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Pounding
#75
개가 하룻밤 자고 갈 예정이란 도경의 메시지에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려온 지한은, 개를 안아 든 채로 문이 활짝 열린 방 앞에서 눈을 굴렸다.
손님용 욕실 맞은편에 있는 세 개의 방 중 가운데 방. 시우와 사는 아파트에서 제일 큰 침실보다도 더 큰 것 같은 방 안이 온통 옷으로 가득했다. 도경의 침실에 있는 벽장도 지한과 시우 둘이 같이 쓰는 옷장보다 더 크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옷을 위한 방이 아예 따로 하나 더 있었다니. 돈만 있으면 쓸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여기 형 옷방이에요?”
“응.”
품에 안긴 개가 지한의 팔을 벅벅 긁었다. 성실하게 만져주지 않는 인간을 호통치는 것만 같은 발짓이었다. 지한은 의무적으로 개를 쓰다듬으며 옷걸이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무슨 옷 장사 하는 사람인 줄 알겠다. 그보다 지금은 옷걸이를 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도경의 앞에서 멍청해 보이고 싶지 않았던 지한은 나름 논리적으로 유추해보려고 노력했다. 평소처럼 거실로 가서 개와 잘 놀고 있는 지한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끌고 와 보여준다는 것이 옷밖에 안 보이는 방이었다. 이럴 때 도경의 의도로 알맞은 것은? 1번. 지한의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갈아입히려고. 2번. 도경이 내일 입을 옷을 골라달라고. 3번. 자랑하려고.
“근데 이 방을 나한테 왜……?”
세 보기 다 엉터리였다. 지한은 형편없는 자신의 사고력을 원망했다.
“네가 보여달라며.”
“내가요?”
분명 궁금하긴 했었다. 만날 때마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도경의 옷장은 과연 얼마나 넓으며 그 안엔 몇 벌의 옷이 걸려있는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확실히 있었다. 남이 옷을 얼마나 자주 갈아입든 말든 눈치채지 못하기 일쑤인 지한이지만 도경만큼은 뭘 입었는지, 신발은 어떤 색에 어떤 모양이며 머리를 올렸는지 덜 올렸는지 아니면 흐트러졌는지 하는 소소한 변화까지 눈에 안 들어오는 부분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도경에게 직접 말한 기억은 없었다.
“방송국 갔다 온 날.”
도경이 방 문틀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오늘의 그는 와인색 드레스셔츠를 입고 있었다. 옷감과 비슷한 계열의 밝은 색으로 수놓아진 패턴이 결코 얌전하진 않았다. 지한이 입었으면 선수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도경이 입으니 고급스러워 보이기만 했다.
“선물로 받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봤더니 네가 그랬잖아.”
“……선물로 형 옷장을 보고 싶다 그랬다고, 내가?”
지한의 시선은 이제 도경의 하체를 탐색했다. 상의에 비해 단순한 검정색 바지 위에 벨트가 둘려있었다. 도경이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들은 대부분 브랜드명이나 로고가 보이지 않아 어디 것인지 맞추기 힘들었지만 오늘 도경에게 선택당한 벨트는 누구나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브랜드 로고가 버클에 달려있어 바로 알아보았다.
지한이 알아보는 몇 안 되는 명품이었다. 소현과 보낸 시간 덕분이었다. 그녀에게도 그 로고를 단 물건이 꽤 됐다. 당장 기억나는 물건으론 작은 가방과 벨트 정도가 있었다. 아마 지한에게 그 브랜드 물건을 선물로 주기도 했을 것이다. 뭘 받았었는지까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설마 구경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옷장을 갖고 싶단 소리였어?”
도경의 하체에 눈길을 너무 오래 줬다. 지한은 급히 눈을 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겨우 말을 마친 지한은 괜히 개를 더 만졌다. 한 줌 먼지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잠꼬대를 해도 왜 하필 그딴 소릴 해가지고. 잠결에마저 쪼다 같을 필욘 없는데 말이다. 잠꼬대도 의미심장하게 하는 영화 주인공들이 부러웠다. 물론 지한은 영화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자면서까지 멋지거나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은 욕심도 없었지만.
“괜히 두 개 다 준비해놨네.”
자면서까지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은 욕심도 없다고? 날이 갈수록 얼이 빠져가는 스스로에게 환멸이 일었다. 일단 그는 맨정신일 때도 사랑스러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미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랑스럽다는 말 자체부터가 그와는 안 어울렸다. 그런 수식어는 지한보다 더 작고 유하게 생긴, 예를 들어 시우에게나 어울렸다.
“두 개? 내가 또 뭐라고 했어요, 옷장 말고?”
“그것까지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아.”
지한은 고개를 숙였다. 배 속이 요동쳤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미안해서 더 그랬다. 도경이 대놓고 불쾌한 티를 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인간들의 상황이 어떻든 관심을 요구하는 개의 작은 머리통만 죽어라 보고 있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숨소리라기엔 다소 격한 감이 있었다. 슬그머니 시선을 옮긴 지한은 조용히 웃고 있는 도경을 포착했다.
“아 뭐야.”
“뭐가.”
“화난 줄 알고 놀랐잖아요.”
“날 뭐로 보는 거야 너.”
지한을 놀려놓곤 활짝 웃는 낯이 얼마나 화사한지. 섭섭하려던 것이 아득해졌다. 삐질까 봐 말은 안 했는데, 농담할 때의 도경은 연령이 딱 초등학생이었다. 그는 농담의 본질을 잘 몰랐다. 단순히 있는 사실 그대로를 뒤집어 말하기만 하면 그게 농담이 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가족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엔 여태 봐온 도경의 가족들이 대체적으로 멀쩡했다. 지한이 목소리라도 들어본 도경의 가족은 황 원장님과 여덟 살 위라는 큰형이 다였다. 그래도 키가 크다는 점을 빼면 동생과 정말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어서 놀라웠던 현경은, 도경을 대하는 태도나 지한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서 악한 사람은 아니란 인상으로 남았다. 약간 덜렁댄단 느낌은 있었어도.
