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적지 않은 사람이 병문안을 왔다. 개중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도 섞여 있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시절 특관반을 맡았던 담임이라던가. 특관 담임은 한재민의 사주를 받아 내 신변을 그에게 보고하고 한성 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을 시인했다. 사유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이번에 한재민 실종 사고를 조사하며 뒤늦게 밝혀져 교원 자격을 박탈당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 금액이면 할 만하긴 했지.”
“그게 네가 할 말이냐.”
가장 놀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고한결이었다. 특관 담임이 한재민이 심어 둔 사람이었다는 것에 놀란 게 아니라, 내가 고한결 본인을 의심한 것에 놀란 것이었다. 고한결은 네가 누워 있는 환자만 아니었으면 한 대 때렸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최근까지도 그의 정체를 의심했던 것은 맞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웃기게도, 더 이상 고한결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비로소 해방감을 느꼈다. 웃긴 일이었다. 아마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는 제법 스트레스 받는 일인 모양이었다.
“이주현 말도 맞는 거네, 그러면.”
“이주현? 이주현도 그랬대?”
“아니. 네가 그랬잖아. 이주현이 나 국마연으로 보낸 거라고. 걘 우리 아버지 사주 받았었대. 한쪽은 아버지, 한쪽은 한재민……. 난 도대체 얼마나 인기가 많은 거냐.”
“아버지? 뭔 소리야, 그러니까 이주현이 너희 아버지한테 부탁받고 뭘 했었다고?”
“그래.”
“……그래서 나도 의심한 거고?”
“당연하지. 근데 솔직히 너도 생각해 봐. 갑자기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을 하지 안 하겠냐?”
“야, 유찬희.”
“뭐.”
“너는 인간관계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겠다. 보통 사람은 그냥 새 학기에 친해지고 싶을 때 아무 이유가 없어도 다가가. 마이X 하나 건네면서.”
“…그럼 넌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거야?”
“그럼 뭐겠냐? 내가 너한테 돈을 뜯고 싶었겠어? 적어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니까.”
확실히 내 삶이 얼마나 불안과 경계의 연속이었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대화의 흐름을 깨고 병실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유현재였다.
“무슨 얘길 그렇게 해?”
“어, 그래. 찬희네 애기 왔네.”
고한결의 비아냥거림에 유현재가 눈을 크게 뜨고 뭐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유현재만 그렇게 싸고돌았구만. 아무도 안 믿는답시고.”
“아, 미안하다니까.”
“유현재 너도 그랬냐? 날 그 한 사장 쁘락치로 보고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유현재가 말을 얼버무리자 고한결이 짜증난다는 듯 나와 유현재를 노려보았다.
“됐다, 나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둘 다 갑자기 어디로 튀어가지고 한 놈은 무슨 마나가 폭주해서 반년 동안 정신 잃고 이젠 마나가 없다지. 한 놈은 그놈 간병한다고 랭커 활동도 안 하고 폐인 됐지. 놀랄 것도 없어, 이제.”
“랭커들 일이 그렇잖아.”
“하긴. 그 덕분에 반년간 이주현은 아주 국민 대스타가 됐더라. 웬만한 1급 헌터들 일은 다 걔가 한다고.”
“잘됐네. 주현이 욕심 많은 애잖아.”
보살 같은 유현재의 대답에 고한결은 결국 몸을 일으켰다.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고한결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유현재가 왜 랭커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했는지 이유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한 이해의 간극은 영원할 것이었다.
전화가 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재 또한 핸드폰에 찍힌 이름 세 글자를 보고 굳은 얼굴을 했다. 오늘따라 정말 간만의 연락들이 온다. 아마 별자리 운세에 뭐라도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통화 버튼을 슬라이드했다.
“여보세요?”
[……나야.]
“그래. 알아. 이름 찍히니까.”
[컨디션 좋아 보이네.]
“나쁠 것도 없지.”
[……다행이네.]
“진심이야?”
나는 상대에게 물었다. 상대는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대답 없이 정적을 유지하다, 잠긴 목소리로 짧게 말을 이었다.
[내일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아예 가는 건가?”
[아마.]
차수현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음에도 낯설지 않았다. 아마 그와 만나지 않았던 몇 년간 주기적으로 유도현의 꿈을 꿨기 때문일 터였다. 유도현의 꿈에서 차수현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출연했다.
“일어난 건 어떻게 알았어?”
[고모가 가르쳐 주셨어. 너 깨어났다고.]
“그럼 나 마나 사라진 것도 들었겠네.”
차수현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이미 알고 있기에 나오는 리액션이라고 판단했다.
“어때? 이런 질문 좀 이상하긴 한데.”
[…….]
“내가 너라면……. 기분이 좋으려나. 형의 복수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형의 복수? 웃기는 말이네.]
“아니면 아직도 나나 유현재가 죽어야 네 기분이 풀릴 것 같아?”
[다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건 여전하다, 너.]
“모르는 건 뭔데, 내가.”
