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엠팔레스 신전으로의 난입 (34/67)

엠팔레스 신전으로의 난입

아레인의 전력들이 서서히 대륙에 진출을 꾀하는 이때, 오딘은 신성 제국의 수도 홀란트에 위치한 엠팔레스 신전에 당도해 있었다.

유난히 한산한 모습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대상은 성기사들과 사제들, 그리고 이 신전에 소속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쿤은 기가 죽어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긴장할 만도 했다. 이 자리에는 오딘과 그뿐이었으므로.

얼굴이 그려진 전단이 사방에 배포되었을 텐데 쿤이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오딘이 준 인피면구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것치고는 매우 섬세했는데, 흉측해 보이지도 않았으며 의심을 사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쾌함과 약간의 불편함까지 떨쳐 낼 순 없었다.

안쪽에 땀이 차고 가려워서 긁으려 할 때면 지금처럼 오딘이 손을 잡아 제지를 하고는 주의를 주었다.

신전에 바짝 다가갈수록 쿤의 긴장은 더욱 커져, 결국엔 태산 같은 걱정을 누르지 못하고 오딘에게 귀엣말로 소곤거렸다.

“도대체 어쩌실 생각이세요? 여긴 신성 제국의 신전이라고요. 여기서 난리를 치는 건 신성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요.”

오딘이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누가 난리를 쳤다더냐?”

“그, 그러실 거잖아요.”

“그럼 안 되느냐?”

농간당하는 기분이 들었던지 쿤의 인피면구가 살짝이나마 구겨지자 곁눈질로 그것을 본 오딘이 다시 주의를 주었다.

“그러다 들키겠구나.”

쿤은 애써 표정을 정리하고 차분한 어조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신성 제국은 대륙 내에서 무시 못할 힘을 가진 곳입니다. 이들을 적으로 만들었다가는 오딘 님뿐만 아니라 아레인 왕국까지 위험해진다고요. 설마 그러고 싶으신 것은 아니겠죠?”

오딘은 그 말에 대답할 필요성조차 느끼질 못했는지 그대로 묵살해버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두고 봐야 알겠지. 말을 안 들으면 난리를 칠 수도 있는 거고…….”

막 계단을 오르려던 찰나, 쿤이 그 소리에 기겁을 하며 멈춰 섰다.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며 오딘이 물었다.

“가지 않을 테냐?”

다시 쿤이 물었다.

“그 뒷일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길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오딘이 한심스러워 보였는지 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시는군요.”

더 말을 섞는 것도 귀찮았던지 오딘은 쿤에게서 시선을 떼고 곧장 앞을 향해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성기사 한 명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보고 있어 쿤은 당혹스러움을 떨쳐 내지 못하고 황급히 오딘의 등 뒤로 바짝 거리를 좁혔다.

갑자기 한 신관이 그들을 발견하고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옷차림새를 볼 때 보통 신분 같지가 않아서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앞서 리먼과 말을 섞었던 바로 그 신관이었다.

“저희 신전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상담이 필요하십니까? 혹은 환자?”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신전이 하는 주된 업무였다.

대륙에는 의술보다 마법이 발달한 이유였는데, 특히나 신성력이 깃든 치유 주문은 상처 수복은 물론 축복까지 내려 준다고 믿었던 탓이다.

그러나 오딘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는 위용을 뽐내는 엠팔레스 신전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았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볼 때 이 남자는 자신보다 2배는 어려 보였다.

신관은 슬그머니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놈이 싹수가 노랗구나. 어른한테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모양이로군. 어디 변두리 왕국에서 귀족 노릇이나 하던 놈이겠지. 쯧, 우물 안 개구리 같으니라고. 여기가 어디라고…….’

문전 박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신관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고로 대륙의 모든 사람들은 신민이라고 하질 않았던가.

모든 사람이 형제이고, 자매이며, 이웃이라고 배워온 그다.

타인이라고 한들 함부로 대할 순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남자는 신전을 찾지 않았는가. 어쩌면 열렬한 신도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예의 바르고 궁핍한 사람보다는 예의가 없더라도 부자를 선호하고 존중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인상이 활짝 펴졌다.

“묻고 싶으신 것이라면 무얼 말씀하시는지요? 주신 아스카론 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정성을 보여 주신다면 제가 모르는 일이라도 주신을 통해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탐욕에 물들어 있는 신관의 눈을 보며 쿤은 인상을 구겼다.

‘시도 때도 없이 신을 팔아먹는군.’

그에 반해 오딘은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정성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약간의 기부금이면 됩니다. 오해 마십시오. 그 기부금은 불우 이웃들을 위해 쓰이니까요.”

하마터면 쿤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들의 작태를 잘 알고 있어서다.

며칠 봐온 오딘은 돈을 물 쓰듯이 했다. 행여나 이 신관에게도 헛돈을 쓸까 염려가 되어, 쿤은 그에게 통신 마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많이는 주지 마십시오. 욕심에 눈이 먼 자들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 신관들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오딘 님이 주시는 돈은 십중팔구 저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거나 신전의 치장에 쓰일 겁니다.]

오딘 역시 전음으로 응답했다.

-그렇다면 헛돈을 쓰는 셈이 되는군. 주지 말아야겠어.

