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두 번의 각인 (16/16)

본부장을 중심으로 나와 선우진, 마케팅 리서치 1팀의 이선주가 팀을 이뤄 학회에 참석한 의사들과 회사 임원들이 소개해준 의사들을 공략하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짰다.

우리는 지점장의 도움을 받아 근처 약사들로부터 동료 의사들에게 영향력이 강한 핵심 의사들의 처방습관을 입수해 그들의 선호도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들이 처방하던 의약품을 우리 회사 제품과 비교하여 우리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 프로파일을 입증해 그들을 설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선우진과 나는 매일 밤 늦게까지 그날 했던 일을 점검하고 자료를 만들어 다음 날을 대비했다. 우리의 노력으로 수림병원 의사들 사이에서 반응이 오고 있었다.

나는 선우진이 요구한 임상자료와 경쟁 제품에 관한 자료를 준비해 네 시에 본사에서 나왔다. 이진주가 예정일을 사흘 남겨 두고 양수가 터져서 오승현은 일찍 퇴근한 상태였다. 지점 사무실에서 뉴스를 체크하고 있던 선우진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고객 상담실로 데려갔다.

“지점장님은 안 보이네요? 어디 가셨어요?”

“약국 담당 신입이 들어와서 지원 사격 나갔습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손 부채질을 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열이 났다. 머리도 조금 아픈 게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가 찾아온 듯했다.

“더워요? 시원한 음료라도 갖다 줄까요?”

“네. 탄산음료 있으면 좀 갖다주세요.”

선우진은 탄산음료가 든 캔을 가져와 뚜껑을 따서 내게 건넸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음료를 반 정도 들이켰다. 안에 든 기포가 점막과 입천장을 톡톡 쏘아서 겨우 정신이 들었다.

“요청하신 자료, 선우진 MR님 메일로 보냈어요.”

“네,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보기 편하시게 제가 프린트도 해 왔습니다.”

나는 가방에서 프린트된 자료 세 부를 꺼내 맞은편에 앉은 선우진에게 건넸다.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선우진의 눈에 기묘한 빛이 일렁거렸다.

“준영 씨 애인은 미국에 있다고 했죠? 장거리 연애 힘들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제가 준영 씨 오메가면 준영 씨 혼자 두고 싶지 않을 거 같은데요?”

“우린 상대를 믿고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히트 사이클은 어떻게 보내요? 그 오메가가 준영 씨한테 각인했나요?”

석 달을 함께 일하면서 내 사생활엔 손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선우진이 오늘따라 질문이 많았다.

“제 사생활은 노코멘트 하고 싶네요. 오늘 준비해 온 자료 설명 드릴게요. 하나는 이 박사님이 요구하신 임상 자료고 하나는 대성제약이 새로 상품 매출 계약을 맺은 제품 자료예요. 상품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 제품의 key success factor를 도출해 봤어요. MR님이 검토해 보시고 부족한 부분은 의견 말씀해 주세요.”

“일주일 전에 요구했는데 벌써 분석이 끝났습니까? 준영 씨 잠은 제대로 자면서 일해요?”

대성제약의 신제품 분석은 박래현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샘플을 건네받은지 사흘 만에 신제품을 분석해 결과를 건네주었다. 분석을 마친 박래현은 우리 제품의 우수성과 경쟁력을 확신했고 나는 그 내용을 영업 지원 팀 전체와 공유하면서 스스로 마케팅 전략을 짜보았다.

선우진은 타 회사 제품에 관한 자료 분석은 읽지도 않고 뒷부분으로 넘겨 내가 도출한 key success factor를 먼저 읽었다. 열중해 있던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굉장히 열심이네요. 나야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지만 준영 씬 그것도 아니잖아요.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요?”

“나중에 제가 우리 회사 CEO가 돼 보려고요.”

“꿈이 굉장히 웅대하네요. 그러려면 실적이 뛰어나야 할 텐데, 준영 씨가 바이언스 최고경영자가 될 때까지 내가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제발 그래 주세요.”

“그때 가서 토사구팽하면 안 됩니다.”

내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었는지 선우진은 유쾌하게 웃으며 자료로 눈을 내렸다. 감기 기운이 심해지면서 별안간 졸음이 쏟아졌다. 어제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간 나는 연구소 전체 회의때문에 늦게 들어온 박래현을 대신해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 두 돌이 지나면서 더 활발해진 쌍둥이들이 내게 달려들어 온몸으로 놀아 줄 것을 요구했다. 한 놈도 힘든데 두 놈을 감당하려니 열 시가 되기도 전에 맥이 풀렸다. 별안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도 답답해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어헤치던 나는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선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준영 씨, 혹시… 오메가입니까?”

“네? 왜요?”

“준영 씨한테 좋은 향이 나서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혼잣말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손으로 턱을 쓸었다. 이건 몸살이 아니라 히트 사이클 전조 증상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박래현에게 각인해 있던 5년은 히트 사이클이 찾아와도 다른 알파가 내 페로몬을 맡지 못했다. 나 또한 박래현에게만 발정해서 굳이 억제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각인이 깨진 오메가는 사정이 달랐다. 지난달에는 박래현과 조용히 보냈지만 이번엔 박래현이 옆에 없었다.

“이상하다? 나는 준영 씨한테 알파 페로몬 냄새만 맡았는데….”

코끝으로 시원한 박하 향이 지나갔다. 여기엔 나와 선우진만 있으니 이 향은 내 페로몬이 마음에 든다는 선우진의 구애였다. 나는 가방을 뒤적여 상비하고 있던 억제제를 꺼냈다. 억제제를 먹으면 당분간 치자꽃 향도 맡을 수 없게 된다.

“전 지금까지 준영 씨를 알파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메가인 줄 알았다면….”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나를 향했다. 문득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박래현 말고 다른 알파에게도 성욕을 느낄지 궁금했다. 나는 손에 쥔 억제제를 내려다보았다.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벌써 작업 들어갔을 겁니다.”

“미안한데 전 사귀는 사람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랍게도 박래현이 성큼성큼 걸어와 옆에 앉았다. 그는 서늘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어서 박하 향을 완전히 뒤덮을 정도로 짙은 치자꽃 향기가 사무실에 진동했다. 그의 페로몬에 반응해 몸이 와들와들 떨리면서 밑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나는 재빨리 약을 까서 입에 넣었다. 그러나 약을 삼키기 전에 박래현이 내 입에 엄지와 검지를 넣어 약을 끄집어냈다. 노란색 알약이 바닥에 버려졌다.

“네 알파가 왔는데 약을 왜 먹어?”

“형….”

“윤준영은 내 오메가니까 내가 데려가겠습니다.”

몸에 열이 올라서 선우진 얼굴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박래현의 등장에 그는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선우진 씨 핸드폰으로 정승효 팀장과 저녁 식사할 곳 주소 보내 놨습니다. 그쪽으로 여섯 시 반까지 오면 됩니다.”

오늘은 박래현이 정승효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한 날이었다. 나는 박래현이 연락을 주면 선우진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갈 생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여섯 시 반까지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준영 씨, 이분이 데려가도 괜찮습니까?”

선우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가방을 어깨에 메고 팔을 잡아서 나를 일으킨 박래현이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지점 주차장에는 아이들과 놀러 다니려고 작년에 구입한 커다란 밴이 주차돼 있었다. 문을 열어 나를 차에 밀어 넣고 따라 올라탄 박래현은 집에서 쓰는 가죽 소파처럼 널따란 뒷좌석에 나를 쓰러트리고는 리모컨으로 운전석과 뒷좌석을 완전히 차단했다. 뒷공간은 박래현과 나만 존재하는 밀폐된 공간이 되었다.

“여, 여긴 왜 찾아왔어?”

“너 오늘부터 히트 사이클 시작되는 날이잖아. 걱정돼서 와 봤더니 다른 알파랑 아주 깨가 쏟아지고 있네?”

박래현은 허벅지 틈을 벌리고 들어와 내 허리띠 버클을 풀었다. 그에게서 매혹적인 치자꽃 향기가 쏟아져 나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박래현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하아, 왜 이래? 지금, 여기서 하자고?”

허리띠를 뽑아 바닥에 버린 박래현이 팬츠 단추를 풀고 지퍼를 잡아 내렸다. 손목을 잡는 정도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힘껏 밀었다. 그러나 바지와 속옷이 속절없이 무릎 아래까지 벗겨졌다.

“여기서 안 하면 억제제도 없이 어떻게 버티려고? 이렇게 달아오른 몸으로 페로몬 질질 흘리면서 약제 팀장 만날 생각인가?”

“얼른 약국에서 억제제 사 와! 형이 버렸잖아….”

“이미 터진 거 같은데? 벌써 밑이 다 젖었어.”

박래현은 그의 페로몬에 반응해 축축하게 젖은 내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흠뻑 젖은 손을 꺼내 흘러내리는 끈적한 액을 자신의 혀로 핥았다. 붉은 혀가 젖어서 반들거리는 손가락을 훑어내렸다. 히트 사이클이 완전히 터져 버리면 약으로는 발정을 막을 수 없다. 알파 페로몬에 노출된 몸은 이미 한계치에 이르러서 박래현 말에 따라야 했다. 차라리 얼른 끝내고 평정을 찾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흐, 으읏, 혀엉….”

“그 남자가 왜 너를 알파로 인식했을 거 같아?”

박래현의 페로몬이 태풍처럼 몸을 휘감으면서 짙은 치자꽃 향이 폐부로 깊숙이 침투해 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래현 어깨를 잡은 손에서 열이 새어 나와 그의 셔츠가 축축해졌다.

“내가 아침마다 너한테 내 페로몬을 묻혔어. 너한테 날파리들 꼬이지 않게.”

박래현은 나를 완전히 발가벗긴 다음 자신의 바지와 속옷도 아래로 내렸다. 핏줄이 돋아 성성하게 곤두선 성기가 눈앞에서 위협적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무릎으로 선 채 내 발목을 잡아 다리를 활짝 벌린 다음 구멍 입구에 귀두를 찧어 댔다. 천장이 높은 밴이라 의자가 다소 비좁은 것 빼고는 박래현의 움직임에 방해될 만한 것은 없었다. 밑에서 퍽퍽 차진 울림이 들릴 때마다 주름이 조금씩 벌어졌다.

“으, 으응….”

“너 씨발, 선우진 페로몬에 반응했지?”

“아니, 안 했어! 약 먹을 생각이었어, 진짜야.”

그러고 보니 박래현은 내 각인이 풀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내게 페로몬을 덧씌웠고 오늘도 걱정돼 직접 지점으로 찾아온 것 같았다.

“닥쳐! 너 각인 풀리면 나한테 얘기하라고 했지? 왜 형 말 안 들어? 응?”

박래현 얼굴과 목소리는 얼음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차가웠다. 5년 동안 내게 거의 화를 내지 않았던 박래현이어서 분노에 찬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다.

“근데 흐, 으읏… 각인 풀린 건 어떻게, 흐읏, 알았어?”

짚이는 데가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너무 가벼워서 물에 빠져도 둥둥 뜰 것 같은 김정우 주둥이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김정우가 고자질했구나?”

“하, 이것 봐라? 너 나한테는 말 안 하고 김 비서한테는 말했어?”

박래현의 눈초리가 더 냉랭해졌다. 이러다간 애먼 정우에게 분노의 불똥이 튈 것 같아서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이….”

“아니긴…. 그런데 그딴 정보 없어도 요즘 너 행동하는 거 보면 답이 나와.”

아무런 애무도 없이 서현이 주먹만 한 귀두가 구멍을 벌리고 속으로 들어왔다. 흠씬 젖어서 축축해진 주름이 귀두에 눌려 안으로 움푹 파였다. 점막과 내벽이 우물우물 성기를 받아들였지만 박래현이 다정하게 대해 주지 않아서 슬펐다.

“흐읏, 내가, 내가 왜….”

“네 사랑이 식었잖아. 각인이 풀렸으니까 그렇겠지.”

박래현 말에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각인이 풀린 뒤로 박래현을 향한 내 마음은 더 깊어지고 애틋해졌는데 박래현은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어쨌든 나한테 바로 말했어야지! 그러다 다른 알파라도 꼬이면!”

박래현이 엉덩이를 세차게 밀어 성기를 끝까지 박아 넣었다. 몸이 위로 밀리면서 차체에 정수리가 부딪힐 뻔한 걸 박래현이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막았다. 좁은 시트 위에서 다리가 얽히고 단단한 허벅지 근육이 서로 부딪히면서 그 부근에 통증이 일었다.

“아, 아흑!”

안이 저릿저릿해지면서 흥분으로 부어오른 내벽에 물이 고였다. 순간 아찔해져서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너 없이 나랑 애들만 어떻게 살아, 응?”

“흐, 흐읍! 나, 억제제 먹으려고, 아, 아윽!”

쑥 들어온 성기가 안에서 질척질척 움직이며 내벽 전체를 문질렀다. 넓은 표면적에 닿아 비벼지는 부분에서 농밀한 감각이 삐죽 올라왔다. 성기는 안에서 부피를 키워 갔다. 나는 장기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형, 믿어 줘. 난 진짜 형밖에 없어!”

내 부탁에도 박래현은 전혀 믿어 주는 기색이 아니었다. 한 손으로 시트 등받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 내 귀 옆을 짚은 박래현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그의 입술이 귓불을 아프게 깨물었다.

“나밖에 없다면서, 나를 속여?”

속살에 파묻힌 성기가 뒤로 조금 물러서더니 이내 내벽을 주욱 긁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점막과 속살이 단단한 성기에 밀리면서 좌우로 벌어졌다. 잠시 암전이 찾아와 나는 두 팔을 뻗어 박래현 목을 끌어안았다.

“…흐읏! 형이, 실망할까 봐, 아악! 그리고, 후, 흐윽, 나 감금할 거 같아서, 우읏, 그래서 말, 못 했던 거, 흐읏!”

“잘 알고 있네. 너 각인할 때까지 앞으로 너랑 나랑 둘 다 회사 못 나가.”

“씨발, 미쳤어? 나 할 일 존나 많다고!”

박래현이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에서 처음과 같은 냉랭함은 사라졌지만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다.

“귀여운 별이 아빠, 일하고 싶으면 빨리 나한테 각인해.”

박래현이 알아차리기 전에 각인하려고 피곤해도 매일 밤 섹스했다. 처음 각인했을 때보다 지금 박래현을 더 좋아하는데 마음처럼 각인이 안 돼 초조해졌다. 나는 박래현의 페로몬에 면역이 생겨서 영원히 박래현에게 각인할 수 없는 몸이 됐을지도 모른다. 불안한 마음에 서러워져서 눈물이 났다.

“윤준영, 울어? 운다고 내가 봐줄 줄 알아?”

