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사탑의 주인 (50/67)

마도사탑의 주인

같은 마법사라도 흑마법사들은 대륙에서 철저히 배척당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암흑의 마나는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며 더욱 사악한 성질의 것으로 변해갔다.

항간에는 악마에 영혼을 판 자들만이 흑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이 까닭에 흑마법사들은 세상살이에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나마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자들은 성질이 개차반이거나 마법 실력이 아주 뛰어난 자들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다 보니 연애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 가정을 꾸리는 건 더더욱 힘들었다.

병에 걸리거나 크게 상처를 입어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자비로운 신의 대리인이라는 신전의 신관들조차도 그들을 치료하는 것은 거부했으니까.

이렇듯 악감정이 쌓이다 보니 흑마법사들도 자연히 세상에 대한 증오만이 늘어갔다.

그들이 믿는 것은 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흑마법사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부류인 마도사들뿐이었다.

암흑의 마나는 이들의 주장대로 마계가 아니라 세상에 떠다니는 것이 맞았다. 비록 불순하긴 하지만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

어두움이 없는데 빛을 어떻게 느낄 것이며, 불행을 겪은 적이 없는데 행복을 어떻게 느끼겠는가. 또 구속을 당하지 않았다면 자유를 만끽할 수도 없다.

같은 이치였다.

크게 그릇되지 않았음에도 나쁘다 한다.

차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한 흑마법사들은 독한 마음을 품고는 했다.

그들 자신이 악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세뇌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벽과 부딪쳤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벽.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목에 현상금이 붙어 짐승처럼 사냥을 당하기 일쑤였고,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기왕에 저질러진 일. 살기 위해서는,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뭉쳐야 했다.

이것이 마도사탑, 즉 마탑의 모태가 되었다.

마도사탑에 관한 한 흑마법사들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이곳으로 엘룬을 데려온 흑마법사 슐트 역시 그런 눈빛으로 탑 윗부분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저 상층부에 발을 디뎌 볼 날이 있을까?”

그것은 슐트의 바람, 아니 꿈이었다.

“상층부? 못 올라갈 이유라도 있나?”

엘룬이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오늘을 제외하고 그는 이 탑에 왕래해본 적도 없거니와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흑마법사였던 발본에게조차 말이다.

슐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능력이 받쳐 주질 못하기 때문이지.”

“능력?”

“그렇다. 실력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층 높이가 정해진 것은 일종의 율법이지. 일 층부터 십 층, 쉽게 말해 삼 층은 삼 서클이고 십 층은 십 서클이다. 일 층과 이 층은 예외이지만. 이해가 되나?”

수긍이 간다는 듯 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 층의 넓이는 비슷해 보였다. 말인즉슨, 서클이 높은 마도사나 흑마법사일수록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따로 마법사를 거느려 보지 않았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고서클의 마법사가 저서클의 마법사보다 현저하게 적은 것은 상식이었으므로.

여전히 상층부를 올려다보며 슐트는 그곳에 있을 위인들에게 부러움을 드러냈다.

“쿠쿠, 분명 저 안에는 대단한 마법 서적들과 듣도 보도 못한 마법 무구들이 산재해 있을 거란 말씀이야.”

문득 엘룬은 그의 말을 곱씹어보다 의문이 들었다.

10서클은 드래곤에게만 허락된 권능이다.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 못 된다는 얘기다.

인간의 사서에 기록된 최고의 서클은 8서클이었다.

그 경지에만 이르러도 사방에서 떠받들거나 아무리 대단한 단체라 한들 함부로 적대할 수가 없는데, 그런 존재가 굳이 마탑에 머무를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 서클? 십 서클은 세상에 없을 텐데?”

“모르는 일이지, 가보질 않았으니.”

엘룬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으나 슐트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그에게는 자부심으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엘룬은 그 부분에 관해 더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곧 내부로 들어섰다.

밖에서 볼 땐 몰랐지만, 안은 한 층에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명은 운집될 수 있을 정도로 꽤 넓었다.

