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6화 (6/250)

#6

되물어도 산오는 이연을 흘끗 바라만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분위기만 멋지면 단 줄 아는 것 같았다. 이연의 눈동자가 조금 떨렸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겠지? 다시 대답을 안 해 주는 걸 보면 제대로 듣긴 한 것 같은데.

다짜고짜 사람 배설물을 찾는다니, 이거 완전 미친놈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동네에서 아직 못 얻었다니 황금으로라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런 더러운 생각은 그만하고 싶었으나 대답이 너무 충격적이다 보니 자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체 뭔 인분? 누구 인분? 설마 나한테 들러붙은 이유가…… 설마?

혼란에 찬 이연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발판과 산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론 제산오는 이연의 일을 도와주는 것까지만 제안했고, 그 외의 일은 이연의 알 바가 아니었다. 똥을 찾든 시체를 찾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

아니, 신경이 안 쓰이겠냐고? 우리나라 랭킹 1위가 똥이나 찾고 앉아 있잖아!

이연의 뇌는 상황 외면에 실패했다. 그다음으로 시행된 것은 합리화였다.

애초에 인분이라고 한 게 맞긴 한가? 인부라고 한 걸 제산오 발음이 이상해서 잘못 들은 거라면? 진짜로 산오가 인분을 수집한다고 해도 사람 심장을 수집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만약에 나, 나, 나한테도 달라고 하면…… 그래, 나한테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눈 딱 감고……. 비장하게 결심하며 고개를 들자 산오와 눈이 마주쳤다. 복잡다단한 감정이 범벅된 이연의 얼굴을 본 산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더러운 눈빛으로 보지 마.”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억울했다.

“꽉 잡아.”

항변하려던 주둥이는 어마어마하게 솟구치는 힘에 휘청이느라 강제로 다물렸다. 콘크리트를 뚫고 지표면으로 나온 산오는 뚫은 구멍까지 깔끔하게 메꿔 버림으로써 불법 굴토 증거를 인멸했다.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두 사람에게 시선이 조금 모였으나, 모르는 얼굴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금세 흩어졌다. 초능력자가 워낙 많은 도시다 보니 화려한 볼거리가 있거나 잘 알려진 초능력자가 있는 것이 아니면 시민들은 관심도 안 줬다. 웬만해서는 지금처럼 바로 앞에서 초능력을 직관하고도 무던한 반응이었다. 이연과 함께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면 구름처럼 몰려들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막 얼굴이랑 능력 드러내놓고 다녀도 되는 건가?

“능력 이렇게 공개적으로 쓰고 다녀도 돼?”

“쓰라고 있는 능력인데.”

오랜 기간 신비주의를 고수했던 것치고는 과하게 시원한 태도였다. 용케 얼굴이 안 까였네. 이연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그러려니 했다. 하긴, 본인이 초능력자 등록증이라도 들이대지 않으면 능력이 광석 동기화인지 염력인지 알아볼 사람이 그렇게 흔할 리는 없을 터였다.

이연이 휴대폰으로 임무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그가 신청한 임무 등급은 회사 등급과 같은 D. 차금이 유일하게 맡을 수 있는 최하등급 임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용은, 어디 보자…….

“…….”

“왜 멍청히 서 있어.”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이연이 산오의 타박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이가 없어 보이는 이연의 망연한 얼굴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산오가 그의 휴대폰을 가져가 확인했다. 임무 등급 D. 8급 변이종 무리불새 다수 개체 포획의 건.

“무리불새가 뭐지?”

위험도를 기준으로 나뉘는 변이종 분류는 총 9등급. 1급이 가장 위험하다. 중급 이하 등급인 5급 이하 변이종을 상대할 일이 없는 산오가 8급 변이종에 대해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연도 직접 무리불새 임무를 맡은 것은 처음이라 아주 기본적인 정보만 알았지만…….

8급 변이종 무리불새. 전설 속에 나오는 불새같이 아름다운 붉은 깃털과 사슴 같은 우아한 뿔을 가진 새 형태의 변이종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공격력과 호전성이 높지 않아 대표적인 인간 친화적 변이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급인 9급이 아닌 8급으로 분류된 이유는 간단했다.

고공 비행을 좋아해서 보통 공중에 떠 있는 데다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속도가 빨라 포획이 어렵다.

“…….”

주변을 한번 둘러본 이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샛길이나 골목이 많고 건물 높이가 낮은 주택가.

가만히 노려보다 보니 저 하늘에 뭐 뻘건 게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았다. 며칠 전에 등록된 공고인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리불새가 아직 여기 머물러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변이종이 있는 곳은 이연이 밟고 선 땅과는 물론이고 근방에서 가장 높은 주택 지붕보다도 훨씬 아득한 높이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땅에 붙어서 사는 존재다.

‘하늘을…… 날고 싶다.’