어쨌든 현경이란 남자나 목소리만 몇 번 들은 황 원장님이나,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기인들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경의 친구들처럼 다른 별에서 온 양 적응 안 되는 방식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도경이 농담할 줄 모르게 된 데엔 가족보다 친구들의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성희롱을 웃기다고 여기는 종자들이니까.
“이 방 들어가 봐도 돼요?”
“그러라고 문 열어놓은 거야.”
선물로 옷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는 기억은 여전히 안 났지만, 잠결에 한 헛소리를 기억해준 성의가 고마웠다. 실제로 구경해보고 싶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지한은 개를 내려주고 옷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형 옷 진짜 많다. 이 많은 거를 언제 다 입어요?”
옷 가게 창고라고 해도 손색없을 방에 들어선 지한이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할지 모르고 물었다. 문틀에 기댄 자세를 유지하며 지한을 지켜보던 도경이 피식거렸다. 질문을 가장한 감탄사라고 여겼는지 대꾸는 따로 해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질문이긴 했다. 매일 하나씩 입다 보면 언젠간 바닥이 나 새로운 옷을 사다 걸어두어야 할 테니. 옷을 사서 한 번만 입고 버린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었다. 도경이 그중 하나일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처음 보는 옷밖에 나오지 않는 방 안에서 드디어 초면 아닌 옷을 찾았다. 반짝이는 무언가로 작은 장미가 수놓아진 까만 셔츠. 어찌 잊을까. 그 옷을 입고 빨간 문 앞에 서있었던 도경을.
“그 옷이 마음에 들어?”
“아니요. 내가 입으면 완전 웃길걸.”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
남의 옷을 탐내는 취미는 없었다. 특히 도경이 입는 옷들은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점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지한과 어울리지 않았다.
전에 빌려줬던 붉은 셔츠는 무영에게 뜯겨 단추가 반이나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그 옷이 어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집에까지 입고 가긴 했으니 아마 시우가 세탁해 집 어딘가에 보관해놨을 것이다. 그 옷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옷 방의 규모를 봐선 지한이 몇 벌을 빌려 가 꿀꺽해도 개의치 않을 듯했다.
“형 옷을 내가 왜 가져요.”
“가지란 말 아니야. 사준다고.”
또 시작이었다. 지한은 듣기만 해도 손이 떨리는 가격의 오토바이를 사준 지 얼마나 됐다고.
“나한테 그만 사줘도 돼요.”
“누가 들으면 내가 너한테 매일 뭐 사주는 줄 알겠다.”
“형. 형한텐 그게…….”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이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만두었다. 그 정도 돈은 정말로 도경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신한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겐 너무 큰돈이니까 그만 줘도 된다는 말을 해봤자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없었다.
어차피 죽었다 깨어나도 지한의 사정을 다 이해하지 못할 도경에게 그리 말해봤자 배은망덕해 보일 뿐이었다. 만일 도경이 차고 넘치는 돈을 낭비해서 지한에게 안겨주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면.
“나한텐 그게 뭐?”
그리하여 지한이 도경에게 보람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부담스러워하려 노력해볼 의향이 있었다.
“아니에요. 가지고 싶은 거 생기면 말할게요. 그러니까 내가 말하기 전에는 뭐 안 사줘도.”
“가지고 싶은 게 생기면 나한테 말을 한다고?”
딴죽을 거는 음성이 왠지 즐거워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 뭐.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요?”
“절대 못 할 것 같아.”
“할 수 있거든.”
“믿어볼게.”
하나도 믿지 않는다는 투로 말한 도경이 문틀에 기대고 있던 몸을 똑바로 세웠다. 기분이 나빠야 정상이건만 불쾌하기는커녕 도경이 애같이 느껴져 큰일이었다. 돌아서는 도경의 뒷모습을 본 지한은 얼른 손등을 뺨에 갖다 대 보았다. 뜨끈했다.
식탁엔 도경이 작가에게 직접 받아왔다는 1화 대본이 놓여 있었다. 방송국 제작실에서 봤던 대본은 낱장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식탁 위의 대본은 책자처럼 보기 좋게 묶여 있었다.
“아직 정리 덜 된 거라니까 참고만 해. 다른 사람 보여주면 안 돼.”
대본을 들춰보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편집이 덜 된 대본을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역할의 배우에게 넘긴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이런 걸 내가 봐도 돼요?”
“응.”
“응이 아니고, 형. 나한테 왜 먼저 줬대요, 정리도 다 안 된 걸?”
“내가 달라고 했으니까?”
웃음소리 하나 함부로 내지 않는 남자가 어째 일하는 스타일은 불도저였다. 황당함도 잠시, 회사에서의 도경이 어떤지 꼭 보고 싶다는 욕심이 피어났다. 말 그대로 욕심이었다. 반드시 충족시키지 않아도 될. 그런데 괜히 오기가 생기는.
“작가한테 술 사줬겠네요.”
도경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떻게 알았어?”
“그날 그러던데, 그 작가가. 형은 절대 싼 술 안 사준다고…….”
“너한테 별 얘길 다 했네.”
욕심에서 비롯된 궁금증들이 여기저기서 잘도 솟아났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술자리를 갖는지. 그렇게 술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상대들은 주로 연령대가 어떻게 되며 성별은 뭔지. 지한이 알 필요는 없지만 궁금해서 몸이 다는 사항들.
“사람들한테 술 자주 사줘요?”
질문을 뱉은 직후, 지한은 스스로에게 약간 감격했다. 이토록 길게 생각해서 다듬은 결과물을 말로 뱉는 것이 그에게도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필요하면.”
“남자랑 더 많이 마시겠네요, 여자보다?”
어른이 된 기분을 만끽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입에서 바로 어른 자격을 상실할 만한 질문이 나왔다.
“아무래도 그렇지.”
