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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도시 (66/67)

유령 도시

이 무렵, 로만의 전투도 끝이 났다.

농부로 가장한 괴인들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우외환을 견디다 못한 신성 제국의 지휘부에서 퇴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곧 들이닥칠 아레인의 무시무시한 군세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그들 지휘부는 승산이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전투에 투입된 로만 연합의 병력들과 그 지휘부, 각 공왕들과 귀족들은 아레인에 대한 고마움이 그 무엇보다 컸다. 더불어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한 경외심이 싹텄다.

“아레인엔 어떤 일이 있어도 등을 돌릴 수 없소.”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였으니…….

칸멜 자작은 혼란을 조장하고 로만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저잣거리에 그 목이 걸렸다. 가르텐 백작이 적들과 내통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기 때문이다.

로만으로 돌아오는 병력들은 신민들의 넘치는 환호와 칭송을 받았다.

신을 믿는 그들은 영광의 승리라고 자부했다. 자신들이 옳았다고, 자신들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신이 손을 들어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아스카론이 보기에는 한심한 일이었다.

‘그대들은 부디 그릇된 이들의 전철을 밟지 말기를.’

결국 그들이 추앙하고 있는 신도 아스카론이란 증명이었다. 이름을 다르게 부르면 어떠하리. 모두 같은 신인 것을.

사실 아스카론의 이름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떨 때는 이런 이름으로, 또 어떨 때는 저런 이름으로 불렸으니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돈을 바치라는 강요도 하지 않았다. 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신앙을 가지는 건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지, 헌신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공간, 그 공간을 유지하고 그에 속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 그것이 성금의 목적이었다.

빈 공터에서는, 천막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가질 수 없는가? 그건 아니었다. 사람들의 봉사만으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신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불우 이웃을 돕겠다느니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겠다느니, 겉을 살짝 치장한 채 모금한 돈으로 거대한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까닭에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

아스카론은 단지 미래를 바랄 뿐이었다.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들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후에는 더 나은 인성을 가지고 주변을 살필 수 있기를, 함께 웃고 기뻐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전부였다.

저들에게나 듣기 좋을 노래가, 혹은 스스로의 세뇌를 통해 착각을 불러오는 간절한 기도가 그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의 이름을 파는 일은 그의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언제쯤 내가 웃을 수 있을까?’

아스카론은 씁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었다.

* * *

마르크는 아레인을 떠나는 오딘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었다. 역시나 그에게 조심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쫓아가서 조심하시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또 무사히 돌아오실 테니까요. 돌아오실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저희 이스론은 아레인과 연을 맺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제가 죽고 그 후대, 또 그 후대가 될 때까지 이스론은 아레인을 따를 겁니다.’

* * *

신성 제국의 황도는 유령 도시가 되어버렸다.

배짱 좋은 도적들도 황도에 발을 들여놓진 못했다. 들어서는 순간 죽는다고 믿어서였다.

가는 길에 사람이 줄어들수록 오르골의 이동은 빨라졌다.

그는 아레인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멸할 참이었다.

오르골의 얼굴은 흡사 마족의 면상을 연상케 했다. 살인을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인상은 험악해졌던 것이다.

깨어진 거울 앞에 선 오르골은 흉측하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흡족함을 금치 못했다.

“이제야 좀 어울리는군. 어디 나가도 꿀리지를 않겠어.”

누가 보더라도 기겁을 할 얼굴이었다. 그 반응을 보는 것은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쾌락을 안겨 주었다.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그는 주위를 감상했다. 사방으로 널린 처참하게 죽은 자들의 시신이 그를 웃게 만들었다.

“킬킬, 이제는 이곳도 버려야겠군.”

어제 이놈들을 죽인 후, 이제 주위엔 인간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인기척들이 들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여

그의 앞을 가로막지 말지어다~♪

이것은 죽음의 서이니라~♬

부디 삶에 미련을 버릴지언정~♩

그와 마주하지 말지어다~♪

붉게 물든 피는 대지를 적시고~♬

주인 잃은 영혼들은 어둠을 떠도네~♪

정말 이상한 노랫말이었다.

