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노인
오딘의 손이 희뿌옇게 빛을 냈다. 그 빛은 점점 더 환해져 어쌔신의 눈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 손이 허벅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푸확!
“크아아아아!”
피가 튀기고 근육이 찢어지는 아픔에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이 이어졌다.
강철 같은 신체라 자부하던 그의 피부가 어이없게도 맨손에 의해 찢겨진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지 어쌔신은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 물었다.
“마, 마스터?”
“그런 기준으로 잡아두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본 좌는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니까.”
멀리서 이 광경을 목격하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크게 놀랐는데, 특히나 저 어쌔신과 겨뤘던 자들은 그 놀라움이 배가 되었다.
그들 중엔 아직 오딘의 힘을 견식하지 못했던 자들도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잔인한 목소리가 어쌔신의 귀로 파고들었다.
“흠, 남을 기다리게 하는 버릇은 좋질 않은데 말이야. 어디 나머지 다리도 못 쓰게 한 후에 얘기해볼까?”
망설일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딘의 손날이 서서히 어쌔신의 다리에 접근하자 살이 타는 냄새가 풍겼다.
“끄으으으으~”
조금 전보다 훨씬 지독한 고통이었다. 서서히 살이 타며 찢기는 아픔을 어찌 감당할까.
그런데도 이자는 의지만은 남달랐는지 아직도 넋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
“아직 결심이 나질 않나?”
초인적인 인내였다.
그는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함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이빨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딘의 표정은 더 사악해져 갔다.
“어디 얼마나 견디나 두고 볼까? 넌 감히 본 좌의 수하들을 축내었다. 벌써 몇은 죽은 것 같더군. 시간만 주어진다면 네 녀석보다 강한 녀석들이 될 것인데 말이야.”
이어 오딘의 손이 어쌔신의 팔로 옮겨가 살과 살을 찢어놓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록 자신들과는 적이고 싸움을 벌였다고는 하나 점점 끔찍한 몰골로 변해가는 그를 보자 더러는 동정심을 내보였고, 또 더러는 자신이 저자가 아니라는 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소리를 지를 힘도 없는지 어쌔신은 죽을상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겨우나마 입이 열리며 간곡한 부탁이 새어나왔다.
“차… 차라리 죽… 여 다오.”
“그럴 순 없지. 참 아깝군. 너희들이 말하는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라놓고도 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검 밖으로 기를 발출할 수 있다는 것은 마스터의 문턱에 다다랐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어쌔신의 표정이 잠시나마 굳었고 오딘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냈다.
“욕심이 있는 것이로군. 어떠냐? 네가 이실직고한다면 본 좌가 너를 더 높은 경지로 끌어줄 수도 있는데.”
그가 주로 썼던 방법, 즉 공포와 회유였다.
잠시나마 어쌔신의 얼굴에 망설이는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으리라.
오딘은 나머지 팔조차 찢어버렸다.
처참한 몰골이 되어서도 참혹하게 얼굴을 구길 뿐 어쌔신은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제는 네 커다란 몸통에 자문을 새겨 주어야겠구나.”
“지… 지독… 한 놈…….”
원망하는 눈빛도, 저주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눈빛은 자신을 이렇게 처참하게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담고 있었다.
오딘은 더 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정신을 뒤로하고 그가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오딘은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땅바닥에 패대기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명했다.
“어서 이자를 치료하라.”
“네, 넵.”
하도 잔인한 손속에 질려 버렸는지, 아니면 적을 살려 주라는 말이 의아했기 때문인지 마법사들은 당황하며 뛰어왔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명이었다.
마법사들이 들러붙어 계속 힐링을 캐스팅했지만 어쌔신은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들은 흘끔흘끔 오딘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겨우 피는 멈췄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마법사들 모두가 하나같이 땀에 젖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버거운 모양이다.
오딘은 선 채로 그를 내려다보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왜 의식이 돌아오지 않지? 상처도 아물지 않고…….”
한 마법사가 다른 이들을 대신해 용기 있게 답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자의 상태가 워낙 위중합니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보겠사오나 역부족일 것 같습니다.”
