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를 임신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임신 9개월이 되었다. 나는 8개월째 되면서부터 임신 우울증에 시달렸다. 박래현과 온 식구들이 내 기분을 살피면서 잘해 주는데도 부어서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몸과 이유 모를 불안감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활동적이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사람이라 임신 우울증 같은 건 나와 거리가 먼 얘긴 줄 알았다. 평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호르몬 작용 때문인지 기분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7개월 후반까진 참을 만했는데 애들이 자라면서 쌍둥이를 배에 담고 다니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이따금 왜 임신한다고 설쳐 댔을까 후회했다가 쌍둥이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서 더 우울해졌다. 박래현은 내 불만과 원망을 전부 받아 내면서 열심히 비위를 맞춰 주었다.
“형, 오늘 몇 시에 데리러 올 거야?”
- 준영아, 그러잖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오늘 스위스에서 온 바이어를 만나야 해서 병원 같이 못 갈 거 같아. 오늘은 이진주 씨랑 다녀와야겠어.
“…병원을 이진주 씨랑 가라고? 이진주 씨가 우리 애들 아빠야? 왜 이진주 씨랑 가?”
- 미안해. 센터장이 부친 상을 당해서 오늘 못 나왔어. 중요한 고객이라 내가 대접해야 해.
“형, 이번 주 내내 늦은 거 알아? 나 혼자 임신했어? 형이랑 합의해서 임신했는데 형은 자기 할 일만 하지?”
- 미안해. 일 끝나면 바로 들어갈게.
“마음대로 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나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쿠션에 휙 잡아 던졌다. 옆에서 블록으로 기차를 만들고 있던 별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아빠, 화나써?”
“아니, 별이한테 화난 거 아니야. 기차는 다 만들었어?”
그나마 별이라는 브레이크가 있어서 우울함에 취해 가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나는 쿠션에 등을 기댄 채 두 다리를 쭉 폈다. 베이지색 러그 위에는 블록 조각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별이는 기차 맨 앞 칸에 기관장을 앉힌 다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잘했다는 의미로 크게 손뼉을 쳐 줬다.
“이데 소방타 만들 꺼야.”
“소방차? 별이 소방차도 만들 수 있겠어?”
“응….”
사용 설명서를 보며 별이와 나는 필요한 피스와 사운드 블록, LED와 바퀴 등을 골랐다. 별이는 간추린 조각들로 소방차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나는 쿠션을 베고 바닥에 누워 별이가 소방차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10분 정도 지나서 박래현에게 문자가 왔다.
「준영아, 아직 화 안 풀렸어? 미안해, 병원 가는 거 내일로 미뤄 놓을게.」
박래현은 내가 마음에 걸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중요한 만남이라 박래현이 나와의 약속을 깼다는 걸 알면서도 섭섭한 일이 겹쳐서 화가 났다. 나는 그가 보낸 문자를 다시 읽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JS제약을 지 실장에게 맡기고 지난달 말에 바이언스 연구 센터로 들어간 박래현은 대표와 합심하여 조직을 정비하고 개편하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교통정리를 끝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박래현이 바쁜 이유를 잘 알면서도 그가 조금 소홀하게 대하자 금세 서운해졌다. 정 차장 부부나 조 여사가 아무리 잘해 줘도 박래현의 빈자리는 메울 수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계속 화를 내는 건 너무 치졸한 행동이었다.
「나 화 다 풀렸어. 이진주 씨랑 병원 갔다 올 테니까 형은 일 잘 보고 들어와.」
나는 성의껏 답장을 보냈다. 박래현이 없다고 내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거나 온종일 별이를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마냥 어리광을 부리긴 싫었다.
「집에 들어갈 때 체리 사 갈까?」
「응. 체리 먹고 싶어.」
「알았어.」
나는 문자를 다 보내고 소방차를 만드는 별이를 지켜봤다. 작은 손을 이용해서 사용 설명서대로 소방차를 만드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는 완성된 소방차에 사운드 블록과 둥근 LED를 꽂고 나서 조심스럽게 소방차를 들었다. 바퀴가 굴러가지 않게끔 내가 바퀴를 잡아 주자 별이는 그 위에 조립된 소방차를 얹었다.
바퀴는 무선에 의해 조종이 되는 거라 별이는 RC 리모컨으로 소방차를 움직였다. 시끄러운 사이렌과 LED에서 번쩍이는 불이 정말로 소방차 같았다. 별이는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려고 차를 조종해 거실로 나갔다.
교구들을 바구니에 넣어 정리한 나는 이진주에게 점심 먹고 병원에 다녀오자는 말을 하고는 침실로 들어왔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집 구조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쌍둥이 방도 필요하고 입주 유모를 한 명 더 들여야 해서 우리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1층에 부부 침실과 별이 방, 쌍둥이 방, 유모 둘의 방이 있고 2층엔 경호원들 방과 서재, 운동실, 영화관이 있었다. 그리고 정우가 이따금 자고 가서 손님방도 마련했다.
정 차장 가족은 예전처럼 별채에 따로 거주했다. 식구들이 늘면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세탁하는 사람들도 더 고용했는데 그들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벽에 설치된 거울을 보았다.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박래현은 내가 편하게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게 침대 옆에 독특한 틀을 가진 거울을 설치했다. 저게 있어 봤자 얼마나 편할까 싶었는데 좋은 점이 많았다. 내 상태를 수시로 체크할 수 있는 장점 외에도 잠을 잘 때 박래현과 같은 방향을 보며 잠들기 때문에 그를 보려면 몸을 돌려야 했는데 몸을 돌리지 않아도 박래현을 볼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거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발이 퉁퉁 부어 있었고 만삭의 배가 유독 커 보였다. 얼굴도 약간 부어 있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아이들이 발차기를 해서 솟아오른 배가 요동했다.
나는 뭉친 아랫배를 문지르면서 몸을 뒤척였다. 아이들을 낳을 때가 가까워지자 두려움이 자라났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까. 수술하고 나서 많이 아팠는데 이번엔 쌍둥이라 더 아프진 않을까. 아이를 낳고 나서 내 몸이 다시 탄탄한 근육질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에 골머리를 앓던 나는 걱정을 잊고자 리모컨을 찾아 음악을 틀었다. 태교에 좋다는 경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울적한 기분을 털어 버리려고 분철한 전공 책을 펼쳐 들었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지만 기왕이면 이론이라도 잘 파악한 뒤에 회사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부터 10년은 차근차근 일을 배우는 기간으로 잡았다. 내가 경영에 자질이 있다면 10년 후에 중책을 맡을 것이고 경영에 자질이 없다면 내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으면 될 것이다.
굳은 각오로 책을 보는데 하품이 나오면서 글씨가 가물가물해졌다. 나는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예약한 시간에 맞춰 이진주와 집에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핸드폰을 켜서 박래현의 위치를 추적했다. 그는 지금 호텔에 있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미팅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해 볼까 하다가 방해될 것 같아서 관뒀다.
오늘은 진료가 많았는지 박은수는 조금 지친 얼굴에 웃음을 띠고서 나를 맞이했다. 그는 진료실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게 했다. 준비가 된 나는 박은수의 도움을 받아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래현이한테 바빠서 못 온다는 연락은 받았어요. 요즘 특별히 불편한 데 있어요?”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뭐든 힘들어요. 손발도 자주 붓고….”
“어디 보자… 지난번에 검사 다 해서 오늘은 초음파만 하면 돼요.”
“네.”
박은수는 배에 젤을 바른 다음 초음파 기계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가만히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쌍둥이들은 주 수를 못 채운다거나 몸무게가 미달이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알죠?”
“네….”
“애들이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준영 씨가 힘든 거예요. 애들이 심장도 튼튼하고 아주 건강해요.”
나는 불평불만이 많았던 지난 시간을 후회했다. 내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난다면 그게 더 좋았다.
“다행히 36주 무사히 넘겼으니까 래현이랑 상의해서 수술 날짜 잡아요. 기왕이면 진통 오기 전에 수술하는 게 좋겠죠?”
