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불신
불과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절대암흑마진의 일월진 덕분에 기사들과 병사들의 훈련 성과는 큰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훨씬 더 날렵해졌고 용맹해졌으며 강해졌다.
사태의 추이를 예상하고 미리 그라니트성에 몸을 담은 귀족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보탄 남작이 느끼는 감회란 남다른 것이었다. 가장 큰 은인, 그리고 이 성과를 이끌어낸 당사자 오딘을 모시고 온 것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귀족들은 그 이유로 보탄 남작을 항시 추켜세워 주었다.
덕분에 그의 얼굴에서는 뿌듯함마저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거만을 떨진 않았다. 다만 조금이나마 더 보탬이 되려는 욕심은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 한구석에는 항시 어두운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오딘에게 딸과 부인을 빼앗겼다는 것.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더욱 수련에 매진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괴로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이 늦어 지금처럼 잠을 청할 때나 성안에 거주할 때는 항시 그 생각이 떠올랐다.
방 안을 서성이며 그는 연거푸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애당초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하여서 찾아온 기회다. 나는 둘째 치고 발데르 공작 전하는 어쩌란 말인가.”
그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자신을 세뇌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릇 사람의 감정이란 제어하기 힘든 것임에도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다. 보름 동안 별별 잡생각을 다 가졌었지만 끝끝내 참아왔다.
그러나 오늘따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계속 문밖을 향해만 갔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보탄은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는 조심히 문밖을 빠져나왔다.
때는 사람들이 모두 잠이 들 야심한 시각이었다.
이윽고 그는 오딘의 처소로 조심히 걸음을 옮겨 갔다. 그러는 중에도 두 가지의 생각이 교차했다.
‘걸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이대로라면 미칠지도 모른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만 한다.’
일을 다 그르치게 될 수 있음에도 결국 발걸음은 되돌릴 수 없었다.
발데르 공작은 오딘에게 개인 서재를 제외하고도 7개의 방을 내주었는데 이것은 공작 자신보다도 후한 대접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오딘은 혹 상의할 문제가 있으면 시종을 들이라고 했었다.
보탄은 지금 그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발을 들이는 터라 어딘지를 몰라 헤매고 있을 때 한 방에서 여인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흑흑, 흑흑흑.”
이 목소리를 어찌 모를 수가 있으랴. 십수 년이 넘게 살을 맞대고 살아온 여인인데……. 음성은 스쳐 가도 애절함은 남아 보탄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기어코 굵은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차라리 안 오느니만 못했군. 내가 어리석었어. 내가 어리석었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으로 잡생각들을 떨쳐 버리려 했다.
하나, 잠시뿐이었다. 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아 도저히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꼭 봐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돌아갈 때 가더라도 얼굴만은 보고 원망이라도 한껏 들을 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잠을 청할 수도 없겠거니와 무수히 많은 번뇌가 쏟아질 테니까.
생각이 정해지자 촉각이 곤두섰다.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까지도 귀에 생생히 전해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일월진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흐느끼는 소리는 계속되었음에도 오딘의 기척은 느낄 수가 없었다.
보탄은 숨소리를 고르고 바닥을 딛는 소리조차 극소화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문틈에 눈을 가져다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커튼을 걷어둔 덕분에 침대 위에 누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계속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옆으로 시선을 돌렸을 땐 절망이 엄습해왔다. 이불이 불룩 솟은 것이 한 남자가 잠들어 있는 것을 예상케 했으므로.
그것이 누구일 것이라는 걸 짐작 못하는 바가 아니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했다.
체념하며 돌아서려는데 부인이 아이를 눕혀 두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그리고 문을 향해 다가왔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발소리가 다가올수록 보탄의 심장 박동 소리 또한 커졌다.
곧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탄은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비록 그녀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 속엔 반가움과 감동이 녹아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남편이 와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돌연 그녀는 보탄의 손을 뿌리치고는 그의 손목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
보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이미 문 안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보탄은 그녀의 귓속에다 속삭이듯 물었다.