그 말에 쿤은 난색을 지었다.

돈을 안 준다면 저 신관으로부터 홀대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오딘의 심사가 꼬일 것이요, 이후에 서로가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말을 섞다 보면 더 안 좋은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오딘의 성격이 걸림돌이 될 것은 꼭 지켜보질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질문을 하는 데에 돈을 달라? 그대가 모시는 신이란 작자는 꽤나 돈을 밝히는 모양이로군.”

“마, 말씀이 너무 심하시구려.”

단박에 사태가 극악으로 치달아버렸다.

쿤도 계산치 못한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썩었다고는 하나 그 역시 주신을 모시는 신관이다. 주신까지 싸잡아 욕을 하니 그는 오딘을 더는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눈알을 굴려 주변에 있는 성기사들을 바라보는 것이 여차하면 그들을 호출할 작정인 듯했다.

사태가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막고 싶어 결국 쿤이 나섰다.

“하하, 이분께서 대륙의 실정을 잘 모르십니다. 무신론자셨죠. 주신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조금 알려 주시면 어떨까요? 혹시 그분의 거룩함을 느끼신다면 이분께서도 마음을 달리하실 수 있을 텐데요.”

붙임성 있는 말투에 화가 누그러졌는지 신관은 소년의 말처럼 젊은 남자를 종용해보기로 했다.

“으흠, 그런 줄은 몰랐군요. 내가 욕을 듣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주신 아스카론 님을 능멸하는 것은 안 됩니다.”

수긍할 줄 알았던 오딘은 여전히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신관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조금 전 소년의 말도 있고 해서 그는 무례한 청년을 조심히 타일렀다.

“이 대륙을 만드신 것도, 그리고 저희 인간들을 만드신 것도 아스카론 님이십니다. 미개한 몬스터들이라 해도 아스카론 님을 욕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세상의 조물주시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신관의 말을 듣고만 있던 오딘이 쿤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말이 사실이냐?

쿤은 소신껏 자신의 의사를 내비쳤다.

[저들의 주장이 그렇습니다. 주신을 보았다는 사람도 꽤 되지만, 그 말이 진실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요. 가탄의 철학자 르메오는, 소위 그들이 감동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믿음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얘기지?

[어쩌면 그들이 보고 느낀 대상은 스스로가 만든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아마 신성 제국의 막강한 신성력은 그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도들의 믿음이 이들이 지니는 마력의 뒷받침이 되는 것이지요.]

-어려운 얘기로구나. 네 얘기가 사실이라면 이 녀석들은 허상을 믿는다는 말이 되겠구나.

[주신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도 있어요. 다만, 이들은 맹목적으로 주신을 믿다 보니 본질을 흐려 방향을 잃고 소위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예요. 우스운 것은 그것을 알고도 주신의 이름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많다는 거죠.]

둘이 머릿속으로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신관의 말은 계속되었다.

“…또한 저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다 아스카론 님의 은총 덕분이며,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아스카론 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게다가…….”

듣다 보니 오딘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안 그래도 쉬바인이 드래곤을 신봉하는 것에 학을 떼었는데 이 녀석은 주신 아스카론이라는 녀석을 들먹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분을 따르십시오. 인간의 수명은 얼마 되질 않습니다. 그 이후엔 어디로 가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사후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평생 고통 속에서 보내고 싶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인간은 길어야 일백 년을 산다지만 사후의 세계는 영겁과도 같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권유가 아닌 강요였다.

안 그래도 곱게 보아지지 않던 녀석이 설교를 늘어놓으며 신경을 거스르기까지 하자 오딘은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그만…….”

말은 멈췄지만 신관은 미련이 남은 눈치였다.

더 놔두었다가는 이 녀석이 다시 입을 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오딘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질문 하나 하는 것이 이렇게 성가실 줄 몰랐군. 들어줄 만큼 들어줬으니 이제는 내 질문을 들어줘야겠어.”

질문을 받기 전, 신관은 탐탁찮은 눈빛으로 오딘을 주시하다가 시선을 떼고 주변을 쓸어보았다.

몇몇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이쪽을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신관은 오딘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하하, 그래요. 질문을 받았어야 하는 것을 너무 말을 돌려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마땅한 대답을 들려 드린다면 제 얘기를 마저 듣는 것으로 말입니다.”

“시원하게만 대답해준다면야…….”

그러겠다는 말이었다.

신관의 긴장이 다소 누그러졌다.

“아는 한도 내에서는 거짓 없이 말해드리겠습니다. 어디, 물어보십시오.”

오딘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대신관은 어디에 있지?”

조금 싸늘해진 기분마저 들었지만, 신관은 그것이 오해라고 판단해버렸다.

“아이쿠, 대신관님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럼 진작 말씀을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제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네요.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한데, 찾으시는 대신관님의 성함이……?”

우호적인 태도를 내보이는 신관에게 짤막한 대답이 들렸다.

“모른다.”

“모, 모른다니요? 농담은 삼가주시는 게… 어떤 분을 찾는지 알아야 제가 말씀드릴 것 아닙니까?”

아직까지도 신관은 인내심을 발휘해 청년의 기분을 최대한 상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오딘은 쿤에게서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직선적으로 말했다.

“얼마 전 펜던트의 주인을 찾으러 왔던 남자가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눴던 대신관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지?”