“애들 몸무게는 어떻게 돼요?”
“음… 한 애는 2.8kg, 한 애는 3.4kg 정도 되겠네요. 쌍둥이치곤 아주 건강하고 큰 편이에요.”
박은수는 아이들 신장도 재 주었다. 지난번보다 두 아이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발길질의 강도가 다르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준영 씨, 여기 봐요. 애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요.”
나는 박은수가 찍고 있는 입체 초음파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쌍둥이 둘이 마주 보고서 서로를 말똥말똥 보고 있었다. 아기집이 따로 있어 서로 안 보일 텐데 입을 벙긋거리는 게 둘이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고였다.
“태어나기 전부터 우애가 아주 좋은데요?”
박래현이 봤다면 나보다 더 좋아할 텐데 나만 봐서 서운했다.
“선생님, 이 영상 저한테 보내 주실 수 있어요? 형 보여 주고 싶어요.”
“그럼요. 내가 준영 씨 핸드폰으로 보내 줄게요. 별다른 이상은 없네요. 래현이랑 날 잡아서 나한테 연락해요. 수술은 내가 집도할 테니까.”
기계를 내려놓은 박은수는 내가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는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까지 보고 바깥 진료실로 나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박은수와 마주 앉았다.
“핸드폰으로 영상 보냈으니까 래현이한테도 보여 주세요.”
“네, 저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요. 애들 충분히 컸으니까 미루지 말고 일주일 안에 날짜 잡아요.”
나는 박은수에게 인사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진주와 엘리베이터로 갔다. 6월이라지만 몸이 무거워서 날이 유난히 덥게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때 한 무더기의 부부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진주를 따라 뒤뚱뒤뚱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쳤다. 이래서 백번을 잘해도 결정적일 때 한 번을 못하면 못한 것만 기억에 남는 듯했다.
나는 이진주의 부축을 받아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박래현 이름 석 자에 눌렀던 설움이 폭발했다.
- 준영아, 진료는 끝났어?
“어….”
- 목소리가 왜 그래? 지금 울어?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잇새로 겨우 대답했더니 눈치 빠른 박래현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아니, 안 울어.”
- 너랑 애들은 다 건강하대?
“어….”
- 나 지금 호텔에 있는데 병원에서 가까우니까 호텔로 올래? 객실에서 쉬고 있다가 일 끝나면 밥 먹고 집에 같이 가자.
“그래도 돼?”
- 당연하지. 호텔 로비 도착하면 전화해.
“알았어.”
속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박래현 얼굴을 봐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아서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는 내게 문자로 호텔 이름을 전송했다.
“이진주 씨, 홀리데이 호텔로 가 주세요.”
“네.”
나는 호텔로 가는 동안 박은수가 보내 준 영상을 확인했다. 내 배 속에서 예쁜 아이들 둘이 아웅다웅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좁아터진 곳에서 복작거리지 않아도 이제 곧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널따란 방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호텔에 도착한 나는 정우에게 전화를 걸어 로비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런데 회의를 빨리 마무리 지었는지 정우가 아니라 박래현이 다가와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준영아, 병원 혼자 보내서 미안해.”
“어? 회의 벌써 끝났어? 아니면 키 주려고 직접 내려온 거야?”
“회의 마무리 지었어, 식사 대접은 오 박사와 김 비서가 하기로 했고.”
“나 괜찮아. 객실에서 기다릴 테니까 형 일 다 끝내고 와.”
“정말 다 끝났어. 너 배고플 테니까 여기 뷔페에서 저녁 먹고 가자.”
박래현과 나는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 후문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밥 먹는 내내 박래현에게 전화가 와서 수술 얘길 할 수 없었다. 바이어를 접대한다는 오 박사에게서 온 전화인 듯했다. 내가 짜증을 내지 않았다면 박래현은 지금쯤 그들과 식사하면서 사업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형, 아까 짜증 내서 미안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감정 조절이 잘 안 돼.”
“이 더운 날 애를 둘이나 담고 있으니 당연히 힘들고 짜증 나지. 참지 말고 네 성질대로 해. 난 괜찮으니까.”
“…이해해 줘서 고마워. 참! 오늘 쌍둥이들 영상 보여 줄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오늘 찍은 영상을 보여 주었다. 박래현은 영상을 계속 재생하면서 신기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둘이 합해서 6kg이 넘는대. 내가 너무 잘 먹었나 봐.”
“뭐, 6kg? 이번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기로 했는데….”
“우리 키 생각해 봐, 그게 되겠나. 그리고 수술할 날짜 잡으래. 이번 주 안으로 잡으라던데?”
“뒤로 미룰 필요 있어? 내일 오후로 수술 잡자. 오전에 계약 끝나고 오후에 바로 수술 들어가면 되겠네.”
수술 얘기가 오가자 더럭 겁이 났다. 남자 오메가들은 자연 분만하기가 어려운 구조라 별이 때도 수술을 했었다. 하고 나서 사흘 정도 고생했는데 이번엔 둘을 꺼내야 하니 수술이 더 길고 어려울 것이다.
“형, 다음 주에 하면 안 될까?”
“6kg이면 네 몸에 부담 가서 안 돼. 계속 담고 있으면 네가 너무 힘들어.”
“그래도….”
“무서워서 그래? 별이 때도 잘했잖아. 은수 누나 믿고 걱정하지 마.”
“알았어. 그러면 내일 수술해.”
박래현은 박은수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서 수술 시간을 잡았다. 수술은 내일 오후 세 시로 정해졌다. 이제 정말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 애들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해.”
“그러게. 수술 들어가기 전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봐.”
“내일 수술 들어가는데 먹어도 돼?”
“오후 수술이니까 자정부터 금식하면 된대. 그 전에 너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그럼 치킨 시켜 줘. 치킨 먹고 싶어.”
박래현은 내가 좋아하는 치킨 가게에 전화를 걸어 종류별로 치킨을 주문했다. 수술하면 이틀 정도 금식해야 하므로 그전에 배불리 먹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한텐 아직 안 알리는 게 좋겠지?”
“응, 수술 끝나고 나 정신 들면 그때 알리는 게 좋을 거 같아. 수술 들어간다고 하면 우리 엄마, 걱정하시느라 잠도 못 주무실 거야.”
집에 도착해서 나는 곧장 침실로 들어갔고 박래현은 사람들에게 내 소식과 수술 일정을 알리겠다며 주방으로 갔다. 오늘 많이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서 침대에 눕고 싶었으나 씻는 게 먼저여서 소파에 앉아 박래현을 기다렸다. 혼자 씻었다가는 박래현이 난리를 피울 게 뻔했다. 10분 정도 지나 졸음이 쏟아져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 내 앞에 박래현이 나타났다. 그는 타이를 풀어 넥타이핀과 함께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욕조에 물 받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잠을 깨기 위해 나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바이언스 제약 연구 센터 비서실 김정우입니다.
“정우야, 나야.”
- 어? 준영아. 잠깐만….
전화기 너머로 정우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레스토랑을 나왔는지 조용하게 흐르던 음악이 멎었다.
- 무슨 일 있어? 나 밖으로 나왔으니까 말해.
“너 지금 어디야?”
- 박사님이랑 바이어들 접대하고 있어. 저녁 대접했으니까 이제 들어갈 거야.
“나 내일 오후에 수술 들어간다? 그렇게 알고 있어.”
- 내일? 1년 진짜 금방 지나간다. 이제 곧 쌍둥이 조카들 볼 수 있겠네?
“응, 애들 둘이 합해서 6kg이 넘는대. 둘 다 인큐베이터 안 들어가도 된다더라.”
- 6kg? 너 정말 대단하다. 존경스러워.
박래현이 드레스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를 얼른 씻겨야겠다는 마음이 앞서서 그는 자기 옷을 벗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야, 나 지금 씻으러 가야 해. 내일 통화해.”
