 도발하듯이 제자리를 빙그르르 날다가 조금씩 멀어지곤 했다. 날개 하나 정도는 없어도 살아 있기만 하면 되지 않나? 순식간에 인성을 상실한 이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연은 십여 분 이상을 사투해 간신히 한 마리를 잡는 데에 성공했고—날개도 멀쩡했다.— 그림 새장에 전리품을 잡아넣은 후 뿌듯한 얼굴로 땀을 닦았다. 제산오는 그래도 두 마리 정도는 잡았겠지. 주변을 둘러보며 산오를 찾던 이연이 이내 멀리 떠 있는 종이비행기를 발견했다.

하얀 몸체가 화창한 하늘을 곡예하듯 유연하게 날고, 그 위에 커다란 몸이 스케이트보드라도 타는 것처럼 한쪽 발을 앞으로 뻗은 채로 굳건히 서 있었다.

조종간을 밟은 발은 조금씩 움직이며 방향을 컨트롤했다. 이연에게는 엄청나게 품이 크지만 산오에게는 딱 맞는 아이보리 색 후드의 팔 부분에 붉은 무언가가 보였다.

자세를 조금 낮춘 산오가 조금 비행하는 듯싶더니 이내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앞에 무리불새가 한 마리 보였다. 길쭉한 손끝에서 무언가 줄 같은 것이 뻗어나가 무리불새를 휘감았다.

어찌나 빠르고 집요하게 들러붙었는지 미처 도망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온몸이 결박된 무리불새는 산오가 끌어당기는 힘에 따라 무력하게 끌려왔다. 퍼드덕거리는 날개가 가련할 정도였다.

잡은 무리불새의 모가지를 쥔 산오가 이내 옆구리에 단단히 꼈다. 그의 양 옆구리는 이미 무리불새로 만선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산오가 이연의 새장에 잡힌 나머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이연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분명히 굉장히 빠른 속도로 처리했고, 대단한 능력인데…… 모양새가 보드를 타는 닭 장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게 다야.”

무뚝뚝하게 말한 산오의 손끝에서 다시 끈 같은 게 뻗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이 단단한 광석 밧줄로 변한 거였다. 굴비 엮듯 무리불새들을 줄줄이 묶은 산오가 새장의 문을 열고 전부 처넣었다. 순식간에 임무 끝이었다.

“진짜 빠르네…….”

혼자 했다면 하루 온종일 걸렸을 임무였다. 이래서 능력이 강할수록 어려운 임무를 시키는 거구나. 인적 자원 활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이제 초관청 가서 얘네 넘기고 완료 확인증 받아 오면 돼.”

여기서 초능력 관리청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종이비행기를 타고 가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내로 접수할 수 있겠군. 이연이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산오를 돌아보았다.

“운전 좀 해 줘.”

바로 몇 시간 전에 목숨을 위협당했던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기라도 했는지 태평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산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빈정거렸다.

“할 줄 아는 게 뭐지?”

“나 내비 없단 말이야.”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이연에게 내비게이션 앱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산오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도 다니는 판이니 공중에서 초능력 관리청쯤이야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당당한 땡깡에 산오가 조종간 앞에 주저앉다 말고 멈칫했다. 어쩐지 순순하게 따른다 했다. 산오의 이타심에 대한 굳건한 불신으로 무장된 이연이 그를 마저 설득하기 위해 입을 막 열려고 할 때였다.

산오가 고개를 휙 돌려 뒤에 있는 새장을 바라보았다.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연이 의아해하며 따라 시선을 돌렸다. 하도 급하게 보길래 무리불새가 탈출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 잠깐만. 이연의 눈알이 천천히 굴렀다.

무리불새들은 좁은 새장에 있는 게 갑갑한지 계속 퍼드덕거리며 나가고 싶어 했다. 활개 치는 날개의 색과 무늬는 부자들이 비싼 값에 돈을 주고 기르고 싶어 한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화려하고 영롱했다.

하지만 무리불새의 아름다운 깃털들은 가까이서 보면 그냥 평범한 새의 깃털이었다. 빛나는 것처럼 예뻐도 진짜 빛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빛이 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었다.

“원래 이런 놈인가?”

“무리불새는 나도 처음 보긴 하는데…… 이렇진 않을걸.”

변이종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좋은 징조일 리가 없었다. 산오가 몸을 돌려 자세를 바꿨다. 이연 역시 긴장한 얼굴로 슬링백 끈을 쥐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얼음판처럼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희미한 하얀 빛만 조금씩 흘러나오던 무리불새들은 점점 더 밝게 빛났다. 이연이 새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속삭였다.

“네 능력으로 어떻게 못 해?”

“어떻게?”

“어떻게든.”

“땅이었다면 해 봤겠지.”

아, 그랬지. 여긴 광석 같은 게 전혀 없는 공간이다. 산오가 펼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하필 이런 데에서. 속으로 혀를 찬 이연이 조심스레 새장 쪽으로 한 발짝 내딛었을 때였다.

번쩍,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어마어마한 광량에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눈을 막았지만, 워낙 폭발적인 속도였던지라 완전히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간적으로 흐려진 시야를 되돌리기 위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비비는데, 무언가 강하게 잡아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이연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들쳐 업혀 하늘 위였다. 종이비행기를 버린 커다란 몸이 이연을 가볍게 지고 있었다.

“뭐, 뭐야.”

“꽉 잡아.”

여기서 뭘 어떻게 꽉 잡아! 기겁한 이연이 산오의 머리통을 부둥켜안았다가 같이 죽고 싶냐는 살벌한 경고를 받고 등의 천을 꽉 쥐었다. 산오의 팔은 굵고 튼튼했지만 떨어지면 당장에 죽는 높이에서 안전벨트가 그것뿐이라면 말이 달랐다.

몸을 웅크려 한껏 매달린 이연을 단 채로 10층은 넘는 높이를 뛰어내린 산오는 마치 거대한 트램펄린이라도 타는 것처럼 지면을 박차고 뛰어 근처 빌딩 위 옥상에 안착했다. 주변이 죄다 주택가다 보니 그나마 높은 빌딩이라고 해도 3층 정도였지만, 이것만 해도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감지덕지였다.

초능력자가 변이종을 보고도 최소한의 대응 없이 도망가는 것은 일반 시민 보호 의무에 어긋난다. 그래서 산오가 착지한 곳은 무리불새가 빛났던 현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연을 내려놓은 산오가 그들이 있던 방향, 정확히 말하면 종이비행기에서 그대로 떨어졌을 때 추락했을 낙하지점을 바라보았다.

종이비행기는 이미 흔적도 없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박살 난 종이비행기 근처에는 마찬가지로 산산조각 난 새장의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들이 있던 자리를 채운 것은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푸르게 빛나는 털가죽을 입은 거대한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다. 호랑이는 거리에 흔하게 지나다니는 시내버스만큼 컸다. 변이종의 머리 위에서는 풀려난 무리불새들이 산만하게 떠돌고 있었다. 정황상 무리불새들이 불러온 것인 듯했다.

“……저게 뭐야?”

멍한 중얼거림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이연의 눈이 멍하니 거대하고 아름다운 푸른 변이종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무리불새 같은 하급은 아니었다.

“청호.”

산오의 대답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제산오가 알고 있는 변이종이라면 뻔했다.

“2급 변이종이다.”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고위험 변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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