도경은 지한이 술자리 상대의 성별을 묻는 의도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별생각 없이 물어본 척하고 넘어가기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지한은 다른 이유로 속이 불편했다. 주로 남자와 술 마신단 얘길 들으면 안심이 될 줄 알았다. 막상 듣고 나니 티끌만큼도 안심이 안 됐다. 남자 여자가 다 뭔 소용인가. 도경은 동물의 눈에도 아름다워 보일 텐데.
“왜 그래?”
“네?”
“방금 나를 째려본 거야?”
“아니, 아니. 아니요.”
하마터면 혼자서 한 망상을 현실이라 믿어 불안해하는 미친놈이 될 뻔했다. 도경을 도망치고 싶어지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도. 근본 없는 의심은 섹시하지 못했다. 사랑스럽지도, 귀엽지도 못할 거라면 적어도 성적으로는 어필이 되어야 가치가 있었다.
섹스할 때의 도경을 생각하면 그쪽으로는 충분히, 어쩌면 과도하게 어필이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안 되겠다. 대본 리딩 연습은 유 대리랑 해.”
도경이 대본 표지를 덮어 옆으로 치웠다. 지한은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리딩 연습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지금 보니까 나랑은 안 되겠어.”
지한과 대사를 주고받는 역은 주로 남자 주인공이었으므로 도경이 해보기도 전에 안 되겠다고 하지만 않았으면 한 줄 정도는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평생을 순탄히 보호받으며 살다 여자 주인공을 만나 생애 첫 실패를 경험하게 될 도련님의 대사.
“왜요?”
굳이 왜냐고 물은 것은 약간 아쉬웠기 때문이다. ‘저런 여자랑 엮일 일 없게 알아서 잘 단속해 주세요.’ ‘저 여자랑 내가? 천만에.’ ‘다음 생에서도 그럴 일은 없어.’ 그런 재수 없는 대사를 조곤조곤하게 읊는 도경이 갑자기 엄청 보고 싶어졌다. 그 또한 괜한 욕심이었다.
“표정이 안 나와.”
“형은 그냥 대사만 쳐주면 되잖아요.”
“나 말고 너.”
본인이 치워놨던 대본을 다시 끌고 와 펼친 도경이 빠르게 페이지를 훑더니 종이를 넘겼다. 다음 페이지를 더 빨리 훑더니 또 넘겼다. 그렇게 대여섯 번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 끝에 그가 손끝으로 페이지 하단을 짚었다.
“무섭게, 사람 하나 죽일 듯이 노려본다.”
뭘 찾나 했더니 지한이 맡은 역할에게 주어진 지문을 찾느라 벼락치기 하는 학생처럼 눈을 부릅떴던 것인가 보다. 웃으면 안 되겠지. 지한은 헛기침하는 척했다.
“네. 그게 뭐요.”
“너 이런 표정 못 짓잖아.”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보육원 동기들까지 갈 것도 없었다. 그와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 아무나 데려다 놓고 물어보면 즉각 사라질 기우였다.
“형. 내가 예전에 술 취해서 말해주지 않았어요? 나 학생 때…….”
“10대 1?”
“아니 무슨 10대 1이야. 나는 세 명만 때렸거든요. 나머진 도망친, 아 그건 됐고.”
지한은 도경의 손끝을 밀어내고 지문을 가리켰다.
“아무튼 나 이런 표정 잘 지을 수 있다고.”
“지어 봐.”
곧바로 지어 보라고 할 줄은 몰랐지만 그깟 표정 못 지을 것도 없었다. 학창시절엔 남자 선생들과 눈만 마주쳐도 꼬나본다고 맞았다. 그리 먼 과거까지 가지 않아도 예시야 차고 넘쳤다. 성호인가 뭔가 하는 그 새끼와 난 사달도 다 눈이 마주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그런데 도경을 마주 보고 앉아 늘 짓고 다니는 표정을 지으려니 어째 잘 안 됐다. 안 된다는 표현도 이상했다. 평소 자신이 어떤 눈빛과 얼굴을 하고 다니는지 전혀 모르겠어서 난감해졌다. 피디와 작가의 앞에서처럼 나쁜 상황을 억지로 상상해서라도 시도해보려 했으나 그땐 무영과 도경을 상상에 써먹었었다.
지금은 눈앞에 진짜 도경이 앉아 있었다. 장본인을 앞에 두고 나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내려니 뭔가 꺼림칙했다.
“지금 그게 지은 거야? 무서운 표정?”
“아니, 아직, 아니. 이게. 잘.”
한 마디로, 큰소리쳐 놓고 실패했다. 무섭게, 사람 하나 죽일 듯이 노려보란 지문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도경이 대본을 뺏어갔다.
“그러니까 나랑은 연습이 안 되겠다고.”
오늘따라 도경이 묘하게 짓궂었다. 틈만 나면 지한을 놀려먹고 싶어 하는 느낌이 풍겼다. 싫진 않았다. 실은 좋았다. 늘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날이란 날은 다 세우는 얼굴이 약간은 물렁하게, 또 약간은 어려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발끝을 가만히 두기가 쉽지 않았다. 그 광경만 보고 있을 수 있다면 허기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새 봐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대본을 덮은 도경이 주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려오는 업무 전화를 받는 동안 지한은 개에게 간식을 두 개 바쳤다. 그러고 나선 삑삑 소리가 나는 공을 던져 주었는데, 기껏 물고 와 내놓지 않으려는 개로부터 뺏으려다 물릴 뻔했다. 지한이 공을 포기하자 금세 흥미를 잃은 개는 어디서 빨간 줄을 찾아내 물고 왔다.
“저녁 뭐 먹을래.”
꽤 길게 이어진 통화를 마친 도경이 개에게서 줄을 빼앗아 들며 지한에게 옵션을 읊어주었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차를 끌고 옆 동네로 가고, 해산물을 원하면 거기서 한 10분 정도 더 이동해야 하며, 멀리 나가기가 귀찮으면 지난번에 갔던 이태리 레스토랑도 있다고 했다.