“그래. 내일 병원으로 찾아갈게. 오늘 밤에 좋은 꿈 꿔라.”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능숙하게 옷을 벗긴 박래현이 나를 가볍게 안아 들고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박래현 허리에 자연스럽게 팔을 둘렀다. 거품이 풍성하게 이는 욕조에서는 달짝지근한 멜론 냄새가 났다. 박래현은 나를 조심스레 물에 내려놓고는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형은 옷 안 벗어?”
“닭도 안 먹고 너 자 버릴까 봐 마음이 급해서…. 옷은 너 씻기고 벗어도 돼.”
크림처럼 농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몸을 감쌌다. 욕조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는 두 다리를 쭉 펴고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우리 애들 이름은 생각해 봤어? 형 이름은 네가 짓고 동생 이름은 내가 짓기로 했잖아.”
“선생님이 둘 가운데 누굴 먼저 꺼내실까?”
“글쎄… 너라면 누굴 먼저 꺼내겠어?”
“몸무게 덜 나가는 애를 먼저 꺼내 달라고 해야겠어.”
“왜?”
“둘이 동갑이라 잘 싸울 거 아냐. 몸무게 덜 나가는 애가 밀릴지 몰라. 걜 형으로 해 놔야지 균형이 맞을 거 같아.”
박래현은 내가 휴식을 취하도록 약간의 시간을 준 다음 부드러운 해면으로 내 손을 닦기 시작했다. 손톱부터 시작해서 손등과 팔뚝을 꼼꼼하게 문질렀다. 나는 졸린 눈을 깜박이며 박래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상체를 숙이고 있어서 단정하게 뒤로 넘긴 머리칼이 이마로 흘러내렸다. 아찔하게 솟은 콧대를 지나 갓 피어난 꽃잎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입술로 시선이 흘러갔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도드라진 목울대와 드레스 셔츠 어깨선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넓은 어깨를 응시했다.
“형, 나 졸려. 빨리해.”
“알았어, 거의 다 해 가. 그런데 너 치킨을 두고 잠이 와?”
양팔을 다 닦은 박래현은 내 왼쪽 발과 종아리를 씻기는 데 열중했다. 걷어붙인 소매 위쪽은 물에 젖어 살이 내비쳤고 군데군데 거품이 묻은 소매 아래쪽 팔뚝에는 힘줄이 돋아 있었다. 내 시선은 물에 젖어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지나 관능적인 손으로 향했다. 손이 커서 그가 쥐고 있는 해면이 아이들 장난감보다 더 작아 보였다.
클래식한 드레스 셔츠에 정장 바지를 갖춰 입은 그는 욕실에서 나를 씻기는 게 아니라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넘기는 게 더 어울려 보였다. 팔을 뻗어 그의 조끼를 틀어쥔 나는 손에 힘을 주면서 그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가랑이 사이를 씻기느라 상체를 숙이고 있어서 그는 힘없이 욕조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내게 몸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박래현은 재빨리 욕조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내 늑골 근처에서 찰랑거리던 물이 가슴까지 올라왔다.
“너 다치면 어떡하려고 이런 장난을 해?”
짐짓 엄한 목소리로 나를 구박하는 박래현의 머리칼과 얼굴에 흰 거품이 튀었다. 나는 그가 가까이 들어올 수 있게 가랑이 사이를 활짝 벌려 주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박래현이 가만히 내 뺨을 감싸고서 내게 눈을 맞췄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말캉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나 자극해서 내가 힘들어하면 재밌어?”
“응….”
낮게 한숨을 내쉰 박래현이 해면으로 가슴과 배를 문질렀다. 처음엔 여유 있게 움직이던 손이 점점 속도를 빨리했다. 그는 일사천리로 내 얼굴과 머리칼까지 다 씻기고 샤워기로 거품을 헹궜다. 얼른 나를 내보낼 작정인 듯했다. 박래현은 샤워 부스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한 번 더 씻긴 다음 준비한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쉬고 있어. 금방 나갈 테니까.”
나는 원피스로 된 잠옷을 입고 침실로 갔다. 별이가 침대 한가운데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별이 책 읽고 있어?”
“응.”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별이 쪽을 향해 누웠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별이는 작은 손으로 내 배를 어루만졌다.
“동생들 움직여?”
“아니? 디금 코 자.”
오늘 좀 돌아다녔더니 두 녀석도 피곤했는지 웬일로 잠잠했다. 나는 별이를 품에 안고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둘째가 생기면 첫째들이 질투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별이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별아, 내일 동생들 태어날 거야.”
“내일 내 동생들 나와? 보고 시퍼.”
“동생들 예뻐해 줄 거야?”
“내가 책도 일거주고 우유도 둘 거야.”
파자마를 걸친 박래현이 다가와 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별이가 박래현 볼에 살갑게 뽀뽀를 해 주었다.
“별이 오늘 하루 뭐 하고 보냈어?”
“기차 만들고, 피아노 티고, 그림 그려써.”
“어디 별이가 그린 그림 보러 갈까?”
“응! 아빠, 나 성도 만들고 시퍼.”
“그러면 아빠 주무시라고 성은 별이 방에 가서 만들자. 준영 아빠한테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해.”
별이에게 인사를 시킨 박래현은 내가 쉴 수 있게 별이를 안고 방을 나갔다. 혼자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가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면 별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애틋해져서 별이 옆에 조금이라도 더 있어 주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침대 아래로 두 발을 내린 나는 침대를 짚고 일어서서 별이 방으로 건너갔다. 러그 위에서 별이와 성을 만들던 박래현이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일어났다.
“피곤하다면서 왜 왔어?”
“애들 낳으면 병원에서 실컷 잘 텐데 뭐. 얼른 성 만들어, 난 구경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
박래현은 바닥에 두툼한 이불을 깔고 내가 누울 수 있도록 몸을 부축했다. 머리 아래에 베개를 대 준 그가 내 이마에 입 맞추고는 별이와 성 쌓기를 이어 갔다. 네모와 세모, 마름모 모양의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며 거대한 성이 되는 걸 보면서 저 성이 우리 가족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박래현과 별이, 그리고 배에 든 쌍둥이들의 다른 면면들이 서로 맞춰지면서 우린 하나의 성이 되어 갈 것이다.
“별아, 풍차 날개는 어디다 달까?”
“요기에 달래.”
“아빠가 보기에도 거기가 좋은 거 같아.”
“내가 달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서 나는 별이가 풍차 날개 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러나 깊은 잠은 이루지 못할 때라 갑자기 몸이 떠오르는 느낌에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박래현이 나를 안아서 침실로 옮기는 중이었다.
“별이는 자?”
“응. 양치하고 재웠어. 너 안 깨우려고 조심했는데 깨워 버렸네.”
“화장실 가야 해서 일어날 참이었어.”
거의 두세 시간마다 한 번씩 화장실을 다녀야 해서 나는 밤에도 깊게 잠들지 못했다.
“치킨 먹을래? 갖다줄게.”
“과식하면 안 되니까 다섯 조각만 가져와.”
박래현은 나를 화장실 앞에 내려 두고 치킨을 가지러 갔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막 욕실에서 나오는데 아랫배에 미세한 통증이 지나갔다. 피곤하면 뭉친 곳이 땅기고 아플 때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침대까지 걸어가서 박래현 도움으로 침대에 올라간 나는 등에 쿠션을 대고 헤드에 기대앉았다. 박래현은 침대 옆에 마련해 둔 내 전용 책상 겸 테이블을 옆으로 올린 다음 그 위에 종류별로 골라온 치킨을 내려놓았다.
“형도 먹어.”
“난 조금 전에 별이 먹이면서 좀 먹었어. 너 많이 먹어.”
나는 포크로 순살 치킨 하나를 찍어 입에 넣었다. 달고 짭짜름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며 만족감을 주었다. 박래현은 옆으로 올라와 원피스를 걷어 올리고 손에 오일을 묻혀 배를 문질렀다.
