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저 인간, 이렇게까지 이 마나에 집착하는 이유라도 있나 본데.”
“관심 없어요. 어차피 시답잖은 이유일 거예요.”
“그래?”
교수가 한재민을 흘끗 바라보았다. 한재민의 눈에선 이제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는 곧 모든 세상을 잃을 사람처럼 처절하게 울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원하던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우는 한재민을 보았음에도 나는 썩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다 끝이야…….”
말을 마치기 전에 내 앞에 갑자기 커다란 상태 창이 마구잡이로 뜨기 시작했다.
[유저의 목표까지 100%,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유저의 삶에 대한 집착과 이루고 싶은 열망들이 모여 목표에 한 발 빨리 나아가게 했군요!]
[관리자님,]
[유저님,]
[관리자님,]
[유저님,]
[관리자님,]
[유저님,]
두 개의 창이 내 눈앞을 빽빽하게 가로막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보는 그 방대한 양의 시스템 창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야? 뭐라도 보이는 거야?”
“시스템 창이…….”
시스템 창은 무한 증식을 시작했다. 끝이 없는 확장 공간에서 시스템은 영역을 넓혀 갔다. 이대로라면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나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 가는 거야! 지금 막 완성됐어!”
상태창이 공간을 가득 메웠을 때쯤에야 그것들의 움직임은 멈췄다. 자잘한 창들은 이내 몸집을 불리더니 한 개의 창으로 만들어졌다. 붉은색의 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관리자의 염원이 담긴 유저의 목표를 지금 수행합니다.]
[곧 목표가 달성됩니다. 보상을 수령하세요.]
[보상은 ‘죽음’, ‘죽음’입니다. 유저는 보상을 수령 후 사용해 주세요.]
“씨발……. 보상 안 받아.”
[보상을 받지 않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실패합니다.]
[유저는 반드시 보상받아야 한다는 관리자의 지시에 따릅니다.]
[보상을 수령해주세요.]
“하…… 씨발. 진짜.”
나는 보상을 수령한다는 말 대신 다시 게이트 쪽으로 달려가 유현재의 모습을 한 꼭두각시를 만지려 했다. 그때였다.
“이게 뭐야?”
교수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게이트 안에서 반쯤 몸을 뺀 채로만 존재해야 할 유도현의 몸이 서서히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교수에게 눈짓했다. 교수 또한 전혀 예상에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움직일 리가 없는데.”
“뭐예요? 일단 만질게요.”
나는 유도현의 모습을 한 그 꼭두각시에 손을 대려 했다. 꼭두각시가 내 손길을 피해 가볍게 몸을 던져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한재민이 있는 곳이었다. 꼭두각시가 곧 한재민의 뒤에 섰다.
“뭐야, 이 상황.”
“보아하니 얠 만지면 마나가 사라지나 본데.”
한재민이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혀 위에는 반쯤 녹은 구슬이 있었다.
“미쳤어? 이거 진짜 게이트도 아니고, 진짜 유도현도 아니라고!”
“그런데 나한테 오잖아.”
“그건…….”
“이게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어. 어차피 뒈진 새끼니까.”
한재민이 내게 다가왔다.
“강령을 한 존재는 구슬을 가진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라. 알고 있지?”
“……그래서?”
“너, 빨리 만져야 하잖아.”
“…….”
“어차피 난 널 죽일 수도 없어. 누군가가 올 때까진 뭔가를 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시간 끌기지. 그런데 시간을 끌면 너만 손해인 것 같네. 눈치를 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붉은 상태창의 깜빡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상태창을 흘끗거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한재민은 내가 마나를 넘기는 것 외에는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었고, 애초에 더 이상 내가 내놓을 수 있는 패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 게이트를 포기하고 다음 게이트를 만들기엔, 아무래도 상태창이 그 꼴을 기다려 줄 것 같진 않았다.
“일단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저자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저자는 지금 제 마나를 가지고 싶어한다고요.”
“그럼 죽을 거냐?”
교수가 호통쳤다.
“뭐가 중요한지 몰라? 지금 이걸 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네 목숨 때문이다! 같잖은 정의 구현, 선행이 아니란 말이다. 네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그깟 마나도 넘겨주지 못해?”
“이 마나가 어떤 마나인지 아세요? 아시냐고요!”
“유도현의 것이 섞여있다고 했지. 아마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불행한 비밀의 원천도 있을 테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저자에게 넘기면 네가 원하는 대로 저자는 불행해지고 너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않느냐?”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 마나는……. 진짜 없어져야 해요.”
“저 녀석의 운명쯤이야 본인이 알아서 정하겠지.”
“제가 이 힘을 가져서 얼마나 괴로웠냐면.”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내뱉는 말이었다.
“내 부모를 죽이고, 몇 년을 날 괴롭게 했던 저 한재민에게조차도.”
“…….”
“이 고통을 주고 싶지 않을 정도예요.”
“…….”