“그냥 시켜 먹어도 돼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한에겐 음식 맛보다 편히 앉아 도경을 마주 볼 시간이 더 소중했다. 도경은 고민도 않고 그러라며 카드를 식탁에 올려두었다. 그새 새롭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도경이 부엌을 떠나는 바람에 미처 그가 먹고 싶은 메뉴는 알아내지 못했다.
배달 앱의 음식 아이콘들을 둘러보던 지한은 일식을 눌렀다. 돈가스를 시킬까 하다 그냥 스시를 눌렀다. 무엇이든 못 먹겠단 말은 안 하는 도경이지만 여행 가서 지한이 골랐던 주꾸미를 한 입인가밖에 안 먹었었다. 도경은 음식을 많이 가렸다. 가리지 않는 척할 뿐.
음식이 배달되기까지 20분 걸린다고 알려주려는데 도경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통화 중일까 봐 굳이 찾아 나서진 않고 있던 지한을 일으켜 세운 것은 개였다. 복도에서 다다다 뛰어와 다리를 긁어대다 지한이 일어서자 다시 다다다 복도로 사라져 버렸다.
지한을 복도로 이끈 개는 거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방문 틈으로 쏙 들어갔다. 들어가 본 적도, 열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없는 방이었다.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나. 망설인 지한은 곧 발을 앞으로 옮겼다. 개가 먼저 들어갔다. 지한은 어쩔 수 없이 개를 따라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네. 다음 주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막 끝낸 도경이 피아노 의자 위에서 일어서려다 지한을 보고 주춤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얘가, 얘가 먼저 들어가서.”
개를 탓하다니. 어른답지 못했다.
“괜찮아. 들어와.”
긴장이 탁 풀렸다. 옷방과 비슷한 크기의 방은 오롯이 피아노를 위한 공간으로 보였다. 피아노와 공기청정기 말곤 물건이 없었다. 창가에 의자가 하나 더 있기는 했다.
“엄청 크다.”
도경의 방에 있는 피아노는 흔히 생각하는 일반 피아노가 아니었다. TV에서 틀어주는 클래식 공연의 피아니스트들이 치는 종류의 피아노였다. 한쪽이 들려 경사진 뚜껑 표면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번쩍였다.
“형이 샀어요? 이거.”
“오래된 거야. 여기로 이사 올 때 집에서 가지고 나왔어. 엄마가 가지고 나가래서.”
지한은 슬쩍 피아노를 건드려보았다. 자국이 날까 봐 막 만지지는 못했고, 손끝만 몇 번 대어봤다. 예상에 부합하는 촉감이었다. 딱딱하고 매끈했다.
“지금도 쳐요? 가끔 심심할 때.”
“말했잖아. 음악을 제일 못했다니까.”
하지만 A를 받았다고도 했다. 도경에게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그건 잘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우.
“마지막으로 친 게 언제예요?”
“몇 년 만에 처음 쳐봤어.”
지한은 뒷다리로 서서 치대는 개를 만지느라 하얀 털 속에 묻힌 도경의 손을 몰래 쳐다보았다. 푸른 핏줄이 보이는 크고 마른 손.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기엔 아까워도 너무 아까운.
“몇 년 만에 쳐봤다고요? 언제?”
“너 방송국 갔다 온 다음날부터.”
개에게 가 있던 시선이 지한에게로 옮겨왔다.
“매일.”
그 언젠가 동공이 가늘어진 생명체의 눈과 닮아 보였던 눈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 안 나지?”
그만큼 아늑한 눈빛이었다.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하듯.
도경이 바로 맞췄다. 지한은 아직도 자신이 지껄인 헛소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나진 않아도 알았다.
“내가 형한테 피아노 쳐달라고 했죠.”
“기억난 게 아니라 때려 맞춘 거지, 방금?”
온기로 따스하던 눈에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그 온도가 지한에게 고스란히 전염되었다.
“네.”
개에게서 손을 뗀 도경이 휴대폰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 잠깐, 이대로 나간다고? 지한이 잠결에 한 말 때문에 매일 연습해 놓고서……?
지한은 도경의 손을 잡아 무작정 피아노 의자에 붙였다. 도로 피아노 의자에 앉게 된 도경이 지한을 의아하게 올려다보았다.
“어, 안 치고 그냥 나가게요? 연습도 했다면서.”
“나 진짜 잘 못 쳐.”
“그래도…….”
연습한 시간이 아까우니까 쳐보라고 하려던 지한은 말을 삼켰다. 도경이 싫은데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을 줄여주진 못할망정 늘리는 꼴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싫은 일을 하나라도 덜 하는 편이 이로웠다. 지한 앞에선 아무것도 참지 말란 말, 단순히 잘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진심이었다.
“억지로 칠 필요는 없고. 싫으면 됐어요. 진짜, 진짜로.”
지한에게 잡혀 의자에 앉긴 했어도 언제든 일어날 자세를 풀지 않고 있던 도경이 뭐에 마음을 바꾸었는지 휴대폰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건반을 덮고 있던 뚜껑이 열렸다. 건반은 까만색 덮개에 한 번 더 덮여있었다.
“틀릴지도 몰라.”
도경이 덮개를 거둬내며 말했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었다.
“괜찮아요.”
“틀리면 바로 멈출 거야.”
도경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떨어졌던 자신감이 몇 초 새 회복된 것 같진 않았다. 그보단 자신이 틀릴 것이며, 틀리는 즉시 멈춰 버리겠다고 단언하는 과정에서 몸에 힘이 들어간 듯했다.
“틀려도 어차피 나는 잘 몰라요.”
완벽하게 연주하든, 엉망으로 연주하든 지한에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한은 간단한 악보조차 읽을 줄 몰랐다. 설령 도경이 틀려도 모르고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알았어.”
여전히 긴장감은 느껴져도, 틀릴지도 모른다고 말할 때보단 확연히 기운을 되찾은 음성이었다.