엘룬의 눈에 로브를 입은 이들 말고도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저들은 보수를 받나?”

“노예다. 출신은 다양하지. 본래 천한 것들서부터 상인, 귀족, 왕족까지. 꼭 인간만 있는 건 아니야.”

슐트의 설명에 엘룬은 살아생전 궁금해하던 것 중 하나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행방불명된 자들. 다른 종족은 둘째 치고 왕족까지 잡아왔다니 간도 크군. 결론적으로 그럴 만한 힘을 갖췄다는 말이겠군.’

중앙의 통로를 따라 나아가자 좌우로 즐비하게 늘어선 커다란 시험관들이 보였다.

그 속엔 갖가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정체불명의 커다란 뇌부터 실험용 생명체들, 그리고 실험용 인간이 되어 잔뜩 겁먹은 눈알을 굴려 엘룬을 쳐다보는 남자까지.

원래 냉혈한이었던 관계로 엘룬은 남자를 불쌍한 눈길로 보지는 않았다. 힘이 없으니 당연하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는 약육강식이 비단 동물이나 몬스터의 사슬 관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 중 하나였다.

주위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그를 보며 슐트는 고개를 저었다.

“쓰레기들이야. 정말 중요한 것들은 위층에 있을 거야. 앞쪽에 있는 마법 무구들과 서적들도 마찬가지지. 저서클의 마도사들이나 사용하고 실험할 법한 것들. 기다리실 테니 어서 가야 한다.”

그제야 엘룬은 걸음을 서둘렀다.

중간으로 갈수록 길의 폭은 좁아졌고, 급기야 두 사람은 6개의 육망성에 다다랐다. 가운데 커다란 육망성을 기준으로 5개의 작은 육망성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위로 올라섰을 때, 육망성은 꺼질 듯 말 듯 빛을 뿜어냈다.

“계단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훗, 마탑에는 계단이 없다. 이동 수단은 이 육망성들뿐이지.”

순간 육망성이 밝은 빛을 내뿜는다 싶더니 곧 두 사람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악!

급작스런 이동에 엘룬은 숨이 잠시 멈춘 느낌을 받았다.

기겁하다가 이상한 기분에 아래를 보았을 때 그는 또 한 번 놀라야만 했다. 자신의 발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질 않은가.

놀라는 꼴이 우스웠던지 슐트가 껄껄 웃었다.

“파하하, 놀랄 것 없어. 투명한 강화유리가 바닥을 받치고 있지. 여기가 이 층이니 한 번은 더 올라가야 한다.”

또 한 번 투명한 유리 위에 새겨진 육망성이 빛을 뿜었고, 엘룬은 황급히 숨을 멈췄다.

눈 깜짝할 새였다.

한 층이 이 정도의 높이라면 계단 2백 개는 걸어야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엘룬은 한동안 이것을 만든 이들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느라 걸음을 뗄 생각조차 못했다.

놀랄 만도 했다. 아래층은 보이지만 위층은 보이지 않는 구조였으니.

슐트는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이 말했다.

“나도 처음엔 꽤나 놀랐지. 마법이 없다면 아마도 이 건물은 무너질 거야.”

외등, 벽등, 샹들리에, 정교한 조각상까지 모두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과학의 힘이 아닌 마법의 힘으로 말이다.

일찍이 엘룬은 이렇듯 화려한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웅장함과 찬란함에 그는 어쩌면 이 탑의 최상층에는 10서클의 마법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슐트는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엘룬을 불렀다.

“어서 가야 한다. 혹시라도 그분보다 늦게 도착한다면 난 곤욕을 치를 테니까.”

마지못해 걸음을 떼어놓기는 했지만, 엘룬은 계속해서 촌뜨기인 양 연거푸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한참을 걸어가서야 두 사람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긴 테이블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곳의 용도는 회의장인 듯했다.

이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 청색의 로브와 적색의 로브를 걸친 두 사람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엘룬의 눈에 비친 사람들 중 적색의 로브를 걸친 남자는 첫눈에 보아도 강렬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청색의 로브를 걸친 남자는 매우 온화하게 느껴졌다.