“부인, 왜 이러는 것이오?”
“그분은 여기 없어요.”
그랬다. 이미 보탄은 그녀에게 이실직고했었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고 그 충심을 헤아려 그 뜻을 받아들였다.
섬기는 지아비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차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는 오딘이라는 그 사람이 미칠 듯이 싫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남편과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
연유를 알 리 없는 보탄이 침대를 가리키며 눈을 크게 뜬 채 물었다.
“그게 무슨 얘기요? 저기, 저기 그분이 계시질 않소.”
부인이 환하게 웃었다.
“저것은 아이에게 줄 인형들과 쿠션이에요. 그분이 시키신 거랍니다. 혹시 당신이 올까 봐 저러셨던 거지요. 단 한 번도 이 방에 들어오신 적이 없으세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남편이 전쟁을 끝내기 전에 둘을 합쳐 줄 순 없다. 명심해라’라고 하셨어요.”
부인이 오딘의 말을 흉내 낼 때에는 나름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어 웃음까지 자아냈지만 보탄은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아아,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었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안 오는 게 나았으련만.’
혹시 오딘이 지척에서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오딘의 믿기지도 않는 청력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최대한 기척을 줄여서 오질 않았던가.
만약 들었다면 미운 털이 박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나았다.
“여보, 가야겠소. 내가 생각이 짧았구려.”
여전히 그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지만 입 모양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껏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게 억울해서 울었을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제라도 이렇게 얼굴을 보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보탄은 마음속에 담아둔 어려운 말을 내뱉었다.
“날 원망하시오. 못난 남편을 두어 이렇게 되었구려. 이 전쟁이 끝나면 당신의 손으로 날 찢어 죽인다 한들 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그런 말씀 마세요. 모두 잘될 거예요. 전 그렇게 믿고 있을게요.”
부인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거처로 돌아오던 중 보탄은 발데르 공작의 집무실에 눈을 두게 되었다.
이 야밤에 문이 활짝 열려 있고 환한 불빛이 새나오고 있질 않은가.
절로 의문이 일어 다가가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일체 술을 입에도 대질 않던 발데르 공작이 연거푸 술잔을 입속에 털어 넣고 있었다.
문밖에 사람이 서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자 보탄은 부러 인기척을 흘렸다.
“보탄 남작입니다. 잠시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게.”
톡 쏘아붙이는 말투.
그것만 봐도 공작의 심사가 꽤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말을 꺼냈기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보탄은 애써 표정을 정리하며 그의 맞은편 소파에 몸을 앉혔다.
그리고 조심스레 공작의 표정을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세상 사는 데 어찌 고민이 없을까?”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냉기류가 흘렀다.
지금 발데르 공작이 마시는 저 술은 럼주라는 것으로 소문날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보통은 바다에서 생활을 하던 이들이 무료함과 괴로움을 달래기 위해 마신다고 알려진 술이기도 했다.
여러 값비싼 술이 있는데도 비단 독한 술을 택한 것은 아마도 말 못할 괴로움 때문이리라.
보탄은 술동무나 되어주어 공작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호기 있게 말을 꺼냈다.
“저도 한잔 주시겠습니까?”
그조차 짜증이 났던지 발데르는 애꿎은 시녀에게 호통을 쳤다.
“뭘 하느냐? 어서 잔을 가져오지 않고!”
깜짝 놀란 시녀가 허겁지겁 잔을 꺼내왔다. 그리고 보탄의 앞쪽에 놓았는데, 갑자기 발데르 공작이 우악스럽게 시녀의 팔을 채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시녀를 쏘아봤다.
그녀의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자신이 오기 전의 분위기가 대충 짐작이 갔던지 보탄은 공작이 정말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졌다.
‘성격 좋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발데르가 손을 털자 시녀는 주춤거리며 서너 발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흥.”