두 손을 건반 바로 위에 띄운 채로, 도경이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시 정지된 장면처럼 흔들림 없이 떠있던 손가락 중 제일 긴 가운뎃손가락이 하얀 건반을 눌렀다. 아주 높거나 낮지 않은 첫 음을 시작으로 열 손가락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한은 저도 모르게 피아노 옆면에 바짝 붙어 섰다. 잘 못 친다던 말은 역시 거짓이었다. 도경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든, 그를 둘러싼 환경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든 무조건 둘 중 하나였다. 반 박자도 어긋나지 않고 규칙적으로 도경의 손끝에 눌렸다 올라오는 건반이 재생하는 소리는 빠르고 정확했다. 아침저녁으로 맹훈련한 군대의 행진처럼. 막힘없이. 규칙적으로.
잘 살아서 잘 웃는 사람들만 들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듣지 않았던 음악, 듣고 있으면 어디 갇힌 기분이 들어 자의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음악이 오늘은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숨 돌릴 틈 없이 끊이지 않는 선율이 지한의 눈앞에 불러다 놓은 이미지는 10대 시절의 도경이었다. 음악에 제일 자신 없는 고등학생. 하나라도 틀리면 연주를 중단해 버리고 싶어 하는, 그래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떠나버린 연습실에 혼자 남아 연습하는 예민한 소년. 틀릴 때마다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안쓰럽고 대견한 어린애.
오래된 피아노에 몸을 기대고서, 지한은 만끽했다. 도경을 닮은 향이 서서히 퍼져 코끝을 파고들어 오는 공간. 도경의 손가락과 건반이 만나 탄생시키는 음들. 피아노 의자 밑에 들어가 얼굴만 쏙 내밀고 지한을 지켜보는 개. 곧은 자세로 앉아 한 음도 틀리지 않고 연주를 완성해가는 도경. 무해한 것들로만 채워진 시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이 바로 지한의 삶에서 가장 환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고 기억에 담으려 모든 감각을 동원했다. 냄새, 공기, 빛, 소리, 거대한 악기, 작은 짐승 그리고 그것들을 그의 앞에 가져다 펼쳐놓은 도경.
잊고 싶지 않았다. 살아 숨 쉬는 한은. 영영.
#76
첫 잔으로 시킨 프랑스 맥주가 오늘따라 느끼해서 두 모금 만에 네덜란드 맥주로 바꿨다. 그랬다가 네덜란드 맥주에서도 떫은맛이 나기에 새로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런데 신참 바텐더가 야심 차게 내놓은 다리가 휜 잔 모양부터 표면에 뿌려진 정체불명의 가루까지 어디 하나 무난하지 않은 술이었다. 제일 중요한 맛도 구렸다. 진한 브랜디 향과 달콤한 크림이 섞인 술에선 꿀을 탄 화장품 맛이 났다.
“맛이 없으세요? 손님이 칵테일 달라 그러면 꼭 그걸로 만들어줘 보라고 사장님이 부탁하셔서 일부러 드린 건데.”
그러면 그렇지. 이안의 평소 술 취향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리 개성 강한 술을 내놨다 했더니 무영이 쓸데없는 소릴 해놔서 그랬던 것이다.
자꾸 구겨지려는 미간을 억지로 편 이안은 술을 한 모금 더 홀짝였다. 처음 마실 때보단 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냥 바텐더에게 버려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이미 맥주를 두 잔이나 버리게 한 게 신경 쓰였다. 눈 딱 감고 적지 않은 양을 와락 입 안에 들이부었다.
“보기보다 술 세시다.”
“이안이 원래 멋진 남자야.”
“얼굴은 약간, 깔루아 좋아하실 것 같아 가지고.”
“너 그러다 사장님한테 맞는 수가 있다?”
1호점에서 건너와 이안을 이미 알고 있던 바텐더가 농담조로 말하자 신참이 헉, 하고 입을 가렸다. 선배와 사장의 지인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신참은 소심하게 부탁했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입이 방정이라…….”
농담 진담도 분간 못하고 겁먹는 꼴을 보아하니 무영이 또 뭣 모르는 애 앞에서 외국어로 욕을 한 바가지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러시아어로 통화했든가. 러시아어는 무영과 오래 알고 지낸 이안의 귀에도 한국어 욕설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안 일러요.”
고작 이안이 깔루아 마실 것같이 생겼다고 말한 죄로 무영에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무영이 이안 때문에 때린 놈들은 다 국적과 관련해 발언한 놈들이었다. 혼혈처럼 생겼다. 엄마가 외국인이냐. 아니면 아빠가 외국인이냐. 그나마도 어릴 때나 받았던 질문이다. 이젠 이안을 혼혈로 보는 생선 눈깔들도 없었다. 술 못 마시게 생겼단 소린 친구들에게도 자주 듣는 소리였고, 실제로도 잘 못 마셨다. 그러니 신참 바텐더는 무영에게 맞을까 봐 쫄 필요 없었다.
빈 잔을 내려놓은 이안은 잔 옆에 가진 현금을 놔두었다. 구겨진 걸 못 본 척하고 나가려다 이왕 좋은 일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보기 좋게 펼쳐두기까지 했다. 무영이 알면 도로 돌려줄, 술값은 아니고 바텐더 용돈 하라고 준 팁이었다.
평생 다시 안 볼 것 같은 인간의 앞에서일수록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다. 상대도 이쪽을 평생 안 볼 것이란 생각은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럴수록 뒷말이 쉬워진다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뉴스에 얼굴을 비출 가능성이 높은 이쪽이 무조건 불리하다고. 잃을 것 많은 쪽이 항상 더 조심해야 한다고…….
도경이 가르쳐 주었는데.
클럽을 빠져나온 이안은 골목으로 들어가 뒷주머니에 숨겨뒀던 전자 담배를 꺼냈다. 일반 담배는 그때 카페에서 혼자 청승을 떨어가며 시도했던 이후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았다. 지난주에 무영의 클럽 1호점과 2호점을 오가며 일하는 디제이가 화려한 색깔의 케이스를 들고 있기에 그게 뭐냐 물었더니 전자 담배라고 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전자 담배에선 포도 사탕 냄새가 났다. 껍질도, 향도 무영이 들고 다니는 전자 담배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케이스 종류가 여럿이란 디제이의 설명에 홀랑 넘어가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담뱃값보다 더 많은 액수를 심부름 값으로 받은 디제이는 약속대로 담배를 구해다 주었다.