딱히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신관의 표정은 검게 죽어 있었다. 그 내막을 알고 있어서다.

당시의 강압적이었던 분위기가 떠오르자 신관은 시치미를 뚝 뗐다.

“저, 저는 금시초문이로군요.”

찰나라고 했어도 무방할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오딘은 신관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솔직하지 못한 듯하군.

너무도 놀란 나머지 신관은 엉겁결에 맨바닥에 궁둥이를 찧고 말았다.

말을 건넨 대상을 찾지 못해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휘휘 돌려 가며 두리번거렸다.

“누, 누구요? 누가 말을 하는 것이오? 내 머릿속에 의사를 전한 것은 누구입니까?”

뒤로 갈수록 목소리는 점점 기가 죽어 있었다.

짙게 깔리는 두려움. 그것은 자신에게 말을 건 대상이 혹시 주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신관이 거짓말이나 일삼다니…….

의도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냥 넘겨짚은 것이다.

하지만 오딘의 전음이 신관은 마치 신의 음성으로까지 들렸던지 당혹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냉정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 들려온 말인지도 몰라 아무 쪽에나 대고 엎드려서 몸을 바짝 웅크렸다.

“제게 말을 전한 것이 정녕 당신이시옵니까? 오오, 아스카론 님이시여~”

신관이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라고 해서 통신 마법을 못 알아챌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뇌리에 전해지는 말은 절대 통신 마법이 아니었다.

또한 오딘은 혜광심어로 전음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말이 들려오는 방향이 불분명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이는 오딘에게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이 이상한 광경을 보고는 성기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며, 사제들도 뒤를 따랐다.

멀리 있던 나머지 신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한 한 성기사가 목청을 높여 따졌다.

“무슨 해괴한 짓을!”

그러나 그를 꾸짖은 것은 오딘이 아닌 신관이었다.

“뭣들 하느냐? 주신께서 여기 와 계신다. 당장 엎드려라!”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우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신관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요상했던 것이다.

이 중 더러는 의연하게 서 있는 오딘을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때 오딘이 한 번 더 전음을 보냈다.

-괘씸한 녀석들이로구나.

이는 대상 모두에게 전해지는 전음이어서 성기사들과 사제들 또한 크게 질겁하며 당장에 바닥에 웅크리며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주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가련하게 생각하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저마다 하는 소리는 달랐지만 대게 뜻은 위와 같았다.

그 장면에 쿤은 그만 소리가 나도록 웃고 말았다.

실수를 깨닫고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듣질 못했는지, 아니면 그럴 여유가 없었는지 그의 행동을 나무라거나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그들이 바싹 웅크려 있는 틈을 타 오딘은 신관에게 되물었다.

“정말 모르는 일이냐?”

신관은 얼굴을 들어 오딘을 마주 보고 사실을 얘기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기로가 없었다.

“거짓을 얘기하여 죄송합니다. 펜던트를 유심히 보았던 대신관님은 황도 어딘가에 계실 것입니다. 더 자세히는 알지 못하니 주신 앞에서 절 더 이상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신전을 나서며 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정말 가관이었어요. 기왕이면 설교도 늘어놓지 그러셨어요?”

“무슨 설교를 말이냐?”

“똑바로 살라고 말이에요.”

“왜 그래야 하지?”

한창 흥이 나서 하는 말에 호응을 안 해주자 쿤은 금세 시큰둥해졌다.

이로써 쿤은 오딘에 대해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되었다.

‘절대 정에는 연연해하지 않을 분이야. 주위 사람들을 모두 저렇게 대하실까? 흥, 힘만 세면 뭐 한담? 사람과 친해질 줄 모르는데…….’

근래에 봐온 오딘의 모습은 너무 무뚝뚝하고 정이 없어 얼마를 붙어 다니며 들었던 정도 달아날 판이었다.

그래도 기왕 따라오게 되었으니 쿤은 향후 그의 행보를 물어야 했다.

“이제는 어쩌실 거예요?”

“대신관이라는 녀석을 찾아다녀야겠지.”

오딘의 거칠 것 없는 눈을 직시해서인지 쿤에게 또다시 막연한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한 남자가 둘의 옆을 스쳐 가더니 연이어 네 사람이 더 지나갔다.

뒤의 네 사람 중 두 사람은 평상복 차림이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더군다나 맨 처음 스쳐 간 남자의 고급스러운 옷차림새는 좀 전에 마주쳤던 신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를 눈여겨보며 쿤이 중얼거렸다.

“수도원장쯤 되는 모양이에요.”

“수도원장?”

“예. 간단하게 이 신전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신성 제국에는 황제 대신 성황이 있습니다. 그 아래 추기경이 있고, 네 명의 대신관들이 있어요. 그리고 각 신전에는 수도원장이 있죠. 신관은 그다음이에요. 그렇다고는 해도 수도원장과 신관은 주종의 관계는 아닐 겁니다. 명령권은 가질 테지만요.”

“그럼 아까 본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제일 말단이겠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명망 있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신관이나 수도원장들이 오히려 말을 높이기까지 하니까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오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걷던 두 사람의 뒤쪽으로 꾸지람이 들려왔다.

“대낮에 이 무슨… 냉큼 일어나지 못하겠소?”