이후 몇 차례 술잔을 기울였지만 보탄은 차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밝던 사람이 어두워지면 그만큼 접근하기가 힘든 법이므로.
뜻밖에도 공작이 스스로 입을 열었다.
“영웅이 호색한이라는 얘기는 종종 들었었지. 뭐, 자신이 넘치고 힘이 있으니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보탄은 그의 말을 되짚어보았다.
‘영웅. 그가 생각하는 영웅이라면 누구일까?’
답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보탄은 그를 옹호하고 말았다.
“혹 공작 전하께서 오해를 하고 있으신 건 아니신지요?”
“오해라? 그게 오해였을까?”
절대 그렇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기에 보탄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설득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전 철저히 그분에게 속아왔습니다. 아니, 제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제가 확인한 오딘 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듣기 싫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데르는 인상을 구기며 잔을 쥔 손에 힘을 가했다.
퍼걱!
유리잔이 부서지며 그의 손에 혈흔을 남겼다.
파편이 박혀 피가 뚝뚝 흐르는 데에도 공작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음침한 웃음, 그것이었다.
“자네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어. 하나, 난 보았지. 그분이 엘레느 공주님을 혼절시키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마저. 내 두 눈이 똑똑히 보았다는 말일세.”
삽시간에 발데르의 표정이 계속 변화했다.
슬펐다가, 우울했다가, 억울했다가, 그 모든 것을 비웃으려 실소를 흘리기까지.
말에 따르면 어이없게도 오딘은 엘레느 공주를 범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쉽사리 납득하기는 어려운 얘기였다.
그러나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는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에 발데르가 이렇게 분개하는 것이다.
공주가 성인이었다면 그는 오히려 둘 사이를 축복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엘레느는 아무것도 모를 철부지 소녀에 불과하니 그녀가 받은 충격은 평생토록 아픔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탄은 그래도 속으로나마 오딘의 편을 들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이미 그에 관한 오해를 풀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보았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겠군. 하나,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비뚤게만 생각하시니 내 어떻게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구나.’
몇 번 더 말이 오갔지만 도저히 발데르 공작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보탄이 하는 수 없이 일어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종 하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고, 공주님께서… 하악, 하악.”
얼마나 다급했으면 숨도 고르지 못해 말이 중간에 끊겨 버렸다. 그 때문에 발데르의 입에서 노성이 터졌다.
“무슨 말이냐? 공주님께서 어떻게 되셨다는 말이냐?”
마저 숨을 고르지 못한 상태로 시종은 겨우 뒷말을 수습했다.
“입을… 여셨습니다.”
* * *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한쪽에선 보탄 남작이 앉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발데르 공작이 소파 옆으로 안절부절못하고 끊임없이 서성거렸다.
줄곧 창문을 열어놓았음에도 간밤에 마신 술의 향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어제 그렇게 겁을 집어먹었던 시녀는 다시 환한 얼굴이 되었다. 몇 차례나 공작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시종들이 다녀갔다. 그때마다 발데르는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공주님께서는 아직 기침하시지 않은 게냐?”
마지막으로 온 시종이 밝게 답했다.
“이제 막 일어나셨습니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오시겠다고 하였사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그래. 천천히 오시라고 하여라.”
커다란 선물을 받은 아이의 표정이 이러할까. 보탄은 발데르 공작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간밤의 분위기라곤 온데간데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레느가 시녀들의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왔다.
“공주마마를 뵈옵니다.”
보탄과 발데르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엘레느는 손을 휘저으며 당황했다.
“아아, 이러실 필요 없어요. 항상 어색한걸요.”
줄곧 하고 싶은 말이었다. 여태 손을 휘젓기는 했지만 어디 말이 나와야 제대로 된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 엘레느는 그 작은 바람을 이루었다.
그래서인지 한결 표정이 밝아졌다.
