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고락
오늘 당도한 2명의 마법사들은 헤르미온이 무엇이든 도와준다는 심부름 길드에 의뢰하여 부른 사람들이었다.
헤르미온 역시도 마르크를 살리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녀 또한 제라드 이상으로 적지 않은 돈을 소모했는데 본인의 돈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꽤나 귀한 물건이로군요.”
돋보기안경으로 보석이 박힌 반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귀금속 상인이 하는 말이었다.
“얼마쯤 쳐줄 수 있죠?”
귀금속 상인은 헤르미온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쎄요, 제값을 받으시려거든 이곳보다 큰 번화가로 나가셔야 할 듯한데…….”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요? 여기선 얼마나 쳐줄 수 있냐고 묻잖아요.”
급전이 필요하니 여관 근방에 있는 귀금속 상점으로 온 것이었다.
마르크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제값을 쳐주는 번화가까지 움직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판국에 돈 몇 푼이 중요하겠는가 말이다. 상점 주인은 나름대로 하소연을 했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겠소. 내가 융통할 수 있는 돈이라야 오십 골드가 전부요. 다시 말해 아가씨한테 줄 수 있는 돈은 사십 골드 정도인데, 그걸로 만족하시겠소?”
양심에 찔린다는 얘기였다.
그만큼이나 헤르미온이 팔려고 내놓은 반지가 비싸다는 얘기다.
헤르미온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줘요.”
이 반지는 폴칸이 헤르미온에게 줄 생각으로 큰마음을 먹고 90골드에 사들인 것이었다.
90골드라는 돈은 어지간한 귀족의 한 해 수입을 상회하는 돈이다.
되도록 폴칸은 그녀에게 이 반지를 착용하고 다니지 말 것을 권고했지만, 헤르미온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 눈에 다른 반지는 성에도 차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이나 아끼던 물건이었다.
40골드를 받아들고 상점을 나서는데 상점 주인이 그를 측은히 여겼던지 그녀의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며칠 안에 되팔 수는 없을 듯하니, 생각이 바뀐다면 다시 찾아오시오.”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음에도 헤르미온은 침묵할 뿐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안에 마법사 둘을 부른 대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르게 샥은 헤르미온이 얼마나 손해를 입었을지 짐작하면서도 아무 소리를 하지 못하고 그녀의 눈치만을 살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헤르미온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병신,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누가 날 구하러 오래?’
차라리 자신이 잘못되었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와 샥이 마르크의 방에 들어왔을 때 이미 2명의 마법사는 힐링을 시전한 뒤였다. 그들은 매우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중 한 마법사가 제라드를 향해 말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큐어 포이즌도 듣지 않는군요. 이제 와서 독을 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또한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이번에 당도한 마법사 중 하나, 바로 지금 말을 하는 마법사는 꽤나 실력이 있는 4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였던 것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오늘을 넘기기가 힘들 듯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은 헤르미온은 다리에 힘이 다 풀려 버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고?’
마음 한구석이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마르크는 그녀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티격태격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있어 추억이었고 즐거움이었으며 소중함이었다.
마르크와 함께했던 많은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더한 괴로움을 자아냈다.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지만 소리를 지를 기운도 없었다.
금세 눈에 눈물이 들어찼다.
오늘이라고 해봐야 고작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다.
절망에 빠져 있는 그녀를 눈에 두지 못하고 마법사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얼마 전 대단한 마법사를 보기는 했습니다만.”
제라드는 그의 앞쪽에 서 있던 관계로 헤르미온을 걱정스런 눈초리로 지켜보다가 지금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는지 말을 꺼낸 마법사에게 다그치듯 되물었다.
“대단한 마법사라니? 그는 어디 있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길드로부터 의뢰를 받기 전에 목격했으니…….”
제라드나 틴 모두 김이 다 빠지는 모습이었다.
파르티잔에게 보양식을 가져다주었던 호위 무사가 얼결에 물었다.
“어느 정도로 대단했다는 건지요?”
“블링크를 시전했으니 낮게 폄하해도 대마법사급은 될 것이오.”
대마법사란 통상적으로 6서클 이상을 지칭한다.
여기 온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한계에 닥치거나 어려움이 따를 때에는 종종 사람들은 만약이라는 것을 논하게 된다. 지금 마법사가 하는 얘기 역시 만약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 빨리 이곳에 당도했다면 침상에 누워 있는 병자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그 마법사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마법사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아쉬움 속에 입을 열었다.