약을 하느니 차라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라고, 유학 시절 소현은 입이 닳도록 충고했었다. 그녀는 친구들이 물에 뭘 타서 마시든 상관 않았지만 누가 이안에게 대마라도 권하면 방어적으로 굴었다. 이안을 특별히 아껴서는 아니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막내딸이 낳았단 이유만으로 장 회장의 편애를 사는 이안을 쓸데없이 운 좋은 놈 취급했다. 그럼에도 이안의 안위를 신경 썼던 까닭은 아마 가까이에서 지내는 혈연이 그 하나뿐이라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핏줄이니까.
이안은 두꺼운 빨대처럼 생긴 담배 입구를 물고 힘껏 빨아들였다. 입 안 가득 열대과일 향이 퍼지며 강한 타격감이 식도를 스쳤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낯설었지만 적어도 연초의 역한 쓴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경이 봤다면 또 모자란 짓하고 있다는 식으로 고개를 내저었겠지. 한 마디 얹었을 수도. 강이안, 담배 연기는 사람 없는 데서 뿜어. 짜증을 꾸역꾸역 참는 목소리로 쏘아붙이지 않았을까. 그보다 더한 진상을 부려도 웃으며 받아줄 수 있었다. 밥맛 떨어지게 음식 앞에서 인상을 팍팍 쓰며 앉아 있어도 좋고 이안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다 시비를 걸어도 좋으니까 그냥 예전처럼 만나주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잘못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죽을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남의 얼굴을 우산으로 긁은 것은 확실히 위험한 짓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직접 찾아가서 사과도 했다. 치료비용을 다 대주겠단 말도 진심이었다.
싫다고 한 사람은 지한이었다. 현금을 시우에게 대신 쥐여줄까 생각도 해봤다. 그랬다가는 지한만 수틀리게 해서 제대로 맞을 것 같아 때려치웠다.
살아생전엔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던 소현이 이제 와서 원망스러웠다. 소현이 살아 있었다면 맞을 각오로 따져 물었을 것이다.
도경이 지한을 좋아한다는데 그것에 대해서 누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체 왜 지한을 도경의 삶에 등장시켰냐고. 절망적이었다. 지한이란 이름을 도경의 귀에 들어가게 한 사람은 소현이지만 신상을 털어다 준 사람은 이안 본인이었다.
도경 없는 삶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도경과 사귀게 되는 꿈은 꾸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관계로든 줄곧 곁에는 머무를 줄 알았고, 그 정도로 만족하고 살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아예 못 보고 살게 된다는 가정은 해보지 않았다.
어려서 이안은 친구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때로는 행동이 굼떠서, 때로는 눈이 너무 커서 그리고 때로는 안 웃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땐 안 웃어서 놀림 받았다.
「네가 우니까 재미있어서 더 하는 거잖아.」
남들이 자길 놀린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이안인지라 자주 우는 편은 아니었다. 무영이 이안의 편을 들어주고 어린 애들을 협박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눈물도 늘었던 것 같다. 남들이 놀리려고 하는 말을 점점 알아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 울었어.」
「너 진짜 1분 동안 단어 하나밖에 못 읽어?」
「아니야!」
「근데 왜 울어?」
유명한 미국 대학이 주최하는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필수로 봐야 하는 시험이 있었다. 이안의 학년에서만 그 시험을 본 학생이 열 명가량 됐다. 이안은 그중 최하 점수를 기록했다. 커트라인을 넘기지 못했음은 두말할 것 없었다.
「걔들 너 깔보는 거야. 네가 자기네보다 멍청하다고 생각해서.」
당시 6학년이던 도경은 그 시험을 통과하고 이미 캠프까지 다녀온 지 오래였다. 그는 울먹거리는 이안에게 공감해주지 않았다.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읽고 있던 책을 덮기는 했다.
「그건 좋은 거라고. 나쁜 게 아니라.」
「나 멍청하다고 하는 게 좋은 거라고……?」
그때 그가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이안은 20대가 넘어서까지 생생히 기억했다. 둥글둥글 귀여운 선으로 그려진,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개와 자동차. 그림만도 꺼림칙한데 그걸 원서로 읽는 도경은 더 무서웠다.
「깔보면 방심하잖아. 방심이 뭔지 알아?」
사실 확실하겐 몰랐지만, 이안은 끄덕이고 봤다. 무섭지만 그만큼 똑똑하기도 한 도경에게 멍청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방심. 안심과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로 기억했다.
「알아, 뭔지.」
「넌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준비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유리하지. 훨씬.」
「뭘 준비해?」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걔네한테 뭘 갚아주고 싶은데?」
대부분이 필드로 놀러 나가 비다시피 한 교실 뒷문을 벌컥 열고 등장한 소현 때문에 도경은 더 얘기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말은 쌀쌀맞게 했을지언정 이안은 도경의 조언에 감동받았다.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하라는 발상, 도경이 아니었다면 이안 혼자서는 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감동받은 것과 별개로 결과는 처참했다. 도경이 하란 대로 그다음 일주일간 평소보다 더 마음 놓고 울었다. 시험 결과가 나온 지 8일째가 되던 날 아침, 뒷자리 애들과 영어로 떠들면서 이안은 끼워주지 않는 짝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려는데 난데없이 딸꾹질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주위 애들은 있는 대로 폼을 잡다 말고 딸꾹질하기 바쁜 이안이 웃겨 죽으려고 했다. 그날의 비극은 러시아에서 돌아온 무영이 대신 두 살 어린 애들에게 알아먹기도 힘든 욕설을 씨불이는 배드엔딩으로 끝맺음했다.
