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4화 (4/250)

#4

7층짜리 꼬마 빌딩의 최상층.

그것보다 한 층 위에 있는 옥상의 문이 열렸다. 낡은 경첩은 움직일 때마다 기분 나쁜 소음이 났다.

찌든 때가 스민 문 너머로 남자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못하면 문틀에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커다란 덩치의 남자 하나와 그보다 머리 반 개는 작은 남자.

“들어와.”

산오와 이연이었다.

옥탑은 꽤 넓은 크기였지만 대부분이 마당이었다. 너른 공간에는 커다란 평상이 덜렁 놓여 있고, 주변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철 막대와 전기선 같은 것이 지저분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설치되어 있었다기보다는 널브러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그 옆을 지나니 조그만 사무실이 하나 나왔다. 어딘지 불법 건축의 향기가 희미하게 나는 듯한 구조였다. 중앙에 유리가 달려 내부가 훤히 보이는 한 짝짜리 나무 문 옆에는 금속 명패가 달려 있었는데, ‘차금’이라는 단어 아래에 ‘변이종 전담 사무소’라는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이연이 대표로 있는 변이종 전담 회사, <차금>이었다.

대부분의 초능력자들은 국가에 소속되지 않았다. 초능력 특채를 이용해 늘공으로 취직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뭘로 활용해도, 하다못해 유튜버가 되어도 부자가 될 것 같은 능력을 가지고 무조건 공무원을 희망할 만큼 보수적인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그들은 변이종을 전담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몇 가지 제약은 있었지만 어쨌든 사기업이었고, 국가 소속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취직이었다. 이런 회사에서 변이종 현장 업무를 맡는 사람을 헌터라고 불렀다. 외국에서 변이종 사냥꾼(variant hunter)으로 부르는 것을 그대로 들여온 호칭이었다.

변이종 전담 회사들은 정부와 연계해 변이종 처리 업무로 분기 할당량을 채우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적공에서 끊임없이 변이종이 나오다 보니 관련된 사설 의뢰 역시 우후죽순으로 들어왔다. 곧 초능력자는 고위험 고소득 직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것도 고위 초능력자들한테나 해당되는 소리지만.’

무궁화 1단의 경우 변이종 전담 회사에 취직한다고 해도 보통 내근직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헌터 업무를 맡지 않았다. 정확히는 맡지 못하는 거겠지만.

어디서나 빈익빈 부익부 법칙은 적용되어서, 이연같이 등급이 낮은 초능력자들은 일반적인 인식처럼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대형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면 더 그랬다.

특히 최하급 헌터인 무궁화 2단이 회사를 차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변이종 전담 회사는 규모나 보유 초능력자의 능력에 따라 회사 등급이 나뉘므로 2단들은 차라리 3단 이상이 세운 변이종 전담 회사에 소속되는 게 이득이다. 2단으로 회사를 내 봤자 회사 등급이 낮아 최하급으로 분류되는 자질구레한 임무만 겨우 맡을 수 있었고, 사설으로 들어오는 의뢰 내용 역시 변변찮았다.

흔히 일반인들이 변이종 처치 임무라고 하면 생각하는 대형 변이종 처치처럼 어마어마한 보수가 주어지는 초대형 임무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2단이면 변이종 등급이 6급 이상만 되어도 혼자서 버틸 능력이 안 되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대기업 소속으로 활동하는 건 적성에 영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애로 사항을 감수할 만큼 이연은 지금 상황에 충분히 만족했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가 훤히 보였다. 창을 등지는 커다란 책상 하나, 응접용 소파와 탁자 세트, 그리고 단출한 캐비닛 몇 개와 협탁 역할을 하는 듯한 서랍장 하나.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욱여넣으려고 노력한 것 같은 인테리어였다.

심지어 짐이 많기까지 했다. 가장 큰 가구인 책상에는 컴퓨터 모니터 세 대가 겨우겨우 올라간 것도 모자라 온갖 잡동사니와 지저분한 선이 그대로 늘어져 있었고, 협탁에는 빈 A4용지와 뭉텅이로 사 둔 펜, 분필 따위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커피를 담았던 자국이 그대로 남은 머그컵이 탁자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뭔지 모를 종이 쓰레기가 수북했다.

책상 옆 벽에 나란히 걸려 있는 사업자 등록증과 초능력자 등록증이 아니었다면 회사가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회사라고 해 봤자 간판도 문 옆에 걸린 금속 명패가 다일 정도로 작은, 개인 사무실에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보폭으로 다섯 걸음도 안 될 것 같은 공간을 둘러보는 일은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지저분하군.”

이보다 큰 이연의 집도 누추하다고 하는 산오에게 사무실이 눈에 찰 리가 만무했다. 기대도 안 했다. 산오의 싸가지에 조금 적응한 이연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저분한 머그 컵만 들어 싱크대에 갖다 넣었다.

산오가 소파에 앉자 거구의 무게에 갈색 소파의 가죽이 깊숙이 눌렸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작게 난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이건 뭐지?”