“수소문을 한다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동공의 소유자였으니 타인들의 눈에도 쉽게 띄었을 것입니다.”
갑작스레 틴, 그리고 헤르미온의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간파했는지 제라드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분은 아닐 걸세. 오딘 님께서는 마법을 익히지 않으셨어.”
“검은 머리카락은 그렇다 해도 검은 동공을 가진 사람은 희박하지 않습니까?”
“부정하진 않겠네. 그러나 그분은 아닐 걸세. 이보게, 마법사 양반, 그분의 인상착의를 더 들을 순 없겠나?”
초면인 사이에 하대를 하고 있음에도 불려온 마법사는 그의 말투와 행색 등을 보고 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 대로 말씀드리지요. 이제 스물이나 넘었을까요? 겉으로 보기엔 꽤 어려 보였습니다. 또 그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보통 여성보다 흰 피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옷차림은 매우 간소했는데 깃이 세워진 검은 셔츠와 몸에 제법 달라붙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설명을 부족하다고 느꼈던지 틴이 재빠르게 물었다.
“거, 검은 들고 있지 않았습니까?”
“검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거기서 말을 마치나 싶더니 마법사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말을 꺼내었다.
“참, 얼핏 보기에 근방에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귀가 뾰족한 걸 보니 엘프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대략적인 인상착의를 늘어놓으며 설명하는 사람이란 아그리스였으며 붉은 머리의 소년은 쿤을 말함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아그리스는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한 상태이니 이들이 알아볼 리 만무했다. 알았다고 한들 치를 떨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폭한 블랙 드래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날 죽여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수소문을 해봐야겠어.”
틴이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제라드가 황급히 나섰으며, 헤르미온 역시 눈물을 그치고 각오에 물든 얼굴로 방을 빠져나갔다.
자연히 방 안에 남은 호위 무사만 난처해졌다.
“대, 대금을 지불해드려야 하는데…….”
샥은 이 상황에서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다가 돈이라도 받아올 생각인지 헤르미온이 사라진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여태 말을 섞던 마법사가 그를 보며 미안한 빛을 떠올렸다.
“환자의 몸에 진전이 없으니 돈을 받기도 미안하군요.”
“아, 아닙니다. 먼 길을 와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잠시 기다리시면 샥이 돈을 들고 올 겁니다.”
“고블린 말이오?”
“예.”
이 분위기에 동화라도 된 것일까? 마법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의 뜻을 확인하고는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뭐, 우리도 이 여관에서 하루 묵도록 하지요.”
잠시 뒤 샥이 돌아와 돈을 전해주었으나 두 마법사는 내뱉은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마르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옆방에 있던 파르티잔은 벽에 바짝 귀를 붙여 저들의 대화를 엿듣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네.’
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이 오딘이 아니어서이다.
별일이 아니기에 다시 누웠지만 두려운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하아, 어쩐다?”
오딘이 살았다면 이들은 언제고 다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제라드가 하는 말로는 그가 살았다고 하였으니,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들과 있는 이상 오딘과는 언제고 다시 마주쳐야 할 것이다.
파르티잔은 애꿎은 대상을 탓했다.
‘제길, 정령이라는 놈은 왜 악마에게 그런 반지를 줘서……. 평화를 수호한다는 정령이 왜 악마에게 날개를 달아준 거야?’
파르티잔이 생각하기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뺏긴 게 틀림없겠지. 오딘 그 악마 놈이 정령을 협박했겠지.’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우스갯소리로 치부했겠지만 파르티잔은 오딘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 여겼다.
이는 반복되는 사고였다.
며칠 전에도, 그리고 어제만 해도 오딘에 관한 악몽을 꾸었다.
그가 살았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파르티잔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불평했다.
“안 그래도 몸이 허한데 이러다간 정말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몰라.”
몇 푼 더 모으자고 더 이상 머무를 순 없었다. 돈보다도 오딘의 눈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보았다.
언제나처럼 쌍귀가 방문 앞을 지키는 중이었다.
본래 쌍귀는 파르티잔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안고 있었다. 그가 없다면 마르크의 생명이 짧아질 것이었기에.
초조함을 금치 못하고 파르티잔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떻게 한다?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지?’