“아시겠나요?”
상태창은 이제 보기에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유현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유현재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유현재의 모습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나는 그 모습을 눈에 소중히 담아 두었다.
“전 죽어요. 이 힘 때문에.”
“넘겨, 힘을 넘기면 되잖아!”
“됐어요.”
“현재가 너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죄송해요. 잘 부탁드려요. 전 그래도 넘길 수 없어요.”
“고집스러운 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이기적인 거다.”
“네.”
시야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무게를 그대로 싣고 쓰러졌다. 머리가 울렸지만 그것은 더 이상 알 바가 아니었다. 흐릿하게 쏟아지는 빛이 점점 하나로 모이더니 사라졌다.
나는 죽는다.
그리고, 이 죽음은 내게 열 번째, 아마 마지막 죽음이 될 것이었다.
*
나는 이제 어느 침실 앞에 서 있었다. 일전에 꿈에서 한 번 본 침실이었다. 두 사람이 잘 수 있을 정도의 침대엔, 누군가가 이불을 꼭 붙잡고 누워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일어나.”
“1분만…….”
“우리 얼른 가야 해.”
유현재가 내 몸을 잡아 끌어 침대 위로 드러눕혔다. 대번에 유현재의 품에 안긴 내가 익숙한 듯 그를 끌어안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응. 딱 10분만이야.”
“찬희 짱.”
“어제 퇴근이 좀 늦긴 했지. 요즘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나 딱 세 시간 잤어.”
“구 팀장님 진짜 너무하네. 신입을 이렇게 굴리고.”
“그니까. 찬희 네가 좀 혼내 주라.”
나는 피식 웃었다. 유현재가 내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깊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갔다. 웬일이래. 순순히 일어나고. 나는 그동안 침대를 정리했다.
“내가 할게!”
유현재가 칫솔을 입에 문 채 뛰쳐나와 말했다.
“빨리 준비나 끝내.”
고개를 끄덕인 유현재가 다시 욕실로 걸어갔다. 나는 이불을 정리하다 말고 배어나오는 따뜻한 향에 코를 묻었다. 얼굴에 닿는 온기, 익숙하고 푸근한 향, 평온한 하루, 아침, 일상……. 나는 이내 바로 깨달았다. 아, 이거 꿈이구나. 이렇게 행복한 걸 보니 꿈이구나. 하지만 나는 이 꿈을 즐기기로 했다. 여타 다른 꿈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깨고 싶지 않았다. 그때 유현재가 물기를 털며 욕실에서 나왔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자연스레 미소 지었다.
“옷 안 갈아입어? 네가 빨리 가자더니.”
“아, 그래. 얼른 갈아입어야지.”
나는 빠르게 준비를 끝낸 후 집을 나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꿈에서 단 한 번 봤던 그 고급 빌라였다. 나와 유현재는 익숙하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우리가 탈 차를 찾아냈다.
“오랜만에 가는 거 같은데.”
“그러게. 뭐라도 사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가자. 늦었어.”
“아버님 좋아하시는 술이라도 사 갈까?”
유현재가 핸들을 돌려 지하 주차장 입구로 차를 천천히 몰며 물었다.
“안 돼. 아버지 인간적으로 술을 너무 많이 드셔.”
“그런가? 그건 네가 그냥 술 상대를 너무 많이 해 드려서 아니야?”
“그러는 너도 장난 아니잖아.”
우리는 가볍게 티격태격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날씨는 나무랄 것 없이 맑고 화창했다. 나는 자동차의 창문을 반쯤 내리고 들어오는 바람을 느긋하게 맞았다. 따뜻한 봄 냄새가 났다. 유현재 또한 나를 따라 차창을 내렸다. 나는 뒤늦게 누군가에게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아버지네.”
“그래? 우리 늦었다고 그런가 봐. 얼른 가야겠다.”
“과속하지 말고.”
“응.”
부재중 전화가 원래 아버지에게서 왔던가. 나는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차는 곧 건물이 없는 도시 외곽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집은 이 방향이 아닌데.
“도착했다.”
납골당.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납골당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애써 숨기며 유현재의 뒤를 따라갔다. 수많은 유골함들 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네 형 기다린다.”
“네.”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있는 유골함 앞으로 걸어갔다. 명패를 확인한 나는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유도현. 납골함 안의 남자는 내가 아는 유도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뭐가 말이니?”
“형이 죽었다구요?”
내 쌩뚱 맞은 소리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나를 응시하고 있는 유도현의 사진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꿈이라서 그런가…….”
그럼에도 유도현의 얼굴을 보는 건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 유현재의 품에 털썩 안겼다.
“괜찮아?”
“어. 괜찮아. 확실히……. 좋긴 좋네, 꿈이란 거.”
“꿈?”
“꿈.”
“찬희야.”
“어?”
“여기 꿈 아냐.”
“뭐라고?”
유현재가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여기가 현실이고, 거기가 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