“형 실망 안 시키려고, 흐윽, 형이 알아차리기 전에… 각인하려고, 흑,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

내 생각과 말은 거기서 멈췄다. 각인이 풀려 화가 난 건지 박래현은 농밀한 페로몬을 덩어리째로 내게 쏟아 냈다. 숨 막힐 듯한 페로몬과 거칠게 속을 들쑤시는 성기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나는 뼈가 드러난 어깨를 힘껏 움켜쥐었다. 관절이 불끈 솟아오른 손등이 반짝반짝 빛났다.

“울지 말고 눈 떠. 눈 떠서 형 봐.”

속에서 번지는 아찔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나 보다. 나는 눈을 떠 박래현을 보았다. 호박색으로 번득이며 열기에 휩싸인 눈동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가 내뿜는 페로몬의 강도가 차츰 강해졌다. 그는 자신의 페로몬에 나를 완전히 담갔다가 내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빼낼 작정이었다. 코와 눈과 귀와 구멍으로, 벌어진 입술과 살갗으로 지독한 향이 밀려 들어왔다. 내 몸에 온통 치자꽃이 피어난 것처럼 향기가 진동했다.

“으응, 혀엉… 숨, 숨 막혀….”

야박한 손으로 내 얼굴을 쥔 박래현이 귓바퀴를 아프게 깨물었다. 거친 숨소리에 고막이 흔들렸다. 깨문 자리를 혀로 쓸어 주고 나서 입술은 귀뺨을 지나 내 입술을 덮었다. 보드라운 살 전체가 그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운 혀가 입술을 열어 내 혀를 뭉개고 짓밟았다. 나는 허덕이며 혓바닥을 움직여 그의 혀를 쫓았다.

실컷 입 맞추고 나서 입술은 목덜미로 옮겨 갔다. 넥타이가 끌러지고 셔츠 단추가 풀렸다. 날카로운 이가 경동맥 부근을 깨물었다. 동시에 굵다란 성기가 물을 찾아 뻗어 나가는 뿌리처럼 아기집 입구를 뚫고 들어왔다.

“아, 아악!”

박래현이 성기를 퍽퍽 박아대자 달리고 있는 차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내 몸이 위로 올라가지 않게끔 허리를 잡아 밑으로 당긴 박래현이 내 다리 한쪽은 시트 등받이에, 다른 한쪽은 앞쪽 의자에 넘겨 고정하고는 허벅지와 골반을 누르면서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쳐올리는 힘이 강해서 엉덩이가 위로 떠올랐다가 푹 가라앉았다. 아기집 입구에 깊숙하게 박힌 좆이 뒤로 쑥 빠져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했다. 성기가 지나가는 길목이 불이 난 것처럼 열로 가득해 온몸에 땀이 났다.

“혀, 형! 하, 하아, 하읏!”

젖은 셔츠가 등과 좌석의 가죽 사이에서 마찰을 일으켰다. 나 역시 페로몬을 흘렸지만 박래현의 짙은 향에 가려져 흔적조차 희미했다. 고개를 숙여 목덜미 한쪽을 집요하게 빨아당기던 박래현이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다. 매혹적인 얼굴에 가슴이 세차게 뜀박질했다.

“윤준영, 난 너만 보고 살아. 너 없으면 나는 죽어.”

관능을 담은 향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짓눌렀다. 절정에 이르러도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박래현의 얼굴이 복숭아색으로 달아올랐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서고 목덜미에도 혈관이 꿈틀거렸다. 박래현과 5년간 관계하면서 그가 이렇게 무차별하게 페로몬을 쏟아부은 적은 없었다.

“형, 흐, 흐읏, 각인하든 안 하든, 하아, 난 형밖에 없어.”

박래현은 성기를 아기집에 박아 넣은 채 노팅을 시도했다. 지독한 쾌락과 끊임없는 페로몬에 압도돼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앞 의자에 걸려 있던 다리가 힘이 풀려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박래현은 나를 완벽하게 속박한 채 고개를 틀어 내 입술을 빨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그의 어깨에 팔을 감아 보지만 내 의식은 작은 조각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

“준영아, 일어나. 다 왔어.”

귓가에 내려앉는 다정한 음성에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잘생긴 알파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여 내게 입 맞췄다. 한가하게 박래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나는 수림병원 약제 팀장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노팅한 흔적으로 아랫배가 욱신거렸지만 산소 탱크에 들어가 잠을 자고 나온 것처럼 기분은 상쾌했다.

“선우진 MR은 도착했을까? 전화 한 통 해 봐야겠어.”

“선우진 우리 차 옆에 주차했어. 내리자.”

“형, 나 회사 조용히 다니고 싶어.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박래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2년이 다 되어가도록 내 의사를 존중해 주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옷차림부터 점검했다. 박래현이 도로 옷을 입혀서 겉모습은 나름대로 단정해 보였다. 사정하고 나서 정액을 다 파냈는지 안에서 흘러내리는 느낌도 없었다.

“형, 나 아까 형 페로몬에 익사할 뻔했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순간 주차장 주변으로 우거진 관목과 잘 조성된 조경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긴 식당이 아니라 우리 집 주차장이었다. 기가 막혀서 나는 박래현을 노려보았다.

“여기가 어딥니까? 아무리 봐도 식당이 아니라 저택 같은데….”

옆 차에서 내린 선우진이 겸연쩍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이 잠시 내 얼굴과 목덜미를 훑었다. 박래현이 기다란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선우진 보란 듯이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요즘 모 제약 회사 리베이트 건으로 시끄럽잖습니까. 약제 팀장님이 밖에서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길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아, 네….”

박래현은 다정한 표정으로 내게 눈을 맞췄다. 웃고 있는 얼굴 속에서 나는 그의 음흉한 속내를 읽었다.

“나 잘했지, 여보?”

칭찬을 바라는 눈빛이 아니었다. 약제 팀장을 집으로 초대한 건 리베이트 때문이 아니라 선우진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좋게 포장하자면 독점욕과 애정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으나 나쁘게 보자면 끝이 없었다.

‘준영 씨, 결혼했어요?’ 하고 묻는 듯한 눈으로 선우진이 나를 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걸쳐진 박래현 손을 풀었다. 박래현은 전화기를 꺼내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약제 팀장에게 지금 위치를 물어보는 듯했다.

“팀장님 지금 대문 통과했다니까 오면 같이 들어갑시다.”

박래현은 한마디 하려고 벌어진 내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춘 뒤 선우진 차 옆에 막 주차를 마친 은색 승용차로 다가갔다. 그는 운전석 문을 열어 주며 안에 탄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정승효 선배, 오랜만이에요.”

뿔테 안경을 추어올리며 정승효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선우진이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려고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으나 그는 2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전체 미팅을 통해 MR들과 만나지 개별적인 접촉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게. 지난번 교수님 세미나 때 보고 처음이지? 넌 여전히 멋지다. 누가 널 애 아빠로 보겠어.”

박래현은 정승효에게 선우진을 먼저 소개했다. 두 사람은 이미 통성명을 한 사이라 얼굴과 이름은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제 배우자 윤준영입니다. 준영아, 인사해.”

“바이언스제약 영업 지원 3팀 윤준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승효입니다. 병원에서 얼굴은 봤어요. 래현아, 이분 우리 약제 팀 약사들한테 인기가 많아.”

정승효는 이 상황에서 별 도움이 안 되는 얘기를 꺼냈다. 그럴 줄 알았다며 호쾌하게 웃는 박래현 얼굴이 연극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래현이 배우자였어요? 우리 약사들 실망이 크겠네요.”

나를 보는 정승효의 눈빛이 달라졌다. 박래현이 정승효 후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 성격에 과 사람들과 잘 지내지 않았을 거라고 지레짐작해 그냥 넘어갔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두 사람은 꽤 돈독해 보였다. 내게만 허락된 행운의 복권을 손에 쥐고서 여태 긁어 보지도 않은 내가 한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박래현을 내세워 진작에 비벼 봤을 것이다.

영업을 잘하려면 주위 사람들을 전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했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이 차장과 정 차장이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써 저녁을 먹고 방에 모여서 놀고 있는지 집 안은 조용했다. 손님 접대를 위해 그렇게 해 달라고 박래현이 미리 주문해 놨을 것이다.

“이 차장님, 저희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아주 귀한 손님이라고 들었는데 음식이 입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음식 준비를 서둘렀다. 선우진은 정승효가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뒤로 빼 준 다음 그 옆자리에 앉았다. 박래현은 나를 먼저 앉히고 내 옆자리에 앉아 그들과 마주 보았다. 나는 접시 위에 돌돌 말린 차가운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선우진은 여전히 충격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준영 씨라고 했죠? 우리 동기들이 만나면 하는 얘기가 있어요.”

“뭔데요?”

정승효가 물수건을 내려놓으며 내게 눈을 맞췄다. 지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장난기가 엿보였다.

“박래현 배우자는 진짜 심심할 거야. 지루해서 박래현이랑 어떻게 살아? 뭐 이런 얘기요. 얼굴만 뜯어보는 데도 한계가 있잖아요.”

“…형이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지루한 사람이었어요?”

“나이도 우리보다 한참 어린 게 연구에 미쳐서 딴 데 관심이 없었어요. 저 얼굴로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주제에 연애도 안 하고 연구실에만 처박혀 살았어요.”

네 사람 앞에 호박죽을 내려놓은 정 차장이 커다란 접시에 전복과 새우구이를 내왔다. 전복은 먹기 편하게 적당한 크기로 썰려 있었고 새우는 껍질이 벗겨진 채였다. 나는 박래현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서 정승효에게 다음 얘기를 재촉했다.

“그래도 잘생겨서 인기는 많았죠?”

“잘생기면 뭐 해요, 그림의 떡이자 신 포도일 뿐인데. 선배고 후배고 동기고 간에 다들 한 번씩 들이댔다가 다 튕겨 나왔어요.

“형이 그렇게 무뚝뚝했어요?”

“무뚝뚝이고 뭐고 실험실에서 안 나오는 인간과 무슨 재미로 연애할 마음이 들겠어요? 그래서 다들 박래현은 연애나 결혼 같은 거 절대 안 할 줄 알았다니까요?”

잊고 지냈던 정치헌이 떠올랐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그는 잠시나마 박래현을 차지했다. 그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적었다면 이 자리엔 내가 아니라 정치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배, 지난 얘기는 그만합시다. 누가 그런 얘길 듣고 싶어 한다고 자꾸 얘길 꺼내요?”

식탁에 양념이 된 꼬막과 능성어 찜이 올라왔다. 박래현은 능성어를 반으로 찢어 하나는 정승효 접시 위에, 다른 하나는 내 접시 위에 옮겨 놓았다.

“왜, 준영 씨는 매우 궁금해 보이는데?”

“그게 제 대학 생활 전부라 이제 더 해 줄 얘기도 없잖아요.”

“없긴. 아직도 한 트럭이나 남았는데.”

“그 얘긴 그만하고 선배, 사실은 부탁할 게 있어요.”

정승효의 얘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박래현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오늘의 주제는 그게 아니므로 정승효와 친해져서 나중에 박래현 얘기는 더 물어보기로 했다.

“DC에서 선배가 힘 좀 써 줬으면 합니다. 우리 회사 제품 좋은 거 선배도 잘 알잖습니까.”

박래현은 돌려 말하는 법 없이 직구를 던졌다. 간이 적당하게 밴 농성어를 입에 넣으면서 나는 정승효와 선우진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내가 작년 12월에 병원장 라인 타고 수림병원에 들어왔잖아. 놀란 게 너희 회사 제품이 랜딩에 실패한 거였어. 내가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다 통과했거든.”

“…….”

“알고 보니까 복잡한 사정이 있었더라고.”

“제품 디테일링은 선우진 MR한테 자세히 들어요. 제품들은 최고니까 선배가 선우진 MR 좀 밀어줬으면 해.”

“…알았어. 일단 제품 디테일 듣고 나서 생각해 볼게. 선우진 씨 다음 주 목요일 오전에 시간 되면 잠깐 만나요.”

너무 기뻐서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영업에서는 역시 튼튼한 인맥이 최고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팀장님께 점심 대접할게요.”

선우진만 정승효를 만나게 할 수 없어서 나는 잽싸게 끼어들었다.

“준영 씨 좋을 대로 하세요. 그리고 제 신랑이 내분비 내과 주임 교수예요. 필요하다면 소개해 드릴게요.”

“혹시 이강혁 교수님 말씀입니까?”

선우진이 반가운 얼굴로 알은체했다. 이강혁 교수는 선우진에게 제품 디테일링을 들은 뒤로 우리 제품에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맞아요. 벌써 알고 있네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나는 손이 떨려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박래현에게 정승효 팀장과 어떤 사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같은 과 선배라고만 얘기했었다. 별 기대 없이 자리가 마련되면 말이라도 붙여볼 생각이었는데 약학과 동문들이 이렇게 끈끈한 애정으로 뭉쳐 있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주최한 학회에 참석하셨어요.”

“그랬구나. 집에선 서로 직장 얘길 거의 안 해서 학회에 참석한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답게 표정 관리를 하던 선우진 얼굴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그 뒤로 생선회와 꽃게탕이 나왔다. 식사하면서 대화 주제는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몸담고 있는 분야가 비슷하다 보니 대화는 꽤 심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박래현은 이 차장에게 차와 과일을 준비시켰다. 우리는 거실로 옮겨 대화를 이어 갔다.

“선배,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박래현이 전화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가 사라지자 정승효가 거실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그의 눈에 감탄이 서렸다.

“집이 정말 넓고 좋네요. 그림과 화분이 많아서 꼭 갤러리에 온 기분이에요.”

쌍둥이들이 차를 몰고 다니면서 거실을 활보하는 바람에 화분은 전부 테라스로 옮겨졌다. 오늘은 손님이 온다고 해서 이 차장이 화분을 안으로 옮긴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빤히 응시했다.

“저분이 박래현 씨면… 혹시 우리 회사 대주주가 맞나요?”

“맞아요. 바이언스 설립자이기도 하고 이쪽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라 검색해 보면 바로 나와요. 준영 씨가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했나 봐요?”

“네. 저랑 래현 형 관계를 알면 회사 사람들이 저를 불편해할 거 같아서요.”

“그러긴 하겠네요. 영업 지원팀이면 시킬 일도 많을 테니.”

마침 박래현이 없는 틈을 타서 사람들에게 우리 관계를 발설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부탁인데 저와 래현 형 관계는 비밀에 부쳐 주셨으면 해요. 소문이 돌면 걷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거야 어렵지 않죠. 우리 남편한테도 비밀로 할게요.”

정승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시원하게 대답했다. 선우진은 그 중요한 사실을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지금껏 나를 알파로 생각해서 내겐 관심도 없던 사람이 새삼스러웠다.