노랫말을 도저히 못 들어줄 것 같아 오르골은 안 그래도 험한 인상을 더 구긴 채 노랫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앞쪽으로 한 소녀가 얼굴은 면사포로 가리고, 소매 폭이 넓은 옷을 걸친 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노랫소리는 그 소녀 것임이 분명했다.

[썩 그치지 못해?]

일부러 오르골은 소녀의 뇌리에 말을 넣었다. 더한 위협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협박이 통했는지 소녀는 노래를 멈췄다. 뿐만 아니라 춤사위도 그만두었다.

그러나 자신 말고 다른 이의 눈치도 보아야 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다시 춤을 추며 노래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오르골이 짜증이 배가되었다.

“닥치지 못해!”

공기를 찢어발길 것 같은 소리가 터졌다. 소녀는 이에 기가 죽었는지 다시 뒤를 보았다.

그때, 안개 틈을 비집고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기억에 익은 사내였다. 그는 바로 오딘이었던 것이다.

오르골의 입가에 잔악한 미소가 걸쳐졌다.

“네놈이었군.”

오딘은 뜬금없이 물었다.

“노래 좋지?”

묻는 모양새로 봐서 춤과 노래는 그가 시킨 듯했다.

노래를 부른 이는 다름 아닌 메이였다. 그녀는 반강압적으로 노랫말을 따라 해야만 했다. 잘 부른다면 카르만에 대한 선처도 생각해보겠다고 하였으므로.

메이의 표정도 곱진 못했다. 유치찬란한 노래에 춤까지 시켰으니 기분이 좋을 까닭이 없었다.

오르골은 이미 노래에 관심을 접고 오딘에 대한 흥미를 드러냈다.

“안 그래도 찾으러 가려던 참인데…….”

“네 녀석이 맞긴 맞는 모양이로구나. 마타하리의 식구를 죽인 게.”

“마타하리? 그건 뭐지?”

“가면 알게 될 거야.”

“어디를?”

“어디긴 어디야. 본 좌의 성이지. 그건 그렇고, 전보다 더 흉물스럽구나. 그 녀석은 밑바탕이 좋질 않은가 보지?”

오르골은 오딘을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네놈은 많이도 아는구나.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았지?”

“아는 녀석이 가르쳐 주더군. 얌전히 따라오는 게 어때? 그럼 본 좌가 최대한 고통을 덜어주마.”

마령임을 알면서 누가 감히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기가 찬 나머지 오르골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친놈, 날 우습게봤다가는 큰코다칠 거다. 카르만을 가졌을 때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 난 마왕의 힘도 지녔으니까.”

“마왕이라……. 그게 볼 만하겠군.”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오딘의 신형이 번쩍였다.

어느새 자신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딘을 보며 오르골은 그대로 달려 나갔다.

판단이 옳았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빛이 번쩍인 것으로 보아 조금만 늦었다면 그 자리에서 옆구리를 베일 뻔했다.

‘이 몸으로도 긴장을 하게 만드는군. 괴물 같은 녀석.’

방심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딘이 다시금 거리를 좁혀 나란히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골이 평소 애용하던 환영검이 시리도록 찬 기운을 토해냈다.

파캉!

용과 호랑이가 맞붙은 것만큼이나 강맹한 기운들이 부딪쳤다 떨어졌다. 그 반작용으로 두 사람의 몸도 벼룩처럼 떨어졌다 가까워졌다.

오딘의 흑룡검엔 어마어마한 강기가 깃들어 있었다. 오르골의 환영검에도 그와 견줄 정도의 힘이 깃든 듯했다.

마주치고 떨어지기를 수차례.

첫 번째 격돌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나중으로 갈수록 두 사람이 튕기는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점이었다.