마도사탑에는 세 종류의 마도사들이 있었다.

흑마법사들을 일반적으로 흑마도사라 일컬었고, 적마법에 능한 마도사들은 적마도사로 분류했다. 또 청마법에 능한 이들은 청마도사로 구분했다.

이들에게는 각각 수장이 있어 흑마도사장과 적마도사장, 그리고 청마도사장이 이끌었다.

흔히 적마법은 인간의 감정을 변화시키거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도 전해지며, 청마법은 염력이나 주술, 저주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여기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은 적도마사장 베르난과 청마도사장 가르투스였다.

지체 높으신 분들의 행차에 슐트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그들은 슐트의 인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데려온 엘룬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곧 적색의 로브를 걸친 베르난이 호통을 쳤다.

“네 녀석은 뭔데 숙이지 않느냐!”

청색 로브의 남자에게 슐트와 마찬가지로 겸허한 자세를 보이라는 것이었다. 말하는 투로 보아 청마도사장은 적마도사장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엘룬 자신은 협조를 구하러 왔지, 숙이러 온 게 아니었다.

앞뒤 없이 야멸친 남자의 태도에 엘룬은 안면을 구겼다.

“네 녀석이…….”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을 비웃듯 남자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뭐라 말을 내뱉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 뒤로 귀가 들리지 않았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주위가 컴컴해지며 어디선가 튀어나온 검은 벌레들이 다리를 타고 사타구니로 올라오더니 배로, 몸뚱이로 옮겨 붙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벌레들은 하나 둘씩 살을 파고들었다. 살이 아리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엘룬은 인상을 쓸 뿐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눈과 입, 그리고 코와 귀로 벌레들이 기어 들어가는가 하면, 살점도 물어뜯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놈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급기야 엘룬은 평정을 잃고 벌레들을 떨쳐 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때, 머릿속에 누군가의 공허한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클클클클클.

검이라도 빼어 시전자 놈을 죽이려 했지만 뜻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슐트의 시선에는 괴로워하는 엘룬만이 보였을 뿐 그가 처한 환경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일루전(Illusion:착각)이었던 것이다.

명백히 엘룬은 손님이었다.

적마도사 베르난이 워낙에 괴팍한 위인이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마탑을 찾은 손님에게까지 이런 행위를 저지를 줄은 몰랐다.

슐트는 당혹감에 물들어 결국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로 청마도사 가르투스를 보았다. 그의 말이라면 당장에 손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가르투스는 이를 알고 있을 텐데도 제지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

뇌는 그 사람을 조종한다. 스스로가 죽었다고 인식하면 정말 죽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산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다가 엘룬은 이들에게 있어선 딱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애걸이라도 해봐야 했다.

“노여움을 거둬주시옵소서.”

슐트의 말이 거슬리는지 베르난은 눈썹을 찡그렸다.

“네 녀석도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도’라고 했다. 그 말은 정말 엘룬을 죽이려 작정한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살심은 더 큰 살심을 부른다. 엘룬이 죽고 나면 자신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동안의 억압으로 독해진 마도사들은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동료들까지도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을 정도였다.

물론 이 마도사탑 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절대자와 같은 두 사람이 이곳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해서 뭐라 할 위인은 없었다.

겁이 났던 나머지 슐트는 당장에 오체투지를 하여 머리를 유리 바닥에 쾅쾅 찧어대며 자비를 구했다.

“아니옵니다. 적마도사장께서 그를 죽이겠다면 군소리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리석으니 그 이유가 납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르난은 마도사탑 내에서도 누구보다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오죽하면 적마법을 배운 마도사가 청마법이나 흑마법을 다시 배우려고 하였겠는가. 그에게 피해를 입은 적마도사만도 부지기수였다.

적마도사장 베르난은 좋던 기분이 급작스레 뒤바뀌기 일쑤였고, 자다가도 성을 누르지 못해 발작을 일으키고는 했다.