“아빠, 회사에 잘 다녀오셨어요?”

고양이와 고양이 발바닥이 그려진 잠옷을 입은 별이가 갑자기 나타나 내 품에 풀썩 안겼다.

“별이 안 자고 있었네?”

나는 별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보드라운 뺨에 입을 맞췄다.

“아빠아~ 압빠가 나 깨워써요! 서혀니 돌려요.”

이번엔 서현이가 뒤뚱뒤뚱 다가와 내 품에 안기며 서럽게 울었다. 서현이는 예쁜 양이 그려진 잠옷 차림이었다.

“서현이 자다가 깬 거야?”

“네에. 아빠가, 아빠가 흔드러 깨워써요!”

잠을 자다가 깬 아이의 눈에는 설움과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서경이를 안고 나온 박래현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서경이도 자다가 나왔는지 박래현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엄지를 쪽쪽 빨고 있었다. 나는 울먹이는 서현이 입에 재빨리 포도 한 알을 넣어 주었다. 포도를 깨물면서 서현인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선배, 우리 애들 보고 싶다고 했죠? 얘는 큰딸 서윤이. 서윤아, 이분들한테 인사해.”

별이는 허리를 공손하게 숙여 정승효와 선우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서윤입니다. 예원 유치원 사랑반이에요.”

서윤이가 인사를 마치자 박래현은 다음으로 서경이와 서현이를 소개했다. 서현이가 포도 먹는 모습을 발견한 서경이가 박래현에게 내려 달라고 몸을 흔들었다. 박래현이 바닥에 내려 주자 쌍둥이들은 포도 앞에 앉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애들이 하나같이 인물이 훤하네. 래현아, 이 중에 한 명은 꼭 과학자 시켜야 한다. 알았지?”

내 무릎에 앉은 별이가 귀에 대고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렸다. 차를 다 마신 정승효가 그만 가 봐야겠다며 일어서자 선우진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

“선배, 잠깐만. 이거 갖고 가서 신랑이랑 같이 마셔요.”

“아냐, 됐어. 우리 이런 거 받으면 큰일 나.”

“이번에 프랑스 학회 갔다가 사 온 겁니다. 뇌물이 아니라 후배가 주는 선물이니까 받아요. 우리 제품은 로비 없이도 들어갈 수 있잖아요.”

박래현은 정승효뿐만 아니라 선우진에게도 와인을 건넸다. 나와 박래현은 아이들을 나눠 안고 주차장까지 두 사람을 배웅하러 나갔다. 제일 먼저 정승효가 차에 탔다. 선우진은 그녀와 만날 약속을 재차 확인한 뒤 박래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우리 가족은 집으로 들어왔다.

“형 하는 짓 보면 어쩔 땐 정말 유치해서 못 봐주겠어.”

“내가 뭘?”

“자고 있는 애들 일부러 깨워서 데리고 나온 이유, 내가 모를 줄 알아?”

“왜 도와줘도 구박이야. 내 신랑 얼른 승진하라고 이렇게 내조를 잘하는데.”

박래현이 내 머리칼에 입술을 문지르자 쌍둥이들도 따라서 내 머리칼과 뺨에 입을 맞췄다.

“압빠, 우리 언는 포크네인 만드러요. 네?”

“그러자. 내일 씨앗 심는 날이지? 그러면 오늘 만들어야겠네.”

“아바, 뽀도 듀데여.”

“압빠, 포크네인 내가 만들께요!”

잠든 아이들을 깨운 대가로 박래현은 눈이 초롱초롱해진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힘든 기색 없이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빠, 나 오늘 초콜릿 선물 받았어요. 그 애가 나 좋아한대요.”

갑작스러운 별이의 고백에 놀랄 틈도 없이 쌍둥이들이 박래현을 잡아당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바, 뽀도!”

“압빠, 오늘 샹추 띠앗 봐써요. 짝아요.”

“아빠아~”

“서윤이 너 포클레인 만들면서 아빠랑 얘기 좀 하자.”

박래현이 내 품에서 별이를 데려가서 아이 셋을 두 팔로 안았다.

“준영이 넌 피곤할 테니까 씻고 쉬어. 난 애들 재우고 갈게.”

박래현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들이 종알대는 소리를 다 들어주며 쌍둥이 방으로 향했다. 나는 박래현 몸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아이들의 작은 손과 발을 바라보다가 침실로 들어왔다. 별이를 좋아한다는 녀석이 궁금했지만 샤워 먼저 하고 싶어서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몸을 씻으면서 박래현이 내 비밀을 어떻게 알게 됐을지 추리해 보았다.

‘네 사랑이 식었잖아. 각인이 풀렸으니까 그렇겠지.’

각인이 풀리고서 마음이 더 깊어졌다고 여겼는데 착각인 걸까? 나도 모르는 새에 그에게 소홀히 대한 적이 있나 짚어 보았다. 선우진을 서포트하면서 일이 많아진 탓에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박래현이 그런 생각을 한 건지도 몰랐다. 그는 긴가민가 의심을 하고 있다가 내 손에 억제제가 들려 있는 걸 보고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너한테 내 페로몬을 묻혔어. 너한테 날파리들 꼬이지 않게.’

열에 들떠 한 귀로 흘렸던 말이 기억을 거슬러 되살아났다. 자신의 오메가에게 극소량의 페로몬을 묻혀 다른 알파의 접근을 저지하는 이상한 알파들이 있다고 들었다. 알파들은 서로 지독한 경쟁심을 갖고 있어서 오메가가 맡지 못하는 극소량의 알파 페로몬도 감지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나는 이제야 선우진이 처음부터 나를 알파로 인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건장한 몸과 박래현이 덧씌운 알파 페로몬 때문이었다.

선우진을 만나기로 한 날, 커피숍에서 다른 알파의 향을 맡으며 나는 처음으로 각인이 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래현이 그때부터 페로몬을 묻혀 왔다면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는 내가 어떻게 나오나 조용히 지켜보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선우진에게 오메가란 사실을 들키자 급한 마음에 직접 나선 모양이었다.

나는 수납장에서 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으며 세면대 앞으로 갔다. 무심코 거울 속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잠시 헛웃음이 났다. 눈꼬리 옆, 귓바퀴, 목덜미에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주장하는 작은 흔적들이 있었다. 이 꼴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분노의 양치질을 끝낸 나는 속옷에 실크 파자마 가운만 입고 허리끈을 묶으며 쌍둥이 방으로 달려갔다. 박래현에게 따져 물으려 했으나 그와 아이들을 보자 10초도 안 돼 화가 풀렸다.

별이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고 쌍둥이들은 러그 위를 뒹구는 인형들 사이에서 박래현과 열심히 포클레인을 만들고 있었다.

며칠 전 아이들과 놀아 주던 박래현이 텃밭에 채소를 파종하겠다는 정 차장의 말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식물을 조금씩 할당해서 키우게 하면 관찰력과 책임감이 높아질 거라고 판단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파종해 식물을 키울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쌍둥이들이 직접 식물의 성장과정을 찍어 일지를 작성할 수 있도록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노트를 구입했다.

“서경아, 서현아, 오늘은 뭐 만들었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질문을 던지며 러그 위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들이 만든 물건을 살폈다. 서현이는 내가 잘 볼 수 있게 투실투실한 몸을 옆으로 비켰다.

“포크네인 만드러써요. 이걸루 내일 땅 팔 꺼야.”

“와, 이걸로 땅이 파져?”

“아빠랑 내일 띠앗 심기루 해써요.”

“씨앗 심으려면 땅 파는 연습 먼저 해 볼까?”

박래현은 커다란 통에 모래를 가득 담아 와서 서경이와 서현이 앞에 내려놓았다. 박래현이 먼저 시범을 보인 다음 서경이에게 R/C 리모컨을 넘겼다. 아직 손 동작이 서툰 서경이지만 그는 박래현의 도움을 받아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뜨는 데 성공했다. 반은 바닥에 흘리고 반만 떴지만 나는 옆에서 크게 손뼉을 쳐주었다.

“땅은 이것보다 훨씬 단단해서 더 오래 파고 있어야 해. 알았지?”

“네.”

이번엔 서현이 차례였다. 서현이는 쉽게 리모컨을 조작해 포클레인을 움직였다. 포클레인은 매우 정교해서 정말로 땅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 장난감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박래현 어깨에 얼굴을 기대면서 아이들을 지켜봤다.

“무슨 씨앗 심을 건데?”

“상츄랑 시금티, 강랑콩요.”

“티금티!”

막 말이 트이기 시작한 서경이도 옆에서 거들었다.

“올가을엔 서경이랑 서현이가 심은 상추를 따 먹겠네. 와, 신난다!”

내 칭찬에 두 아이는 우쭐해져서 어깨춤을 추며 내게 다가와 안겼다. 나는 양쪽 팔에 아이들을 안고 통통한 뺨에 차례로 입 맞춰 주었다. 아이들의 일상을 돌보면서 함께 노는 게 힘들지 재롱부리는 아이들을 예뻐하는 건 참으로 쉬운 일이었다.

“늦었으니까 이제 조각들 치우고 그만 자자.”

박래현의 말에 내게 엉겨 있던 쌍둥이들이 벌떡 일어나 러그 위에 돌아다니는 교구 조각들을 상자에 쓸어 담았다. 서현이는 저와 서경이가 안고 잘 인형들을 침대에 올려두고 나머지 인형들은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러그 위는 눈 깜짝할 새에 깨끗해졌다.

“손 씻고 이 닦고 자야지. 아빠 따라 욕실로 와. 서윤이도 책 그만 보고 이 닦자.”

별이와 아이들이 오리 새끼처럼 줄줄이 박래현을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박래현은 아이들 칫솔에 치약을 짜서 각각 나눠 주고 아이들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이를 잘 닦는지 감시했다. 두 아이는 통과했고 서경이는 통과를 못해 박래현이 직접 안아서 이를 닦아 주었다.

별이는 혼자 씻으라고 내버려 두고 나는 서현이의 손과 얼굴을 씻겼다. 수건으로 얼굴에 남은 물기를 훔치면서 까꿍 놀이를 해 줬는데 서현이 수준에 맞지 않은지 아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동생들도 잘 자.”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부쩍 자립심이 강해진 별이가 나와 박래현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후에 토끼 인형을 안고서 자기 방으로 갔다. 나는 서현이를 안아서 침대에 눕혔다. 쌍둥이들이 같이 자는 걸 좋아해서 우리는 침대를 큰 걸로 바꾼 다음 두 아이를 함께 재웠다. 박래현은 서경이도 데리고 와서 옆에 눕히고는 동화책을 꺼내 들었다.

“나는 서윤이 잘 자나 확인해 볼게.”

“서윤인 혼자서도 잘 자.”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아이들의 재촉에 박래현이 동화책을 펼쳐 들었다. 나는 자장가 같은 박래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별이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붙어 있는 별 모양의 조명에서 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왔다. 조명이 숙면에 도움이 안 된다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밤중에 일어나면 위험할 것 같아 조명을 완전히 끄지는 못했다.

“서윤아, 자?”

아이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별이의 머리칼을 조용히 쓸어 주었다. 별이는 졸음이 스며든 눈을 깜박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별아, 너 좋아한다는 애 누구야? 너랑 같은 반이야?”

별이는 테스트를 받고 6세 반에 배정되었다. 또래보다 나이가 어려 큰 애들한테 치일까 봐 걱정했는데 애가 야무져서 6세 애들과 잘 어울린다는 선생님의 답변을 받았다.

“이름이 남이연이에요. 오늘 나한테 초콜릿이랑 카드 줬어요.”

“그래? 카드에 뭐라고 써 있어?”

“나랑 나중에 결혼하고 싶대요.”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영리한 아이라 또래의 시선을 끄는 건 당연하지만 벌써 결혼 얘기가 나오다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분한 목소리로 별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선물이랑 카드 돌려주면서 싫다고 했어요.”

“잘했어. 넌 아직 결혼이나 남자 친구를 신경 쓸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좀 더 커서 가치관이 형성된 다음에 고민해 보자.”

“네.”

별이의 반응에 안심돼서 환하게 웃던 나는 별이가 그 아이의 청혼을 거절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근데 남이연이 왜 싫어? 걔가 너 괴롭혔어?”

“남이연은 못생겨서 싫어요! 나는 이쁜 남자 친구가 좋아요.”

“그, 그래? 그래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돼. 걔가 아주 착하고 다정한 애일 수도 있잖아.”

별이는 이제 다섯 살이므로 나중에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수록 예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도 못생긴 남자 친구는 싫어요!”

잘생긴 애인이 좋기는 해, 나는 박래현을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안 통할 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가도 박래현의 수려한 얼굴을 보면 스르르 풀릴 때가 많았다.

“알았어. 서윤아, 유치원에서 무슨 일 생기면 이모들이랑 아빠들한테 꼭 얘기해야 해. 알았지?”

“네….”

다섯 살 된 별이와 놀랍도록 대화가 잘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별이가 잠들 때까지 가만히 아이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던 별이가 1분도 안 돼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별이 배에 이불을 덮어 주고는 조용히 별이 방을 빠져나왔다. 쌍둥이들을 재우는 데 실패했는지 박래현은 침실에 없었다. 그러게 왜 자는 애들을 깨워 사서 고생인 걸까.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워 눈을 감았다. 습관적으로 오늘 하루를 정리하다가 핸드폰을 찾아 선우진에게 전화를 넣었다. 박래현과 내 관계를 알게 됐으므로 그의 입을 확실하게 막을 필요가 있었다.

- 네, 바이언스 제약 선우진 MR입니다.

“선우진 MR님, 저 윤준영입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저랑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

- 네, 말씀하세요.

사람들에게 박래현과 내 관계를 속여야만 했던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겐 제발 비밀에 부쳐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처음엔 뚱해 있던 선우진이 전화를 끊을 무렵엔 그러겠다고 선선히 대답했다. 그는 박래현에게 정승효를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는 당부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테이블에 올려두려다가 정우에게 박래현이 내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우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뉴스를 알리는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준영아, 나야. 미팅은 잘했어?

“어, 잘 끝났어. 야, 알고 봤더니 약제 팀장님이 형이랑 친한가 봐.”

- 그래? 잘 됐다. 부센터장님 참 여러모로 신기한 분이야.

“근데 나쁜 소식이 있어.”

- 뭔데 그래?

“형이 나 각인 풀린 거 알아버렸어. 당분간 갇힐 확률이 100%야.”

- 그런 거 같더라니. 희망 잃지 말고 부센터장님 잘 꼬드겨 봐. 네 말이라면 다 들어주시잖아.

이번 일만큼은 박래현이 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불안했다.

“참! 루이스 사 부대표는 요즘 좀 어때? 아직도 형한테 집적거려?”