미처 계산하지 못한 일이었다.
여태껏 마법사들이 부상자들을 쉽게 회복시키는 것만 보고 마음대로 손을 썼던 탓이었다. 뒤늦게 후회가 찾아왔다.
‘쩝,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가지고 놀 만한 녀석이었는데 아쉽군. 이를 어쩐다? 가만, 이 녀석이 죽는다면 그 녀석과의 약속 또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 될 터인데.’
오딘은 다급히 물었다.
“그럼 이자를 살릴 방도는 없다는 것이더냐?”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면 방도가 있을 듯합니다. 혹은 신전에 데려다주어도…….”
“신전이라고 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신성력이 뛰어난 사제라면 아마 이자의 몸을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같은 말이로군. 어쨌거나 너희들로는 무리다, 이 말로이구나.”
“신들의 무능함을 용서하시옵소서.”
“당장 그의 상태는 어떠한가?”
마법사가 그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당분간 너희들이 그를 데리고 있도록 하여라. 공작이 오면 물어봐야겠군. 내 허락이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방에 들이지 말거라.”
“말씀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 * *
야밤에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보지 못한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중년의 남자가 엘레느의 앞에 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바닥에 찧어댔다.
남자의 이름은 켈타스.
작금의 왕국에 후작이라는 작위를 부여받은 귀족이었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 그리고 엘레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이유는 하나. 보탄 남작과 발데르 공작의 회유에 돌아선 것이다.
엘레느는 꽤나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일어나세요. 이젠 괜찮은걸요.”
이렇게 몇 번을 말했는데도 계속 죄송하다며 사죄를 하고 있질 않은가.
그것은 그녀에게 용서를 받아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양심에 묻은 때를 벗겨 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걸 아는 보탄 남작과 발데르 공작은 그 이유로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켈타스 후작의 속내를 모르는 엘레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하다못해 엘레느는 발데르의 소매 깃을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저분을 좀 말려 주세요. 그리고 전 괜찮다고 말씀해주세요.”
그제야 발데르가 후작을 향해 타이르듯 말했다.
“공주님께서 이제 자네를 용서하고자 하시네. 일어나도 좋네.”
켈타스의 눈시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어이하오리까.”
사실 그에게는 큰 잘못이 없었다. 그가 느끼는 잘못이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이 살아 있는데 다른 자를 섬겼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주가 살아 있다는 한마디에 하인리히 왕에게서 등을 돌려 버렸다.
오딘의 조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때 복도를 타고 누군가의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대단한 존재도 아닌 평범한 시종이었는데 그는 오자마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입을 열었다.
“모, 목소리를 낮추시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보탄 남작과 발데르 공작은 조심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켈타스는 슬픔도 잊어버리고 노한 낯빛을 지었다.
한낱 시종 따위가 귀족들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이곳엔 왕가의 마지막 핏줄인 공주까지 있다.
이미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대충 들은 상태였다.
서열을 따지자면 마땅히 엘레느 공주가 제일 위가 되어야 할 것이었고, 그다음이 발데르 공작이 될 것이었다.
시종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분을 지금 봐야겠다고 서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듣다 못해서 켈타스가 대놓고 따졌다.
“어찌 지엄하신 분들을 앞에 두고 말을 함부로 늘어놓는 게냐?”
자신을 나무라는 말에 오히려 시종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으로 봐서는 자신을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눈초리마저 곱게 느껴지지 않자 켈타스는 더욱 화가 났는데, 이때 발데르가 미소를 머금고는 그를 다독여 주었다.
“내 다녀와서 설명해줌세. 집사는 후작이 며칠 쉬어갈 거처를 마련해주게.”
“예, 공작 전하.”
그들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진 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지 켈타스는 집사에게 물었다.
“난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이해 못하겠군. 어찌하여 저분들이 불려 간다는 말인가? 볼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뵈어야 도리가 아닌가?”
엉뚱한 곳에서 귀여운 아가씨의 목소리가 집사가 해야 할 답변을 대신해주었다.
“이 성엔 더 높은 분이 계시는걸요.”