이스론의 호위 무사들의 눈이라면 어렵잖게 도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쌍귀가 누구인가.
귀신의 눈은 속일지언정 그들의 눈을 속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상태로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에 치달을 무렵 기회는 찾아왔다.
“마르크는 제가 지키고 있을 테니 두 분께서는 마법사님들을 따라 먼저 식사를 하고 오세요.”
파르티잔은 살포시 문을 열어 틈새로 저들을 엿보았는데 의외로 쌍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의사를 내비췄다.
곧 쌍귀는 마법사들을 따라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겨갔다.
파르티잔은 살포시 열었던 문을 닫고서 방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냥 내려간다면 분명 걸릴 거야. 어쩐다? 이를 어쩐다?’
친절하게도 바람이 열린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며 커튼을 휘날려 주었다.
파르티잔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하고 쳤다.
‘저거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과도로 커튼을 잘게 찢었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길게 묶은 후 침대 다리에 매달았다.
창문 바깥은 마구간과 맞닿은 마당이었다.
오늘 받은 돈과 전에 받은 돈들을 모조리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서 파르티잔은 탈출을 감행했다.
이에는 아까 먹은 보양식이 한몫을 했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사히 땅에 안착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반나절이라는 시간.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여관 근방에 있는 사람이란 사람에게는 죄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동공을 지닌 남자를 보았냐는 물음이 들려왔다.
그러다 보니 같은 사람에게 같은 물음이 들리는 경우까지 빈번히 발생해 그들로부터 역정을 들어야 했다.
“아, 글쎄 못 보았다지 않소.”
그러나 마르크를 수소문하는 이들치고 누구도 실랑이를 벌이는 이는 없었다. 그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헤르미온의 곁에는 샥 말고도 틴이 따라다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근방이다.
그가 보는 헤르미온은 성깔만 사나웠지 여러 모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며칠 전의 일만 보아도 그렇잖은가.
그렇다고 탓하지는 않았다.
‘그 일도 운명이겠지. 마르크가 죽는다면 그것도 운명. 다만 난 그 운명이 내 노력에 의해 뒤바뀔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뿐.’
제라드는 이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에 대해 수소문을 하는 중이었다.
처음으로 그를 목격했다는 남자가 나왔다.
“보기는 했소. 그는 왜 찾는 거요? 수배자요?”
제라드는 다급해졌다.
“수배자는 아닐세. 내 그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 그러니 그를 어디에서 보았는지 알 수 있겠나?”
남자는 뜸을 들였다. 기억을 되짚는 것이다.
제라드는 그의 손에 돈부터 쥐어주었다.
“많은 액수는 아닐세. 내 그에 대해 정보를 좀 얻고자 하니 알려 주게.”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에 쥔 돈을 보았을 때 남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말투부터 달라졌다.
“일 실버나 주는 겁니까? 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사람 목숨이 걸려서 그러네. 그라면 치료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상떼라는 마을에서 봤습니다. 여기와는 제법 거리가 먼 곳입니다. 저쪽으로 가면 그와 닿는 마법진이 있긴 합니다.”
옷차림새로 보아서 이 남자는 마법진을 타고 이동할 정도로 부유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제라드는 그곳에 가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당장 떠날 것처럼 보였던 제라드의 발걸음을 남자의 목소리가 잡았다.
“그런데…….”
“그런데?”
“목격한 건 며칠 전의 일입니다. 이 돈 받아도 되는 건지…….”
실망스런 말이기는 했지만 제라드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받아도 되네. 바쁠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맙네.”
말과 동시에 제라드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움직임이 너무도 빨랐던 나머지 남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진 것이다.
제라드의 움직임으로 인해 갑자기 분 바람이 가셨을 때, 남자는 그가 벌써 마법진 위에 올라서고 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허, 저게 사람인가?”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를 찾으려 거리로 나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절망감에 물들었다.
이와는 다르게 파르티잔은 인적이 드문 마을로 이동해 해방감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해방이로구나. 크흑, 이 억압의 세월들, 죽어도 잊지 못할 거야.”
석양이 저물어가는 곳을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감상에 물들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은 몸부터 누여야겠어.”
많이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기회를 잡아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었다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최대한 돈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으로 파르티잔은 여관을 뒤지고 다녔다.
“하룻밤 쉬어 가려는데 가격이 얼마요?”