- 그렇긴 한데 부센터장님이 안 넘어오니까 좀 지친 눈치야.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어. 끊어.”

곧장 검색창에 박래현과 루이스 사를 넣어 기사를 검색했다. 쌍둥이를 낳고 집에 있을 땐 종종 그의 기사를 찾아봤는데 요즘엔 바빠서 검색할 틈이 없었다. 나는 박래현과 루이스 사 부대표가 찍힌 기사 사진을 찾아 화면을 확대했다. 루이스 사 부대표는 딱 봐도 초기에 오메가로 발현한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박래현을 믿지만 그 사람 곁에 나 말고 다른 오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질투가 났다.

전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나는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가운 사이를 살짝 벌려 탄탄하게 자리 잡은 가슴 근육을 관찰했다. 그걸로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가운을 더 벌려 깊게 굴곡진 복근으로 시선을 보냈다.

일주일에 세 번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근육을 만든 덕분에 임신하기 전보다 몸 상태가 더 다듬어지고 보기 좋아졌다. 매끈하게 자리잡은 근육을 보고 있자니 우울했던 기분이 좀 풀렸다. 박래현은 내 몸의 근육을 사랑한다. 그의 눈에 여리고 예쁜 오메가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만족스러운 눈으로 이두박근을 살피고 있는데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박래현이 거울에 비쳤다.

“너 또 근육 보고 있어?”

박래현이 다가와 손바닥으로 내 복근을 찰싹 때렸다. 그의 손은 이내 드로어즈 안으로 파고들어 성기를 감싸 쥐었다.

“가슴과 복근은 이렇게 멋진데 자지는 왜 백자지야?”

“…음, 거기다 털 좀 심을까? 형 꺼 뽑아서 심으면 되겠다.”

거울 속에서 박래현이 웃고 있었다. 그는 드로어즈를 아래로 끌어 내린 뒤 민둥민둥한 불두덩에 얼굴을 묻었다.

“왜 털을 심어? 네가 남들 앞에서 자지 내놓고 자랑할 일 있어?”

“형이 민둥이라고 놀리니까 그렇지.”

“심기만 해 봐. 내가 다 뽑아 버릴 거니까.”

성기에 얼굴을 비벼 대던 박래현이 얼른 씻고 나오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또 하고 싶다는 말투였지만 밴에서 한바탕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

깊이 잠들었던 나는 박래현이 손바닥으로 젖꼭지를 비벼 대는 통에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허벅지 사이에 나를 가두고 무릎으로 선 박래현이 보였다.

“화려한 가운이 잘 어울리는데? 요염하고 사랑스러워.”

귀찮아서 모로 누우려는 나를 박래현이 무릎으로 내리눌렀다.

“아까 해 놓고 설마 또 하려는 거 아니지? 나 피곤해서 잘래.”

“윤준영,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거 같은데….”

허리끈을 푼 박래현이 내 가운을 좌우로 젖혔다. 그는 얼굴부터 시작해 목덜미와 가슴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렸다.

“너 각인할 때까지 나랑 섹스만 해야 해. 출근하기 전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던 거 기억 안 나?”

“각인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래? 그러다 각인 안 되면 난 평생 집에서 살아야겠네?”

“그러게 누가 멋대로 각인 풀라고 했어?”

박래현은 태연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논리적인 사람이라 자신의 말이 모순투성이란 걸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형, 히트 사이클을 형과 보내면 되잖아. 부득이한 경우 억제제만 잘 챙겨 먹으면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내가 짐승도 아니고, 형 말고 다른 알파랑 붙어먹을 리 없잖아.”

“너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네 주변에서 알짱거리는 알파들을 못 믿겠어. 오늘처럼 냄새만 풍겨도 달려들 준비를 하잖아.”

담벼락에 대고 얘길 하는 것처럼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럴 바엔 열심히 섹스해서 얼른 각인하는 게 더 나을 듯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으니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리라고 여기는 게 마음 편했다.

“근데 형, 나 각인 풀린 건 어떻게 알았어? 정말 내 애정이 식은 거 같았어? 그럴 리 없을 텐데.”

침대에서 내려가 내 몸을 침대 가장자리로 끌어당긴 박래현은 어깨를 안아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나와 세트이면서 색깔만 다른 파자마 가운을 입고 있었다. 베이지 색 실크가 박래현의 깨끗한 피부를 돋보이게 했다.

“너 피곤해서 자길래 핸드폰 충전시켜 주려고 네 가방을 열었어. 핸드폰을 꺼내다가 억제제를 발견했지. 네가 억제제를 챙긴 이유가 뭐겠어?”

박래현이 내 무릎을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다리가 거침없이 갈라지면서 가운 끝자락이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두 팔로 매트리스를 짚어 몸무게를 지탱하면서 넘실거리는 가운 자락을 조금씩 걷어 올리는 박래현을 보았다.

“각인이 풀려서겠지.”

그는 보물찾기를 하듯 가운을 위로 밀면서 허벅지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깊이 들어오자 박래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커다란 손에 엉덩이가 잡혀 위로 띄워졌다. 곧장 촉촉한 살덩이가 음낭을 핥더니 회음을 지그시 내리눌렀다. 박래현의 다음 동작을 잘 알고 있기에 침대 프레임을 짚고 있는 발뒤꿈치에 힘이 들어갔다.

“아, 윤준영이 내게서 달아나려고 하는구나….”

“말도 안 돼…. 난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을 거라고!”

뾰족하게 날 세운 혀가 주름이 열리도록 그 부근을 꾹꾹 눌렀다. 벌써 밑이 움질거려서 고개를 뒤로 젖히던 내 눈에 거울 속 풍경이 들어왔다. 반쯤 흘러내린 가운 사이로 가슴을 드러낸 나와 내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처박은 박래현 모습이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하듯 시선을 거울에 고정했다.

박래현과 5년을 함께 살면서 박래현이 어떤 표정과 몸짓으로 내 밑을 빠는지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막상 벌어진 가랑이 사이를 오가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머리통을 보고 있자니 못 볼 것을 본 기분이 들었다. 거울에서 눈을 뗀 나는 얼마 못 가서 홀린 것처럼 다시 거울을 보았다. 박래현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면 안으로 들어온 살덩이가 같이 움직였다.

“으, 으응… 형, 정말이야. 믿어 줘.”

울먹이는 목소리에 혀의 면적을 넓게 펴서 개처럼 구멍을 핥던 박래현이 고개를 들었다. 각도기로 재서 조각한 것처럼 비율이 정확한 얼굴에 잠시 시선을 뺏겼다.

“정말 내 옆에만 있을 거야?”

“그렇다니까!”

그는 젖은 입가를 내 가운에 닦으며 옅게 미소지었다.

“내 오메가가 그렇다면 믿어야지. 그래도 각인할 때까지 갇혀서 섹스만 해야 해. 일단 노력은 해 봐야 할 거 아냐.”

“그러지 말고 회사는 보내 줘. 섹스는 밤에 하면 되잖아.”

“당연히 안 되지. 본부장한테 너 아프다고 전화 넣어 놨어. 일주일 정도 못 나간다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일주일이나 연가를 뺄 수는 없었다.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라 박래현을 잘 달래서 주말 안에 끝내기로 했다. 나는 박래현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며 다정하게 키스했다. 곧장 안으로 들어온 혀를 살살 빨아 준 다음 얼굴을 떼고 그에게 눈을 맞췄다.

“형, 일주일은 너무 길어. 형이 원하는 대로 실컷 벌려줄 테니까 일요일까지만 해. 나 정말 열심히 할게.”

“…너 하는 거 봐서.”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에 기세등등해져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나 형한테 다시 각인한 거 같기도 해. 아까 차에서 형 페로몬에 완전히 잠겼잖아.”

“수작 부리지 마. 일요일 밤에 각인했나 안 했나 검사하고 풀어줄 테니까.”

“그럼 빨리 넣어. 아까 해서 그냥 박고 싸면 돼.”

“내가 너한테 욕구 풀려고 섹스하는 줄 알아? 네가 즐거워야 나도 좋지. 오늘 시간도 많은데 너 천천히 잡아먹을 거야.”

박래현의 눈이 장난기로 반짝였다. 그는 지금 조명으로도 충분한데 목이 구부러지는 스탠드의 조명을 켜서 그 조명을 내 가랑이 사이에 갖다 댔다.

“나만 보기 아까웠는데 너도 오늘 잘 봐 둬. 네 구멍이 얼마나 쫀쫀하고 음란하게 움직이는지.”

옆으로 약간 비켜선 박래현이 무릎의 접힌 곳을 손으로 잡아 위로 누르면서 엉덩이를 자연스럽게 들어 올렸다. 가운 자락이 치골 부근에 몰리면서 은밀한 곳에 숨어 있던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름이 혼자 움질거리는 게 창피해서 나는 엉덩이를 잡아 빼려고 했다.

“나중에 내 자지 박히는 모습도 꼭 봐. 완전 꼴려.”

박래현은 거울에 내 모습이 잘 보이도록 비켜 앉은 그대로 왼쪽 손가락 다섯 개를 구멍에 넣었다가 손가락을 공 모양으로 활짝 펴서 주름을 둥글게 벌렸다.

“자지로 누르면 좋다고 방긋방긋 웃다가….”

양쪽 시력 2.0의 건강한 눈에 쩍 벌어진 구멍 안의 분홍색 살이 선명하게 보였다. 박래현이 내 성감대라면서 손이나 혀로 만져 주는 작은 돌기들도 확인했다. 나는 볼을 붉히면서도 그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해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푹 넣어 주면 맛있게 먹는 모습이 기가 막히게 예뻐.”

그는 손가락을 쫙 펴서 구멍을 확장하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서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늘어나면서 그 주변으로 묘한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박래현은 벌어진 구멍에 오른손 손가락 네 개를 넣었다. 첫 마디 정도를 안에 넣은 박래현이 손가락을 굽혀 돌기들을 짓눌렀다. 내벽이 파드득 떨리면서 허벅지가 같이 경련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박래현의 머리칼에 내 손가락을 감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서 갈색 머리칼은 쉽게 손에 엉켰다.

“네 속살이 얼마나 부들거리는지 만져 볼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유 있게 돌기를 만지던 손이 좁은 구멍을 비집고 더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 끝의 도톰한 부분이 내벽을 은근하게 긁어내렸다. 박래현은 다른 손으로 내 무릎을 만지작거리면서 허벅지를 입술로 깊게 빨아들였다. 내 눈은 손가락 네 개를 꽉 문 채 오물거리는 주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밑은 쾌락을 좇아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원초적인 반응에 뺨뿐만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달아올랐다.

박래현은 혓바닥으로 허벅지를 쓸며 구부렸던 손가락을 펴 더 깊은 곳을 찔렀다. 내벽이 꿈틀거리며 안을 더듬는 손가락을 조여 갔다. 엄지를 뺀 나머지 손가락이 끝까지 들어와 비좁아지는 둔덕을 문질렀을 때 안에서 점액질이 주르륵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다. 젖어서 움직임이 한결 수월해진 손가락이 구멍 안을 빠르게 들락거렸다.

“으, 으읏! 하, 하아….”

가운 자락에 가려진 성기에서도 액이 새어 나와 가운이 척척해졌다.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넣고 서혜부를 이로 깨물던 박래현이 얼굴을 들었다.

“우리 준영이, 벌써 앞뒤로 흘리네. 형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쉽게 젖어서 어떡할 거야.”

“으, 으읏, 거… 거기! 무, 문지르지 마아….”

“여기? 왜? 별이 아빠가 매우 좋아하는 곳인데?”

“너무 좋아서, 후, 참기 힘들어….”

박래현은 질척해진 손을 꺼내 내가 보는 앞에서 가운에 쓱쓱 닦았다. 무릎을 펴고 일어선 그는 침대 헤드에 베개와 쿠션을 쌓은 뒤에 내 몸을 들어 쿠션에 기대게 했다. 그는 나를 침대에 반듯하게 눕히는 대신 거울이 잘 보이게끔 대각선 방향으로 몸을 틀고는 등 뒤의 쿠션과 베개를 조절했다.

“섹스하면서 거울 보면 넷이 하는 것처럼 보이겠네.”

편하게 몸을 기댄 나는 가랑이 사이에서 자리 잡는 박래현을 지켜보았다. 매트리스에 납작 엎드려 구멍을 응시하던 박래현이 손으로 엉덩이를 잡아 주름을 양쪽으로 벌렸다. 가랑이 사이로 들어간 박래현이 잘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다리에 가려진 얼굴을 보려고 왼쪽 다리를 들어 박래현의 어깨에 내려놓았다. 스탠드 조명까지 합세해서 이제 박래현의 동작이 잘 보였다. 굵고 기다란 혓바닥이 내 엉덩이골과 회음을 오가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름 위를 오가는 미끈한 살덩이의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주름이 접힌 사이사이로 뜨겁고 끈끈한 혀가 문질러졌고 단단하게 힘준 혀끝이 어느 한 지점을 지독하게 눌러 대었다. 이미 손가락이 드나든 곳은 혀에게도 쉽게 길을 내 주었다.

입구를 할짝대던 짙붉은 혀가 덩어리째 구멍 안을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이 거울에 그대로 비쳤다. 구멍 입구가 순식간에 혀로 틀어 막히면서 박래현의 코끝이 음낭을 짓누르는 것도 보였다.

“아, 아흑! 흐, 흐으읏….”

저릿한 감각에 시각적 자극이 더해지자 쾌락이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몸을 점령했다. 나는 쾌감의 밀도를 조금 낮추어 보고자 엉덩이를 뒤틀어 혀를 피했다. 그러나 박래현이 두 손으로 구멍을 벌리고 있어서 기껏 움직인 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가 움직인 만큼 안으로 침입한 혀가 입구를 왕복하며 돌기들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 부분은 꽤 민감해서 혀끝에 눌리거나 비벼질 때면 오금이 저릿해지면서 아랫도리에 절로 힘이 갔다. 허벅지와 종아리, 심지어 발끝까지 작은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몸이 끓었다.

박래현은 구멍을 잡아 벌리면서 혀를 끝까지 밀어 넣고는 얼굴을 한 바퀴 크게 돌렸다. 보드랍지만 단단한 살덩이가 안을 파헤치자 어딘가가 툭 터진 것처럼 물이 흘러내렸다. 등허리에 축축해진 가운과 침대보가 감겨들었다.

“아, 아읏….”

나를 덮쳐 오는 감각에 어지러워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박래현은 혀만 이용해서 나를 절정으로 몰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준영아, 흐, 그만 좀 흘려…. 형 다 젖었어.”

“으, 으음… 그게 내 맘대로, 안 돼….”