「걔 지금 눈에 뭐 이렇게…… 이상한 껍질 쓴 거야. 상태가. 그래서 우지한만 좋아 보이고 다른 건 다 나빠 보이는 거지.」
무영은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공부에 별 미련을 두지 않았어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성적은 이안보다 좋았다. 물론 무영이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분야는 따로 있었다. 남이 감추고 싶어 하는 속마음을 알아맞히는 일에 무영보다 더 특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무영이 한 말이니 영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도경은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다. 콩깍지는 누가 억지로 벗기려 들수록 단단해지는 것이었다. 부모가 하지 말라는 일일수록 목숨 걸고 도전하는 사춘기 것들을 보면 답이 나왔다. 시간이 약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벗지 말래도 알아서 벗겨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안이 아는 도경은 무영보다 더 똑똑했다. 감정이 마음대로 방향을 틀지 않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그 똑똑한 도경이 소현과 놀아났던 지한에게 넘어간 연유는 당최 납득이 가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혔는데도 용서하고 다시 재결합하는 관계엔 물론 그들만 이해하는 애정도 있었겠지만, 도경이 소현과 갈라서지 않은 데엔 그녀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기업 손녀라는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으리란 점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도경은 지한을, 그러니까 입에 담기에 저렴한 표현이라 질색하긴 했지만 결국 무영이 언젠가 먹고 버린다고 했던 표현처럼 넘어오게 만든 다음 걷어차 버리려고 접근했던 것 아닌가?
그렇게 시작해서 진심으로 옮겨가는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면 애초에 도경이 지한에게 접근한 목적을 잘못 짚었던 것일까. 이안은 전자담배의 두툼한 입구를 입술로 감싸고 처음보다 더 세게 빨았다. 기침이 나며 눈앞이 핑 돌았다.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굴하지 않고 빨아들였던 것을 내뿜는 즉시 새로 빨았다.
처음부터 그 까다로운 소현의 눈에 든 남자를 가까이서 보기만 할 작정이었다면. 그 이상의 목적은 하나도 없이, 오직 궁금증만 해소하고 손 털 생각으로.
그런 일은 더 불가능했다.
골목에 그림자가 졌다. 키 큰 백인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며 벽에 기댔다. 짧은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에 그림이 너무 많아 원래 피부색을 찾기 힘들었다. 독한 담배 냄새에 적응해갈 무렵, 남자가 이안에게 인사를 건넸다.
“Having a good time?”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No.” 아니.
별생각 없이 건넨 인사말에 부정문 대답을 들으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백인이 이안에게 관심 어린 눈길을 주었다. 도경과 정말 안 닮았다. 눈앞의 남자는 말 그대로 백인이었고 도경은 한국인이었으니 닮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Where are your friends?” 네 친구들은 어디 있어?
도경과 닮았어도 뭘 어쩌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해봤다. 닮은 사람과는 뭘 해도 의미가 없었다. 도경이 아니면 소용없었다. 어차피 저열한 성욕이나 풀고 싶어 함께 하길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경의 온전한 믿음을 사는 유일한 대상. 그 위치만 지킬 수 있다면 친구로 머물든, 매형과 처남으로 부르는 사이로 변질되든 상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Nowhere.” 아무 데도.
아까 룸이 있는 1층 복도에서 에스더를 잠깐 봤다. 무영의 사무실에서 놀고 있는지,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찍어 나갔는지 다신 보지 못했다. 무영이 클럽 사업을 시작하면서 새로 사귄 사람들도 두어 명 보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안의 친구들이 아니었다. 고로 그의 친구들은 아무 데도 없었다.
“You look bored.” 지루해 보이네.
“That’s cause I am.” 지루하니까.
이안의 의중을 가늠해보듯 몇 초 더 눈을 맞춘 후, 남자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Wanna join us? My friends are down there―.” 같이 놀래? 내 친구들 아래 있는데―.
“No.” 아니.
남자는 민망해하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지하에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주더니, 이안이 왜 그런 걸 알려 주느냐고 짜증 내기도 전에 이유까지 덧붙였다.
“In case you change your mind.” 네가 마음 바꿀 때를 대비해서.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 발로 밟은 남자가 돌아섰다. 덩치도 좋고 키도 컸다.
장 회장은 이안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섰을 때부터 상종 말아야 할 인간 리스트를 외우게 했다. 주사기로 혈관에 약물을 주입하는 놈. 몸에 그림 그리는 놈. 사회운동하는 놈. 콤플렉스 심한 놈. 그 외에도 수십 가지 피해야 할 인간상이 있었는데 유학 가면서부터 장 회장 무릎에 앉을 일이 없어져 안 외우다 보니 홀라당 잊어버렸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항목들은 필히 최상단에 있는 주요 사항들이었을 것이다. 몸에 그림 그린 놈은 높은 확률로 다양한 약물에도 개방적일 것이다. 그러니 글러 먹었다. 도경이랑 닮지도 않았고.
아니, 도경과 닮은 건 소용없대도.
담배를 꼭 쥐고 지하로 내려오니 아까보다 사람이 많아져 있었다. 컨디션이 별로였다. 그렇다고 집에 가자니 금요일 밤이 아까웠다. 바로 가려던 이안은 방향을 틀어 안쪽에 난 계단을 올랐다. 플로어에서 나는 음악 소리가 복도를 쿵쿵 울렸다. 노크도 하지 않고 무영의 사무실 문고리를 내렸다. 시끄러워서 노크해봤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언제 새로 들였는지 세 대의 모니터에 둘러싸여 앉아있던 무영이 문을 닫고 들어오는 이안에게 손을 흔들었다.
“왜 안 놀고 그냥 와?”
“누구랑 놀아, 내가.”
“골목으로 들어간 애 별로였어? 몸은 좋아 보이던데.”
왜 모니터를 세 대씩이나 들였나 했더니 CCTV를 맘껏 보려고 그런 것이었다. 이안은 담배를 커피테이블에 던지며 소파에 앉았다. 이안은 담배를 커피테이블에 던지며 소파에 앉았다.
“걔보단 형이 더 잘생겼어.”
“그런 당연한 말은 할 필요 없어.”