박은수 선생은 쌍둥이를 임신하면 살이 틀 확률이 높다면서 박래현에게 매일 마사지를 해 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5개월째에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박래현은 거의 매일 오일과 크림으로 배와 허벅지를 마사지했다. 오일을 묻힌 매끄러운 손이 옆구리를 살살 간질이자 그쪽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까 욕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강렬한 통증이었다. 나는 포크로 치킨을 찍어 먹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으, 응….”
“왜 그래? 내가 너무 세게 눌렀어?”
“아니… 배가 좀 땅겨서. 괜찮아, 계속해.”
복부 마사지를 끝낸 박래현은 배와 허벅지에 크림을 발랐다. 그는 밑으로 자리를 옮겨 종아리와 복사뼈, 발등과 발가락도 오일로 꼼꼼하게 마사지했다.
“이제 팔하고 손만 하면 되겠다.”
열이 올라서 뜨거워진 손이 팔뚝과 팔꿈치를 주물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정성스러운 마사지 덕분에 매끈해진 피부에서 광택이 났다. 박래현은 오일과 크림을 정리한 뒤 옆으로 와서 내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형, 피곤하지. 얼른 자.”
“너 자는 거 보고 잠들 거야. 먼저 자.”
“…있지, 나 애들 한 달만 모유 먹일까? 초유가 애들한테 좋다잖아.”
“9개월 동안 네 배에 담고 다니면서 키워 준 거로 충분해. 너 힘 안 들게 애들은 바로 분유 먹일 거야. 분유 먹고 자란 애들도 다 건강하게 잘만 커. 모유 먹이면 자세 틀어지고 밤에 잠도 못 자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으니 너만 생고생이야.”
“…알았어. 어쨌든 형한텐 안 줄 거야.”
박래현은 잠옷 앞 단추를 풀고 옷깃을 옆으로 젖혀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젖꼭지 부근으로 가려운 감각이 퍼졌으나 성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박래현 머리칼에 입술을 문지르며 그를 품에 안았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젖꼭지를 빨던 박래현은 피곤했는지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일이 걱정돼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제왕 절개가 어려운 수술은 아니므로 나쁜 일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배를 가르는 수술이다 보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걱정 속에 깜박 잠들었다가 아랫배를 관통하는 아픔에 눈을 떴다. 박래현은 내 등에 얼굴을 댄 채 잠들어 있었다. 참아 보려 했으나 식은땀이 나면서 계속 진통이 왔다. 그제야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형, 래현 형….”
나는 손을 뒤로 뻗어 박래현의 몸을 흔들었다. 박래현이 무의식중에 팔을 뻗어 내 배를 쓰다듬었다.
“형, 나 배 아파. 혀엉….”
배를 쓰다듬던 손이 움직임을 멈춤과 동시에 박래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나를 마주 보며 식은땀이 흐르는 내 안색을 살폈다.
“준영아, 왜 그래? 배 많이 아파?”
“으, 으응… 애들 나오려나 봐…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얼른 병원에 가야지. 잠깐만 이대로 있어.”
박래현은 전화기를 찾아 박은수에게 전화를 걸며 드레스 룸으로 사라졌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의 박래현이 옷을 챙겨 와 내게 입혔다. 준비를 마친 그가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들어 올렸다. 그 사이에 오승현에게도 연락했는지 오승현이 문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영아, 많이 아파?”
“아니, 이제 좀 괜찮아졌어….”
박래현은 나를 차에 태우고 돌아서 내 옆자리로 올라왔다. 우리가 타자마자 오승현이 차를 출발시켰다. 10분 정도 지나서 도로 통증이 찾아왔다. 이번엔 배 전체가 아프면서 눈앞이 아찔해졌다. 신음을 삼키며 박래현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누나한테 바로 수술 잡으라고 했어. 스태프들 모여야 해서 수술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대.”
“후, 하아, 지금 몇 신데….”
“새벽 세 시 조금 안 됐어.”
“좀 참았다가 아침에 수술해도 돼. 사람들 다 퇴근해서 잘 시간인데….”
“윤준영 아직 덜 아프네, 남 사정도 신경 써 주는 거 보니.”
“으, 으윽….”
박래현이 배를 열심히 문질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별이 때는 예약한 날짜에 수술해서 진통 없이 아이를 낳았는데 쌍둥이들은 변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형, 어지러워… 차 조금만 천천히 달리라고 해….”
어제 조금씩 진통이 왔을 때 병원을 찾아야 했다. 피곤해서 배가 땅기는 줄 알고 내버려 뒀더니 안 해도 될 고생을 자초했다. 박래현은 초조한 손길로 손수건을 꺼내 내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병원 입구에 준비된 침대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이 침대를 밀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배 안의 장기가 완전히 뜯겨 나갈 듯한 통증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박래현과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
“항생제 테스트할게요.”
주사를 놓는지 팔뚝 어딘가가 따끔했다. 통증이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박래현이 내 손을 꼭 쥐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 너 입원할 병실이야.”
“형, 나 언제 수술해? 차라리 얼른 하고 싶어….”
“항생제 테스트했고 결과 나오면 바로 수술 들어간대. 옷부터 갈아입자.”
나를 안아서 몸을 일으킨 박래현이 내 옷을 벗긴 다음 내게 수술복을 입혔다. 잠시 후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박은수가 들어왔다.
“준영 씨, 몸은 좀 어때요?”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 그녀가 내 상태를 살폈다.
“죄송해요, 새벽에 불러내서.”
“애들이 세상 구경 빨리하고 싶다는데 응해 줘야죠. 아홉 시에 뭐 먹었다고 했죠? 한 시간 정도만 꾹 참고 있어요.”
“네.”
괜히 통닭을 먹었다고 후회했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박래현, 얼굴 좀 펴. 좋은 날에 왜 이렇게 울상이야?”
박은수는 박래현의 어깨를 툭 치고 병실을 나갔다. 박래현은 부드러운 면 소재의 수건을 가져와 내 얼굴과 목덜미에 난 땀을 닦아 주었다. 걱정이 가득한 박래현 얼굴을 보자 슬픈 감정이 솟구쳤다.
만일 수술받다가 잘못돼 내가 죽기라도 하면 박래현은 나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그러다가 상대가 죽으면 아무리 튼튼한 각인도 풀린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애 낳다가 죽는 것도 원통한데 박래현이 다른 오메가에게 각인해 내 아이들과 알콩달콩 살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억울한 내 영혼은 안식을 찾지 못해 구천을 떠돌 것이다.
별이까지 합해 총 19개월간 애들을 배에 담고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우울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랫배가 찢어질 것처럼 첨예한 고통이 밀려왔다.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현기증이 났다.
“아, 아악! 하, 하아….”
“준영아, 이제 20분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아 봐.”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몸을 웅크리려고 했다. 그러나 배가 많이 나와서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독한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나고 세상이 노랗게 변했다. 엄마는 이 진저리 나는 고통을 참고서 우리를 자연 분만으로 낳았다고 했다. 내가 엄마에게 이런 고통을 주면서 세상에 태어났다니, 앞으로 엄마에게 더 효도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난 박래현이 물수건을 만들어 와서 열이 오르는 몸을 닦았다. 몸이 아파서 박래현의 다정한 손길마저 짜증이 났다. 나는 몰디브에서 봤던 고래 등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하고서 고통에 찌들어 있는데 박래현은 멀끔한 모습으로 내 땀이나 닦아 주고 있었다. 좋아서 같이 섹스할 때는 언제고,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게 영 불공평하게 여겨졌다.
분노에 차서 박래현의 머리칼을 양손으로 힘껏 움켜잡았다. 박래현의 고운 얼굴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박래현이 나를 아무리 생각해 줘도 내게서 이 지독한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준영아, 형 따라서 심호흡해 봐.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씨발, 정신 사나우니까 닥쳐! 난 아파 죽겠는데, 하, 하아… 형은 나 임신시켜 놓고, 하, 아윽! 형은 개새끼야! 내가 애 갖자고 했을 때 말렸어야지! 자기 몸 아니라고, 아, 아아, 나 죽을 거 같아! 아, 아윽, 배, 배 아파!”