나도 모르게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지 박래현의 양쪽 귀가 내 허벅지에 눌려 있었다. 박래현은 손으로 무릎을 잡아 허벅지 사이를 벌리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과 앞 머리칼이 진득한 액체에 젖어 있었다. 내 배에 얼굴을 대고 문지르면서 물기를 닦아 낸 박래현은 도로 아래로 기어 내려가 사타구니 사이에 얼굴을 처박았다. 하나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집요함이 섹스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준영아, 나 보지 말고 거울 봐. 너도 네 구멍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할 거 아냐.”

“안 궁금해! 어떻게 생겼는지, 하읏, 다 알아.”

“다 안다고? 주름 바로 바깥에 점 있는 거 알아, 몰라?”

박래현은 내 엉덩이를 거울 쪽으로 당기면서 엉덩이를 잡아 좌우로 크게 벌렸다. 정말로 점이 있는지 궁금해서 거울로 시선을 보냈다. 엉덩이가 갈라지면서 한가운데 작게 구멍이 뚫린 분홍색 섬이 보였다. 주름의 요철은 부드럽게 풀린 구멍을 중심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여기 점 보이지?”

박래현은 혀끝에 힘을 줘서 주름 옆의 한 부분을 쿡쿡 눌렀다. 그가 혀를 떼자 침에 젖어 더욱 색이 짙어진 주름 끝에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나만 알고 있으려다가 특별히 너한테도 알려 주는 거야.”

그 점이 보물이라도 되는 양 박래현은 혀를 넓게 펴서 그 부분을 할짝거렸다. 밑이 뜨거워지면서 기분이 황홀해졌다.

나는 팔을 뻗어 박래현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쌌다. 그가 예뻐서 그런 건데 얼른 넣어 달라는 몸짓으로 알아들었는지 혀가 구멍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마치 성기를 삽입하듯 얼굴 전체를 움직여 혀뿌리까지 집어넣었다. 당연하게 밑이 온통 박래현 입술에 뒤덮였다.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힘으로 속살을 벌리고 들어온 살덩이가 안이 끈적해지도록 돌기와 점막을 문질렀다.

밑이 그의 입으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에 박래현 어깨에 올려진 허벅지와 그의 머리칼을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안에서 다시 한번 울컥 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몸을 떨면서 가빠지는 숨을 다스렸다. 뒤로 빠져나온 혓바닥이 이번엔 각도를 바꿔 안으로 파고들었다. 돌기들을 두들기던 혀는 좁디좁은 구멍을 빠르게 드나들었다. 박래현의 코끝이 음낭과 기둥에 쿵쿵 부딪히며 아랫도리 전체를 울리게 했다.

“하, 하아! 형, 으. 으읏!”

가운 안으로 들어온 손이 천천히 옆구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는 손바닥 전체로 가슴을 압박하면서 바짝 솟은 유두를 엄지로 내리눌렀다. 그의 다른 손은 구멍 안으로 들어와 혀가 닿지 못한 성감대를 찾아서 그곳을 파헤치고 있었다. 애액으로 잔뜩 젖은 안에서 듣기에도 부끄러운 난잡한 소리가 났다. 나는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하체를 심하게 흔들었다.

“흐, 흐윽! 형, 그… 그만… 그만하고 얼른, 들어와….”

“자지 얼른 넣어 주라고 보채는 거야?”

“으, 으응….”

“후우, 넌 어떻게 된 게, 아까 노팅을 해 놓고도 이렇게 성욕이 강해.”

“하, 하아! 어, 얼른 박아 줘.”

절정 직전에 이르러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나는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얼른 박래현 성기가 내 안에 들어와 가장 깊은 곳을 쑤셔서 이 열기를 잠재워 주길 바랄 뿐이었다.

“성질도 급하긴. 준영아, 거울 보고 있어?”

여전히 구멍을 할짝거리고 있어서 그의 발음은 불분명했다. 감각의 파도 위를 넘실넘실 떠다니던 나는 대답 대신 감았던 눈을 떠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을 보았다. 언제 가운을 벗어 던졌는지 박래현은 전라가 되어 내 다리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내 시선은 박래현의 곧게 뻗은 등허리에서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로 내려갔다. 그의 허벅지 사이에는 무섭게 자라난 성기가 힘을 받아 위를 향하고 있었다. 좆 기둥에 어지럽게 얽힌 핏대가 어서 구멍 안으로 들어가 점막에 비벼지고 싶다는 듯 펄떡대었다. 그러나 박래현은 참는 데 귀재였다. 성기 끝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그는 끈질기게 구멍 안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나는 사정감을 참기 위해 있는 힘껏 발가락을 오므리며 호흡을 정리했다. 흥분한 몸에서 오렌지 향이 은은하게 번져 나왔다.

“으, 으읍, 형, 나 못 참겠어, 하윽!”

밑에서 고개를 든 박래현이 세운 무릎 사이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흘린 애액에 흥건하게 젖은 얼굴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그는 벗어 던진 가운을 집어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과 얼굴을 닦고는 양팔을 내 귓가로 내려 베개를 짚었다. 내게 체중이 실리지 않게끔 허리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육중한 성기가 사타구니를 눌렀다. 그에게서 내 페로몬 냄새가 났다.

나는 박래현의 얼굴에 취해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아쥐고서 얼굴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내려온 입술이 내 볼을 살짝 깨물고는 옆으로 움직여 입술 가장자리를 빨았다. 급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에 먼저 입을 갖다 대면서 입술을 벌렸다. 혀와 손이 동시에 들어왔다.

박래현은 혀로 내 혓바닥을 문지르면서 손끝으로는 내 혀를 들춰 말랑거리는 점막을 꾹 눌렀다. 두꺼운 점막이 강하게 눌리면서 별안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나는 그의 체중을 지탱하고 있는 팔을 움켜쥐었다. 감았던 눈을 떠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박래현을 응시했다.

“박래현, 사랑해.”

“뭐라고 했지? 잘 안 들려….”

“형 사랑한다고!”

“으음, 더 크게 말해 봐.”

“박래현! 사랑해!”

나는 감정이 고조되어 방이 울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했다. 소리 질러 놓고 보니 부끄러운 건 난데 박래현이 볼을 붉혔다.

“그 마음 절대 변하지 마.”

박래현은 내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게 가운을 젖혔다. 탄탄한 가슴 근육을 내려다보는 눈동자에 짙은 정염이 일렁거렸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박래현이 상체를 숙여 젖꼭지에 축축한 혀를 댔다. 젖은 살점이 젖꼭지의 작은 틈으로 파고든 순간 그 부근으로 자잘한 쾌락이 지나갔다. 문득 박래현 표정이 궁금해서 거울로 얼굴을 돌렸다. 팔뚝까지 내려가 흐트러진 가운 사이로 발딱 선 내 젖꼭지가 보였다. 샤워할 때면 늘 보는 몸이지만 박래현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 느낌이 이상했다.

“으, 으응, 혀엉….”

젖꼭지와 유륜은 윤기 흐르는 붉은색 혀 밑으로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면서 점점 단단해졌다. 박래현은 윤곽이 뚜렷한 옆모습을 내게 보인 채 쪽쪽 소리가 나게 가슴을 빨았다. 보드랍고 연한 살갗이 박래현 입 안으로 쏙 들어갔다. 흥분이 밀려와 가슴을 크게 들썩이자 그의 머리칼이 가슴 위에서 흩어졌다.

그는 다른 손으로 반대편 젖꼭지를 더듬으며 잘근잘근 씹힌 젖꼭지를 혀로 어루만졌다. 밑이 찌릿해서 아랫배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박래현은 손으로 구멍 안을 휘저으며 가슴팍에 얼굴을 푹 파묻고서 젖꼭지가 떨어져 나갈 기세로 빨아 댔다.

“으, 응….”

“이렇게 열심히 빠는데 왜 젖이 안 나오지? 우리 준영이 젖, 맛있었는데….”

상체를 일으킨 박래현이 두 손을 크게 벌려 가슴을 주물렀다. 그가 무릎으로 서 있어서 깊게 팬 복근과 배꼽 아래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핏대가 선명하게 보였다. 시퍼런 핏줄기는 무성한 음모를 지나서 굵다란 기둥을 타고 내려가 귀두의 붉은 살 바로 위까지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박래현의 성기를 쥐고서 살 기둥을 잡아 비틀었다. 물에서 튀어나온 물고기처럼 성기가 손안에서 팔딱거렸다.

“내 입에 자지 넣어 봐.”

나는 침대 시트를 손으로 말아 쥐며 박래현 앞에서 크게 입을 벌렸다.

“안 돼. 너 힘들어.”

“끝만 빨아 줄게. 나도 다는 못 넣어.”

박래현은 내 어깨 너머로 양팔을 뻗어 침대 헤드를 짚었다. 내게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는 성기 끝을 가만히 내 입술에 갖다 댔다. 박래현 몸에 사방이 가려져서 탄탄하게 근육 잡힌 아랫배와 윤기가 흐르는 털만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성기를 두 손으로 잡고서 그 끝을 입 안에 머금었다. 나를 만지면서 이미 흥분해 있던 성기 끝에서 비릿하고 짭짜름한 맛이 났다. 오랜만에 맛봐서인지 비위가 상했다.

내 변화를 눈치챈 박래현이 소량의 페로몬을 방출했다. 그의 살갗에서 뿜어져 나오는 치자꽃 향에 울렁거리던 속이 편해지면서 흥분이 고조되었다. 박래현에게 꼭 맞게 화려하고 유혹적인 향이 비처럼 쏟아졌다. 나는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다른 곳보다 짙은 향을 풍기는 성기 끝을 혓바닥으로 문질렀다.

허리를 움직이고 싶은데 참는 모양인지 박래현의 복부에 그물처럼 퍼진 핏줄이 더 선명한 색으로 불거졌다. 그를 즐겁게 해 주는 게 아니라 고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좆 끄트머리를 입에 물고서 입술을 한데 모아 귀두만 안으로 쑥 빨아들였다. 입에 잔뜩 힘을 준 채 매끈매끈한 표면을 혓바닥으로 긁어 주었더니 성기가 난폭하게 날뛰어 하마터면 손에서 놓칠 뻔했다.

“후우, 준영아….”

움직이지 못하게 박래현의 허리를 두 손으로 움켜쥔 나는 얼굴을 움직여 성기를 더 깊숙이 머금었다. 목구멍 끝까지 들어오고도 반이 남은 성기가 혓바닥과 입천장을 빈틈없이 채웠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좆 기둥을 빨면서 혀를 움직여 기둥에 돋아난 핏줄을 문댔다. 혈관이 툭툭 튀면서 입 속을 압박했다. 나는 느린 속도로 얼굴을 움직여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힘들게 참고 있던 박래현에게 한계가 찾아왔는지 그가 입 속에 성기를 박아 넣은 채 침대 헤드 쪽으로 나를 밀었다. 뒤통수가 헤드에 닿을 무렵 반쯤 남아 있던 기둥이 삼 분의 일로 줄었다.

박래현은 입에 넣은 성기를 슬쩍 돌리며 귀두로 목젖을 문질렀다. 구역질을 참으려고 그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박래현은 밀어 넣은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성기를 입에서 꺼내었다.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기둥에 붉은 기가 돌았다. 깨물지 않으려고 조심했으나 군데군데 잇자국이 남았다. 성기가 빠져나가고 헤벌어진 입술 사이로 질척해진 침이 흘러내렸다.

입술 주변을 느릿느릿 산책하던 성기가 다물어지지 않은 입술로 다시 들어왔다.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아 고정한 박래현이 이번엔 속도를 높여 목구멍 끝까지 성기를 삽입했다. 엄지로 볼을 쓰다듬으며 눈은 내게 고정한 채였다.

“힘 안 들어?”

나는 눈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눈앞에 조명을 받아 반질반질 빛나는 복근이 있었다. 박래현은 목구멍 안으로 성기를 쑤셔 넣어 보드라운 살을 몇 번이나 문질러 대다가 신음을 흘리며 성기를 꺼냈다. 이번엔 귀두 끝에서 끈적한 액이 흘러내려 내 얼굴을 적셨다. 박래현이 페로몬을 방출한 탓에 정액에 치자꽃 향과 비릿한 향이 섞여 있었다. 나는 혀를 내밀어 그가 흘린 정액을 길게 핥아 올렸다.

“윤준영, 평생 내 거만 빨아야 해.”

“으응….”

나는 액을 뚝뚝 흘리고 있는 성기를 입에 물었다. 박래현은 내 뺨을 붙잡고서 기둥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여전히 느릿하게, 더 깊게, 더 밑으로 성기를 욱여넣어 이번엔 거의 뿌리 끝까지 들어왔다. 나는 숨을 색색거리며 박래현의 좆을 열심히 빨았다. 목구멍을 꽉꽉 조이면서 혓바닥을 둥글게 말아 울퉁불퉁한 기둥에 꼭 붙여 눌렀다.

불거진 좆 끄트머리에서 끈적한 액이 새어 나왔다. 고통인지 쾌락인지 모를 감각에 몸이 떨리면서 땀이 났다. 이윽고 박래현이 뿜어내는 짙은 페로몬에 정신이 까마득해지면서 밑에서 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 하윽! 준영아… 흐읏!”

박래현은 깊이 박혀서 좆물을 울컥울컥 토해 내는 성기를 밖으로 뺐다. 걸쭉한 좆물이 혓바닥으로, 내 얼굴로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는 가슴을 들썩이며 내 얼굴에 좆 기둥을 마구 문질렀다. 사정을 하고도 성성한 기둥과 좆 끄트머리가 살갗이 푹 눌리도록 뺨에 문대졌다. 그는 만족스러울 때까지 내 얼굴에 정액을 펴 바르다가 고개를 숙여 입술에 키스했다.

“준영아, 힘들었지.”

“아니이, 힘 안 들었어….”

내 말을 증명하려고 다 쥐어지지 않는 두꺼운 기둥을 두 손으로 잡아서 성기를 입에 넣었다. 그를 올려다보면서 볼이 홀쭉해지도록 귀두를 빨고 혀로 요도 구멍을 파헤쳤다. 박래현은 한 손으로 내 머리칼을, 다른 손으로 내 뺨과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박래현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하며 나는 느릿느릿 고개를 움직여 성기를 빨았다.

구역질이 나지 않을 만큼 성기를 삼켰다가 우락부락한 핏줄을 터트릴 기세로 입술에 힘을 줘 얼굴을 뒤로 뺐다. 방금 전에 사정한 그의 성기는 여전히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네가 너무 꼴려서 또 쌀 거 같아.”