급기야 밀쳐 내고 밀려나는 상황으로 변모했다.

엄청난 기의 충돌이 거대한 바람을 몰고 오며 공기의 흐름조차 변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나가 에워싸는 것은 비단 검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몸 주변으로 둥글게 형성된 강기막은 닿는 모든 것을 바숴버렸다.

메이의 눈에서 두 사람이 너무 멀어졌다. 그래도 몸 주변으로 형성된 마나벽이 저들의 움직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사람인지 새인지 모를 일이었다.

오딘과 오르골은 허공을 차고 세 번을 뛰어오르면서도 검을 섞었다. 그 높이가 무려 3층 건물 이상이었으니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었다.

그 여파로 주위에 자리한 건물들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무, 돌로 모자라 쇳조각까지…….

검끝을 예상시키는 한 점이 수십 개의 점을 형성했다. 그 점들은 꼬리가 달린 뱀처럼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상대에게서도 방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스파크를 튀겨 내는 하나의 구.

두 기운이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폭발이 야기되었다.

쿠와앙!

대지가 상흔을 떠안고 부르르 떨며 신음했다.

멀리서 일어난 폭발은 점차 거대해지며 수많은 파편들을 튀겨 냈다.

메이의 눈앞에도 시커먼 쇳덩이가 날아드는 중이었다. 땅이 흔들려 균형조차 잡기 힘든 판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고 소릴 질렀다.

“엄마야!”

바로 그때,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건물 위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카르만이 몸을 날려 그녀를 안고 다시 안전한 건물 위로 솟구친 것이다.

“폐, 폐하…….”

놀라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녀가 알던 성황은 나약하기 그지없던 존재였다. 그에게 이런 힘이 숨어 있는지 알았다면 다칠까 노심초사했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메이, 이제 난 더 이상 성황이 아니야.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오빠라고 부르든가.”

“그, 그래도…….”

“부탁이야.”

카르만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메이는 자신이 그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은 일 같았다. 여태 불렀던 호칭을 포기하는 것도 그랬고, 성황과 시녀의 관계가 아니라면 당장에 어색해질 것이라 믿었다.

메이가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카르만이 한 가지 당부의 말을 건넸다.

“내가 없더라도 꿋꿋이 살아야 해. 또한 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돼. 알았지?”

치열한 전투로 인해 대지는 이따금씩 뒤흔들렸다.

그리 튼튼하지 못한 건물들은 금이 가다 못해 부서지기까지 했는데도, 메이는 저쪽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카르만이 양어깨를 붙들고 있어주었고, 그의 두 눈이 믿게끔 해주었던 덕이다.

메이는 앙증맞은 입술을 비죽이 내밀며 생각해보았다.

저 사람이 성황을 죽이거나, 벌한다면 과연 자신이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카르만이 성황의 자리를 내어주기 직전 이상해졌고,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했다지만 과거의 온정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하여,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노력은 해볼게요.”

그것이 그녀가 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카르만은 그녀에게 예전보다도 더한 다정한 눈길을 건네었다.

‘메이,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부디 내가 이 세상에서 없더라도 꿋꿋하게 잘 살아야 해.’

카르만은 급작스레 메이를 안고 갑자기 건너편 건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눈은 정확했다. 그가 있었던 건물, 그 건물은 한 줄기 빛에 폭삭 가라앉았다.

후웅- 쾅!

귀의 착각이었을까. 메이는 꼭 폭발이 먼저 일어난 후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서늘해진 가슴에 그녀는 카르만의 가슴에 머리를 콕 박았다.

카르만은 메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바로 그때, 앙칼진 목소리가 둘 사이로 날아들었다.

“카르만, 네 녀석도 있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오르골이 대로변에서 카르만을 쏘아보고 있다.

작금, 카르만에게 오르골은 감내하지 못할 대상이었다. 게다가 그를 막아줘야 할 오딘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카르만은 한 손으로는 메이를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검을 더듬었다.