머릿속 생각이 여과되지 않은 채 입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박래현의 머리칼을 잡고 그를 뒤흔들었다. 내게 머리칼을 잡힌 박래현이 내 귀 옆으로 양팔을 내려 몸이 안 흔들리게 중심을 잡았다. 통증이 최대치에 이르자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이 내 의지를 벗어났다.
“으, 으윽! 하, 하윽! 형, 하아…!”
“준영아, 미안해. 쌍둥이를 끝으로 다신 애 안 낳을 거야. 정말이야, 약속해.”
“씨발 다 듣기 싫어!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해 봤자야!”
코끝으로 은은한 치자꽃 향기가 스며들었다. 통증의 강도는 여전한데 페로몬 향이 점점 짙어지면서 흥분의 강도는 조금씩 낮아졌다. 그래도 박래현이 미웠다.
“형이 너 주려고 선물 사 놨는데, 안 궁금해?”
“아, 하아, 아윽!”
“수술 끝나면 내가 보여 줄게.”
“필요 없어!”
박래현은 내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애썼으나 실패했다. 몸을 마비시킬 기세로 아랫배를 강타한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정우가 병실로 들어왔다. 침대 앞으로 다가온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준영아, 괜찮아?”
“괜찮냐고? 너도 똑같은 개새끼야. 나중에 결혼하면 네 와이프만 이 고생을 할 테니!”
내 눈엔 정우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다시 통증이 몰려와서 눈앞이 흐려지는데 병실 전화가 울려서 박래현이 전화를 받았다.
“응, 지금 바로 내려갈게.”
박래현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안아서 커다란 휠체어에 앉힌 박래현이 정우더러 휠체어를 밀게 하고는 내 손을 잡았다. 수술할 생각에 겁이 나서 욕했던 것도 다 잊고 박래현 손을 꽉 붙잡았다.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탄 정우가 3층 수술실 버튼을 눌렀다.
“형, 만일….”
나는 박래현의 손을 잡아 그의 손바닥에 뺨을 비볐다.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박래현의 눈가가 발갛게 젖어 있었다.
“수술이 잘못되면 난 괜찮으니까 애들 먼저 살려 달라고 해….”
“그럴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마음 편하게 먹어.”
“그래도 만일이란 게 있잖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정우는 엘리베이터가 가라앉을 만큼 크게 한숨을 쉬며 휠체어를 밀었다. 박래현은 내 손을 힘주어 꽉 쥐었다.
“나한텐 언제나 네가 최우선이야. 그렇게 알고 있어.”
“여기서부터는 산모와 스태프 외에는 출입 금지입니다.”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쓴 간호사가 정우로부터 휠체어를 넘겨받았다. 박래현은 내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엄지로 손등을 살살 어루만졌다. 나는 가만히 팔을 뻗어 눈물을 참고 있는 박래현의 뺨을 쓸어 주었다.
“준영아.”
“응?”
“돌고래 꼬리 찬스 지금 써. 너 그때 소원 아껴 둔다고 했잖아.”
“아! 그러면 되겠다.”
내가 소원을 아껴 둔다고 했을 때 박래현은 미신 좀 그만 믿으라면서 나를 비웃었다. 그러나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신이고 나발이고 그도 마음이 약해진 듯했다.
나는 몰디브에서 봤던 돌고래들의 꼬리를 떠올리며 수술을 무사히 마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용기가 생겼다.
“소원 빌었으니까 수술 잘 될 거야. 아, 아윽! 형, 너무 걱정하지 마….”
박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간호사는 인정사정없이 휠체어를 돌려 수술실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돌고래의 수호를 받은 쌍둥이가 태어났다. 나와 박래현은 마침내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
곤히 잠든 내 귀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의식중에 몸을 일으켜 아기들이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얌전히 잠든 형 서경이와 달리 동생 서현이가 배가 고픈지 입술을 오물거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잠에 취해 아이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올라가 젖을 물렸다. 서현인 언제 울었냐 싶게 코를 훌쩍이며 허겁지겁 젖을 빨았다. 나는 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임신하기 전엔 배가 불러 숨이 찬 데다 화장실을 다니느라 깊이 잠을 자지 못했다. 아이들을 낳고 나면 잠은 푹 잘 줄 알았는데 쌍둥이들에게 모유를 주다 보니 늘 잠이 부족했다.
박래현은 처음부터 나를 위해 아이들에게 분유를 먹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모유가 좋다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들어왔던지라 나는 회사에 나가기 전까진 모유를 먹이겠다고 주장했다. 의견이 맞서 둘 다 한발씩 물러나 한 달만 모유를 먹이기로 합의했다.
“준영아, 안 자고 뭐 해?”
“서현이가 배고픈가 봐. 울어서 젖 주고 있어. 얼른 자, 아직 다섯 시야.”
뒤에서 나와 서현이를 한 팔로 끌어안은 박래현이 내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이내 말캉한 입술이 아래로 내려와 서현이가 물지 않은 젖꼭지를 혀로 핥았다.
“어서 빨아 주라고 젖이 새는데?”
“아, 진짜… 먹지 마. 서경이 일어나면 줘야 해. 애들 먹성이 좋아서 젖이 부족하다고.”
박래현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서현이의 작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내 젖꼭지를 갖고 놀았다. 이로 유륜을 잘근잘근 깨물고 혓바닥으로 젖꼭지를 쓸다가 볼이 쏙 들어가도록 젖을 빨았다. 똑같이 젖을 빨고 있는데 목적이 달라서인지 박래현이 빨고 있는 젖꼭지만 찌릿찌릿 전기가 왔다. 나는 박래현 쪽으로 상체를 돌려 그의 머리채를 잡아 우악스럽게 얼굴을 떼어 냈다. 그는 붉은 입술에 뽀얀 젖을 묻히고서 얼굴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내가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박래현 입술이 내 입술을 물었다. 혀가 곧장 안으로 들어와 혓바닥과 점막을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나는 비릿한 모유 맛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었다. 젖을 빨다가 배가 불렀는지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박래현은 귓구멍을 혀로 더듬으며 잠옷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주물렀다. 끈적끈적한 손끝에서 성적인 함의가 읽혔다. 몸에 미지근하게 열이 올랐으나 수면 부족에 아이를 안고 있어서 만사가 귀찮았다. 나는 싫다는 의미로 서현일 꽉 끌어안았다. 가슴을 만지던 손이 느리게 복부를 가로질러 속옷 안으로 들어가 곧장 주름을 열어젖혔다.
“으, 으읏….”
박래현은 엄지와 검지를 구멍 안에 넣고 돌기를 잡아 비비다가 거칠게 짓눌렀다. 돌기가 바르르 떨리면서 그의 손이 애액으로 젖어 갔다. 귓구멍을 휘젓는 축축한 혀와 등에 닿는 단단한 가슴, 성감대를 더듬는 농밀한 손길에 몸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몇 달째 몸을 섞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준영아…. 형 자지 안 보고 싶어? 네 구멍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잊어버렸어.”
박래현이 고개를 숙여 풀어 헤쳐진 옷깃 사이로 얼굴을 넣어 젖꼭지를 빨았다. 그에게 빨리지 않는 쪽 모유가 흘러 옷이 축축해지자 박래현은 팔베개해 준 팔을 굽혀 가슴을 움켜잡았다. 서현이가 젖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려 박래현의 손을 빨았다. 분명 젖 냄새는 나는데 원하는 대로 젖을 빨지 못한 서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서경이도 배가 고파졌는지 같이 울음을 터트려 삽시간에 침실이 시끌시끌해졌다.
“가서 서경이 데려와.”
나는 박래현 얼굴을 뒤로 밀었다. 박래현은 낮게 한숨을 쉬며 서경이를 데리고 와 내 옆에 눕혔다. 물티슈를 꺼내 자신이 빨았던 젖꼭지를 깨끗하게 닦은 박래현이 서경이에게 젖을 물렸다. 양팔에 아이를 하나씩 안고 젖을 주는 나를 박래현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안 되겠어. 한 달 지났으니까 오늘부터 모유 금지야.”