치자꽃 향기에 흥분한 나머지 침대보가 흥건하게 젖도록 아래서 물이 흘렀다. 오싹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리자 박래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한 손으로 내 턱을 잡아 얼굴을 고정하고는 입에서 성기를 꺼냈다. 더 빨아 주려고 입을 벌렸으나 박래현이 턱을 쥔 손에 힘을 줘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이 위에서 아래로 내 몸을 느리게 훑어갔다.

“으음… 도저히 못 참겠다.”

박래현은 내 밑에 엎드려서 주름을 할짝거렸다. 나는 허벅지를 활짝 벌려 박래현 어깨에 두 다리를 얹고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허벅지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갈색 정수리가 시야에 걸려들었다.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거울로 눈을 돌렸다. 박래현이 얼굴을 갸웃하게 기울이자 손가락 두 개에 걸려 길쭉하게 벌어진 구멍이 보였다. 어서 들어오라는 듯 벌름거리는 분홍색 주름 안에서 끈끈한 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본능에 충실한 내 몸을 본 순간 볼이 붉어졌다.

“으, 으응…!”

내 생각을 읽은 듯 박래현이 혀를 요란하게 놀렸다. 벌어진 구멍을 위아래로 할짝대던 혀가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나는 좁은 구멍 안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는 붉은 혀로 눈을 돌렸다. 그 안에서 새어 나온 물이 박래현의 얼굴로 흘러내리는 게 똑똑히 보였다.

“아, 아아… 흐, 흐읏!”

까슬까슬한 혀가 구멍 입구의 돌기들을 비벼 대자 신음이 나왔다. 안에 박혀 있던 혀를 쑤욱 꺼낸 박래현이 단단한 내 복근에 얼굴을 문질렀다. 끝도 없이 넓은 어깨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우뚝 솟은 죽지뼈가 거울에 비쳤다. 나는 시선을 조금 더 내려 곧게 뻗은 척추와 각이 제대로 선 장골을 눈에 담았다.

내 몸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가운을 벗긴 박래현이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뻗었다. 그대로 고개를 숙인 그가 혀를 내밀어 젖꼭지를 핥았다. 젖꼭지와 부근의 부드러운 살이 박래현의 입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갈퀴처럼 늘어진 곳에 저릿한 감각이 생겨났다. 뜨겁고 습한 숨결이 가슴으로 흩어졌다. 나는 내가 쏟은 물로 축축해진 머리칼을 움켜쥐며 엄지로 박래현의 관자놀이 부근을 쓸었다.

“으응….”

침대 위에는 시트러스 향과 치자꽃 향이 섞여서 강렬한 향기가 떠돌았다. 알파 페로몬에 취해 뼈가 나긋해지면서 몸이 활짝 열렸다. 박래현은 손을 내려 내 밑을 만져 보았다. 물을 질질 흘려서 젖을 대로 젖은 밑이 박래현의 손가락을 게걸스럽게 쪽쪽 빨아들였다. 박래현은 곧장 무릎을 잡아 벌리면서 입구에 성기 끄트머리를 갖다 댔다.

“형, 얼른 들어와…. 내가 각인할 수 있게, 흐윽, 가장 깊은 곳을, 쑤셔 박아 줘….”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밑이 활짝 열리면서 두껍고 길쭉한 성기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오랜 섹스를 통해 크기에 익숙해졌지만 성기가 처음에 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늘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기가 다 들어와 안을 채울 때까지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박래현은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안을 묵직하게 채워 주는 감각이 만족스러워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뼈까지 벌어졌던 몸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두툼하고 질긴 점막이 성기 기둥을 꽉 조였다. 박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시작부터 장난 아닌데?”

성기를 넣은 채 잠시 멈춰 선 박래현은 내 얼굴에 묻은 정액을 티슈로 닦아 주었다. 할 일을 마친 그는 뭉근하게 성기를 돌려 안을 문질렀다. 내벽이 성기로 꽉 차 있어서 작게 움직였는데도 안 전체가 뻐근해졌다.

“으응….”

찐득하게 붙어 있던 속살이 살 기둥의 핏대에 쓸리면서 내벽이 화끈거렸다. 그의 성기가 안으로 들어올 때도 아찔하지만 각도를 바꿔 가며 빠져나갈 때도 비슷한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감았던 눈을 뜨자 박래현이 기다렸다는 듯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성기를 밀어 넣었다. 내벽 점막이 성기 모양대로 벌어졌다가 오므라들며 기둥을 조였다. 차오르는 관능에 진저리치며 나는 발가락 끝에 힘을 주어 매트리스를 눌렀다. 짐승처럼 거칠게 달려드는 게 아니라 박래현은 삽입도, 움직임도 느리게 진행했다. 삽입된 성기는 구멍 안쪽을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낱낱이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불같이 휩쓸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감각들이 찾아왔다. 지금도 완벽하게 팽창한 성기가 좁아지는 둔덕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으, 으음… 형, 나 기분이 이상해….”

성기가 점막을 문지르며 들어오는 궤적을 따라 목화솜 같은 쾌락이 툭툭 불거졌다.

“어떻게 이상한데?”

“아, 아흐윽! 흐, 으읏….”

더디게 예열된 몸은 그만큼 뜨거워져서 좆 대가리가 아기집을 건드릴 무렵 내 몸은 터져 나갈 것처럼 열이 올랐다. 박래현 얼굴이 잠시 흐릿해져서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감았다. 한번 사정을 끝낸 박래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아랫도리를 움직였다. 쿵쿵 찧기보다는 한가하게 문지른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좆으로 비벼 대는 부분은 우리가 노팅할 때 열리는 부위라 살살 문질러도 지독한 쾌감이 몰려왔다.

“혀, 혀엉! 거, 거기 말고… 흐, 으읏…!”

빠르게 몰려 온 쾌감에 경련하며 두 손으로 박래현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쾅쾅 때렸다.

박래현은 팔굽혀 펴기 운동을 하듯 팔을 구부린 채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땀으로 범벅 된 내 얼굴을 혀로 핥았다. 따가운 혀가 눈두덩과 눈꼬리를 쓸고 지나가자 눈을 감았다.

“으음, 준영아….”

성기가 빽빽하게 들어찬 밑이 두근두근 맥동했다. 완전히 밀착한 상태라 박래현의 성기가 맥동하는 건지 내벽이 수축하는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저 숨이 차고 가슴이 뛰고 아래가 뜨거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형한테 다시 각인할 거지?”

부드러운 입술이 귓불을 깨물었다. 그 안에서 뜨거운 혀가 나와 귓구멍을 헤집고 들어와 내 세상을 먹먹하게 했다. 어느덧 나는 절정으로 이르는 오르막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 올라갔다. 박래현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고 그의 등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뭉툭한 귀두 끝이 아기집 입구에 성기게 빗금을 새겼고, 그 자리에서 얼룩진 쾌락이 돋아났다.

“하, 하읏, 형, 아, 아윽!”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죽지뼈를 잡은 손에 악력이 가해졌다. 나는 뼈를 부술 듯 틀어쥐고서 숨을 할딱거렸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내벽을 비벼 대던 성기가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나는 박래현 좆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발뒤꿈치로 그의 엉덩이를 힘껏 찍어 눌렀다. 조금만 더 쑤셔 주고 비벼 주면 박래현에게 각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필사적이었다.

“잠깐, 흐읏, 잠깐 힘 빼 봐, 준영아, 후으….”

“으, 으응, 왜… 이대로 더, 더 박아 줘!”

“하, 하아, 벌써 끝낼 순 없지. 준영이 네가, 흐, 내 위로 올라와….”

성기가 허무하게 빠져나갔다. 박래현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를 잡아 일으키고는 내 손을 잡은 채 자신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가랑이 한가운데 우람하게 서 있는 그의 분신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재촉하기 전에 엉금엉금 기어가 그의 장골 사이에 다리를 벌리고 무릎으로 섰다. 두 손으로 박래현의 어깨를 짚고서 엉덩이 입구를 귀두 끝에 맞췄다. 좆이 여러 번 들락거린 곳은 완전히 벌어져서 성기를 삼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성기가 끝까지 들어올 수 있게 허리를 움직이며 박래현 위로 천천히 주저앉았다.

“젖꼭지 내밀어 봐.”

나는 박래현 앞으로 가슴을 쭉 내밀었다. 한 손은 그대로 허리에 둔 채 다른 손으로 가슴을 감싸 쥔 박래현이 혀를 내밀어 젖꼭지를 건드렸다.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박래현의 뒤통수를 내 가슴 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박래현은 입술을 크게 벌려 젖꼭지 전체를 빨아 당겼다. 나는 갈색 머리칼에 입술을 묻고 부지런히 허리를 움직였다.

“하, 하아, 나는 좋은데… 형도 좋아?”

“나도 좋아….”

박래현은 두 손으로 내 허리와 배를 감싸고서 별안간 허리를 쳐올렸다. 성기에 꽂힌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박래현과 함께 아래로 내려왔다. 매트리스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쿵 소리가 났다. 그가 쿠션 역할을 해서 다친 덴 없지만 안이 징징 울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흥분감이 몰려와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서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아, 아흑! 흐, 으읍!”

나는 이제 사정하지 않고도 오르가슴에 이를 수 있었다. 미친 듯이 하체를 흔들면서 감각점에 성기를 비벼 대던 나는 절정에 도달해 숨을 멈췄다. 박래현은 결합을 깊게 하려고 하체를 높이 띄우면서 내가 넘어지지 않게 내 허리를 붙잡았다. 완전히 절정에 이른 나는 박래현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짚고서 진정될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만 사정하고 끝낼 수 없어서 페로몬을 풀어 박래현에게 압박을 가했다. 몇 번 문지르고 허리를 돌렸더니 도로 안이 뜨거워졌다. 흥분감이 고조되자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귀두 끝이 주름에 걸릴 때까지 몸을 들어 올렸다가 풀썩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움직였다.

내 동작에 맞춰 박래현이 민감한 곳을 찍어 올렸다. 거의 오르가슴에 이를 무렵 나는 엉덩이를 쑥 들어 올려 성기를 꺼냈다. 박래현의 정액과 내가 흘린 액으로 엉망이 된 성기가 불끈거렸다.

나는 박래현에게서 내려와 등이 보이게끔 누워 다리 사이를 활짝 벌렸다. 노팅해 달라는 뜻이었다. 박래현은 내 오른쪽 허벅지 사이에 팔을 넣어 다리를 들어 올리고는 커다란 손으로 내 배와 옆구리를 감쌌다. 그는 벌어진 구멍 끝에 성기를 맞추면서 팔베개해 준 팔을 접어 가슴을 만졌다.

그는 내게 몸을 밀착시키면서 성기를 느리게 박아 넣었다. 힘에 밀려 위로 올라가려는 몸을 박래현이 붙들었다. 아기집 근처까지 쉽게 들어온 성기가 점막을 비비면서 빠져나갔다. 그가 다시 성기를 삽입하자 몸이 흔들리면서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붙었다가 턱 밑으로 떨어졌다. 숨이 차서 키스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눈을 들었다. 바로 눈앞에 거울이 보였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거울 속 박래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윤준영, 안이 완전히 젖었어. 흐,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거 봐.”

“힘들어, 이제 그만 사정해….”

“그래. 나도 이제 더 못 참겠다.”

팔로 내 배를 휘어 감은 박래현이 상체를 숙여 젖꼭지를 빨면서 능수능란하게 내벽을 파고들었다. 나는 팔을 뻗어 흘러내린 그의 머리칼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가 거울에 비쳤다. 나를 옭아맨 박래현의 긴 팔이 보였고 한 몸처럼 내 다리에 얽혀 있는 그의 다리가 보였다.

“하, 하앗, 준영아….”

짙은 페로몬 향과 더불어 귓가에 흥분에 찬 젖은 숨소리가 들렸다. 뜨겁고 축축한 열기가 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안을 휘젓는 육중한 움직임에 나는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성기에 눌리고 비벼지는 곳에서 짙은 쾌락이 펑펑 터져 나와 버티기 힘들었다.

박래현은 내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아기집 입구를 귀두 끝으로 꾹 내리눌렀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는 그가 허리를 짓쳐 올린 순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흥건하게 젖은 안으로 미지근한 좆물이 쏟아졌다.

박래현은 내가 밀리지 않게끔 나를 꽉 붙잡고서 성기를 끝까지 박아 넣었다. 성기가 아기집 입구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번식하는 짐승처럼 박래현의 성기가 자라나고 굵어져 내벽과 아기집 안에 완전히 박혀 들었다. 약간의 고통을 수반한 미칠 것 같은 쾌감에 울부짖으며 박래현 팔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쾌락의 파도에 떠밀려 나 혼자 어딘가로 둥둥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하, 하읏! 흐, 흐읍!”

“준영아, 흐, 으읏, 너 괜찮아?”

오늘만 해서 두 번째 노팅이었다. 웬만한 오메가 체력으로는 도저히 버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체력에 자신 있는 나조차도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박래현은 내 안에 좆물을 쏟아부으면서 페로몬을 방출했다. 향기가 짙어서 흰색의 치자꽃들이 내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박래현은 내게서 절대 빠져나가지 않겠다는 듯 내 귓가와 뺨에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절정에서 허우적대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돌아볼 힘조차 남지 않아서 거울로 박래현을 보았다. 원래 땀이 없는 사람인데 오늘은 두 번이나 정상치를 초과하는 페로몬을 쏟아 낸 탓에 박래현의 이마에도 땀이 맺혀 있었다.

그의 목덜미와 나를 안고 있는 팔뚝에 핏대가 솟은 걸 보고 나는 그가 온 힘을 기울여 페로몬을 분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등에 맞붙은 심장도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박래현은 나보다 더 절박하게 내 각인을 원하고 있었다.

“피곤할 테니 먼저 자. 노팅 끝나면 내가 씻겨 줄게.”

거칠게 오르내리던 가슴팍이 점차 평온을 되찾으면서 박래현의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나를 안고 있는 박래현의 팔뚝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와 다르게 박래현은 여전히 내게 각인한 상태일까. 5년이 지나 각인이 풀렸다면 그는 루이스 사 부대표의 페로몬 향을 맡았을 것이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인내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 나는 우회해서 질문을 던졌다.

“근데 형, 그 루이스 사와 임상 시험 제휴는 언제 끝나?”

“장기 프로젝트여서 내년까진 계속할 거야. 왜?”

“뭐? 내년까지?”

나는 고개를 돌려 박래현을 올려다보았다. 박래현은 호기심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우리 준영이 표정이 왜 이래? 설마 오늘 만족 못 한 거야?”

“루이스 사 부대표가 형한테 집적거린다며. 엄청 미인이던데….”

“후, 김정우 이 자식을 그냥….”

박래현은 말을 멈추고 이마에 내려앉은 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그의 손아귀에 가득 잡혔다. 나를 보는 그의 눈에 웃음이 어렸다.

“윤준영, 혹시 질투해?”