“십 페소입니다.”
“비싸군, 비싸.”
흥정을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여관은 한적해 보임에도 주인은 도통 흥정을 해줄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파르티잔은 여관을 나섰다.
“배가 불렀군, 불렀어. 이런 후미진 곳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 십 페소나 받아쳐먹어?”
다른 곳을 가고, 또 다른 곳을 가보았다.
1페소라도 더 싼 곳을 찾기 위해서다.
다행히 이들 간에 가격 담합은 없었던지 가장 싼 곳이 있었는데 그 가격이 7페소였다.
가장 비쌌던 여관 옆의 골목에 자리한 쓰러질 것 같은 건물이 그곳이었다.
과거의 파르티잔이라면 결코 그곳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파르티잔은 달랐다.
절약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 파르티잔은 현기증이 일었다.
몸이 너무 허해진 까닭이다.
하마터면 쓰러질 뻔한 것을 누군가 잡아주었다.
“고, 고맙소.”
“조심하고 다니세요. 불편하시면 제가 부축해드릴까요?”
목소리로 보아서는 소년 같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파르티잔은 자신을 잡아주었던 사람이 붉은 머리카락의 엘프 소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저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들이 찾고 찾던 검은 머리카락의 마법사에 대한 얘기 중에 붉은 머리카락의 엘프 소년에 대한 얘기가 섞여 있었다.
궁금함이 치미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파르티잔은 그에 대해 물어보고 말았다.
“얘야, 혹시 네 주위에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동공의 잘생긴 청년이 있지 않느냐?”
“네, 있어요.”
소년의 답을 듣는 즉시 파르티잔은 갈등에 휩싸였다.
‘결국 내가 찾았구나. 이 소년과 함께하는 마법사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마르크는 죽게 될 것이다. 아니, 데려간다 하더라도 죽을 가능성이 농후할 거다. 그래도 마음고생하고 있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좀 언짢군.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 걸까?’
나쁘지 않은 기억이라기보다 파르티잔에게 있어 그들은 잘해준 축에 속했다.
그들에게 받았던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물론 마음이 아닌 돈이었지만 말이다.
갈등의 기로에서 쉬이 결단을 못 내리고 있을 때 소년이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시고 또 왜 물으시는 거죠?”
“하하, 아니다. 어떤 사람이 보았다는구나. 대단한 마법사라고 하면서 칭찬을 하기에 그냥 물어본 말이다.”
땀이라도 삐질 흐를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때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소년은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쳤다.
“아, 아그리스 님을 말씀하시는 거구나. 오딘 님이 아니고.”
당황한 파르티잔의 낯빛이 검게 변해갔다.
눈치도 없이 소년은 히죽 웃었다.
“곧 나오실 거예요. 제가 밥을 제일 빨리 먹었거든요.”
당장에 도망쳐야 한다고 파르티잔의 뇌가 명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겁에 질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파르티잔은 허둥지둥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쉬바인, 아그리스에 이어 마지막에 나온 오딘이 그의 뒤통수를 모를 리가 만무했다.
달리던 파르티잔의 앞쪽에 오딘의 신형이 멈췄다.
“허걱!”
“이야, 파르티잔이 맞구나.”
지금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여느 때처럼 오딘은 파르티잔에게 장난기 섞인 말투로 다정히 대했지만, 당사자인 파르티잔은 너무도 겁에 질려 버려 그만 뒤로 돌아 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오딘의 분노를 샀으며 아그리스의 눈에까지 발각됐다.
“기특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로구나. 그래, 내 하인을 자처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냐?”
광포한 드래곤의 눈동자. 이는 아그리스가 자신을 인식시켜 보여 주려 했기에 파르티잔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그때의 블랙 드래곤이라는 것을.
파르티잔은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아그리스까지 접하니 그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지금이야말로 생애 최악의 상황이었다.
드래곤과 악마가 한자리에 있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다.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 아그리스는 쉬바인에게 눈짓을 했다.
(가서 깨워.)
(내가 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그리스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고 매서워지자 쉬바인은 이상하게 벌벌 떨리며 겁이 났다.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었다.
‘내가 대체 왜 저놈을 무서워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로군. 침착하자. 이런 모습은 나답지 않다.’
하지만 도무지 침착하려 해도 침착해지지 않았다. 아그리스가 이에 더한 위협을 실어 의사를 전해왔다. 분명한 것은 타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소리였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지?)