하물며 오늘은 그의 누이가 죽은 날이니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를 모르는 슐트만 불쌍할 뿐이었다.

슐트의 질문에 어이없게도 베르난은 엘룬의 외모를 문제 삼았다.

“저 녀석 입술 아래의 점, 그 점이 거슬린다.”

“알겠사옵니다.”

이후, 슐트는 말을 아꼈다.

분위기로 보아 더 토를 달다가는 덩달아 초상을 치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 죄도 없는 엘룬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죽었을 때 애도나 표해주는 수밖에…….’

그렇게 슐트는 미련을 접고 말았다.

“나도 구경 좀 해야겠군.”

느닷없이 끼어든 사람은 적안의 마도사였다.

구별할 것이라곤 그것뿐이었다. 깊게 눌러쓴 후드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의 흑마도사들 같은 옷차림새였다. 그러나 가르투스는 적안의 인영에게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청마도사장 가르투스가 흑마도사장 제르딘 님을 뵈옵니다.”

베르난도 뒤늦게 인사를 올렸다.

“적마도사장 베르난이 흑마도사장 제르딘 님을 뵈옵니다.”

슐트는 바짝 엎드릴 뿐 감히 인사를 올릴 처지도 못 되었다.

흑마도사장 제르딘은 마탑의 공식적인 수장이었다. 마탑주 자리가 공석이 되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알베른에게 접근을 한 것도 이 제르딘이었다.

그는 마도사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낼 심산으로 알베른과 손을 잡은 것이다.

이 계획을 아는 일각에서는 그가 마도 제국을 세울 것이라고 추측을 내놓았고, 또 일각에서는 대륙을 제패할 계획이 있는 것이라고도 떠들었다.

분명 이는 섣부른 추측일지도 몰랐다. 아직까지는 제르딘 본인이 그 이유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마도사장 가르투스가 눈짓을 할 필요도 없이 베르난은 힘을 풀어 엘룬을 억압에서 놓아주었고, 엘룬은 눈이 풀린 채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버틴 것만도 용했다.

슐트는 마음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여태 버틴 엘룬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소드마스터라는 게 허명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 * *

“정신이 드나?”

엘룬은 몇 날 며칠이나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이 공포로 떠올라 침대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소리를 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악!”

“놀랄 것 없다. 베르난이 조금 심하게 장난을 쳤던 모양이군. 내 대신 사과하지.”

꺼림칙한 목소리였지만 눈앞의 적안은 살갑게 대하는 태도였다.

그 뒤에서 슐트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포는 차츰 걷혔지만 치가 떨려 엘룬은 호의적인 태도를 곧이곧대로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적대적인 시선이 두 사람을 훑었다. 그럼에도 적안의 태도만은 여전했다.

“따로 보상이라도 해야겠군.”

웃으며 하는 말에 슐트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행여 엘룬이 실수라도 하는 건 아닐까 하여 조심스레 통신 마법으로 의사를 전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넌 나흘 전에 죽었을 거다. 자세한 얘기는 가시고 난 후에 할 테니 인상을 펴라.]

엘룬은 믿기로 했다. 아니, 현재로선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직 이곳은 마도사탑 내부니까 따지거나 복수를 하더라도 그 후에 하여야 했다.

딴에는 경이로운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말이다.

두 가지의 생각이 차례로 이어졌다.

이들의 협조를 얻는다면 복수는 무리도 아닐 것이란 기대와 자신이 여우를 잡기 위해 호랑이에게 구조를 요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

이상하게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몸은 말짱한데도 말이다.

‘이자 역시 보통이 아니겠지?’

탈출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았다. 이 순간만은 엘룬이 옳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엘룬의 표정 변화를 읽어나가던 제르딘은 그제야 입을 뗐다.

“슐트에게 대충의 사정은 들었다. 우리에게 협조를 구하러 왔다고? 어떤 사연인지 들어나 보지.”

잠시 망설이다가 엘룬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러자고 온 게 아닌가.

하지만 이자가 아무리 마도사탑에서 높은 존재라고는 해도 존대를 해줄 용의는 추호도 없었다. 슐트의 상관이지, 자신의 상관은 아니었다.