“나 마음이 바뀌었어. 회사 출근하기 전까진 모유 줄래.”
“한 달간 합의 기간 지났어. 이번엔 양보 안 해. 내가 여사님들한테 오늘부터 애들 분유 먹이고 애들 방에서 재우라고 얘기해야겠어.”
“…애들 젖 끊기 어려울 건데? 우유 안 먹는다고 울면 어떡해.”
“걱정하지 마. 애들이 너 닮아서 한 끼만 건너뛰어도 못 참고 분유 먹을 거야.”
서경이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맛있게 젖을 빨아 먹었다. 아이의 얼굴이 몹시 행복해 보여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박래현은 수건을 찾아 쌍둥이들의 머리칼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형이 애들을 몰라서 그래. 애들이 내 젖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회사 출근하기 전에 공부도 하고 네가 원하는 근육질 몸도 만들어야지. 안 그래? 9개월 동안 고생했으니까 회사 나가기 전까지 너만 생각하면서 살아. 애들은 나랑 여사님들이 알아서 돌볼게.”
박래현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쌍둥이들 침대를 그들의 방으로 옮겼다. 모유 수유를 강경하게 반대한 박래현을 딱 한 달만 먹이겠다고 어렵게 설득했었다. 그가 더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먹성이 좋은 애들이라 모유로는 충당이 안 돼서 여사님들도 슬슬 분유로 갈아타자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부성애를 발휘하여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던 나는 분유만 먹여 키운 별이가 돌 발진을 제외하고는 아픈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수유 중단을 결정했다. 박래현 말대로 사회에 나가려면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필요했다.
추진력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래현이 아침 식사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내 건강을 이유로 오늘부터 모유 수유를 완전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내 건강을 생각해서겠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나를 차지할 줄 알았는데 모유를 주다 보니 내가 쌍둥이들을 끼고 살아서 그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았다.
“준영아, 오늘은 밖에서 저녁 먹자.”
“왜? 난 이 차장님 음식이 좋은데….”
“젖 떼려면 애들 얼굴 안 보는 게 좋대. 애들은 여사님들한테 맡기고 우린 저녁 먹고 호텔로 가.”
“호텔?”
“수술하고 한 달 더 지났으니까 이제 해도 괜찮잖아.”
“집은 안 돼? 나 호텔 가기 싫어.”
“왜 호텔이 싫어?”
“집이 더 편하고 좋아. 집에서 해.”
박래현과 처음 호텔에 갔을 땐 호텔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눈이 높아져서 객실을 아무리 잘 꾸며 놓아도 눈에 차지 않았다. 몰디브 빌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라지만 수영장과 열대의 분위기를 빼고는 집만 못했다.
“저녁 먹고 집에 오면서 못 참고 너 안을 거 같은데? 김 비서 있는 데서 해도 좋아?”
“알았어. 호텔 잡아.”
박래현은 넥타이를 매 주는 나를 음흉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티를 들어 올려 젖꼭지를 빨았다. 아이들에게 주지 않아서 불어 있던 젖이 박래현 입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애들 못지않게 박래현도 젖을 좋아해서 무슨 맛이 나는지 짜서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달고 비릿해서 돈 주고 먹으라고 해도 먹기 싫은 맛이었다. 그런데도 아기 밥을 좋다고 빨아 먹는 박래현이 조금 한심해 보여서 나는 그의 얼굴을 잡아 가슴에서 떼어 냈다.
“이제부터 젖 말릴 거야. 형 말대로 시간표 짜서 공부도 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몸도 만들어야지.”
2주 전부터 소식과 적당한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기 시작했다. 근력 운동은 덤벨을 이용해 간단한 동작만 시도 중인데 젖을 말리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응, 몸 만드는 건 좋지만….”
한쪽만 빨았더니 다른 쪽에서 젖이 줄줄 흘러내려 옷이 척척해졌다. 박래현은 옷 위로 드러난 젖꼭지를 입에 물고 천과 함께 쪽쪽 빨아 댔다. 아이들이 빨 때는 별 감각이 없는데 박래현이 빨 때는 꼭 아랫배가 같이 욱신거렸다. 박래현은 셔츠 밑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주무르면서 광대가 두드러지도록 젖을 빨았다.
“그, 그만! 형 출근해야지.”
허리를 잡아서 나를 화장대 위에 앉힌 박래현이 내 엉덩이 밑으로 두 팔을 내렸다. 그는 내게 키스하면서 내 성기에 완전히 발기한 자신의 성기를 문질렀다. 박래현도 금욕 생활이 길어져 괴로울 것이다. 혼자서 해결하면 그나마 덜할 텐데 박래현은 절대 자위를 하지 않았다. 내가 손으로 해 준다는 것도 마다했다.
“으, 응… 얼른 출근해. 정우 기다리겠어.”
바지 속으로 들어온 손이 드로어즈를 젖히고 곧장 구멍을 찾았다. 그가 젖꼭지를 빨 때부터 축축하게 젖어 있던 곳에서 찌꺽이는 소리가 났다.
“못 참겠어. 한 번만 박고 나갈게….”
“으, 으응….”
박래현이 내 귀를 빨면서 한 손으로 자신의 허리띠 버클을 풀었다. 단추를 열고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해 밑이 벌름거렸다. 박래현은 내 바지를 벗긴 다음 무릎을 잡아 두 다리를 활짝 벌렸다.
바지와 드로어즈를 같이 벗긴 줄 알았는지 그는 지퍼 사이에서 성기를 꺼내 드로어즈 위에 쿵쿵 박아 댔다. 그것만으로 흥분해서 나는 두 손으로 화장대를 짚어 떨리는 몸을 지탱했다. 뭉툭하면서 단단한 귀두 끝이 천을 뚫을 것처럼 밀고 들어와 구멍을 찔렀다.
“하, 씨발….”
몇 번 드로어즈 위를 박아 대던 박래현이 안 되겠는지 엉덩이와 구멍을 감싸고 있는 부분을 잡아 왼쪽으로 당겼다. 벌어진 틈으로 숨 쉴 시간도 주지 않고 육중한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허, 허억!”
몇 달을 쓰지 않았던 구멍은 점액질이 질질 흐르고 있어도 박래현의 성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준영아, 왜 안 들어가지? 후우, 구멍 좀, 벌려 봐.”
“급하게 박으니까 그러지! 흐읏, 그러게, 퇴근하고… 하, 하악!”
박래현은 음식 다지듯 잘게 성기를 박아 대면서 맞붙어 있는 공간을 조금씩 열어 나갔다. 더디지만 잘 들어오던 성기가 좁아지는 부분에 막혀서 더 들어오지 못했다.
힘으로 욱여넣던 박래현이 고개를 숙여 축축하게 젖은 옷을 입에 물고 젖꼭지를 빨았다. 고여 있던 젖이 울컥 터지면서 반은 박래현 입으로, 반은 내 늑골을 타고 밑으로 흘러내렸다. 박래현은 티를 말아 올려 젖꼭지와 유륜에 뜨거운 혀를 비볐다. 저릿저릿한 자극에 수축해 있던 내벽이 활짝 열리면서 안에 고여 있던 물이 뚝뚝 떨어졌다.
집요하게 젖을 빨면서도 박래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퍽 소리를 내며 뿌리까지 성기를 박아 넣었다. 잠시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척추를 울리는 생경한 감각에 놀라서 나는 두 다리로 박래현 엉덩이를 힘껏 감았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고급스러운 질감의 천이 비벼졌다.
“아, 아흑! 혀, 혀엉!”
“흐, 형 자지 먹고 싶어서 너도 죽을 거 같았지.”
박래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출근해야 할 사람의 얼굴이 모유에 흥건하게 젖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손등으로 박래현의 붉은 입술 위에 묻은 젖을 훔쳤다.
“구멍이 자지를 아주 게걸스럽게 씹네. 음탕하기는….”