오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발데르와 보탄은 심히 놀란 표정이었다.
“저희가 없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마법사가 필요하다. 녀석을 치료해줄 사람 말이다. 성에 있던 마법사들의 말로는 자신들은 치료할 수준이 못 된다는군.”
둘 다 감히 반문하진 않았다.
오딘이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궁정 마법사가 있긴 합니다. 오 서클이긴 하지만 왕국 내에서는 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라면 고칠 수 있느냐?”
“상태에 따라 다를 겁니다. 확신은 드릴 수가 없군요. 단, 육 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치료가 불가능해 보이는 환자들을 고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육 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어디 있느냐?”
“제법 강대한 왕국이나 제국에는 능히 육 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흐음.”
죽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지만 어쌔신은 갈수록 상태가 위중해져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죽게 되면 자신은 살생을 하게 되는 것이요, 그리되면 흑룡검도 돌려받을 수가 없다. 이 성에는 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였으니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단 하나, 오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6서클 이상의 마법사들 중 하나를 납치해오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공간 이동은 가능하겠지?”
두 사람은 오딘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바로 깨우쳤다.
“근방으로의 공간 이동은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하는 수 없구나. 그렇게라도 할밖에.”
내내 드는 의문점.
보탄은 무례를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물었다.
“오딘 님, 어찌하여 그자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인지 감히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너희 둘에게는 말 못할 것도 없겠지. 알다시피 난 중원이라는 곳에서 뜻밖의 사고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숲의 정령이라는 녀석과 마찰을 일으켰지. 녀석은 내 검을 훔쳐 정령계라는 곳에 숨겨 두고는 일 년 동안 살생을 금한다면 그것을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오딘은 대충 설명을 늘어놓은 것뿐이지만 그가 얼마나 그 검을 애지중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다 듣고 난 보탄과 발데르가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일이 그러하시다면 저희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 걸맞은 마법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제법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오딘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려 다른 말을 꺼내었다.
“그건 그렇고 갔던 일은 어찌 되었나?”
“모두가 오딘 님의 덕택이옵니다. 하마터면 같은 편을 적으로 돌릴 뻔했사옵니다. 그는 공주님의 생사를 확인하는 즉시 저희를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성에 그자가 와 있습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나중에 보도록 하지.”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오딘은 자신들 외에 다른 귀족들은 잘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므로.
“일이 있을 터이니 이만 물러가 쉬도록 해라.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본 좌는 성을 비울까 한다.”
“그럼 편히 쉬시옵소서.”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는 두 사람의 뇌리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잠시 전쟁을 멈추고 대마법사급의 마법사를 수소문해 기필코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커다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 * *
발데르는 켈타스 후작과 보탄 남작을 따로 응접실로 불러들이고는 시종에게 술상을 봐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 점이 이상하게 여겨진 켈타스 후작이 물었다.
“공작 전하께오서는 왜 술을 마다하시는지요?”
발데르가 멋쩍어하는 표정이 되자 보탄 남작이 그를 대신해 답변해주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을 짧게 끊어버리자 켈타스는 곱지 않은 시선을 건네었다. 자신을 제쳐 두고 따로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이 영 못마땅한 것이다.
“남작이 설명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게. 대신 내가 얘기하도록 함세. 사연인즉, 내 눈과 직결되어 있네. 그보다는 믿고 따르는 분께 실망을 끼쳐 드렸다네. 그 이후는 맹세를 하였지.”
아리송한 얘기였다.
“아니, 이 성에 제일 큰 귀족은 공작님 아니십니까? 아까도 누군가에게 불려 가시더니……. 그분이라는 게 도대체 누구입니까?”
“오딘 님이시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게야.”
“전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요. 혹시 타국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렇지는 않지.”
타국이 아니라 다른 세계가 맞을 것이다. 자신조차 정확히 모르는 것을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어려움이 따르는 법.
자연히 켈타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도통 알 수 없는 얘기들만 계속되니 답답할 뿐이다.
발데르는 조금의 불만이라도 풀어주려 밝은 미소로 대신했다.