엘레느가 우측 소파에, 그리고 발데르와 보탄이 좌측 소파에 앉았다. 시녀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음료와 다과를 내오라는 명을 내린 후 발데르는 크게 축하부터 했다.
“목소리를 되찾으신 것을 경하드리옵나이다.”
“감사해요. 몸도 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전에는 자주 누웠었는데 이제는 후원을 돌아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더없이 기쁜 소식에 두 신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특히나 발데르가 가지는 기쁨은 남다른 것이어서 온 시름이 다 떨쳐 나가는 듯했다.
무엇을 떠올렸는지 돌연 엘레느의 두 볼이 홍당무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설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전 아직도 벙어리였을 거예요.”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발데르가 되물었다.
“그분이라면… 혹시 오딘 님?”
“네, 바로 보셨어요. 처음엔 막 아프고 고통스러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졌어요. 이상하게 점점 기운이 샘솟는 것 같아요.”
금세 발데르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렸다.
‘그럼 그때 내가 목격한 그것은 공주님을 치료해주기 위함이었던가?’
할 말도 잊어버린 공작에게 보탄이 말했다. 이른바 부가 설명이었다.
“아마 그분이 말씀하신 막힌 혈도라는 곳을 뚫어주신 모양입니다. 전에 공주님의 상태는 크게 염려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뒤늦게나마 발데르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았다.
‘내가 잠시나마 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이를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앞으로 무슨 낯짝으로 그분을 뵌단 말이냐.’
그는 바른 사람이었다. 비록 오딘에게 이 같은 행동이 들키지 않았더라도 속으로나마 그를 저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와아, 내가 좋아하는 쿠키. 잘 먹을게요.”
손뼉을 치며 엘레느가 이렇게 좋아하고 시녀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도 발데르는 그녀에게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오직 이 죄를 어떻게 씻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오딘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보자고 하였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모셨습니다.”
결코 오딘이 보기에 발데르는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특하다고 해야 맞았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극진해져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신처럼 자신을 떠받들던 마교 내의 휘하들을 말이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오딘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한데, 두 사람은 어째 기분이 좋아보이질 않는군.”
예리하게 꼬집은 셈이었다.
흡사 죄인인 양 보탄과 발데르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내내 침중한 얼굴이었고 보탄은 그런 발데르의 표정만을 살피기 바빴다.
침묵이 오래 깨지지 않자 보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딘 님께…….”
콱!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붉은 액체가 튀겼다.
화들짝 놀란 보탄은 소리의 근원지인 발데르를 보았다.
공작의 손에는 피와 점액으로 얼룩진 동그란 물체가 들려 있었다. 그를 확인하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서, 설마…….’
발데르의 오른쪽 뺨을 타고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손에 들린 물체는 그의 안구였던 것이다.
당황하는 보탄과는 다르게 오딘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자신의 상처에는 관여치 않겠다는 듯 발데르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탄식을 토했다.
“신이 아둔하여 그릇된 판단과 오해를 했사옵니다. 이것으로나마 오딘 님께 사죄를 드리고자 합니다. 부족하시다면 향후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내치지만 말아주시옵소서.”
그때 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보탄 남작 역시 눈구멍에 손가락을 쑤려 넣으려 하는 게 아닌가.
오딘이 급히 소리쳤다.
“아서!”
차마 명령을 어기지 못한 보탄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심기가 불편한지 오딘은 이맛살을 구기며 두 사람을 힐난했다.
“아주 제멋대로 구는구나.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애초에 네놈들을 포함한 이 성의 모든 것이 본 좌의 것이라 하였다. 그를 잊지 않았겠지?”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한데, 어찌하여 본 좌의 허락도 없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이더냐?”
그럼에도 발데르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물음이 자신의 몸을 생각해주는 것같이 느껴지자 감정이 격해졌는지 한 눈으로는 핏물이, 다른 한 눈으로는 눈물이 흘러내려 기괴한 모습이 되었다.