무영이 물 마시듯 하는 자화자찬은 이제 한 귀로도 담아 듣지 않고 넘기는 스킬이 생겼다. 이안은 목을 한껏 뒤로 젖혔다. 천장이 시커멨다. 가뜩이나 사방이 까맣고 빨간데 조명까지 어두웠다.
문득 작년 겨울의 어느 날을 회상했다. 도경의 계획이 뭐든 아무도 훼방 놓지 못하도록 도와주려고 지한을 이 방에 숨겼던 그날. 도경과 지한은 뭘 했으려나. 그날 그냥 아무나 지한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놔뒀어도 현시점에서 도경이 지한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까. 누구 하나는 술을 처마시고 떠들어대지 않았을까. 우지한 씨 근데 소현이 전 남자랑 뭐 하는 거예요, 하는 한 방으로 지한이 나가떨어지는 꼴을 구경하고 있었어야 하나.
“아까 걔는 너랑 했으면 뭐야, 포지션이.”
“뭔 포지션.”
무영이 손가락으로 각각 위쪽과 아래쪽을 한 번씩 가리켰다. 이안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감정적으로 동요해 경솔하게 입을 놀린 죄의 대가가 컸다.
“그 얘기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형.”
“28년 산 놈이 뭐 그런 거 부끄러워? 내 앞에서?”
“안 부끄러워!”
“오. 깜짝이야.”
“내가 싫은 건, 위고 아래고 그런 게 아니라.”
왜 무영에게 성적 취향을 미주알고주알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머리와 입이 따로 놀았다. 아까 마신 칵테일이 보기보다 셌다.
“자기 거 갖다 박으면 갑자기 지가 손님 된 줄 아는 놈들이 싫은 거지, 이상한 말만 안 하면 뭔 자세로 어디 넣었다 빼든 비비든 상관없어. 내가 그때 이 얘길 한 건 도경이 형이 그런 소리 들었을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랬던 거야, 그냥. 그래. 그랬던 거야…….”
그때 흥분해서 경솔하게 군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자각한 지 일 분도 안 지났다. 그때보다 더한 소릴 해버렸다. 혼자 고조되었다 급격히 가라앉는 이안의 원맨쇼 관람을 마친 무영이 태평하게 말했다.
“형은 그런 놈 아닌데.”
“뭐가.”
“갖다 박는다고 손님 된 줄 아는 놈.”
어쩌라고.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래. 형이랑 자는 사람은 좋겠네.”
“야.”
삽시간에 표정을 확 굳힌 무영이 일어나 소파로 걸어왔다. 이안은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빠르게 점검했다. 무영과 자는 사람은 좋겠다고 했다. 뭐가 불쾌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언니 남편이랑 자고 형 부인이랑 자는 사람들도 있어. 너무 그렇게 어? 확신하는 거 아니다.”
“형 오늘 하는 말 잘 못 알아듣겠어. 힘들면 그냥 영어로 말해.”
무영은 도경의 것을 빨고 싶은 게 아니라 빨리고 싶은 거였냐고 이안을 놀렸었다. 5학년 때인가 이안이 장 회장에게 도경과 결혼하겠다고 해 집 안을 뒤집어놓은 적 있었다.
그땐 결혼해야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줄 알아서 그랬다. 조금 더 크고 나서 그게 아닌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도경과 소현의 결혼을 빌었다. 소현은 죽었다. 이 시점에서 이안이 뭘 더 어떻게 해야 도경을 계속 볼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이거 도경이 형이 돌려주래.”
이안은 바지 앞주머니에 넣어 온 펜을 꺼내어 담배 옆에 놓았다. 도경이 보고 싶었다. 화가 났어도 금방 풀릴 줄 알았다. 무영의 생일날 도경은 이안의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다. 울고 싶었는데, 무영이 보는 앞에서 또 울었다가 뭔 사달이 날지 몰라 혼자 화장실에서 실컷 울었다. 도경이 왜 그리 화가 났는지……
사실은, 알았다. 지한을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이런 천하에 재수 없고 빌어먹을, 좆같은.
“이건 뭐야. 담배 아니야?”
도경이 돌려준 펜을 거들떠도 안 보고 옆으로 치운 무영이 전자 담배를 집어 들었다.
“응.”
“네 담배야? 어디서 났어.”
“디제이 하는 애. 걔한테 나도 하나 구해 달라 그랬어.”
“다음부터 이런 건 나한테 말해. 위험하게.”
울컥 올라오던 울분이 가라앉았다. 이안은 담배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무영을 새삼스럽게 인지했다. 허연 피부와 색소 옅은 눈동자를 가졌음에도 허약해 보이지 않는 남자. 이안의 부탁은 뭐든 거절하지 않을 사람.
지한의 얼굴을 망가트려 놓으라고 하면 사람을 고용해서든 무기를 써서든 그렇게 해줄 것이고, 그보다 더한 트라우마를 남겨달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한을 재기 불능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한이 망가지면 도경이 슬퍼졌다. 그리고 언젠가는 알게 될 테지. 이안이 부탁했단 것을.
“이안.”
남은 선택권은 없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왜.”
지한이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지한이 과연 진실을 알고도 도경을 개처럼 충성스러운 눈으로 쳐다볼까?
“아니.”
네가 형을 그만큼이나 좋아하게 됐다고?
“정말 없어?”
무영이 이안을 무영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바깥쪽은 노란색 같다가 동공에 가까워질수록 적갈색이 되는 눈이 뿜는 시선을 이안 또한 피하지 않았다. 불순한 공기가 그들 사이를 배회했다. 보이지 않는 뱀이 이안의 목에 똬리를 틀었다. 그는 겨우 대답했다.
“없어.”
마침내 무영의 눈이 이안을 풀어주었다. 도경이 돌려주라고 한 펜을 들고 책상으로 간 무영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안은 손으로 목을 감쌌다. 진짜 사람의 손에 의해 목이 졸렸다 풀려난 듯 피가 한꺼번에 돌았다.
잘했어. 이안은 무영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은 스스로를 북돋았다. 잘한 거야. 남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한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시험에 들 예정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도경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땐 그들을 납득해야만 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