“자네 역시 그분을 뵙게 되면 이해하게 될 걸세. 자, 술이나 드시게.”
하는 수 없이 켈타스는 보탄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셨다.
그때 밖에서 자그마한 소란이 일었다.
기사들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한 노인의 생떼 쓰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어허, 아는 사람이라니까 그러네. 자, 어서 고해주게. 그도 날 몹시 보고 싶어 할 게야.”
아마도 기사들의 발소리는 그를 말리는 상황에서 빚어진 일련의 소동이리라.
발데르가 문을 향해 물었다.
“누구신가?”
“한 노인이 공작 전하를 꼭 뵈어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곧 물리겠사옵니다.”
“나를 보겠다고 하였으면 얼굴을 보면 당연히 알 일을. 어서 문을 열라!”
공작의 호통이 떨어지고 나서야 기사들은 마지못해 응접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누더기를 걸친 노인이 썩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켈타스 후작이 이맛살을 구기는 것과 다르게 발데르는 놀라며 일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자신의 옷을 살펴보며 툴툴댔다.
“허, 이렇게 박하게 대하다니. 옷이 다 찢어졌어.”
원래 누더기였던 옷인데 뭘 저리 아쉬워할까?
켈타스는 그리 생각하였다.
그는 공작의 손님이란 말에 합석했지만 이런 몰골과 마주 앉는다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귀족이란 모름지기 자신들의 눈높이에 어울려 상대를 찾는다.
따라서 평민들은 좀체 가까이 대하질 않는다. 그러나 지금 보는 발데르는 예외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말도 말게. 내 여행을 한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네.”
“하하하! 원래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어르신.”
“그래도 더 심해졌단 말일세.”
“옷은 제가 모두 사드릴 터이니 이제 편히 사십시오.”
“에이, 어떻게 그러나. 또 난 이게 좋네.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질 않나?”
그러면서 옷을 코에 가져다대자 그 바람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퀴퀴한 냄새가 풍겨 버렸다.
보탄은 뭣도 모르고 따라 웃었지만 켈타스는 내내 불쾌했다.
동석한 손님에게 실례를 끼치는 게 미안했던지 노인은 일어서며 물었다.
“씻는 곳이 어디 있나?”
공작은 근처에 있던 시종 하나를 불러 명했다.
“어르신이 씻으신다고 하시니 안내해드리게. 그리고 새 옷도 준비해드리고.”
“명을 받들겠나이다.”
시종을 따라 총총걸음으로 노인은 자리를 떠났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군.”
발데르는 일어서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보탄의 손을 맞잡았다.
“되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딘 님의 환자 말일세. 그자를 치료해줄 수 있을 것 같으이.”
보탄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되물었다.
“예에?”
“저분은 마법사시네. 엄청난 경지에 오르신 분이지. 나도 저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라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내 뭐 하려고 자네에게 거짓을 말하겠나?”
둘의 대화를 듣던 켈타스 역시 사색이 되어버렸다.
그저 거지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자가 고서클의 마법사라니.
“벌써 뵌 지가 이십 년은 넘게 흐른 것 같군. 우리 가문에는 남다른 인연을 맺고 계시네. 아무튼 오딘 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하하하하!”
정말 기쁜 웃음이었다.
항상 받기만 하고 주질 못하여 불편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걷혀졌다.
보탄과 발데르가 이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 켈타스는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기 시작했다.
‘오딘이라. 그는 누구인가? 공작이 그에게 받은 은혜는 무엇일까? 또 치료를 해줄 이는 누구이며…….’
* * *
지금 이 자리에는 환자 외에도 발데르 공작과 그의 손님인 노인, 보탄 남작과 오딘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거구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허, 지독하게 손을 썼구먼.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야.”
오딘은 머쓱해졌다. 손을 쓴 당사자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덧붙여서 말했다.
“그때 말 한마디 잘못했으면 나도 이 꼴이 될 뻔했군.”
“크흐음.”
딴청이라도 피우려는지 오딘은 헛기침을 했다. 그것이 더한 의심을 사는지도 모르고.