(못 갑니다. 안 가요.)
곧 죽어도 지기는 싫었던지 쉬바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아그리스의 판단 착오였다.
아그리스는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면 두려움이 샘솟아 복종심이 생길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기억을 지운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사실 그의 판단이 완전히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쉬바인은 두들겨 맞을 당시의 공포보다 아그리스에 대한 반감이 더 커져 버린 것이었으므로.
아그리스는 성질머리를 참지 못해 머리에서 김이 다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쉬바인은 몸을 돌려 버렸다. 그를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한도 끝도 없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쿤이 파르티잔의 상태를 손봐주고 그를 일으키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디 아프신 거 아네요?”
파르티잔은 쿤의 따스한 손길에 눈을 떴다가 다시 억지로 감았다.
그를 간파하고는 오딘이 물었다.
“영영 자게? 본 좌가 도와주랴?”
지옥 같은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서인 만큼 파르티잔은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도 눈을 감고 있을 만큼 그는 강심장이 아니었다.
순간 파르티잔은 눈을 번쩍 뜨고 쿤에게서 벗어나 두 손과 두 발을 땅에 댄 채 절박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다 잤습니다. 더 피곤하지는 않으니 그만 자도 될 것 같습니다.”
“에이, 눈 밑에 그림자가 검은 걸 보니 아직 피곤해 보이는데?”
여전히 오딘은 장난기 섞인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절~ 대 아닙니다. 너무 자서 퀭한 것이죠.”
기왕 붙잡히게 된 것, 파르티잔은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딘은 성큼성큼 다가왔다.
마침내 오딘이 앞에 섰을 때 파르티잔은 움찔 놀랐다.
오딘은 피골이 상접한 파르티잔의 모양새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못 본 사이에 고생을 많이 했구나. 쯔쯧, 누가 널 괴롭히더냐?”
“제 피골이 상접한 것은 이스론 상단의 마르크라는 녀석 때문입죠. 네, 그 녀석 때문입니다.”
“제라드와 함께 있는 녀석을 말함이냐?”
“예, 그렇습니다. 제라드 후작과 함께 있는 그 마르크입니다.”
“그 녀석이 왜?”
“제법 상태가 위중합니다. 마법사들 말로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병 수발을 드느라 이 모양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처리할 일이 많아 그곳으로 가려던 중이었다. 오딘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그들은 어디 있지?”
“브란트 외곽의 한 여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 * *
마르크의 심장은 꺼져 가고 있었다.
죽은 지 며칠은 되어 보이는 시체처럼 그의 몸은 악취를 풍겼다.
방 안에는 예닐곱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없었다. 그 독이 냄새만으로는 중독되지 않는 것임을 알아서였다.
마법사들은 이미 대금을 받았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환자가 죽은 뒤에 안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을 제외한 사람들, 특히 헤르미온이라는 엘프 아가씨는 도무지 그를 보내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바보야, 눈을 떠. 눈을 뜨라고!”
겁도 없는지 마르크를 주먹으로 쳐대며 울부짖는 그녀에게 마법사들이 주의를 주었다.
“신체 접촉은 위험합니다.”
고블린 샥과 오크인 정크가 그녀를 뜯어말렸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는지 헤르미온은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으허어어엉!”
마법사들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마르크를 친 주먹이 거무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으며 그 손으로 눈을 훔치자 그녀의 눈 주변도 거무튀튀하게 변해갔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 마법사가 재빨리 마나를 재배열하며 중얼거렸다.
“큐어 포이즌(Cure Poison:해독).”
녹색의 가루가 그녀의 몸을 덮으며 그녀에게 옮겨 간 독의 기운이 서서히 가셨다.
마법사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훔치며 이 방의 사람들에게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결코 약한 독이 아닙니다. 저 역시 마나에 한계가 있으니 그녀가 환자에게 접근을 하는 것만은 막아주십시오.”
제라드와 틴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라고 좋은 표정은 못 되었다.
제라드는 마르크의 죽음도 죽음이지만 그보다 후에 있을 힐책을 두려워하는 눈치였고, 틴은 소중한 존재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샥과 정크마저도 울 것 같은 얼굴인 데 반해 쌍귀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곡소리가 나는 것에 여관 주인은 달리 제지하지 않았는데, 이는 방문을 굳게 걸어 잠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마법사들이 조치를 취해놨기 때문이기도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헤르미온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이 나무 바닥을 적시기 시작하며 그녀가 앉은 바닥의 주위는 축축해질 정도가 되었다.