목이 매여 그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겨우 하소연을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신이 괴로워 미칠 것 같았사옵니다. 앞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이며 어떤 낯으로 오딘 님을 뵈올지 면목이 없었기에 택한 행동입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옵소서.”
둘 사이에서 보탄 남작만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눈알을 파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딘은 둘을 내려다보았다. 발데르에게는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보탄 남작에게는 노한 낯빛을 지었다.
“그대의 죄는 크지 않다. 오히려 보탄 네 녀석의 죄가 크다. 자네는 알고 있겠지?”
간밤의 일을 다 알고 있단 얘기였다. 보탄은 언제 몸을 낮췄는지 연방 머리를 땅에 찧어댔다.
“신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그 둘을 바라보며 오딘은 흡족히 웃었지만 누구도 그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둘의 고개는 한없이 숙여져 있었으니까.
‘밉지 않은 녀석들이군.’
이윽고 그는 손을 내밀었다.
“가져오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발데르가 다가와 그 손 위에 자신의 신체에서 분리된 안구를 올려놓았다.
그것을 받아들은 오딘은 조용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 오늘은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보탄 네 녀석의 죄 또한 없는 것으로 하겠다. 그대는 공작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 말씀 가슴속에 깊이 새겨 넣어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문득 오딘은 잊을 뻔했던 말을 꺼냈다.
“그럼 여기서 마치기로 하지. 그건 그렇고…….”
* * *
가도 가도 그 길이었다.
앞서 그라니트성으로의 진격을 명받은 조르바 자작과 루시아노 백작은 이 수수께끼 같은 현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분명히 이곳이 맞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왜 저만 가지고 그러십니까? 솔직히 그라니트성이 어디인지는 백작님도 아시질 않습니까!”
서로가 해법을 찾지 못해 이번엔 ‘이 길로 가보자, 저 길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란 말들이 오간 상황이었다.
지휘관들이 멍청하면 병사들이 고생한다더니 지금이 그 짝이었다.
병사들은 말을 못했을 뿐이지 어리석은 지휘관들을 속으로 끊임없이 탓하는 중이었다.
사실 두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이 근방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쳐 둔 오딘이 잘못이었다.
진법을 펼쳐 놨으니 지금 그라니트성 주변은 미로와도 같았다. 이들이 그곳을 찾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을 인지 못하는 두 사람은 자연히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은 목적지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판국이었다.
번화한 도시와는 다르게 들이나 숲, 산과 벌판은 마땅한 이정표마저 없어서 방향을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헷갈리니 오지로, 더 먼 오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보급 부대가 따라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배고픔을 호소하는 이들 또한 많았을지 모른다.
이러니 아예 일부 병사들은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지휘관들의 심정은 쥐뿔만큼도 몰라주고 말이다.
* * *
끼이이익!
두꺼운 쇠문이 열리며 간수 하나가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그는 곧장 좌측 열의 맨 끝에 자리한 독방에 다가가 자물쇠를 풀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는 죄수가 꾀죄죄한 몰골로 몸을 바짝 웅크렸다.
바로 파르티잔이었다.
그는 자신이 조만간 참수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공작을 배신해 팔아넘기려 했으니 그 죄는 당연히 사형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겹쳐서 덜컥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간수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절대 믿기 힘든 것이었다.
“석방이다!”
목욕을 마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파르티잔은 한 남자에게로 불려갔다. 아니, 끌려갔다.
그곳엔 상종하기도 싫은 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동공을 가진, 그리고 이마 옆에 희미하게나마 이상한 생명체를 그려 넣은 놈이었다.
모든 게 저놈 때문이었다.
지금도 가끔 삭신이 쑤시는 것은 저놈이 이글레스성에서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팬 뒤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또 조르바 자작에게 낱낱이 고한 건 어떠하랴. 그 때문에 모진 고문까지 받아야 했었다.