[아니, 다 알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겠지. 짐작하건대 네가 최근 몇 년간 두문불출했던 것도, 갑자기 랭커를 은퇴한 것도, 결국 마나가 사라진 것도. 다 어떤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이제 연락한 거고.]
“의외네.”
[너야말로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려고 마지막으로 전화한 거야.]
“뭘?”
[나는 형의 과거를 기억해.]
“……뭐?”
[지금의 형과는 겪지 않았었던 수많은 과거를 기억한다고. 형이 내 고백을 받아 줬던 거, 형이 널 죽였던 것, 혹은 널 살리고 죽었던 것, 유현재를 버리고 왔던 것. 형이 겪어왔던 수많은 삶들. 그걸 내가 알고 있어.]
“그걸 대체 어떻게, 아니 그럼 대체 왜…….”
[왜라니?]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서 왜 유현재를…….”
[유현재한테 직접 물어봐.]
“…….”
[난 모르지만, 너도 형과 비슷한 일을 겪었겠지. 유현재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기억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있을걸. 근데, 그걸 알고도 과연……. 유도현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원인을? 그런 이유야. 내가 그 사람의 비참한 과거를 알게 되는 건 그 사람만큼 세상을 증오하며 살기 위해서거든. 이미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난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아.]
옆에 앉아 있던 유현재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나는 표정을 추스르고 차수현의 말에 단단히 대답했다.
“그래, 미안해하지 마.”
[어.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대신 나도 너한테 미안해하지 않을게.”
[…….]
“어쨌든 너도 나 대신 형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잖아? 과정이 어찌 됐든 간에, 결과는 형이 아닌 내가 살았어. 나한텐 이게 맞는 결말이었겠지만 너한텐 아닐 수도 있겠지. 이해해. 무엇보다 내가 당사자였으니까. 그러니 나도 널 미워하진 않을게, 또 미안해하지도 않을래.”
[마음대로 해. 네 감정이니까.]
“그래. 할 말은 끝났어?”
[……어.]
“나도야. 그리고 형.”
[어.]
“도현이 형은……. 형을 진짜 좋아했어.”
거짓말이었다. 유도현의 감정을 내가 알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유도현은 오로지 시스템의 ‘퀘스트’ 때문에 차수현을 가까이했을 확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눈곱만큼의 부채감도 사라질 것 같아서. 차수현은 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한 건지, 한참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조용히 통화를 종료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유현재가 나를 바라보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왜 그런 표정이야?”
“그러게.”
“넌 항상 뭔가를 기억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짓더라.”
“……그래?”
“응. 그래서 좋아.”
유현재가 웃으며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 품이 너무 따뜻하고 아늑했다. 영원히 나오고 싶지 않은 집처럼.
*
이든사우스의 여섯 번째 콘서트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과 다섯 곡의 앵콜이 이어진 채였다. 퇴근길을 보자고 성화를 부리는 고한결에 나와 유현재는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퇴원 이후 1년간, 활발한 활동으로 다시 사람들 사이에 얼굴을 알리게 된 유현재 덕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시선을 받게 되었다.
“유현재 너 때문에 퇴근길 못 보면 죽는다.”
“나 아무것도 안 했어.”
“이 장소에서 이든사우스 이외의 유명인의 존재는 그냥 민폐야.”
“야, 유현재가 뭘 했다고 민폐야. 말이 심하네?”
그때였다. 마무리를 하고 나오던 밴드 멤버 보컬이 유현재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래 아는 척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우다다 달려와 유현재에게 악수를 청했다. 영광이라는 말도 함께였다. 고한결이 옆에 있다가 질투 어린 얼굴로 말을 던졌다.
“팬도 아닌데 왜 네 손을 잡아?”
“……내 말이. 왜 얘 손을 잡냐. 좀 민폐인 듯.”
내 맞장구에 고한결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진 민폐 아니라며.”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민폐인 듯.”
“질투하냐?”
“뭔 소리야. 내가왜질투를하냐나는그런거할줄을모르는사람인데어이가없네나는그냥이든사우스의팬으로서,”
“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사람들은 금세 유현재에게서 관심을 돌리고 이든사우스에게 환호성을 지르며 인사를 했다. 그 틈에 섞인 나는, 어쩐지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문득(아니 요즘은 자주) 받았다.
핸드폰 진동이 울린 건 그때쯤이었다. 나는 문자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유현재가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유현재에게 문자 내용을 보여주자, 유현재의 얼굴이 금세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나 대학교 합격했다!”
얼마 전 넣은 대학교에 최종 합격했다는 문자였다. 유현재는 퇴근길을 보다 말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축하해! 진짜 고생 많이 했잖아.”
“누가 보면 뭐 일류대라도 합격한 줄 알겠어.”
“뭐 어때, 충분히 좋은 학교잖아.”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유현재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기뻤다. 나는 이제 마나도, 시스템도, 나를 괴롭히는 운명의 굴레도 없이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이 된다. 이 지극히 일상적인 행복은 이제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랭커 사용 설명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