수도원장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사람들을 향해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내며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눈치를 살피며 일어섰지만, 유독 신관만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래야만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아스카론 님께서 오셨습니다.”

“아스카론 님이라니…….”

수도원장은 놀라 주변을 살폈지만, 어떠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듯하니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오.”

“착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이곳에 왕림하셨습니다. 결례를 범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러면서 신관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두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물은 순전히 주신을 느꼈다는 착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데 수도원장 역시 태연할 수는 없었다. 정말 그의 말이 맞는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한 번 자신의 기분을 살폈으나, 어떠한 느낌도 전해지질 않았다.

수도원장의 입에서 다소 차가운 어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착각을 하신 것은 아니오?”

억울함을 감추지 못해 신관은 눈을 부릅뜨고 대들 듯이 말했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제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성기사들과 사제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신관의 입에선 호통이 터졌다.

“너희들도 들었지 않느냐, 그분의 목소리를!”

수도원장이 냉랭한 태도로 그들에게 물었다.

“사실이냐?”

그러자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하나같이 그렇다고 답을 했다.

“분명히 뇌리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저희들에게 동시에 들렸으니까요.”

순간 수도원장의 표정이 놀람을 띠다가 점차 평온을 되찾아가나 싶더니, 조금 후엔 얼굴색이 환해졌다.

그는 사과를 할 겸 신관의 어깨를 잡고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미안하오, 내 오해를 했나 보오. 주신께서 그대를 아끼셔서 은총을 내리셨나 보오.”

신관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은총이 아닌 꾸지람이었기에.

반면에 수도원장은 목소리로나마 주신을 접한 신관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증인이 이렇게 많질 않은가.

후에 신민들의 앞에서 이 신관의 경험담을 늘어놓는다면 꽤 좋은 성과를 거둘 것 같았다.

지어낸 말은 진실성이 없으므로 감동이 적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주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었다.

이 순간에도 오딘과 쿤은 이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수도원장이 돌연 등을 돌려 그 둘을 보았다.

“혹시 저들 중……?”

신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스카론 님은 목소리만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그럼 저들은 무슨 일로 왔소?”

그 질문에 신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섣불리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는지 그의 눈구멍 안의 눈알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왜 말을 못하시오. 편히 얘기하시오.”

다그치는 듯하지만 전혀 다그치지 않는 어조였다.

따스한 눈길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수도원장을 보며 신관은 마음을 다잡았다.

“저들은 일전에 한 남자가 펜던트를 들고 왔을 때 만났던 대신관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수도원장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사실대로 얘기했소?”

“전 그분의 거처를 모르지 않습니까? 황도에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대로 털어놓았을 뿐입니다.”

수도원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염려할 상황도 아니었다.

곧 신관의 항변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스카론 님이 정직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도리어 수도원장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주신께서? 왜?’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일의 전말을 세세히 꿰차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다녀간 직후 받은 보고와 그간의 정황… 즉, 펜던트의 소유자를 찾아 헤매던 남자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다는 것 정도는 수도원장도 알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 일에 신성 제국의 고위 관료가 연관되었다는 것쯤은 능히 짐작이 가능했다.

자신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극비의 사항이다. 이는 당연히 신성 제국의 치부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아스카론이 치부를 들춰내려 한다. 그건 바로 보이지 않는 위협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협박이었다.

수도원장은 과연 저들을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놓아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갈등을 하며 고뇌에 휩싸였다.

그러나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저자가 몸을 돌려 기꺼이 다가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이라 수도원장은 난감했다.

‘우선은 저들이 그를 찾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쪽에서 그를 적대시했다는 것을 안다면 십중팔구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다만 문제는 주신이다. 신관이 하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결코 간단히 넘겨짚을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자초지종부터 물어야겠구나.’

그 때문이었다. 혹여 그 일로 인해 아스카론의 노여움을 산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게 틀림없었다.

그처럼 생각을 굳히고 있었지만, 선택권은 주어지질 않았다. 그가 다가오자마자 시비조로 물어왔기 때문이다.

“네놈은 알고 있는 듯하구나. 그 대신관이 어디 있는지를…….”

수도원장은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아들이 있다면 저만 한 나이일 것이다.

물론 나이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대륙 전체가 신분제 이다 보니 귀족은 나이에 얽매이질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수도원장이라는 자리가 어디 거저 쥐어지는 자리이던가?

제국의 귀족이라 한들 이렇게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청년은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신 줄을 놓았는지 거침없이 하대를 하고 있었다.

수도원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분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나? 자네와 난 초면일세. 게다가 나이로 보아도 내가 연장자 같군. 신성 제국이 너그럽다고들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곳은 아니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수도원장의 말에도 오딘은 그의 성질을 돋우려고 작정했는지 콧방귀를 뀌었다.

“싫다면?”

수도원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를 보필하던 팔라딘들과 사제들은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작금의 상황에 얼굴이 샛노랗게 질린 쿤은 속으로 장탄식을 내뱉었다.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마는구나…….’

생각은 깊어져 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내가 곤경에 처해 죽는 것은 상관없어. 하지만 애석하다. 리먼 아저씨의 한은 풀어드렸어야 하는데… 아니,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어. 신성 제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곳이라면 대륙에서도 두세 곳 정도에 불과하니까. 불가능할 일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나도 참 미련했구나.’