마지막으로 이 성에서 아는 척만 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쯤 부귀영화를 꿈꾸고 있었을 수도 있다.
면상을 마주하자 짜증부터 확 치솟았지만 정작 자신을 이렇게 파멸의 길로 이끈 장본인은 반갑기라도 한지 넉살좋게 말했다.
“어서 와.”
“왜 또 보자고 하시었소?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거요?”
발데르 공작의 그라니트성에서 오딘에게 이렇게 건방지게 말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사정을 모르고도 파르티잔은 충분히 그가 두려웠으나 열불이 나서 이렇게라도 쏘아붙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효과는 즉시 드러났다.
당장 간수가 검을 빼들고 그의 목에 시퍼런 날을 들이댔다.
“말조심해라.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의외의 상황에 파르티잔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뭐지? 이 녀석이 뭔데? 손님이 아니었던 건가?’
그 역시 그라니트성에 오래 몸담고 있어 이방인이 성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마법사답게 파르티잔의 두뇌는 맹렬히 회전하며 상황을 추론해나갔다.
‘이 녀석이 공작을 구해준 것은 맞다. 부정할 수 없지. 하면 그 은혜 때문에 공작의 신하가 된 것인가. 필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녀석의 무력은 감히 측정하기 어려우니 그 점을 높이 사주었을 수도…….’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함부로 대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앞서 따져 보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간수가 극존대를 했으니 굳이 따져 볼 필요까진 없었다.
이거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닌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눈을 하고 일사불란하게 변화하는 표정의 그를 보고 오딘은 어린애처럼 키득댔다.
요 근래 진지한 일들만을 했고, 그런 사람들만을 대해서 그런지 웃음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이 녀석이 재미를 주고 있는 셈이다.
오딘이 손을 두어 번 휘젓자 간수는 극진하게 허리를 굽혀 보이더니 총총걸음으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간수가 나가자 파르티잔은 툭 쏘아붙였다.
“이유가 뭡니까?”
“네가 마법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하고 불렀어.”
거짓말이었다. 주된 목적은 가지고 놀려는 속셈이었다.
“도움?”
딱!
느닷없이 정강이를 걷어차여 억울한 나머지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펄펄 뛰면서 파르티잔은 즉시 따지고 들었다.
“아악! 왜 또 때리는 거요? 아니, 겁니까?”
“말이 짧아. 조심하도록.”
줄곧 감방에만 갇혀 있어서 이놈의 지랄 맞은 성격을 까먹은 탓이었다. 그렇지만 억울함도 앞섰다.
상대는 암만 봐도 20대 초반의 남성.
외모로 따지고 본다면 자신의 손자뻘도 안 되는 것이다.
사실 파르티잔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 마법을 잘못 익혀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늙어 보일 뿐이다.
여태까지는 그 덕을 보고 살아왔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마법사 생활을 하기에 여러 이점으로 작용했다.
내내 못마땅한 일이었다. 여러 귀족들도 겉으로 드러난 연륜 때문에 존중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놈은 그런 개념이란 게 없었다.
“나이 든 사람을 이렇게 멸시하고 핍박해도 되는 것이오? 댁은 부모도 없소?”
조금이나마 반성의 기미를 보일 줄 알았던 그는 예상을 뒤엎고 이렇게 말했다.
“어린놈이 까불고 있군.”
“그게 무슨 소리요? 어딜 봐서 내가 어리다는 소리요?”
오딘이 손짓을 하자 눈치 빠른 사서들이 서재의 문을 닫았다. 낮이라고는 하나 창으로만 빛이 들어와서 음침한 분위기가 되었다.
“일단은 맞고 시작해야겠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두려운 마음에 파르티잔은 허둥지둥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채 두 걸음을 옮기지 못해 오딘의 다리에 걸려 바닥에 코를 찧고 말았다.