길쭉한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커다란 고글이었다. 스키 고글처럼 커다란 렌즈와 넓은 밴드는 취미 생활에 대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무실 풍경에서 유독 위화감을 발산했다.

“내 장비야.”

많은 헌터들이 본인의 능력 외에도 전투를 보조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한다. 도시 각지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내는 장비들은 도시의 특수성 때문인지 타 지역의 기술 발전과 종종 차이를 보일 정도로 첨단을 달렸다.

물론 보조 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제산오에게는 거리가 먼 사항이었다.

“능력이 뭔데.”

물어는 보지만 별 관심은 없다는 태도다. 하긴 이연이 생각해도 산오의 능력 정도면 제 능력 같은 게 눈에 들어올까 싶긴 했다.

“음…….”

알고야 있지만, 랭킹 1위 앞에서 말하기에는 조금 소박한 능력이다. 이연이 조금 주저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림을 실체화할 수 있어.”

산오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 눈만 가늘게 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얼추 짐작이 가능했다.

이연의 능력은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사용이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일단 능력 발현할 장소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커다란 난점 중 하나였다.

사무실에 A4용지를 무지막지하게 구비해 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급할 때 몇 장 쥐고 달려가기 편하도록. 조그만 메모장을 상비하는 방식도 해 봤는데, 너무 작아 그리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포기했다.

이런저런 특이성을 전부 감안하여 책정된 이연의 초능력자 계급은 무궁화 2단. 1단은 변이종 대응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1단은 헌터들 사이에서는 초능력자라고 쳐주지도 않는다.— 변이종 전담 회사 사업자 등록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등급이었다.

“혼자 일하는 건가?”

“동업자 있는데 늦게 출근해.”

밤을 새는 게 일상인 동업자에게 지금은 한참 자는 시간일 터였다. 산오는 흠, 하는 심드렁한 탄성만 흘리고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흘렀다.

“……차라도 줄까?”

“아니. 일 봐라.”

고개를 까딱이며 휴대폰을 꺼내 든 산오의 전신에서는 얼핏 보면 이 사무실의 주인으로 보일 정도로 여유가 넘쳐흘렀다. 아니, 여기처럼 조그만 곳의 주인이라기엔 지나치게 위압적으로 보였고, 20층은 훌쩍 넘는 고층 빌딩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았다.

따져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산오의 회사, <제산>은 초호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비싼 고층 빌딩을 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산의 대표는 제산오가 아니었지만, 그게 제산오 회사라는 사실은 전 국민이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내 회사에 알바로 와도 되는 건가? 이중 취업 아니야? 4대 보험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연이 소소하고 현실적인 고민에 빠져들었다. 은혜를 갚는다고 했으니 무급 노동이겠지? ……그래도 되나? 법정 최저 임금이란 게……. 예외자치시는 이런 것도 예외인가? 노동청 신고 당하는 거 아니야? 보험 적용하려면 계약서도 써야 하는데……. 이런 노동 학대 같은 고용 정황을 서면으로 남겨도 되는 건가?

이제까지 알바를 써 본 적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산오가 보통의 경우도 아니었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혼란에 빠져 있는 이연의 주의를 끈 것은 산오였다.

“정연은 했나?”

산오가 말하는 정연, 정부 연계 임무는 초능력 관리청 관할의 변이종 처리 임무다. 수시로 내려오는 등급별 공고 중 일정 횟수 이상을 분기마다 필수로 하게 되어 있어, 정기적으로 확인해 줘야 했다.

시스템 자체가 일종의 숙제에 가깝다 보니 대부분의 회사가 분기가 시작되자마자 받아서 끝내려고 하고, 그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해 괜찮은 임무는 분기 초에 모두 동이 나곤 했다. 바로 내일이 분기 실적 마감인 지금쯤은 너절하고 까다로운 임무만 남아 있을 터였다.

이 업무를 소홀히 하면 최악의 경우 초능력 관리청 재량으로 폐업까지도 가능했다. 모든 변이종 전담 회사에 주어지는 첫 번째 의무이자 차금의 주 수입원이기도 했다.

물론 모든 변이종이 때를 잘 맞춰서 나타나는 건 아니므로, 바로 처리해야 하는 긴급 공고가 뜰 때도 있었다. 그런 임무들은 보수가 월등히 좋은 대신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임무 수행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고위 초능력자들에게만 별도로 알림이 전달된다. 산오가 주로 하는 일이 그런 종류일 것이다.

“이번 분기는 끝났어.”

차금의 할당량은 진작에 끝냈다. 가벼운 대답에 산오가 눈썹 한쪽을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확실해?”

“……확실하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텐데.”

“……왜?”

“그런 느낌이 들어서.”

예언 능력자도 아닌 주제에 굉장히 불길한 발언이었다.

네가 뭘 알아, 하는 반항적인 발언을 하기에 앞서 이연은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비록 짧은 시간을 봤지만 산오는 허튼소리를 저렇게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남의 회사 실적을 지가 어떻게 알아? 슬그머니 컴퓨터를 켜고 사이트에 접속하는데 왜인지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니, 아니지……. 그럴 수는 없지. 속으로 중얼거린 말에는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지만 강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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