발데르도 환자가 이 지경인 줄은 몰랐던지 의구심을 담아 물었다.
“치료가 가능합니까?”
“해봐야 알겠지. 나도 집중해야 하니 일을 하는 동안에는 말을 시키지 말게.”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네. 아직 시작은 안 했으니.”
여러모로 엉뚱한 구석이 많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주위를 물리고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뜨고 뜬금없이 말했다.
“문을 활짝 열어주게. 대신 시끄럽게 하면 안 되네.”
“예, 알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세 사람은 문을 열고 밖에서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다.
잠시 후 밤하늘에 떠돌던 마나들이 노인의 몸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나들은 노인의 손으로 옮겨 가며 매우 밝은 빛을 냈는데, 그 빛이 얼마나 밝았던지 성 아래 있던 사람들이 그들이 있는 방을 지켜볼 정도였다.
“그레이트 힐링(Great Healing)!”
노인이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그렇게 외치자 그 밝은 빛이 환자의 몸으로 모조리 스며들었다.
찢겨졌던 살들이 아물어가고 점차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발데르가 기뻐하며 물었다.
“되었습니까?”
“아직 멀었네. 힐링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냐. 어중간한 마법사는 손도 못 볼 것이네. 으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역시 사람은 말하기 전에 앞서 한 번 더 생각을 해야만 해.”
여전히 오딘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오딘이 멋쩍어하고 있는 동안에도 노인은 계속하여 투덜댔다.
“아주 손을 골고루 썼구먼. 이쪽은 베고, 이쪽은 분지르고. 또 아예 이쪽은 뼈를 가루로 만들어놨군.”
참다못해 오딘이 돌아서버리자 노인은 한술 더 떠 목소리를 크게 하고 마저 말을 내뱉었다.
“허, 내장까지 파열시켜 놓았어.”
“그래, 잘못했다. 잘못했어.”
“허허, 내 자네에게 뭐라 하는 것은 아니고 환자의 상태를 짚은 걸세. 노하지 말게. 지금도 충분히 무섭다네.”
발데르나 보탄 역시 상황이 대충 파악되자 웃음이 나왔는데, 오딘의 앞인지라 감히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몸을 돌려 겨우나마 큭큭거렸다.
더 놀렸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지 노인은 몸을 돌려 다시 마나를 손으로 집중시켰다.
이번은 좀 전과는 다른 감이 있었다.
땅의 기운, 바람의 기운, 물의 기운, 불의 기운에 대기의 기운까지 뭉쳐들며 두 손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이마에 핏대가 곤두설 무렵, 그는 환자의 몸에 손을 대고 다시 한 번 외쳤다.
“리페어(Repair)!”
엄연히 힐링과 리페어는 차이가 있다.
힐링은 상처나 피로를 회복시켜 주고 원기를 돋우는 반면 리페어는 심하게 부러진 뼈마디나 심지어 조각이 나고 으스러진 뼈까지도 원상태로 수복시켜 준다.
의서에 따르면 목숨만 끊어지지 않았다면 리페어로 못 고치는 사람이 없다고도 전해진다.
그를 증명하듯 곧 환자의 몸에서 섬뜩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두둑! 두두둑!
엉망으로 된 뼈마디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내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숨죽이며 변화하는 환자의 몸 상태를 바라보았는데 그중 오딘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녔구나. 내 전에도 봤다만 이자의 마법은 내가 봐왔던 자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저 어쌔신과 싸우려던 때에 오딘의 직감이 이자가 가장 위험할 것이라는 것을 던져 준 것 역시 그에게 기인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딘이 마법에 대해 알아두려는 이유도 고급 마법에 당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요 며칠 파르티잔을 끌고 다니면서 여러 마법들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몰랐다면 언젠가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었다.
자신이 아무리 내공이 심후하고 뛰어난 무력을 지녔다 한들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므로.
“끄음.”
환자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에 노인은 슬립이라는 마법으로 그를 재우고는 중얼거렸다.
“조금 더 누워 있게. 안정이 필요하니.”
그리고 몸을 돌려 발데르를 보았다.