또한 거칠게 자라온 엘룬이 누군가를 높여 부른다는 것은 평생에 없던 일이었다. 하여, 거침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네놈들도 세상의 그늘에서 살았고, 나 또한 그랬다. 난 마적단의 수장이었지. 카반의 울프를 다스리고 세상을 호령하던…….”

잠시 말이 끊겼을 때 제르딘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상을 호령했다? 그것 참 멋지군.”

모멸감이 들어 엘룬은 입가를 씰룩였다. 이를 비꼬는 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꼴이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엘룬을 보며 제르딘은 오해를 풀고자 했다.

“오해를 하는군. 꼭 강직해야만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상대가 인정해주니 악감정도 가셨다.

구겨진 인상을 펴고 엘룬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오랜 세월 쌓아온 것,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수백의 수하들이 전장의 참혹함을 이겨 내지 못하고 죽어갔다. 비록 피를 섞은 것은 아니지만, 내 아우들도 이를 빗겨 갈 수 없었다. 둘째는 죽었고 셋째는 행방불명이 되었지. 내 눈앞에서 죽은 둘째는 흑마법사였다.”

마침 그에 대한 반응이 나왔다. 같은 길을 걷던 이가 죽었다는 소리에 제르딘은 조금이나마 애석한 눈빛이었다.

“흑마법사였다고? 그의 이름은?”

“발본.”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제르딘에게 슐트가 조심스레 말을 올렸다.

“마도사탑에 소속되어 있던 녀석입니다. 오래전 떠났지만요.”

제르딘이 모를 만도 했다.

그 휘하에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가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주기란 무리가 따랐던 것이다.

마도사탑에 소속되어 있던 자라는 말에 제르딘의 적안에는 방금 전보다 좀 더 애잔한 빛이 스쳤다.

언뜻 보면 그는 정말 마도사탑에 소속된 마도사들을 생각해주는 듯 보였다. 엘룬 역시 그렇게 느꼈으니까.

하지만 이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제르딘의 눈은 야멸쳐 보였다.

이러니 누구도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가식의 탈인지 본심인지, 아니면 형식상인지를 모를 수밖에.

“도움을 달라? 도움을… 도움을…….”

엘룬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가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다시 그가 물었다.

“매우 강한 자들이었나?”

“그렇진 않았다. 우리가 꼬임에 빠졌을 뿐, 잔머리를 굴려 날 잡아두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그 녀석이었을 거다.”

“가만, 그 녀석?”

“그렇다. 건방지게 뒤에서 지시만 하던 놈. 그 녀석을 죽이는 것이 내 최종 목표다.”

엘룬에게는 아직까지도 오딘이 귀부인의 치마폭에 싸여 자란 녀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말이다.

“네 눈대로라면 그렇게 무서운 상대는 아니겠군.”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세력이 없으니 도움이 필요하다.”

“약한 자 밑에 강한 자가 있다는 것이로군.”

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꼭 해야 할 말을 놓친 것만 같아 그 부분의 설명을 덧붙였다.

라테우스 검은 산맥에서 있던…….

“두 녀석이 있다. 손속은 나보다도 잔인한 녀석들이지. 내 수하들을 고깃덩이로 만든 놈들이니 그 녀석들과 둘을 부리는 녀석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들도 그의 수하들인가?”

“맞을 것이다.”

이스론 상단에서의 일도 얘기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엘룬은 그 얘기는 접기로 했다. 그때 마주쳤던 붉은 눈썹의 남자는 그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괜히 이스론까지 걸고넘어진다면 일이 커질 테고, 시일도 더 걸릴 것이며 무리한 요구가 될 것이다. 후에 힘을 키워 이스론을 깔아뭉개더라도 지금은 단시일 내에 그놈부터 죽이고 싶었다.

허락은 의외로 순순히 떨어졌다.

“도와주지.”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기분이라 엘룬의 표정이 모처럼 밝아졌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이것이 걸리는 부분이었다.