착시일까?
돌연 그녀의 눈물로 인해 물기를 머금은 눈에 마르크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크의 영혼은 그녀를 보며 따스하고 환한 웃음을 보내는 듯했다.
격정이 치밀어 울음도 그치고 헤르미온은 마르크의 영혼을 향해 손을 뻗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르크,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가지 마, 제발…….”
그녀가 보는 마르크의 영혼은 말없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본래 신체를 빠져나간 영혼은 기억을 떨치고 가는데 그 때문에 생전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마르크의 영혼이 헤르미온을 보고 따스한 웃음을 건넨 것은 기억이 남아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지닌 사람에 대한 일종의 보답인 셈이었다.
헤르미온이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방 안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마르크의 근방에 있던 마법사가 애석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숨이 멎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헤르미온은 그를 듣지도 못했는지 마르크의 영혼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더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지 마르크의 투명한 영혼은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천장이라도 뚫고 나갈 모양새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혼은 건물을 관통하지 못했다.
돌연 방문이 열리며 검은색의 실크 셔츠를 입은 흑발의 청년이 못마땅한 얼굴로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날 너무 부려먹는군.”
그 불평을 누군가가 받았다.
“잊지는 않지.”
뒤이어 들어서는 사람은 방 안에 있던 일부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특히나 헤르미온은 뒤에 들어온 사람을 보았을 때 숨 쉬는 법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제라드는 그를 보는 순간 사념을 모두 떨쳐 버리고 즉시 부복하며 아뢰었다.
“신 제라드, 오딘 님을 뵈옵니다.”
쌍귀도 뒤늦게 부복하며 전음으로 경외를 담아 외쳤다.
-악귀, 오딘 님을 뵈옵니다.
-무귀, 오딘 님을 뵈옵니다.
그랬다. 방에 들어선 사람은 아그리스와 오딘이었다.
마르크의 영혼도 방을 뛰쳐나가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방금 들어온 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헤르미온도 못 알아보는 상황에 오딘을 알아볼 리는 더욱 만무했다.
그의 영혼은 확실히 두 대상이 들어왔다는 것을 보았다.
뒤에 들어온 것은 자신과 같은, 그리고 이 방에 있는 다수의 존재들처럼 인간이었지만 앞에 들어오는 대상은 아니었다.
마르크의 영혼은 광포한 드래곤의 눈동자를 접하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는 대상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굉장히 강한 존재, 무서운 존재 따위로 알아차린 것이다.
아그리스 역시 마르크의 영혼을 보았는지 조용히 타일렀다.
“얌전히 들어가거라.”
무서운 대상에게서 흘러나온 말이니 거역할 수 없는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마르크의 영혼은 죽은 신체를 바라보며 난감해했다.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아그리스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영혼에게 다가서며 더욱 겁을 주었다.
영혼은 겁이 나서 그를 지나치지 못하고 뒤로만 내뺐다.
어느 순간 아그리스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확 다가서자 마르크의 영혼이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마르크의 육신이 누워 있는 딱 그 자리였다.
마법사들을 포함해 이 방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어이없어 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눈에는 마르크의 영혼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그리스는 마르크를 덮은 침대보를 확 걷어 젖힌 후 그의 몸에 손을 짚었다.
마법사들이 그걸 보며 크게 놀랐다.
“주, 중독됩니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아그리스가 아니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마법사들은 호통만 듣고 말았다.
“누굴 가르치려 들어!”
그로 인해 마법사들은 기분이 상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대뜸 반말에 호통을 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돕자고 남았는데 말이다.
열이 받친 마법사가 한 소리 하려고 나서려는데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썩은 나무처럼 부패한 마르크의 살점이 뱀이 껍질을 벗듯 벗겨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새 살이 돋아나는 중이었다.
소리를 치려 나가려던 마법사는 너무도 놀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눈으로 보고서도 못 믿을 광경은 계속 이어졌다.
마르크의 신체는 독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내성이 떨어졌었다.
때문에 자잘한 생채기가 더 크게 벌어지며 살 여기저기가 징그러울 정도로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그곳으로 검은 피가 흘러나오나 싶더니, 어느 순간 붉은 피가 솟아나왔다.