“내 할 일은 끝난 듯하이.”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예끼, 이 사람.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노인이 방에서 걸어 나오자 오딘도 속에 있던 말을 꺼내었다.
“고맙군.”
그 말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던지 진땀이 다 났다.
살아생전 누구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해본 게 몇 번이나 될까.
항상 정점에만 있어 그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베풀면 베풀었지 도움을 구한 적은 그만큼이나 드물었다.
노인 역시 그가 싫지는 않았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자네를 도와준 게 아닐세. 내 공작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니 크게 마음 쓰지 않아도 되네.”
* * *
시녀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더운 물에 데운 수건을 꽉 짜서 환자의 이마에 얹어주고 준비해온 식사를 그의 머리맡에 두었다.
혹여나 환자의 얼굴에 땀방울이라도 맺힐 때면 수건으로 땀을 훔쳐 주고는 했다.
정성에 감동해서인지 환자가 눈을 떴고 신음 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여… 여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내 몸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터인데…….’
기억하는 상황과는 너무도 반대였다.
팔도, 그리고 다리도 멀쩡했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죽어서?’
아닌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증거로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다.
곧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깨닫고, 또 곁에 여인이 있다는 것까지 파악하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빼며 물었다.
“다, 당신은 또 누구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신은 누구냐고 묻질 않소.”
“저는 공작 전하께서 보내신 시녀 샬로트랍니다. 몸이 안 좋으시니 살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내 이름은 마타하리요.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설명해줄 수 있소?”
샬로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 역시 모르겠어요.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그리고 식사를 내주었는데 마타하리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윽.”
어젯밤 노인이 그를 치료해줄 당시 가슴으로 엄청난 마나를 밀어 넣은 까닭이었다.
샬로트는 재빨리 식사를 내려놓고는 그를 누이려 했다.
그러나 마타하리의 투박한 손이 거부했다.
“괜찮소. 마침 배가 고프니 식사나 좀 주시오.”
몸 상태가 안 좋으니 그가 혹시 식사를 엎을까 걱정이 되었던지 샬로트는 자신의 한 손으로 식사를 받쳐 들고 수저로 수프를 떠먹여 주었다.
엉겁결에 한 수저를 받아먹긴 했지만 자신이 초라한 느낌이 들자 마타하리는 애써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내가 먹을 테니 놔주구려.”
“환자신데…….”
그냥 그 말뿐이었다. 샬로트는 식사에서 손을 떼고 그가 다 먹기만을 기다렸다.
남겨도 좋으니 많이 가져온 것인데 마타하리는 그 양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잘 먹었소.”
샬로트가 식사를 치우고 돌아서려는데 돌연 마타하리가 그녀의 목을 팔뚝으로 감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샬로트의 눈이 함지박만큼 커졌다.
마타하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귀에 대고 매우 작게 속삭였다.
“입구에 가면 풀어주겠소. 따라오시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가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오딘이 기둥에 기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를 보며 샬로트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억지로 고개를 숙이려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무기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타하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을 빠져나가려는 이유 역시 저자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던가.
애초부터 시녀를 어찌해볼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게 틀렸음을 느꼈는지 그는 시녀를 붙든 손을 풀어주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거푸 오딘에게 허리를 숙여 가며 사죄를 구하는 샬로트.
오딘에게는 그 모습이 여간 우습지 않았다.
“죄송할 거 없어.”
샬로트는 눈치를 보며 허둥지둥 물러났다.
그리고 오딘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넌 본 좌와 얘길 좀 해야겠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되어 몸 상태도 좋지 못한 데다 저 정도의 무력을 지닌 자라면 달아날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하는 수 없이 마타하리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너그러운 표정이었다. 어제는 분명히 악마의 현신처럼 느껴졌었는데 말이다.
오딘은 근처에 있는 의자 하나에 걸터앉고 다른 의자 하나를 밀었다.
의자는 먼 거리를 죽 미끄러지더니 정확히 마타하리의 앞에서 멈췄다.
“앉아. 너무 주눅들 것 없어. 얘길 하러 왔다고 했잖아.”