따지고 보면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휘말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음에도 쿤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일은 더 커지고 말았다.

옷에 팔라딘의 표식이 새겨진 자가 검을 빼어들고 오딘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는 상식 밖의 일이었다.

행여나 수도원장은 신전의 광장에서 피를 보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던지 오딘과 마주 선 팔라딘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신전을 더럽히기라도 할 셈이냐?”

팔라딘이 실책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반면에 오딘은 수도원장을 조롱하듯 말했다.

“돌려 말하면 다른 곳에서는 괜찮다는 얘기 같군.”

더 불쾌할 것도 없었다.

장소가 이곳만 아니라면 저놈을 죽여도 상관없었다.

정말 그럴 요량이었는지 수도원장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신전의 외부를 향하는 것이다.

곁에 있던 팔라딘과 사제들이 그를 따랐고, 오딘과 일전이라도 불사할 것 같았던 팔라딘이 곱지 않은 표정으로 명령조의 말을 툭 내뱉었다.

“따라와라.”

아까의 광장과 그리 멀지 않은 넓은 공터였다.

쿤은 난색을 지었다.

오딘과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두 팔라딘과 사제들이었다.

조심스럽게 뷰 마나 포스(View Mana Force:마나의 양을 들여다봄)를 시전하여 저들의 몸속에 자리한 마나를 들여다보던 쿤은 기겁하고 말았다.

팔라딘들도 그렇지만 사제들이 가진 마나는 자신의 예상을 한참 웃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건 끼어들지도 못하겠어.’

조금의 거짓도 보태지 않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 정도의 마나라면 능히 4서클은 상회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에서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 났다.

또 하나 시선을 거스르는 것은 대략 20미터의 간격을 두고 주위를 빙 둘러싼 다른 성기사들과 사제들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지?’

해답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전히 굴하지 않고 여유로움을 내비치는 오딘, 전적으로 그 때문이었다.

쿤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오딘을 탓했다.

분명 그가 마스터라는 것은 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그가 단신이라는 점이었다.

현재 엠팔레스 신전의 안전을 담당하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죄다 모인 듯했다.

그때 한 성기사의 입에서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겁이 없는 건가? 우리 네 사람을 앞에 두고도 별로 기가 죽어 보이지 않는군.”

다른 성기사도 위협하듯 검을 빼어들고 오딘을 몰아붙였다.

“설마 일이 이 지경이 되리라고 예상 못한 것은 아니겠지?”

그들은 확실히 오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먼저 오딘을 손볼 요량으로 서 있던 팔라딘이 뒤에 나선 팔라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둘이 나선다는 자체가 꼴사납군. 저런 애송이 하나 상대하는 것쯤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자넨 빠져 주면 고맙겠어.”

그 말을 듣고 동료 팔라딘은 어깨의 힘을 빼고서 비죽이 웃었다. 그 웃음은 동료가 아닌 오딘을 향한 것이었다.

그 역시 어디서 저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 튀어나와 손을 귀찮게 만든다는 생각인 듯했다.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오딘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봐두었다.

미리 말을 맞추고 먼저 나선 팔라딘이 검을 곧추세우고 거리를 재기 시작하자 주변에는 긴장감이 넘쳤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딘은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를 이상히 여긴 팔라딘이 물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왜 검을 뽑지 않지? 설마 이제 와서 잘못했다고 빌지는 않을 테고…….”

그의 말에 오딘은 고개를 숙이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잠시 후 검갑에서 서서히 검을 빼어들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팔라딘의 머릿속에 의문의 경고가 들렸다.

-누구한테 검을 들이댔는지 뼈저리게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니라.

정체 모를 음성으로 인해 삽시간에 팔라딘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솟구쳤다.

대상은 분명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짙은 살기가 무섭게 퍼져 나왔다.

오딘의 뒤편에 서 있던 쿤은 이 이상한 기운에 놀라 다급히 몸 전체에 실드를 둘렀다.

소름 끼치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팔라딘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떨림이 심했는지 검이라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다른 팔라딘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다가오다가 깜짝 놀랐다. 숨통을 조일 만큼이나 강력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두어 걸음 물러서서 몸에 신성 보호 주문을 걸고는 각오를 달리하며 다가섰다.

그럼에도 지척에 다다랐을 땐 코와 입에 탁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 이놈은 마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가 사색에 빠져 있을 동안 미처 신성 보호 주문을 걸치지 못한 팔라딘이 검을 땅에 찍고 무릎을 꿇으며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그는 당장에라도 죽을 듯 보였다.

핏대가 선 눈은 핏물이라도 스며들었는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으며, 얼굴색은 새파랗게 죽어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원인 제공자를 해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생각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졌다.

신체 밖에 반투명의 신성 보호 주문을 씌운 팔라딘의 묵직하고 날선 검이 오딘의 목을 향해 수평으로 궤적을 그리며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쉐엑!

대기를 가르는 소리에 이어 쇠의 마찰음이 흘러나왔다.

파칵!

이상한 형상이 아로새겨진 흑검이 팔라딘의 검과 맞닿아 있었다.