그러면서 차츰 그 틈새가 아물어들었다.
한 뼘을 넘는 상처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마법을 아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더 큰 놀라움이었다.
“세상에…….”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지금 치료하는 흑발의 사내는 입으로 마법의 시동어조차 내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마법사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드… 드래곤?’
용언 마법이라야만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치료가 채 끝나기도 전에 두 마법사는 바닥에 몸을 바짝 웅크렸다.
“위대하신 분을 뵈옵니다!”
치료를 하다 말고 아그리스가 반쯤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초리로 마법사들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소문이 퍼져 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기 때문이다.
제일 큰 문제는 귀찮아진다는 점이다.
[한 번 더 입을 벙긋하는 시에는 죽이겠다.]
아그리스 스스로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걸 인정한 셈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마법사들을 두고 아그리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환자의 치료에 열을 올렸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푸하~”
죽었었던 마르크의 입이 벌어지며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숨을 멈췄던 관계로 마르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번쩍 눈을 뜨며 급작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신체의 대사가 한꺼번에 이뤄지며 심력을 소모한 탓이었다.
오딘은 전음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가 막히는군. 죽은 녀석을 살리다니.
[흥, 별일도 아닌 걸로 가지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그리스는 내심 흡족해했다. 자신이 인정하는 존재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오딘은 칭찬에 인색한 인물이었다.
사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아그리스도 실패할 일이었다. 이는 마르크의 심장이 멈추었어도 여러 장기들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그리스가 한 일이라고는 마르크의 영혼을 붙잡아 육신에 밀어 넣은 것과, 죽어가던 면역력에 기운을 북돋아 신체의 대사를 촉진시키고 마나로 충격을 주어 심장을 다시 뛰게 한 일 뿐이었다.
아그리스는 돌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신처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들에게 정체를 들켜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불현듯 방 안에 눈부신 빛이 폭사되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확 바뀌어 있었다.
조금 전 그들의 얼굴이 경외를 담은 표정이었다면 지금의 얼굴은 멍한 표정이었다.
이에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이라고는 오딘 단 한 사람이었다.
일순에 방 안은 혼란에 휩싸였다.
“뭐, 뭐지?”
“방금 뭐가 번쩍였는데?”
마법사들에 반해 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 마르크! 너 멀쩡하잖아?”
“어? 그러게요. 제가 언제 나았죠?”
헤르미온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마르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해 오딘이 이곳에 온 것조차 몰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녀석이 말짱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샥과 정크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라드와 쌍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반면에 쌍귀는 의아함을 달래지 못하고 좌우를 둘러보던 중 오딘을 목격하고 황급히 부복했다.
-악귀, 오딘 님을 뵈옵니다.
-무귀, 오딘 님을 뵈옵니다.
그제야 제라드도 오딘이 온 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부복했다.
“신 제라드, 오딘 님을 뵈옵니다.
같은 자리에서 인사를 두 번씩 듣게 되니 오딘은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어서 아그리스의 뇌리에 전음으로 말을 던졌다.
-내 참, 다 바보로 만들어놓으면 어쩌자는 거지?
스스로 생각해도 무안했던지 아그리스는 몸을 돌려 헛기침을 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이 무렵 헤르미온도 오딘을 보았는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볼을 붉혔다.
마르크도 자신의 몸이 괜찮아진 것을 느끼고 뒤늦게나마 침대에서 일어나 오딘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구나.”
전과 마찬가지로 오딘은 그에게 자상한 모습으로 일관했지만, 마르크는 전과 다르게 오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오딘이 검술도 못할 거라며 은근히 무시하지 않았던가.
오딘이 블랙 드래곤과 싸우는 것을 못 보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보게 되어버렸다. 자연히 마르크는 오딘을 드래곤만큼이나 무서운 사람이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 말투부터 행동거지, 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오딘은 제라드를 향해 말했다.
“장로는 날 좀 봤으면 좋겠군.”
“신 제라드, 부름에 응하겠사옵니다.”
오딘이 나가고 제라드가 뒤를 따르자 쌍귀도 그림자처럼 제라드의 뒤를 따랐다.
방 안은 다시금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마르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저도 모르겠다니까요.”
“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 속에서 길드로부터 의뢰를 받았던 두 마법사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