과거라면 돈을 쌓아놓고 살았겠지만, 현재는 아니었다. 흩어져 있는 마적들에게 돈을 끌어온다 하더라도 이들을 움직이려면 부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안의 사내에게서는 정말 엉뚱한 요구가 흘러나왔다.

“네가 먼저 날 도와야 한다. 그 이후로 하지.”

“무엇을?”

“내 일을 돕는 것이다. 기한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솔직한 말에 엘룬의 표정이 다시금 험악해졌다.

“내 일이 우선이다. 먼저 말을 꺼낸 것도 나다. 왜 염치도 없이 너희들 일부터 챙기는 거냐?”

“네 실력을 알기 위해서. 그래야 우리가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해줄지 정할 게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엘룬은 기한 얘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제르딘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돈 얘기까지 꺼냈다.

“일에 대한 보수도 주지. 섭섭지 않게 말이야.”

재정난이 악화된 마적단에는 이탈까지 생겨나고 있을 것은 자명한 일. 돈은 엘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지 않았고, 또 물어보기도 어려운 자리였다.

돈에 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자신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것이다.

거래이니만큼 엘룬은 대등하기를 원했다.

“그래도 거절한다면? 보수는 둘째 치고 기한을 정해야 한다. 네 일을 돕다 그 녀석이 죽은 후에 복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제르딘은 눈을 내리깔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엘룬을 깔아보았다.

“이미 선택권은 없어. 네가 거절한다면 적마도사들을 시켜 세뇌라도 해야겠지.”

* * *

늙은 왕은 죽고 젊은 왕만이 있었다.

‘내가 아바마마만큼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로만의 제27대 공왕 레오노는 자멸감에 빠져 있었다.

그의 아비는 로만을 다스리다 갑자기 몹쓸 병이 도져 한 달도 안 돼 사망했다.

레오노는 책임감이 막중함을 느꼈다.

자신의 말이 진리요, 곧 법이 되니 어떻게 행동해야만 이 나라 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느냐에 대해 밤잠까지 설쳐 가며 골몰하고는 했다.

또 있었다. 신성 제국과의 마찰.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로만 사람들은 신성 제국을 미워했다.

사람들의 불만은 당장 쌓인 것이 아니라, 로만의 역사만큼 오랫동안 쌓이면서 극대화가 된 것이었다.

일례로 과거에는 신성 제국의 성기사들이 로만의 양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일도 있었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성 제국과의 전쟁을 원하겠지. 이 기회를 빌려서 말이야.’

레오노의 추측은 어긋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인 귀족들은 화두로 떠오른 성녀 얘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로만은 강한 민족이었다. 지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이치에 어긋남을 알 때면 용맹스럽게 달려들고는 했다.

하지만 레오노는 무력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레인의 귀족에게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조용히 끝날 문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결국 레오노는 고개를 저음으로써 여태 품었던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깡그리 지워버렸다.

“그럴 리가 없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녀를 찾으니, 다섯 공국 중 내가 주축이 되어 바로잡아야 한다.”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까 봐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신의 대리인이라는 성녀였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 못 믿을 녀석들에게 그녀를 넘겨서는 절대 안 된다.”

굳은 각오에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문득 문밖에서 기별이 들려왔다.

“공왕 전하, 아레인의 사신이 당도했습니다.”

“들어오시라 전해라.”

전과 달리 근엄한 태도와 목소리였다.

애초부터 레오노는 로만을 이끌어갈 공왕의 자질이 있었던 것이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가인 자작이었다.

가인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목례부터 했다.

“로만의 공왕 전하를 뵈옵니다.”

그런 가인을 레오노는 환히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곧이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외 사정이 이상하게 흘러가지만, 미리 오딘 님께서 천명하셨듯이 우리 아레인은 힘닿는 데까지 로만 공국을 도울 것입니다.”

“대외 사정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말씀은……?”

“신성 제국에서 아레인에 경고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일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레오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괜히 로만 때문에 아레인까지 휘말렸다는 미안함이 앞서서다. 반면에 신성 제국의 치졸함에는 원한을 품었다.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졌다.