구멍을 빠듯하게 채운 성기가 점막을 깊숙하게 쑤시며 앞뒤로 움직였다. 놀라서 활짝 벌어졌던 내벽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두툼하게 부어오른 속살이 박래현의 성기를 부러뜨릴 것처럼 조였다. 박래현의 목덜미로 새파란 혈관이 자라나 펄떡거렸다.
“흐, 흐읏, 고기 좋아하는데 그동안, 하, 하아… 풀만 먹어서 그래.”
“응… 사실은 젖 빨아 주는 것도 좋지? 그러니까, 후, 당분간, 젖 말릴 생각 하지 마….”
얘기가 왜 그리 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대 위에 올려 둔 박래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서 나는 반대의견을 내지 못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야 할 시간인데 박래현이 나타나지 않아서 정우가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박래현은 길쭉한 성기를 꺼내 사선으로 박아 넣으며 왼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 대표님, 아직 준비 안 끝나셨습니까?
정우 목소리가 들렸다. 귀두 끝이 아기집 입구를 들락거리며 그쪽에 분포된 감각점을 하나씩 차례로 문질렀다. 허벅지를 벌벌 떨며 신음을 내지르지 않으려고 박래현의 어깨를 아프게 깨물었다. 그러나 기둥에 돋아난 우락부락한 핏대에 예민한 살점이 비벼지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박래현 어깨에 입술을 비비적댔다.
“으, 으읍!”
“10분만 기다려. 준영이랑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 알겠습니다. 얘기 나누고 나오십시오.
박래현은 전화를 끊고서 내 허벅지 사이에 두 팔을 넣어 화장대를 짚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다리가 달랑거렸고 내 상체는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갔다. 나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채 상체를 들어 박래현에게 눈을 맞췄다. 박래현 역시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굵은 성기를 쑥 넣었다가 뒤로 빼기를 반복했다. 성기에 비벼지는 속살이 기둥에 쩍쩍 들러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그 사이로 물이 질질 흘렀다.
“우리 준영이 물 많은 거 봐. 그래서 젖도 많이 나오나? 울고 침 흘리면서 오줌까지 싸면 금상첨화겠네? 응? 준영이가 흘린 물, 형이 다 빨아 줄게.”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은 탓에 양쪽 가슴에서 젖이 마구 쏟아졌다. 셔츠 단추를 이로 물어 우악스럽게 뜯어낸 박래현이 입술로 셔츠를 젖히고는 젖을 빨았다. 동시에 구멍 입구까지 빠져나간 좆 대가리가 입구의 돌기를 세게 누른 채 마구 짓뭉갰다.
“으, 으읏! 하, 하으윽!”
작은 불꽃이 번쩍번쩍 터지면서 주름이 헤벌어졌다. 성기가 점막 사이를 밀고 들어와 둔덕을 문지르고 더 깊은 곳에 삽입되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뒤로 벌러덩 드러누우며 박래현의 손목을 잡았다. 박래현은 봐주지 않고 아기집 입구에 성기를 퍽퍽 박아 넣었다.
“아, 아아….”
숨 막히는 오르가슴에 나는 상체와 허리를 뒤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박래현은 내가 절정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안에 박아 대다가 나중에야 사정했다. 사정하는 시간도 길어서 그는 상체를 완전히 숙여 나를 끌어안은 채 내벽 구석구석에 좆 끄트머리를 문질렀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나는 내 입술에 짧게 키스하고서 몸을 일으키는 박래현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성기가 빠져나간 길을 따라 안에 고여 있던 정액과 체액이 허벅지를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형, 옷 다시 갈아입어야겠어.”
“그러게. 얼른 씻고 올게.”
그의 드레스 셔츠와 정장 바지에 젖과 점액질이 묻어 얼룩이 생겼다. 박래현이 욕실에 들어가 씻는 동안 뒤처리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나는 박래현이 출근할 때 입을 옷을 골랐다. 남자 오메가는 히트 사이클 기간에 성교하지 않는 이상 임신은 힘들어서 그가 안에 사정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형, 여기 옷 골라 놨어.”
박래현은 군말 없이 내가 골라 놓은 옷을 입고 내 앞으로 넥타이를 내밀었다. 넥타이를 매주는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박래현은 젖을 짜 자신의 행커치프에 묻혔다. 그는 행커치프를 포켓에 꽂아 옷차림을 완성했다. 이쯤이면 나를 놀리려고 고의로 이러는 건가 싶었다.
“대체 거기다 젖은 왜 묻혀?”
“젖 먹고 싶을 때마다 냄새 맡으려고.”
대꾸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박래현과 1층으로 내려갔다. 스포츠카를 타고서 거실을 돌아다니던 별이가 차를 몰고 박래현에게 다가왔다.
“서윤아, 아빠랑 동생들 보러 갈까?”
애칭 없이 쌍둥이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부러웠는지 별이도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졸랐다. 별이 뜻을 존중해서 사람들은 이제 별이의 이름을 불렀다.
“동생들 코 자고 이써여.”
박래현은 별이를 번쩍 안아 들고서 쌍둥이들 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아이들 옷을 개키며 얘기를 나누고 있던 조 여사와 오 여사가 박래현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은 쌍둥이들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배가 고플 때 빼고는 거의 잠만 잤다.
“아빠 회사 갔다 올게. 우리 쌍둥이들, 오늘부터는 우유 먹어야 해.”
한 달간 같은 침실을 썼던 아이들이 자기들 방에 누워 있으니 벌써 다 큰 것처럼 마음이 시큰거렸다. 박래현은 아이들 머리칼을 한 번씩 쓸어 주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는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별이에게 왼쪽 뺨을 내밀었다. 별이는 그의 양쪽 뺨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별아, 동생들 예뻐?”
“응. 아가가 내 손까락 꼭 쥐어써여.”
“그래, 아빠 회사 갔다 올 동안 동생들하고 잘 지내.”
“네~!”
박래현은 내게 별이를 넘겨주며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는 입술을 떼기가 아쉬운 듯 뺨에도 여러번 입을 맞췄다.
“여섯 시에 데리러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알았어.”
나는 별이를 안고 주차장까지 따라 나갔다. 차에 기대어 박래현을 기다리고 있던 정우가 박래현이 탈 수 있게 뒷문을 열었다.
“준영아, 늦어서 얼른 가 봐야겠다.”
“그래, 얼른 가.”
“삼툔, 안녕.”
“그래, 별이도 안녕. 이따 저녁에 보자.”
박래현이 유리창을 내리고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한여름이 시작되면서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쫴 불볕더위를 예고했다. 벌써 더워져 나는 별이를 데리고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쌍둥이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쯤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아빠, 아가들 우러여. 배고픈가 바.”
“그러게. 젖 먹여야겠다.”
무심코 쌍둥이 방에 들어가려던 나는 박래현과의 약속이 생각나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별이를 번쩍 들어 목에 태우고 조 여사를 따라 주방으로 갔다.
“분유 타시게요?”
“네. 대표님이 오늘부터 꼭 분유 먹이라고 해서요. 이 분유가 모유하고 맛이 비슷해서 아이들이 잘 먹더라고요.”
“애들이 안 먹는다고 버티면 어떡하죠?”
조 여사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정수기에서 분유 타기 코스를 눌러 젖병에 물을 받은 조 여사는 분유를 타서 묘기를 부리듯 젖병을 흔들었다.
“준영 씨, 모유 떼려니까 시원섭섭해서 그렇죠? 대표님 뜻에 따르세요. 제가 키워 보니까 모유나 분유나 애들한테 별 차이 없어요.”
“…….”
“그런데 엄마들은 정말 힘들어요. 우유는 누구나 먹일 수 있는데 모유는 엄마들만 먹일 수 있잖아요. 애 담고 다니느라 힘든 몸으로 모유 수유하면 골반 틀어지고 어깨 망가지고 쉬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엄마들 몸 생각하면 권장하고 싶지 않아요.”