땅에 붙어 사는 제산오만 믿고 아무거나 택한 결과는 라이트 형제의 화신 같은 욕망으로 돌아왔다.

“죽이는 거라면 쉬워.”

산오의 대답은 명쾌했지만 도움이 안 됐다. 포박해서 잡는 건 단순히 꿰뚫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는데, 당연하게도 거리가 멀수록 더 정교한 컨트롤이 요구되었다. 너무 멀리 있어 날아다니는 빨간 꽃잎처럼 보이는 무리불새는 제산오가 몽골인이었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생포 임무인데 죽이는 게 될 리가 없다. 호전성이 없는 변이종은 일반적으로 연구나 관찰에 자주 쓰였다. 그냥 다 죽여 버리면 공격도 안 하는데 왜 죽였냐고 초능력 관리청에게 한 소리 들을 게 빤했다.

“날 수 있는 기술 없어?”

“난다기보다는 뛴다고 봐야지.”

무언가를 가늠하듯 주위를 슥 둘러본 산오는 이내 단언했다.

“건물들이 너무 낮아.”

이해가 됐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대답이다.

제산오 꿀 빨 생각만 하고 온 이연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 탓을 하고 싶었으나 아직은 산오의 고슴도치 쇼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소시민의 자아는 소심하게 투덜거리기만 했다.

“무궁화 5단이 그런 것도 못 하는 게 매력이지.”

그마저도 중간에 산오가 노려보는 바람에 칭찬으로 끝났다. 초록색 눈이 계속 번뜩이자 이연이 건실한 미소를 걸치고 인자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다 잘하면 재미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능력이 재미 요소인가?”

어조가 너무 싸늘해서 몸서리가 다 쳐졌다.

“와, 오늘 날씨가 좋네…….”

갑자기 허공을 보며 개소리를 하는 이연을 뒤로하고 하늘을 올려다본 산오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가늘게 뜬 짙은 초록색 눈의 동공 주변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희미하게 밝아졌을 때, 산오의 발이 한 번 굴렀다.

밑창이 닿은 지면이 짧게 출렁이고, 곧 전신이 하늘로 튕겨 올랐다. 순식간에 까만 점으로 변해 사라진 산오를 이연이 멍청하게 올려다보았다.

무리불새가 가까이 보일 만큼 높이 올라오는 건 금방이었다. 산오는 포물선의 정점에 잠시 떠 있는 동안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무리불새 수를 확인했다. 하나, 둘, 셋…… 총 여섯 마리. 모여 나는 놈은 하나도 없었고, 죄다 각개 비행 중이었다.

하나씩 잡아야 하는군. 찰나 동안 계산을 끝낸 몸은 곧 중력에 잡아당겨졌다.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하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요란하게 펄럭였다. 뺨에 부딪히는 공기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매서워졌다. 바람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세기로 조용히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푹신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몸을 통째로 받아 냈다.

어마어마한 중력 가속도를 감당하느라 물체는 아래로 조금 내려앉았으나, 이내 가볍게 다시 떠올랐다. 추락이 멈췄다.

바람 소리도, 짓누르는 중력도 없이 하늘을 보고 누운 산오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위를 바라보았다. 이 착지는 산오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무리불새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 공중이었다.

“놀랐잖아!”

인상을 쓴 이연이 시야에 성큼 얼굴을 들이밀었다. 세찬 바람에 올이 얇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산오가 눈을 깜빡이며 저를 내려다보는 험악한 얼굴을 응시했다. 그에게는 이 정도로 죽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덤덤한 목소리는 사실을 말했다.

“알아서 내려올 수 있는데.”

“그렇겠지.”

이연이 타박하듯 대꾸했다.

“나도 그냥 하늘 날아 보는 김에 주운 거야.”

멍청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산오가 말없이 상체를 일으켰다. 침묵도 잠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 산오의 눈썹이 낮게 내려왔다. 그는 현재 올라타 있는 것의 모양을 재차 확인했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꼬부라진 선으로 이루어진 것의 앞부분은 나뭇잎처럼 갑자기 끝이 뾰족해지는 형태였고, 이어지는 왼쪽은 길고 오른쪽은 짧았다. 새하얀 몸체의 어느 부분은 쥐가 파먹은 것처럼 삐뚤빼뚤했고, 정중앙에는 물결 같은 곡선 무늬 한 줄이 가르고 있었다.

마치 추상 예술 같은…… 무언가였다. 정체도 알 수 없는 그것은 작동 원리도 불명확한 채로 용케 날고 있었다.

“……이게 뭐지?”

아무리 봐도 난생처음 접하는 물체였다. 산오의 진지한 질문에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상식이 부족해서 어떻게 하냐는 기색이 역력했다.

“종이비행기잖아.”

정답을 듣고도 산오는 이 탑승기 구조의 일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종이비행기라고 부르는 건 종이비행기에 대한 모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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