심히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 전의 힘이라면 팔라딘의 검은 그냥 들어올린 오딘의 검을 떨쳐 내거나 잘라내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딘의 검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팔라딘의 경각심이 더욱 커졌다.

‘반작용도 없다?’

작용이 있으면 마땅히 반작용이 있다.

상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이라도 흔들려야 할 게 아닌가.

간단한 예로 바위나 쇳덩이를 칠 때도 그러하다.

팔라딘이 기이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 때, 숨을 할딱거리는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쓰러뜨려야 했다.

그러나 그의 검은 돌 틈새에라도 낀 것처럼 빠지지를 않았다.

“이익!”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입에서는 악에 받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뭔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입이 거칠군.”

말을 마치며 오딘이 흑룡검을 든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팔라딘은 자신의 검과 함께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 행동에선 쓰러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팔라딘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고 이를 갈았다.

“날 바보 취급했겠다?”

잔뜩 열이 받아 앞으로 나서려는데 근방의 두 사제가 차례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돕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처리하고 싶었던지 팔라딘은 대답을 않았으나 곧 따가운 시선을 마주쳤다. 수도원장이었다.

마지못해 따를 생각으로 다시 오딘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동료가 눈에 밟혔다.

상황은 매우 절박해 보였다.

그는 점점 숨이 막히는지 시꺼멓게 죽은 얼굴로 이제는 바닥에 드러누워 발작하듯 몸을 떠는 수준에까지 가 있었다.

팔라딘이 재차 접근을 하기 전에 양 방향에서 2개의 섬광이 번쩍였다.

범인의 눈으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는 빠르기였다.

밝은 백색의 빛 무리는 정확히 오딘의 몸 근처에서 멎어 더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2명의 사제들은 자신들이 쏘아 보낸 빛을 조금이라도 더 전진시키려 팔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오딘의 몸 주변에는 강기막이 둘러쳐져 있었기에 불가능했다.

과거 파르티잔의 마법에 심한 불쾌함을 느낀 이후 그는 되도록 마법사들을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지금 오딘이 살기와 마기만으로 한 팔라딘을 무력화시키고 다른 한 팔라딘을 물러서게 하면서도 강기막을 둘러 두 사제의 공격을 막은 것은 저들의 동태를 감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고 다른 세 사람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 게다가 오딘의 주위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크기는 쿤의 입을 최대한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 불가사의한 상황에 놀라워하면서도 쿤은 한편으로 일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느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단이 벌어졌다.

바닥에 누워 신음을 하던 팔라딘의 숨이 꼴까닥 넘어간 것이다.

그의 죽음을 인지한 것은 쿤만이 아니었다.

뒤쪽에 물러서 있던 팔라딘이 그 상황을 더 먼저 알아차리고는 이를 갈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뿌드득, 네놈……! 절대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라!”

싸늘했던 분위기가 더욱 차가워지며 한기가 돌 지경에 이르렀다.

팔라딘의 분노가 지배한 발소리는 아까보다 더욱 무거워졌고, 사제들 역시 진전되지도 않는 신성 마법에서 손을 떼고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캐스팅이 끝나기도 전에 다가선 팔라딘의 검이 수직으로 그어졌다.

분명 오러 블레이드는 아니었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눈에는 검이 길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쉽게도 그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언제인지 모르게 오딘은 옆으로 비켜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수차례 헛손질이 이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의 검은 무겁고 매서운 속도로 허공을 갈랐으므로.

지금 잔뜩 열이 오른 팔라딘은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쥐새끼같이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오딘은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웃을 뿐이었다.

그 순간, 한 사제로부터 신성 마법이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팔라딘이 그의 움직임을 잡지 못했던지라 그 마법은 허무하게 목표를 놓치고 뒤쪽의 애꿎은 성기사들에게 날아들었다.

놀란 성기사들이 다급히 물러서려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그중 둘이 폭사되는 빛에 부딪히며 폭발이 일어났다.

퍼엉!

두 성기사의 몸은 매우 밝은 빛에 덮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위력은 엄청났다.

사제들이 쏘아 보낸 신성 마법에 몸을 노출시킨 탓에 그들이 입은 철갑옷은 녹아내렸고, 뜨거운 열기는 피부까지 태웠다.

그리고 곧 끔찍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두 성기사는 맥없이 바닥에 몸을 뉘었다.

명백한 사고였으므로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성기사들은 애먼 눈으로 자신들의 동료를 죽게 한 사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이 뒤집힌 팔라딘은 그를 주시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오딘의 명줄을 끊어놓으려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조금 후 한 사제로부터 또다시 섬광이 일었다.

방금 전의 사제가 발출한 신성 마법이 백색이었던 데 반해 이 사제의 신성 마법은 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뱀처럼 오딘이 자리를 이동해도 방향을 틀어가며 계속해서 쫓았다.

오딘은 입가에 불현듯 모호한 미소를 떠올리고는 순식간에 팔라딘의 뒤쪽으로 신형을 이동시켰다.

불행하게도 팔라딘은 이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의 다리가 오딘의 손에 의해 들려졌다. 몸이 거꾸로 뒤집힌 상태에서 뒤늦게 팔라딘은 손을 쓰려 했지만 무리였다.

오딘의 손에 의해 팔라딘의 몸은 땅과 수평으로 돌려지며 원심력이 가해졌다.