그때, 오르골이 솟구쳤다. 과한 빠르기였다.

메이를 등 뒤로 돌릴 무렵, 오르골의 손바닥에서 마계에서나 볼 법한 시커먼 불길이 치솟았다.

‘내가 너무 늦었다.’

카르만은 운명을 직감했다.

바로 그 순간, 파공음에 이어 굉음이 들렸다.

우웅-! 쾅!

방금 무너진 건물, 그 잔해 사이에서 시커먼 옷을 걸친 인영이 솟구치며 일검을 날린 것이다.

쿠콰콰콰콱!

어마어마한 힘을 감당하지 못한 오르골의 신체가 땅에 쓸리며 건물 벽을 뚫고 안으로 처박혔다.

“건방진 녀석.”

이죽거림의 주체는 오딘이었다.

그 짧은 순간, 앞에 선 사람은 오르골이 아닌 오딘이 되었던 것이다.

오딘의 눈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비록 외모는 그대로라지만, 살기와 마기가 흘러넘쳐 누가 나쁜 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건물 벽이 바숴졌다. 그리고 잔인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메이는 둘째 치고 카르만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오딘의 힘이 상상을 불허한다지만 오르골 또한 만만치 않다. 신체가 강철로 탈바꿈한 것인지 오르골의 피부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씹어 먹을. 이래서 조금 더 죽인 후 가려고 했더니…….”

그 말에서 카르만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럼 죽이면 죽일수록……?’

강해진다는 말이 될 것이다.

마령이 자신의 몸을 가졌을 땐 그렇지 않았다.

사실 무리될 것도 없었다. 육신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자 오르골은 일부라고는 하지만 마왕의 힘까지 부여받았다.

분명히 과거 마왕이 그러했다.

마계와는 달리 제약을 받는 대륙이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대해지는 힘. 그 원인이 지금 오르골이 내뱉은 말에 있었다.

마치 한 수 접어주었다는 말처럼 들리자 오딘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시간을 줄 테니 더 죽이고 와라.”

카르만과 메이가 듣기엔 너무도 황당한 얘기였다.

아무리 자신과 상관없다지만 사람들을 더 죽이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마령이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오르골 역시 자존심이 상했다.

“필요 없어.”

곧 둘은 눈을 부라리며 재격돌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공격을 퍼부어대며 멀어졌기에 카르만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휘유, 오딘이란 사람 역시 정체가 의심이 가는군.’

아무리 대단한 전투라지만, 오딘과 아그리스의 사투를 봤던 사람들이 목격했다면 그때의 전투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을 것이다.

칠 주야의 싸움이 반나절로 줄어들었다.

“학… 하악…….”

오르골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에 오딘은 아직까지도 팔팔했다. 그의 체내에 축적된 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긴 시간을 싸우다 보니 상흔이 있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딘의 상흔은 생채기에 가까웠고, 오르골의 상흔은 지독할 정도로 끔찍했다. 마령이 빠져나가면 살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오르골은 오딘을 직시한 채 경각심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불현듯 오딘이 오르골 뒤의 하늘을 보며 크게 놀랐다.

“저게 마왕인가…….”

과연 머리 위를 가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오르골의 시선이 오딘이 향한 곳을 좇았다. 황당하기는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신체를 뒤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 위의 그림자는 마왕이 아닌 낮게 깔린 구름이었다.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이를 갈 무렵, 오딘이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탁, 탁, 툭, 타닥!

번개 같은 손놀림이었다.

부지불식간에 혈도가 눌린 상태라 오르골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래서야 령이 빠져나갈 수도 없다.

오딘은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멍청한 자식아, 죽이려면 진즉에 죽였다. 다행인 줄 모르고.”

카르만이 올 것도 없었다.

이것으로 모든 사태가 마무리된 것이다.

카르만과 메이는 오딘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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