조 여사는 박래현과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 나는 이참에 독하게 마음 먹고 모유를 끊는 게 좋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분유를 잘 먹을지 궁금해져서 조 여사를 따라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픈지 아이들은 울면서 칭얼거리고 있었다. 날 때부터 서경이보다 컸던 서현이는 한 달이 지나자 형보다 3kg이 더 나갔다. 키 말고 손발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아이를 많이 키워 본 두 여사님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무럭무럭 자라는 서현일 보며 새삼 서경일 형으로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인 제가 먹일게요.”
“에이, 준영 씨한테 젖 냄새 나서 안 돼요. 애들이 우유 안 먹으려고 할걸요?”
조 여사와 오 여사가 아이를 한 명씩 안고 분유 꼭지를 입에 물렸다. 둘 다 안 먹는다고 고개를 저으며 목 놓아 울었다. 아이들이 격렬하게 울음을 터트릴수록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내 젖이 그렇게 맛있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애들 생각해서 매일 영양이 풍부한 저염식 식단으로 식사한 결과였다. 이따금 술과 커피가 먹고 싶었지만 젖 때문에 꾹 참아야 했다.
“서경아, 우유 먹어야지. 배 안 고파?”
조 여사가 서경일 어르며 다시 분유 꼭지를 입에 물렸다. 둥그런 눈동자로 나를 빤히 보던 서경이가 내게 오겠다며 두 팔을 벌리고서 발버둥 쳤다. 그러나 먹성이 좋은 서현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젖병에 든 우유를 쪽쪽 빨기 시작했다. 저렇게 잘 먹으니 몸이 클 수밖에 없었다. 배 속에 있을 때도 저 녀석이 서경이가 먹을 영양분을 뺏어 갔는지도 모른다.
“이모, 서혀니 우유 데가 머길내여.”
“그래? 우리 서윤이가 한번 먹여 볼래?”
오 여사에게 젖병을 건네받은 별이가 아이 눈을 들여다보며 우유를 주었다. 서현인 게걸스럽게 우유를 빨아 먹었다. 그러나 서경이는 몇 번을 달래도 혀로 젖병 꼭지를 밀어냈다. 더 작은 아이가 우유를 안 먹겠다고 밀어내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이러다 둘의 체격 차이가 더 벌어지면 서경이가 나를 원망할 것 같았다.
“서경이 이번 한 번만 젖 먹일까요? 우유 안 먹으면 어떡하죠?”
“그러다가 젖 못 뗄 텐데… 마음먹은 김에 한번 떼 봐요. 서경이도 배고프면 우유 먹을 거예요.”
“네….”
“서윤이 아빤 그냥 나가 있는 게 좋겠어요. 서경이가 아빠만 쳐다보네.”
조 여사 말이 맞아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문 옆에 귀를 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보니 서경이가 계속 우유를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와 박래현을 반반 섞어 놓은 서현이와 달리 서경인 얼굴이 박래현 축소판이었다. 성격도 박래현을 닮았으면 까탈스러울 게 분명했다. 서경이가 계속 울어서 마음이 약해진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경이 이번 한 번만 젖 먹일게요. 아침부터 배고프면 온종일 기분이 안 좋을 거 같아서요.”
부모가 그러겠다니 조 여사도 더 우기지 못하고 내게 서경일 넘겼다. 서현이를 서운하게 만들 수 없어서 서경일 안고 내 방으로 와 침대에 앉았다. 서경인 젖 냄새를 맡고 좋아서 방싯방싯 웃으며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막 셔츠 단추를 풀고 젖을 먹이려는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박래현이었다. 안 받으면 수상하게 여길 사람이라 나는 전화를 받으며 서경이에게 젖을 물렸다.
- 준영아, 지금 뭐 해?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 혹시… 애들 젖 먹이고 있어?
“아니. 애들 지금 분유 먹고 있어. 나 젖 냄새 난다고 애들 방에서 쫓겨났어.”
- 나도 지금 네 젖 냄새 맡고 있는데…. 우리 애들 마음이 이해 가. 나라도 우유보다는 네 젖을 먹을 거야.
박래현이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침에 행커치프에 젖을 묻혀 간 걸 보면 농담이 아닐 수도 있었다.
“너 새벽에 애들 젖 먹이느라고 잠 못 잤잖아. 얼른 자.
“알았어. 근데 벌써 도착했어?”
- 아니. 너 애들 젖 먹이고 있을 거 같아서 전화해 봤어.
“에이, 오늘부터 젖 끊는다고 했잖아. 사람이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의심이!”
- 그러게. 내가 왜 의심이 많아졌을까?
왠지 박래현 목소리가 가까운 데서 들리는 것 같아 침실 문으로 고개를 돌리던 나는 그대로 얼어 붙었다. 박래현이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오늘부터 젖 끊기로 했잖아.”
“그러려고 했는데 애가 분유를 안 먹고 막 울어.”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넌 여기서 나오지 마.”
젖을 빨고 있는 서경일 매정하게 떼어 낸 박래현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서럽게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밖으로 나갔다. 출근하다 말고 다시 돌아온 박래현이 기가 막혀서 열려 있는 문을 노려보다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젖을 주다 말아서인지 가슴이 얼얼했다. 나는 가슴을 주무르면서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해서 들리던 서경이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박래현이 분유를 먹이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나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전면이 유리로 된 창 바로 앞에는 소파와 테이블을 이용해 휴식 공간으로 만든 테라스가 있었다. 커다란 이파리를 지닌 나무와 꽃으로 장식돼 있어서 보기만 해도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내려 납작해진 배를 만져 보았다. 한 달 전만 해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던 배가 이렇게 납작해지다니 신기했다. 젖을 끊었으니 근력 운동의 강도를 높이면 이 말랑거리는 가슴도 점차 근육질로 변해 갈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박래현이 오지 않아서 나는 공부할 책과 핸드폰을 챙겨 쌍둥이들 방으로 갔다. 서경이가 분유를 잘 먹었는지 궁금해서 좀이 쑤셨다. 열린 문틈으로 두 여사님들의 대화가 새어 나왔다.
“우리 대표님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했어도 성공하셨겠어. 서경이 얼러서 분유 먹이는 거 좀 봐.”
얘길 들어 보니 박래현이 분유 먹이는 데 성공한 듯했다. 그래 놓고 바빠서 내게 인사도 못 하고 다시 출근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두 분은 금슬이 좋아서 평생 갈 거 같아. 아이들 여럿 키워봤지만 이 집 부부처럼 서로 아끼는 사람들 못 봤어.”
“그랬으면 오죽 좋겠어. 아이 둘 낳고 삐걱거리는 집안을 몇 번 봤더니 걱정되네.”
박래현과 내가 4년째 접어들면서 우리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래현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메가들이 들이대는 이유가 뭐겠는가.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대화를 멈췄다. 나는 아이들 침대로 다가가 아이들을 살폈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쌍둥이들이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둘 다 분유 잘 먹었어요?”
“네. 서현인 잘 먹었고 서경인 버티다가 안 되겠는지 마지못해 먹었어요. 배고픈데 어쩔 수 있나요? 크려면 부지런히 먹어야지.”
아이들이 분유를 안 먹을까 봐 걱정했던 게 무색했다. 나는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며 아기들의 복숭아색 뺨을 손끝으로 쿡쿡 눌렀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서현이가 방싯거렸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별이 옆에 앉아 가지고 온 책을 펼쳐 들었다.
오전의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방 안을 비췄다. 쌍둥이들은 평화롭게 잠들었고 별이는 미동도 없이 책을 읽었다. 여사님들은 아이들 턱받이를 만든다며 십자수를 놓았다. 쌍둥이들이 목을 가누고 기어 다닐 시기가 되면 이런 평화는 없을 거라며 그들은 입을 모아 지금의 여유를 즐기라고 했다.
전공책을 들여다보던 나는 한쪽 어깨가 무거워져서 고개를 돌렸다. 별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박래현과 내 사랑의 증인을 품에 안고서 나는 별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