이어서 무자비한 구타가 행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잠시 후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오딘은 구타를 멈췄다.
정신을 놓았던 파르티잔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의 귓가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잤어?”
단 한마디. 어쩌면 푸근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르티잔에게는 공포로 다가와 온몸의 털이 사방으로 치솟는 것 같았다.
“끄으으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삭신이 쑤시고 결려서 도무지 기운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어서는 것을 포기하고 누워 있으려 할 때 예의 그 음성이 들려왔다.
“쯧, 주인이 앉아 있는데……. 아직 덜 맞았군. 문 닫아.”
그러자 사서들이 다시 문을 닫고 있었다.
파르티잔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 일어날 테니… 제발…….”
그러나 눈치 없는 사서들이 마저 문을 닫아버려 그 소리는 어둠 속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또다시 구타가 행해지고 파르티잔의 몸은 들썩들썩해댔다.
‘끄아아아아~’
비명을 질렀지만 이게 소리로 나는 건지 입속에서 맴도는 것인지 도통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새벽 무렵이었다. 그러나 차마 눈을 뜰 용기가 나질 않아 그대로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그때 또 기분 나쁜 목소리가 엄습해왔다.
“자는 척하면 재미없지. 안 그래?”
또 한 번, 문이 닫히고 파르티잔의 몸은 바닥과 진한 브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차라리 모진 고문을 받는 게 나을 것이다. 정신은 놓았지만 파르티잔의 의식은 그래달라고 끊임없이 갈망했다.
환한 빛이 들어오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침.
마냥 신기했다. 사람이 이렇게 맞고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식사를 마친 오딘이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파르티잔의 몸이 굼벵이처럼 이리저리 굴렀다.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야 한다. 다시 지옥을 경험할 순 없다.’
그 모습이 짠해 보였는지 오딘은 이쯤에서 구타를 멈춰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사서들에게 명했다.
“저자를 부축해 의자에 앉혀 주어라.”
사서들은 재깍 행동에 임했다. 하나, 의자에 앉아서도 파르티잔의 몸은 자꾸 흐물흐물해졌다.
보다 못한 사서 하나가 오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묶어놔도 될까요?”
오딘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하자 사서는 부리나케 달려갔다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가져온 줄로 파르티잔의 몸을 의자에 고정시켰다.
불쌍한 파르티잔은 더 드러낼 악감정이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말 한마디에 지옥을 경험하는데 어찌 헛말을 던지랴.
때문에 묻기도 전에 파르티잔은 입을 열었다.
“마, 마법… 을 잘못 익혔습… 니다. 그래… 서 이렇… 게 되었… 어요.”
이 말을 하는 데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야만 했다. 자신의 처지가 너무 측은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이제야 이실직고하는군. 귀신의 눈은 속여도 본 좌의 눈은 못 속이느니라. 알겠느냐?”
혹시나 늦을세라 말이 끝나는 즉시 파르티잔은 고개를 휘청휘청 끄덕였다.
“…예.”
곧 마법사 하나가 다가와 파르티잔에게 힐링을 시전했다.
그러자 초췌했던 안색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갔다.
치료를 대충 마친 중년의 마법사는 그를 흘깃 쏘아봤다. 여태 속아서 항상 어른으로 떠받든 것이 꽤나 억울한 모양이었다.
상태가 호전되자 파르티잔의 궁금증은 새록새록 피어났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절 찾으신 이유에 대해 여쭤보아도 괜찮겠습니까?”
“마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몸이 안 따라줘서 문제지요.”
“보다시피 이곳은 서재다. 내 마법이라는 것에 취미가 생겨서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고자 불렀다. 혹…….”
“말씀하시지요.”
“거짓으로 말할 시에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마른침을 삼키며 파르티잔은 안색을 고치고 물었다.
“제가 아는 것을 다 풀어놓으면 살려 주실 겁니까?”
“살려는 주지.”
오딘과 파르티잔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