“그럼 질투가 안 나게 생겼어? 형은 그 사람 페로몬 맡아 봤어? 그 사람이 페로몬으로 유혹했을 거 아냐.”

“너한테 각인했는데 딴 오메가 페로몬을 어떻게 맡아.”

박래현은 뭐 그런 쓸데없는 걸 묻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내게 각인하고 5년이 지난 건 박래현도 마찬가지인데 나만 각인이 풀려서 부끄러웠다.

“…근데 형은 왜 각인이 안 풀리지? 이상해.”

“내가 각인이 풀리길 바라는 말투다? 왜, 그랬으면 좋겠어?”

박래현이 내 어깨를 아프게 깨물었다. 나는 박래현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런 결과는 상상하기 싫었다.

“그건 아닌데 신기해서 그러지.”

“내 인생에서 오메가는 너 하나야. 각인 풀릴 일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확신에 찬 대답에 나는 걱정을 내려놓았다. 박래현은 절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혼자만 각인이 풀려 미안하지만 그래도 박래현이 내게만 묶여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래현 형, 나만 각인이 풀려서 미안해.”

“괜찮아. 다시 각인하면 되니까.”

“응….”

박래현은 목등뼈에 입술을 대고 손으로 가만히 가슴과 배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놀림에 몸이 노곤해지면서 슬슬 졸음이 찾아왔다.

“나 형한테 다시 각인한 거 같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 느낌이 그래. 아까 차에서 노팅할 때 느낌이 왔어.”

“…내가 죽을 힘을 다해 페로몬을 쏟아부었는데 당연히 각인해야지.”

얇은 면 이불을 끌어와 내 몸을 덮어 준 박래현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나를 만지는 다정한 손길과 내 뒤에서 들리는 규칙적인 숨소리가 좋아서 나는 박래현에게 바짝 몸을 기댔다. 박래현이 가만히 내 머리칼에 얼굴을 묻었다.

***

“준영아, 일어나. 갈 데가 있어.”

“으, 으응… 애들이랑 씨앗은 다 심었어?”

“응, 씨앗 심고 사진도 찍었어. 그만 자고 일어나.”

“포클레인 잘 작동해?”

“서경인 성질이 급해서 삽으로 막 팠어.”

“고생했어. 나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날게….”

점심을 먹기 전에 몇 시간에 걸쳐 섹스를 끝낸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늘어지게 낮잠을 자며 쌓인 피로를 푸는 중이었다. 그래서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는 박래현에게 짜증이 났다.

“안 돼. 지금 일어나야 해.”

“지금 몇 신데….”

“네 시 이십 분이야.”

“형, 제발 조금만 더 자게 해줘, 응? 딱 30분만 자고 일어나서 해.”

“쉿! 조용히 해. 애들 간식 먹이고 재웠으니까,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빠져나가자.”

박래현은 늘어진 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내게 속옷과 반바지를 입혔다. 바지 단추를 잠근 그가 내 상체를 일으켜 세워 머리부터 티를 뒤집어씌우고 소매에서 팔을 꺼냈다. 잠이 덜 가신 눈을 깜박거리며 나는 박래현을 응시했다. 그는 한 벌로 된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왜애… 어디 운동 갈 거야?”

“아니, 내일까지 호텔에서 지낼 거야. 여사님들과 정 차장님 부부한테는 말해 놨으니까 애들 걱정은 안 해도 돼.”

갑자기 잠이 달아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커다란 보스턴 백이 보였다. 나는 저 안에 박래현과 내 옷가지가 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씨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냥 집에서 해도 되잖아.”

“안 돼. 각인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야. 애들이 방해하면 곤란해.”

연속해서 세 번이나 노팅한 걸로 부족해 박래현은 호텔로 옮겨서 섹스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그의 비이성적 판단에 장단을 맞춰 주고 싶지 않아서 호텔로 가는 척 방을 나갔다가 쌍둥이들 방으로 튈 계획을 세웠다.

두 아이가 놀아 달라고 엉겨 붙으면 박래현은 마음이 약해져서 자기 새끼들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 발을 내린 순간 내가 세운 계획의 실패를 직감했다.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어서 나는 침대 위로 무너지고 말았다.

“형, 그러지 말고 나 각인했는지 시험해 봐. 각인 안 됐으면 호텔로 갈게.”

알파는 각인한 오메가의 페로몬은 맡을 수 없으니 박래현이 이 방으로 알파를 불러서 내 페로몬을 맡게 해 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준영아, 너랑 있고 싶어서 그래. 우리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오붓하게 둘만 있자, 응?”

나와 의견이 엇갈릴 때 박래현은 주로 내 의사를 따랐지만 각인과 관련해서는 그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박래현 못지않게 나도 간절히 원하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각인이 안 되면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았어도 첫 번째 각인은 쉽게 이뤄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간절히 원하는 두 번째 각인은 쉽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나는 박래현에게 안아달라고 두 팔을 뻗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멘 박래현이 나를 안고 집을 나섰다.

호텔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채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박래현과 온종일 섹스만 했다. 잘 먹어야 힘이 난다면서 그는 하루 세끼를 다 챙겼고 그걸로 부족해 틈만 나면 룸 서비스를 시켜서 지친 나를 먹였다. 박래현은 이틀간 그의 페로몬에 나를 푹 담갔다가 건져냈다. 그에 감응해 나도 끊임없이 페로몬을 방출했다. 우린 서로의 페로몬에 취해 정신이 없었고 나는 마음과 몸을 활짝 열어 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박래현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깊게 노팅한 순간 그에게 다시 각인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내 영혼과 몸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박래현에게 쑥 빨려 들어갔다. 그 찰나에 이 사람이 없으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경험이 없어서 첫 번째 각인은 나도 모르는 새에 물처럼 새겨졌지만 서로의 노력으로 이뤄진 두 번째 각인은 색이 달랐다. 본능이 아니라 박래현과 내 의지로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충실하다면 각인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거였다. 박래현은 내가 그에게 각인한 찰나 심장이 쪼개질 듯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그 순간이 너무 황홀하고 강렬해서 누군가를 불러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일상의 평온을 되찾은 듯했으나 그에게 다시 각인하려고 석 달을 무리한 나머지 나는 몸져누웠다.

쌍둥이들과 연차를 낸 박래현이 나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했다. 나는 끼니마다 이 차장이 만들어준 보양식과 박래현이 지어 온 공진단을 먹어야 했다. 박래현의 정액과 페로몬에 전 몸은 화요일 오후부터 슬슬 회복돼서 수요일 오후에 거의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나는 박래현 무릎을 베고 누워 핸드폰으로 한가하게 뉴스를 검색했다. 박래현은 아이들과 식물 일지에 오늘 사진을 붙이고 있었다.

“압빠, 콩 나무는 다 하늘까지 자라요? 나도 나무 타고 올라 갈내요!”

“올라가서 뭐 할 건데?”

“꼭대기에서 거인 만나고 시퍼요!”

서현이는 눈을 반짝이며 박래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동화 속에 나오는 콩 나무처럼 콩이 거대하게 자라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콩 나무가 얼마나 클지 아빠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둘이서 잘 키우면 강낭콩은 아주 많이 열릴 거야. 그러니까 잘 돌봐.”

“네.”

“이제 준영 아빠 진찰할 시간이야. 이거 너희 방에다 갖다 두고 구급상자 가져와.”

아이들에게 일지를 건넨 박래현이 한라봉을 집어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향긋한 과일 냄새가 방에 은은하게 퍼졌다. 일지를 방에다 갖다 둔 아이들은 구급상자를 챙겨서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별이도 그러더니 쌍둥이들도 의사 놀이를 참 좋아했다. 최근엔 농부 놀이에 재미를 붙인 듯하지만 내 눈엔 그들이 의사 놀이를 할 때 가장 즐거워 보였다.

“형, 근데 정승효 팀장님이랑 많이 친했어? 그분 MR들 사적인 자리에서 안 만나기로 유명한 분이거든.”

“빨리도 물어본다.”

“그게 누구 때문인데? 그동안 각인 때문에 정신 없었잖아.”

“압빠, 이거, 이거!”

나는 서경이가 체온을 재기 쉽게 아이 쪽으로 귀를 내밀었다. 체온계가 귓구멍으로 쏙 들어왔다.

“같은 연구 동아리 선배였어. 되게 열심히 사는 선배였는데 선배가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우연히 전해 듣고 내가 도움을 좀 줬지.”

“언젠 그냥 선후배 사이라며.”

“그냥 선후배 사이 맞아.”

“형네 대학 약대면 과외로도 돈 많이 벌었을 거 같은데….”

“선배도 과외 했지. 그런데 집으로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았나 봐.”

박래현은 한라봉의 속껍질을 까서 알맹이만 내 입에 쏙 넣어 주었다. 나는 달콤한 과즙을 톡톡 터트리며 아이들에게도 한라봉을 먹이는 박래현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에겐 무관심할 것 같은 박래현이 타인에게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혹시 정 팀장님한테 마음 있어서 도와준 거야?”

“아니. 나한테 돈이 있어서 도와줬어.”

“아! 형한테 진작 부탁해 볼 걸 그랬네. 난 형이 과에서 겉돌았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금껏 말도 안 꺼냈어.”

“너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대견해서 안 나서고 지켜보고 있었어.”

박래현이 그때 힘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과거에 좋은 일을 해서 지금 내게 닥친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내 체온을 잰 서경이가 박래현에게 체온계를 내밀었다.

“36.8도. 이 환자분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서경이와 박래현은 100m 밖에서 봐도 영락없는 부자지간이었다. 마치 커다란 박래현을 작게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박래현 유전자가 서경이에게만 간 건 아니었다. 공평하게 외모는 서경이에게, 머리는 서현이에게 배분되었다. 서경이와 비교하면 시선을 덜 끌지만 서현이도 인물이 훤했다. 나와 박래현을 반씩 섞어 놓은 서현인 누가 봐도 멋진 미남으로 자랄 생김새였다.

“압빠, 가마니 누어 이써요.”

이번엔 서현이 차례였다. 청진기 귀꽂이를 귀에 꽂은 서현이는 옷 속으로 청진판을 넣었다.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그는 내 옆구리와 배꼽 부근을 꾹꾹 눌렀다. 정작 아픈 덴 배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박래현과 2박 3일동안 이성을 잃고 몸을 섞은 탓에 밑과 내벽이 아직도 쓰리고 아팠다.

“압빠, 여기 아파요?”

“아니.”

“그럼 여긴?”

청진판이 갈비뼈 부근으로 올라갔다. 의사에게 할 일을 주고 싶어서 거기가 아프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서현이가 내 옷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는 갑자기 와앙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발딱 일어나 서현이를 달랬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놀란 모양이었다.

“서현아, 많이 아픈 건 아냐. 쪼금, 아주 쪼오금 아파.”

“압빠, 여기… 흐윽! 여기 다쳤쪄요.”

박래현이 세게 빨아서 생긴 흔적들을 작은 손가락이 하나씩 짚어 나갔다. 박래현은 울고 있는 서현이 입에 한라봉 알맹이를 넣어 주었다. 서현인 훌쩍훌쩍 울면서도 과일이 맛있는지 입을 오물거렸다. 내게 처방할 알약을 준비하고 있던 서경이가 자기도 달라고 입을 벌리며 박래현에게 다가갔다. 박래현은 한라봉 알맹이를 집어 서경이 입에 넣어 준 다음 내게도 한라봉을 내밀었다.

“의사 선생님, 우리가 준영 환자 약 발라 줄까? 약 바르면 금방 나아.”

물티슈로 서경이와 서현이 손을 깨끗이 닦은 박래현이 그들의 검지에 연고를 조금씩 짜 주었다. 그는 자기 손에도 연고를 짜서 자기가 만든 흔적에 약을 발랐다. 아이들이 아빠를 따라서 상처에 연고를 발랐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여러 곳에 골고루 연고가 발라졌다. 박래현이 참으로 여러 곳을 물어 뜯어놨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 손을 꼼꼼하게 닦은 박래현이 우리에게 남은 과일을 먹였다.

“압빠, 이데 안 아파요?”

“응, 서현이랑 서경이가 약 발라 줘서 다 벌써 다 나았어.”

서경이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가짜 알약과 빈 컵을 건넸다. 나는 가짜 알약을 먹고 물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박래현이 애들과 매일 이렇게 논다고 생각하니 그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압빠, 저놔 와써요.”

서현이가 소파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내게 건넸다. 우리 팀 팀장과 팀원들이 단체로 내게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준영 님, 몸은 좀 어때요? 준영 님이 없는 지원 3팀은 암흑입니다. 얼른 나아요!」

「준영 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어요. 아픈 덴 역시 먹는 게 최곱니다^^」

「참, 3분기 신입 MR 워크숍 장소와 강사 섭외는 다 됐을까요? 아직 안 됐으면 제게 명단 넘겨요. 제가 컨택해볼게요.」

내가 일일이 답장을 보내는 사이에 지점장과 선우진에게도 문자가 왔다. 나는 답장을 다 보내고 선우진이 보낸 문자를 열어 보았다.

「준영 씨, 많이 아프다면서요? 정승효 팀장님과 내일 점심 약속 있잖아요. 합석 가능할까요?」

「네. 내일 점심 같이 먹어요. 점심은 제가 쏘겠습니다^^」

나는 선우진에게 답장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회사에 해야 할 일이 쌓였는데 한가하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박래현에게 각인도 했으니 슬슬 일을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형, 나 각인도 했고 몸도 괜찮아졌으니까 내일부터 출근할래.”

“너 아직 몸 회복 안 됐어. 이번 주는 쉬어. 내가 회사에 얘기 다 해 놨으니까.”

“나 회사 나가 봐야 해. 내가 맡은 일이 있는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쉬어? 지금 컨디션 완벽해.”

박래현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읽다가 둔 연구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의사 놀이에 질린 아이들은 어느새 차 두 대를 끌고 와서 방 안을 시끄럽게 돌아다녔다. 이제 운전하는 데 요령이 생겨서 화분이나 다른 장애물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둘이라서 손이 네 배로 가기도 하지만 조금 컸다고 자기들끼리 잘 놀아서 편할 때도 있었다.

“형, 지금 내 말 씹어?”

바닥으로 내려간 나는 박래현의 무릎을 벌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서와 박래현 사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보고서를 무릎에 내려놓고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박래현이 손등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회복됐으면 어디 증명해 봐.”

“뭐, 뭘? 설마 또 하자는 소리야?”

“섹스하자고 유혹하는 거 아냐? 너 지금 내 자지 빨아 주는 자세잖아.”

박래현이 그의 허벅지 사이에 낀 내 허리를 은근히 조여 왔다. 나는 박래현의 허리를 두 팔로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했다간 구멍 헐겠어. 좀 나으면 해.”