노란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오딘의 손도 놓아졌다.

의지와는 다르게 팔라딘의 몸은 그 빛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급기야 부딪칠 지경에 이르렀다.

“안 돼-!”

끝내 몸은 의지에 따르지 못했다.

외마디 비명 소리. 그에 이어 폭음이 터졌다.

퍼엉!

사제가 발현한 신성 마법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그 충격으로 팔라딘의 몸은 저만치 나가떨어졌고, 실드마저 깨진 것으로 모자라 온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처연하게 널브러져 꿈틀대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듯했다.

공격을 퍼부은 사제들은 난색을 표했고, 수도원장도 역시 사색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였다.

오딘이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무대의 정중앙으로 걸어오며 사제들을 타이르듯 말했다.

“쯔쯧, 같은 편을 죽여서야 쓰나…….”

사제들은 분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달리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팔라딘이 가세한 상태에서도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는데 지금 마법을 캐스팅한대 봤자 맞힐 리 만무한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사제들은 슬그머니 수도원장의 눈치를 살폈다. 주위에 있던 성기사들과 사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래 이들의 임무란 엠팔레스 신전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전에서 물의를 빚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있다고 해도 취객이 술주정을 하는 정도나 굶주린 거지가 동냥을 하며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정도였다.

현 상황은 평온하던 엠팔레스 신전에 커다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가히 눈으로는 따라잡지도 못할 속도,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상대에게 그들이라고 경각심이 없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이유는 투철한 사명감 때문이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는 사명감.

수도원장을 보며 오딘은 조롱 섞은 말투로 도발을 꾀했다.

“설마 나머지 녀석들도 내보내고 쏙 빠질 생각은 아니겠지?”

뒷짐을 지고 서서 지시만 하는 그가 내내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질 같아서야 직접 손을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도원장이라는 위치가 어디 간단하게 쥐어지는 자리던가? 사제들과 성기사들 앞에서 수도원장은 결코 가벼운 행동은 취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었는지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스스로 나서기 시작했다.

“저자의 처결을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허락하여 주소서.”

수도원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곧 일대다의 전투가 벌어졌다.

수도원장을 엄호하던 고위 사제들이 다시 캐스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만 많다 뿐이지 전투는 조금 전보다 그리 치열하지 못했다.

오딘은 아예 검을 검갑에 꽂아놓고서 가벼운 몸동작만으로 그들을 상대했는데, 보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참 어처구니없는 광경일 지경이었다.

손으로 치고 발로 차는 것뿐인데도 성기사나 사제들은 신음을 내뱉으며 꼬꾸라졌다.

한번 쓰러진 이들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고, 설령 일어섰다 하더라도 종잇장처럼 얼굴을 구기며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아직 안 맞아본 자들은 몰랐다.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신체 외부에 상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수도원장도 슬슬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서서히 두려움으로 변질되었다.

‘무시할 수 없는 자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왔다는 말이냐?’

얼추 모인 성기사들과 사제만도 대략 30명.

벌써 이들 중 10명 가까이 바닥에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마저도 자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오딘이 작정하고 손을 썼다면 더 많은 자들이 지금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리라.

수도원장은 묘책을 떠올려야 했다. 그러다 한 대상에게 시선이 꽂혔다.

그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저 아이를 잡아라!”

순간 여럿의 시선이 오딘이 싸우는 모습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쿤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몸 둘 데를 몰라 난처해하는 쿤.

일부의 병력이 그에게 향함으로써 상황은 조금 전보다 더 어지럽게 변했다.

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헤이스트를 걸고 속도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기란 쉽지가 않았다.

‘젠장, 이렇게 될 거 뭐 하려고 데리고 오셨담? 짐만 되는데…….’

사제들은 그렇다 쳐도 성기사들의 속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가뜩이나 긴장했던 차에 여럿에게 쫓기는 판국으로 내몰리자 얼마 못 가 쿤은 결국 한 성기사의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그 순간 오딘이 돌연 멈추고는 고개를 반쯤 돌려 그쪽을 주시한 채 잔인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게 나오면 자비는 없을 거야.”

명백한 경고에도 성기사는 긴장해서 떨리는 손으로나마 쿤의 목에 서슬이 퍼런 검날을 들이대며 으름장을 놓았다.

“닥쳐라! 이놈을 살리고 싶다면 순순히 내 말에 따르는 게 좋을 거다.”

주변의 성기사들과 사제들, 그리고 수도원장은 확실히 반색하는 얼굴이었다. 이제야 돌파구가 생겼다고 믿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큰 오산이었다.

오딘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는데, 그 목소리는 기이하게도 쿤을 붙잡고 협박을 가하고 있던 성기사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주제를 모르는군.”

순간, 오딘의 손가락이 퉁겨지며 가는 파공음 소리가 대기를 찢었다.

피융!

폭!

급작스런 충격에 성기사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 버렸는지 그의 손에 들렸던 검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딸강!

그의 팔은 힘없이 처졌고, 몸은 서서히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쿤은 기겁을 하며 재빠르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무너진 성기사에게 여럿의 시선이 쏠렸다.

그 시선들에는 왜 그가 쓰러졌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담겨 있었다.