마타하리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는데 그의 육중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의자의 다리가 그만 부러져 버렸다.
오딘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녀석일세. 뭐, 좋을 대로 해. 침대에 앉든지 서 있든지.”
“침대에 걸터앉겠소.”
마타하리가 침대 맡에 걸터앉았을 때 오딘은 속내를 드러냈다.
“어제 입을 열었다면 이렇게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또다시 마타하리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를 눈여겨보다 오딘은 말을 바꿨다.
“뭐, 말하기 싫다면 안 해도 돼. 너 같은 녀석들이 더 온다 하더라도 하등 겁날 게 없으니까.”
“나도 사연이 있기에 아직은 말할 수 없소. 어쨌건 이해해주어서 고맙소.”
“대신 다른 걸 묻지. 어떤 스승 밑에서 배웠나?”
묻는 말의 요지를 모를 리 없었다. 대답에 앞서 마타하리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졌다.
그도 잠시, 말이 나왔다.
“딱히 스승이란 분은 없었소. 난 내 복수를 위해 강해져야만 했소. 시정잡배에서부터 시작해 용병, 기사까지 안 거친 것이 없지. 그리고 마지막에 택한 것이 어쌔신이었소. 그나마 제일 낫더군. 강자들을 알아서 길드에서 추려 주니.”
추론을 예상케 하는 말이 나왔다. 오딘은 그러나 욕심을 내지 않았다. 스스로 불기 전까지는 캐묻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쩐지 검술이 아주 형편없더군.”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마타하리는 발끈하며 목청을 높였다.
“당신에게나 그렇게 보일 뿐이지, 이곳저곳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내 등급은 S급이었소. 최고였단 말이오.”
용병 길드나 어쌔신 길드에는 등급이 매겨진다.
총 일곱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이렇게 나뉘었다.
S, A, B, C, D, E, F.
이 중 F 등급이 가장 낮으며 그다음이 E순으로 올라간다.
이 가운데 가장 뛰어난 등급이 S급, 바로 스페셜 등급이다.
사실 마스터의 문턱에 오른 어쌔신이 대륙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오딘은 마타하리를 폄훼하고 있었다.
“아냐. 엉터리가 맞아.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활용을 못하고 있지.”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마스터에 이르렀어도 깨닫지 못한 거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마타하리의 표정이 멍해졌다.
자신이 마스터라니. 믿지 못할 얘기였다.
그렇다면 복수가 꿈은 아닐 것이다.
충격이 가시질 않아 마타하리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마, 마스터라고 하시었소? 내가 정말 마스터요?”
“그만한 경지에 이른 건 맞다. 도움을 줄 사람을 못 찾았으니 아직도 그 모양일 뿐이다.”
오만 가지 생각이 마타하리의 뇌리 속에 떠올랐다.
‘저자는 분명 마스터다. 그렇다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지. 난 그를 죽이려 하였으니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다. 가만, 죽일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날 치료해준 것이지? 또 이런 대접을 해준다는 건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표현일진대.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구나.’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그를 대신해 오딘이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그것은 제안이라기보다는 은혜를 베풀어주겠다는 것에 가까웠다.
“어떠냐? 본 좌가 널 이끌어주랴?”
마타하리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졌다. 변변한 저항조차 못해보고 패한 사내.
그가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면 엄청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양심이 거부했다.
“하, 하지만 난 당신에게 민폐를 끼치었소. 뿐만 아니라 이 성의 기사들까지 죽였지 않소.”
“물론 그들에게는 비난받아 마땅하겠지. 그건 네가 가지고 가야 할 짐이니라. 넌 지금 본 좌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기사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갑자기 마타하리는 두 무릎을 땅에 붙였다.
여기서부터는 마타하리의 말이 바뀌었다.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럼없이 오딘에게 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듬뿍 묻어났다.
“그리된다면 전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습니다. 제가 어쌔신 길드에 몸을 담았던 것도 강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이 도와준다면, 그리고 복수를 하게 도와준다면 제 심장이라도 꺼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오딘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걸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