“널 회사에 보내려면 네가 괜찮아졌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해.”

박래현의 독재에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각인이 풀려서 미안한 마음에 며칠 납작 엎드려 지냈더니 횡포가 극에 달했다.

“네가 나보다 턱걸이를 많이 하면 내일부터 회사 보내 줄게.”

“그야 당연히 형이 더 잘하겠지. 형은 풀업 전문가잖아.”

“나는 서경이랑 서현이 매달고 할게. 서른도 안 된 남자가 이 정도 조건인데도 나를 못 이기면 회사 쉬고 체력을 길러야지.”

박래현이 둘이 합해 30kg이 넘는 아이들을 매달고 풀업 운동을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섰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데다가 지더라도 내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이기면 회사에 나가는 거고 지면 박래현을 살살 꼬드기면 되는 거였다.

“도전 받아들일게. 내가 이기면 내일 바로 출근할 거야.”

“물론이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뭐가 더 있어?”

박래현 입가에 불길해 보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더니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다.

“이긴 사람한테 일요일 자정까지 주인님이라고 불러 주기.”

“형은, 형이 질 거란 생각은 전혀 안 들어?”

“지면 내가 너한테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되지.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박래현에게 주인님 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졌다. 별안간 꼭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다. 박래현은 핸드폰을 꺼내 타이머를 5분에 맞췄다.

“5분 동안 턱걸이를 더 많이 한 사람이 이기는 거야. 괜찮지?”

“오케이. 나 먼저 할게.”

나는 소파 뒤에 놓인 철봉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장갑을 끼었다. 서경이와 서현이가 자동차를 몰고 내게 달려와 다리에 매달렸다.

“서경아, 이게 뭘까?”

“쿡…끼!”

“이리 와. 쿠키 줄게.”

박래현이 동물 모양의 쿠키를 집어 흔들자 서경이가 방향을 틀어 박래현에게 차를 몰고 갔다. 서현이도 질세라 냉큼 차에서 내려 박래현에게 달려갔다. 박래현은 동시에 도착한 아이들 손에 쿠키를 하나씩 쥐여 주고는 두 아이를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애들아, 준영 아빠가 턱걸이 몇 개나 하는지 세보자.”

두 아이를 무릎에 앉힌 박래현이 타이머를 누르며 시작을 외쳤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몸을 들어 올렸다. 틈틈이 철봉을 이용해 어깨와 등 근육을 강화했기 때문에 풀업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를 바꿔 가며 가볍게 운동하는 것과 시간을 정해 최대치를 끌어내는 건 다른 문제였다. 풀업 동작이 54개를 넘어서자 숨이 가빠지면서 온몸에 땀이 났다. 한계에 이른 나는 철봉에서 내려와 잠시 숨을 골랐다. 서경이와 서현인 쿠키를 오물거리며 숨을 헐떡이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압빠, 힘드러요? 땀 나.”

“응? 아니 힘 안 들어. 형, 지금, 몇 분이나 지났어?”

“형이 아니라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 같은데? 지금 3분 10초 지나고 있어.”

박래현의 말에 자극받아서 나는 철봉 손잡이를 잡고 턱걸이를 이어 갔다. 열 개를 더 했더니 손잡이를 잡은 팔뚝이 부르르 떨렸다. 혼자 해도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을 달고 하면 박래현이 아무리 힘이 좋아도 몇 개 못 하고 나가떨어질 것이다. 박래현에게 주인님이란 말을 들을 생각에 설레 나는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턱걸이를 했다.

“여기서 스톱. 5분에 81개.”

5분이 아니라 다섯 시간을 뛴 사람처럼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소파로 돌아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따금 한계를 시험해 보는 용도로 써야지 매일 이렇게 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박래현이 건넨 물티슈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힘들어? 얼굴이 빨개졌네.”

“전혀 힘 안 들어. 근데 형은 애들 달고 50개는 할 수 있겠어?”

“글쎄. 해 봐야 알겠는데?”

박래현은 쌍둥이 방에 가서 아이들을 앞뒤로 업을 수 있는 쌍둥이 아기 띠를 가져왔다. 그는 노련한 손길로 아기띠를 조립해서 더 가벼운 서경이는 앞으로 안고 서현이는 등에 업었다. 아이들은 매우 편안한 자세로 박래현에게 안겼다.

“우리 쌍둥이들, 아빠가 우주선 태워 줄게. 오늘은 태양에서 네 번째로 멀리 떨어진 행성, 화성으로 떠나 볼까?”

“하성 조아요!”

아기 띠 밖으로 나온 팔다리를 흔들며 아이들이 기쁨을 표시했다. 애들이 떨어지지 않게 훅을 채운 박래현이 장갑을 끼고 철봉 앞에 섰다. 서현인 두 팔로 박래현 목을 끌어안았고 서경인 편안한 자세로 박래현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저들의 자연스러운 자세에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 출발합니다. 우주선 꼭 잡으세요.”

“네~”

손목을 흔들어 워밍업을 마친 박래현이 철봉 손잡이를 잡고 풀업을 시작했다. 아이를 앞뒤로 안고 있는데도 바를 오르내리는 그의 자세는 퍽 안정적이었다. 팔뚝에 달라붙은 셔츠 위로 팽팽하게 솟아오른 근육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나는 뒤늦게야 타이머를 눌렀다. 박래현이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아이들은 놀이 기구를 탄 것처럼 좋아서 웃음을 터트렸다.

“압빠, 더 빨니 해요. 더 빨니! 언는 하성 가요!”

박래현 귀를 꽉 쥔 서현이가 귀를 앞뒤로 잡아당기며 그를 재촉하자 서경이가 팔을 뻗어 서현이의 손등을 야무지게 때렸다. 아빠를 괴롭히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서현이는 서경이를 때리는 대신 박래현 귀에서 손을 떼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형아가 나 때려써요. 아빠, 나 아파!”

형한테 맞아 억울한 서현이가 울먹였다. 서현이는 덩치만 컸지 성격은 매우 순했다.

“서현아, 형이 장난한 거야. 울지 마. 화성 탐사 끝나고 우리 닭고기 먹을까?”

닭고기란 말에 서현이 얼굴이 환해졌다. 서현이에게만 닭고기를 준다고 생각했는지 서경이가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쭉 내밀어 박래현을 올려다보았다.

“압바, 나도….”

“그래, 서경이도 닭고기 줄게. 그런데 다음부턴 동생 때리면 안 돼. 그러지 말라고 말로 해야지.”

서경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도 말로 하고 싶은데 아직 서현이 만큼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할 것이다. 박래현은 두 아이를 어르고 달래면서 5분 동안 자세 한 번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101개의 턱걸이를 했다.

턱걸이를 끝낸 그는 그래도 힘이 남아돌아서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아이들과 놀아 주었다. 박래현의 열정적인 모습에 같은 아빠로서 존경심이 솟아 올랐다.

박래현은 매일 애들과 놀아 주기 때문에 아이들을 매달고 턱걸이를 해도 힘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애들 방에 데려다주고 올게.”

닭 먹으러 가자는 말에 두 아이는 신이 나서 박래현 목을 끌어 안고 그의 뺨과 귀에 뽀뽀를 했다. 박래현 입가가 크게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내가 바닥에 흩어진 청진기와 체온계를 구급 상자에 넣어 정리하는 사이에 박래현은 쌍둥이를 여사님들에게 맡기고 방으로 돌아와 내 옆에 앉았다.

“네가 졌으니까 이제 주인님이라고 불러 봐.”

“불공평하단 생각 안 들어?”

“당연히 불공평하지. 나는 애를 둘이나 업고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박래현은 땀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박래현이 자랑스러워 흐물흐물해진 몸을 일으켜 박래현 품에 나를 던졌다. 내 등으로 팔을 두른 박래현이 머리칼에 입술을 비볐다.

“주인님,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멍멍아.”

나를 소파로 밀어뜨린 박래현이 내 위에 올라타 뺨에 입을 맞췄다. 하반신에 실리는 육중한 무게를 느끼며 나는 고개를 돌려 박래현 입술에 내 입술을 문질렀다. 그의 혀가 벌려 준 입 안으로 들어와 혓바닥을 맞붙이려는 찰나에 핸드폰 알람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별이 데리러 갈 시간이네.”

어영부영 놀다 보니 벌써 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평소에는 박래현이 퇴근길에 별이를 데리고 오는데 오늘은 집에서 데리러 가야 했다. 여사님들에게 그 일을 맡길 수도 있지만 별이가 격렬하게 싫어했다. 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기도 부모님이 저를 데리러 와야 한다고 야무지게 주장했다.

“다녀와서 하던 거 마저 해. 얼른 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어.”

“같이 가.”

“안 피곤해? 혼자 갔다 올게.”

“주인님이 어딜 가든 따라갈 거야. 그게 내 일이잖아.”

박래현은 크게 웃으며 키를 챙겨서 일어섰다. 얇은 점퍼를 챙겨 입은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 태풍이 온다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박래현은 나를 먼저 차에 태우고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올라왔다. 내가 안전벨트 맨 것을 확인한 그가 안전벨트를 매고 차를 출발시켰다.

유치원은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차를 유치원 주차장에 댄 박래현이 내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다섯 시 반에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줄을 지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별이 반 아이 네 명도 손을 꼭 잡고 담당 선생님 옆에 서 있었다. 별이 반은 남자아이가 둘, 여자아이가 둘이었다.

저 둘 중에 남이연이란 아이를 찾으려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아이 둘을 살폈다. 그중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꽤 잘생긴 아이는 제쳐 두고 나머지 아이를 관찰했다. 나머지 아이도 피부가 좋고 귀엽게 생겨서 못생겼다는 범주에는 들지 않았다.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서윤이 오늘은 어땠습니까?”

“우리 서윤이 야무진 애라 걱정 없죠. 오늘 하루도 잘 보냈습니다.”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박래현은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리는 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서윤아, 잘 가아. 내가 주머니에 사탕 넣어 놨어. 진짜 맛있는 사탕이야. 꼭 너만 먹어.”

내가 남이연이 아닐 거라고 제쳐 둔 아이가 자기 아빠를 뒤로하고 별이를 따라왔다. 별이를 가운데 두고 벌써 치열한 삼각관계가 전개되는 모양새였다. 저 아이는 예쁘게 생겼으므로 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네가 준 사탕 안 먹어. 편지도 보내지 마!”

별이는 주머니를 뒤져서 사탕을 꺼내 남자아이에게 건넸다. 남자아이가 울먹이면서 받지 않자 사탕을 잔디 위에 툭 던져 버렸다. 크게 울음을 터트리는 남자아이가 불쌍해서 나는 사탕을 주워 남자아이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서윤이는 아직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대. 결혼 생각도 없고. 네가 서윤이 의견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네.”

아이는 울면서도 내 말에 정중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빤히 지켜보던 아이의 아빠가 다가와 아이를 안아 올렸다.

“서윤이가 너 싫다는데 그만 괴롭혀. 서윤이 아버님, 죄송합니다. 이연이가 잘 알아듣게 다시 한번 교육하겠습니다.”

“아, 네….”

나는 저 잘생긴 아이가 남이연이란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별이가 못생겼다고 하길래 나는 정말 못생긴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준영아, 가자.”

우리는 별이 담임에게 인사하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박래현이 뒷좌석 카시트에 별이를 앉히고 벨트를 매주는 사이에 별이는 오늘 배웠던 것들을 열심히 조잘댔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있다가 박래현이 조수석에 올라타자 차를 출발시켰다. 오늘 일과를 보고하던 별이는 카시트에 머리를 대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다.

“형, 이연이 아빠랑 언제 통화했어?”

남이연 아빠가 아이를 다시 교육하겠다던 말이 떠올랐다. 별이가 금요일에 남이연 얘길 꺼냈으므로 그사이에 박래현이 그 남자와 통화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금요일에 별이 말 듣고 당장 걔 아빠랑 통화했지. 우리 아이가 싫어하니까 아이 잘 설득해서 앞으로 편지나 선물 같은 거 보내지 말아 달라고.”

“…걔 아빠랑 잘 아는 사이야?”

“아니. 애들이 같은 반이라 기다리면서 통성명만 했어.”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힐끗 박래현을 돌아보았다. 그는 긴 다리를 포개고서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별이가 이연이를 왜 싫어하는 줄 알아?”

“못생겨서 싫다던데?”

“내 눈엔 이연이 엄청 잘생겨 보이던데. 별이가 눈이 너무 높은 거 같아.”

박래현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던 나는 박래현의 눈부신 미모가 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중에라도 과연 별이 눈에 들 만한 사람이 있을지 때 이른 걱정에 잠겨 들었다.

“신호 바뀌었는데 뭐 해, 어서 출발해.”

박래현과 별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 금방 도착했다. 먹구름 때문에 사위가 어두워서 벌써 저녁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차에서 내리려는 박래현의 팔을 급하게 붙잡았다. 박래현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형, 나 내일부터 출근할 거야.”

“그렇게 해.”

“웬일이야? 반대할 줄 알았는데….”

“턱걸이 81개 하는 거 보니까 확실히 다 나았어.”

“형, 고마워. 나 열심히 일해서 우리 제품 수림병원에 꼭 랜딩시킬게. 아니, 전국의 병원에 다 랜딩시킬 거야.”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윤 대표님이라고 부를 날이 머지않았네.”

“아냐, 아직 한참 멀었어.”

“넌 이미 내 마음 속에선 대표야. 윤 대표님, 사랑해.”

나는 기다란 속눈썹에 반쯤 가려진 눈을 응시하며 내 뺨을 감싸고 있는 손에 입술을 묻었다. 이내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나는 팔을 뻗어 박래현의 목에 손목을 교차한 채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근데 나 형한테 각인 안 하면 정말 회사 안 보낼 생각이었어?”

“아니.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을 어떻게 막아. 대신 퇴근 후가 고달팠겠지.”

“안 고달파. 형이랑 섹스할 때가 제일 좋은 걸?”

“나도 그래.”

박래현은 내 입술에 슬쩍 입을 맞추고는 차에서 내려 깊게 잠들어 있는 별이를 품에 안았다. 별이 가방을 챙겨 든 나는 박래현과 나란히 서서 검은색 돌로 만든 징검다리를 걸어갔다.

각인이 풀렸을 때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당황하고 낙담했다. 그땐 경황이 없어 깊이 생각 못 했지만 각인이 깨진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한 사람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면서 쌓인 오만과 나태를 주의하라는 경고이자 노력으로 관계를 더 단단하게 구축하라는 메시지였다.

박래현과 나는 처음 각인한 순간부터 서로에게 운명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물고기들이다. 유혹과 불확실, 위험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단단한 비늘은 부단한 노력으로 담금질한 사랑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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