성기사의 미간 정중앙에는 미세한 구멍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구멍을 비집고 검붉은 피가 우악스럽게 밀려 나오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주위가 다 고요해졌다.

누구도 섣불리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저 멀리서 신관들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중 오딘과 말을 섞었던 신관은 바짝 기가 죽어 있었다.

그는 문제의 발단인 오딘을 살피기보다 수도원장을 바라보았다.

수도원장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한들 그를 탓할 여력이 없었다.

적잖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특히나 처음에 숨을 거둔 팔라딘과 방금 쓰러진 성기사는 왜 죽게 된 것인지 그 연유조차 알지 못했다.

무언가가 미간에 구멍을 뚫었다고는 해도 그것이 어떤 정체 모를 무기인지 아니면 마법인지 확인조차 불가했던 것이다.

미지의 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스스로 저자를 쓰러뜨리려는 의지조차 한풀 꺾이고 말았다.

이 중 신성 마법이 가장 뛰어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본인이었다.

그러나 정설로 볼 때 마법사는 근거리에서 기사를 당해낼 수 없다. 여기 모인 신전의 호위 병력들이 저자의 발목이라도 붙들어준다면 모르겠지만, 조금 전 보았듯이 그들은 자그만 걸림돌도 되질 못했지 않은가.

승산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었다.

또한 이 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날아갈 수 있다.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는가? 한순간의 판단이 생을 마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마음을 바꾸고야 말았다.

그렇게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흘렀고, 그 때문에 다섯의 기사들이 끔찍한 몰골로 쓰러지는 꼴을 봐야만 했다.

기형적으로 팔이 휘어졌다. 그런가 하면 다리도 돌아갔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인 양 말이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사무친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모습들이 모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자아냈다.

수도원장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 하시오!”

순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한 성기사의 팔을 잡고 있는 오딘이었다.

앞서 호위 병력들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꼴을 봐서인지 붙들린 성기사는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오딘의 고개는 수도원장을 향했지만, 두 팔은 성기사의 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그는 두 팔에 약간의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곧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둑!

“끄아아아……!”

성기사의 팔은 철갑과 함께 이상한 모양새로 휘어져 버렸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팔을 보며 성기사는 무릎을 꿇었고, 그로도 아픔이 가시질 않아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연방 비명을 질러댔다.

오딘은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아니, 그에게는 이미 흥미가 떨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지도 몰랐다.

그는 수도원장을 향해 이를 드러낸 채 이죽거렸다.

“이제야 직접 나서실 모양이로군.”

그 표정에는 못된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와 같은 치기마저 감돌았다.

어금니를 꼭 깨물고서 수도원장은 애써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화가 난다고 해서 당장 그릇을 엎어버리면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온전히 주워 담기란 힘들다. 그것이 액체라면 더더욱.

그래서인지 수도원장의 말투와 태도는 대단히 조심스러워졌다.

“그건 아니라네. 난 단지 자네와 얘기를 좀 하고 싶네.”

오딘은 옷에 묻은 먼지들을 가벼운 손짓으로 털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잘되었군. 사실 나 역시 얘기를 하려던 것뿐이었거든.”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수도원장의 긴장이 약간이나마 풀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대신관이라는 녀석은 어디 있지?”

오딘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수도원장은 당황을 금치 못했으나 태연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대신관님은 왜 찾는지?”

“그 녀석에게도 물을 것이 있거든.”

수도원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올 게 왔구나. 난처할 따름이다. 그분의 거처를 알린다면 내 신상에 이로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저자와 대결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선뜻 결정이 서질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오딘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

“뭐, 당장은 말하지 않아도 좋아. 말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내키게 해줄 테니까.”

협박이자 폭언이었다.

아무리 수도원장이 한발 물러섰다고는 하나 자존심에 먹칠을 당해가면서까지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차하면 폭발할 기분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딘은 계속 조소를 퍼붓고 있었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려고 하여 수도원장은 쓴소리를 내뱉었다.

“도무지 예우를 모르는 사람이군. 자네가 강한 것은 인정하네만 이렇게 자존심을 박박 긁는다면 나도 참아줄 수만은 없네. 나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는가? 또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네 역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을 걸세.”

정말 그럴 자신이 있는 듯했다.

그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마나를 재배열하고 있었다. 혹여 모를 사태에 대비해 강력한 신성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것이다.

오딘은 그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지 계속 다가오는 중이었다.

무려 10보 정도의 거리 차이였다.

더 다가오면 수도원장은 극히 불리해질 것이다. 때문에 큰 소리로 그에게 재차 경고했다.

“멈춰라! 한 걸음이라도 더 디딘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경고 때문인지 오딘이 정말 걸음을 멈췄다.

일촉즉발의 상황.

수도원장의 눈은 독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캐스팅이 가능하다. 이 상태 그대로 대화를 했으면 한다. 왜 그분을 찾는 것인지 먼저 들어야겠다.”

꽤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거슬렸는지 오딘은 귓구멍을 후벼 팠다. 그리고 가증스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이유를 말해주면 대답해줄 용의는 있는 모양이로군.”

“그건 들어보고 나서 결정하겠다.”

그 말을 듣더니 오딘은 씨익 웃었다.

“확실히 알고 있다는 얘기로군. 그 녀석이 있는 곳을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