‘분명 아레인이 약소국이라 생각했겠지. 그러니 협박이라도 해보려고 갔을 터이고…….’

성녀를 지켜 준 것은 분명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에 대해 따로 고마움을 표시하지도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성의 표시라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레인 측에서는 작은 성의 표시조차 끝끝내 거부했다.

이 점이 짐으로 떠안겨진 것이다.

가인이 한 말이 자신들의 일처럼 느껴졌는지 레오노는 울분을 금치 못하고 이를 갈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저희가 언제든 돕겠습니다.”

사심 없는 말에 가인은 멋쩍은 미소를 떠올렸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레인은 항상 이렇게 로만을 대해왔다.

과거보다 더 많은 아레인의 군사들이 로만에 들어와 있었는데, 아레인이 굳이 카반에 군사들을 주둔시키는 이유는 신성 제국과 로만의 접경지대에서 생산하는 도자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레오노는 카반을 아레인과 로만의 공동 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레오노만을 믿고 따르는 일부 귀족들만이 아는 기밀 사항이었다.

언젠가 귀족들의 반발에 부딪칠지 모르는 일이지만, 레오노는 그렇게 해서라도 꼭 아레인의 환심을 얻고 싶어 했다.

뜻하지 않게 이에 따른 반사이익도 생겨났다.

로만의 병력 일부가 그곳으로 가, 아레인의 군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직접 검술을 지도받거나 일부 지휘 체계를 본받았다. 군사력 증강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급기야 오늘날에 와서는 로만에 검술 교관까지 파견되었다.

당시 아레인의 군사를 주둔시키는 데에는 염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은 레오노였다.

아레인의 군사력이 막강함을 깨달은 일부의 귀족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그들을 로만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반면에 아레인 같은 강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이처럼 아레인을 대하는 태도는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었다.

그러나 해를 넘길수록 아레인은 자국만을 생각하는 이익집단이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 왔고, 그로 인해 강경파의 불만들도 자연히 희석되어갔다.

아직까지 강경파들은 동태를 살피고는 했지만, 여전히 아레인은 단 한 사람이라도 로만의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하여, 레오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자 했다.

“저희는 항상 얻기만 합니다. 아레인에는 정말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로만이 아레인을 위하는 날은 언제쯤 오겠습니까?”

불평 아닌 불평이었다.

“공왕께서 우정을 나눠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데, 얼마 전에도 영지 간에 마찰이 있었다고 하던데…….”

“크게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은 본격적인 위협이 없으니까요.”

신성 제국과 로만의 영지 간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성녀 세실리 사건 이후에 그 일은 극도로 잦아졌다.

이는 로만의 새로운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레오노는 그 짐을 가인에게 떠넘기지 않으려 했다.

그냥 받아들였어도 될 말인데 가인은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희 여왕께서는 로만의 일을 제 일처럼 도우라 하셨습니다. 신성 제국과의 마찰은 저희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니, 문제가 복잡해지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또 공왕께서 부탁하셔도 저희가 아레인이라는 것을 모르게 도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엘레느의 결정은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레오노는 굳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정 힘에 부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번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언젠가 여왕께 고마움이라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가인은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그분과의 대면은 최대한 멀리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하기가 조금 힘이 듭니다. 어쨌건 그분을 뵙는 건 저희 또한 곤욕입니다.”

심한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화제를 돌려 몇 마디 덕담을 더 나누다가 가인은 바쁜 일이 있다며 돌아갔다.

레오노 딴에는 그가 남긴 의문을 해소하려 부단히도 애를 썼다.

“곤욕이라고? 왜? 폭정을 일삼기라도 하시는 건가?”

그 추측은 본인이 생각해도 틀릴 것이었다. 그런 왕을 모시는 신하들의 표정은 저렇게 밝질 못하므로.

“아니면 무섭게 생기시기라도 했을까? 음, 그것도 아니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아무리 생각해도 레오노로서는 그 까닭을 절대 예측하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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