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가장 아래층에 있는 마나 확장 공간은, 쉽게 말하자면 마나를 무한으로 확장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 어찌 보면 무(無)의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전투부나 각 길드에서 연습을 목표로 만들곤 하며 공간을 지으려면 굉장히 까다로운 국가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예전에 김구현 부장과 전투부에서 연습을 할 때 있던 공간들도 모두 마나 확장 공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게 돼 있네.”
근무 직원을 이용해 간단하게 문을 연 교수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훈련을 할 일이 뭐가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마 본인 개인 병력들이 사용하는 곳이었겠죠.”
문을 열자마자 황량한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걷기도 힘든 모래밭과 몰아치는 흙먼지까지. 아마 마지막으로 훈련한 장소가 이곳이었겠거니 하며 나는 문 옆에 있는 리셋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사막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푸른 공간이 나타났다.
“어때? 너도 특정 공간이 편하다거나 그런 게 있어? 그렇다면 그 배경으로 하게 해 줄게.”
“아뇨, 괜찮아요.”
흠, 하고 콧방귀를 뀐 교수가 먼저 공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게이트 하나는 만들어도 충분히 문제없을 만하네. 미쳤군. 돈이 썩어나나 봐.”
“여기에서 게이트를 바로 불러낼 건가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가짜 게이트지.”
“가짜 게이트요?”
“네 형인지 뭔지 하는 작자가 나왔다던 게이트, 그거.”
“인공 게이트 말씀하시는 거예요?”
“비슷하다고 생각해.”
“비슷…?”
“실제 게이트는 아니잖아? 거기 들어가면 필드 같은 건 없지. 그냥 죽은 자들이 나오는 통로일 뿐.”
교수가 천천히 공간을 돌며 장소를 물색했다. 어차피 다 비슷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묘하게 모두 다른 듯했다.
“구슬을 먹어야 해요. 그래야 부를 수 있어요.”
“그래. 강령술은 그렇지.”
“……?”
“지금 우리가 할 건 강령술이 아니야.”
“네? 강령술이 아니라고요?”
“그래. 가짜 게이트와 가짜 시체를 만드는 거다.”
“……강령술 연구자라 하지 않으셨어요?”
“정확히 말하면 연구했었지.”
“그런데요?”
“거참 까다롭네. 말도 많고.”
교수가 나를 흘겨 보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 입을 벌렸다.
“구슬을 먹고 진짜를 강령하게 된다면 너는 분명 죽을 거야.”
“…….”
“이렇게 한다고 해도 죽을 확률이 50퍼센트가 넘기는 한데. 그래도 100보단 나으니까.”
자리를 잡은 교수가 작은 돌멩이 같은 것을 던졌다. 돌멩이가 날아간 만큼 공간이 확장되었다. 돌멩이는 단순한 돌멩이가 아닌, 심상찮은 물건임엔 틀림없었다. 교수가 마나를 조금씩 불어넣기 시작하니 돌멩이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팽창하는 돌멩이는 더 이상 돌이 아닌, 풍선 같았다.
“내가 연구한 건 연금술이야. 정확히 말하면.”
팽창하던 돌멩이 한가운데에 소용돌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나는 영역을 넓혀가는 소용돌이를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너는 가짜에게 그 힘을 넘긴 후 소멸시킨다. 그것이 지금 목표야.”
“그게… 가능한가요?”
“가능한 지 아닌지는 직접 해봐야 알겠지.”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안 되면 어떡할 건데요?”
“죽는 거지 뭐.”
“…….”
내 싸늘한 표정에 교수가 우하하 웃으며 내 등짝을 때렸다. 지금이야 뭐 어쩔 수 없지만 딱히 나와 잘 맞는 인물은 아닐 듯했다.
“곧 있으면 게이트 생성이 완료될 거야.”
“네. 그럼 형이 나오겠네요.”
“30분은 있어야 돼.”
“30분이요?”
“왜, 너무 빨라서 놀랐어?”
너무 오래 걸려서 놀란 것이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교수는 뿌듯한 얼굴로 생성되고 있는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유언이라도 남길래? 내가 나중에 전해 줄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네요.”
“울면서 물어볼 수는 없잖아?”
“네. 그래요. 그냥 잘 살라고 전해 주세요.”
“그게 다야?”
“뭘 더 말해야 하는데요?”
“사랑한다든가, 좋아한다든가, 내세에는 꼭 사랑을 이루자든가.”
“……아, 네….”
“아니면 곧 다시 보자든가.”
교수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서 그녀가 내 생각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교수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뭘?”
“제가 죽어도 다시 볼 수 있다는 거.”
“네 형이 그랬잖아?”
“네?”
“네 형도 똑같은 능력, 아니 능력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가. 아무튼 똑같은 병이 있었지. 나를 안 찾아왔을까? 그런 인재는 나도 놓치기 아까우니 굉장히 많은 연구를 했어. 하지만 그 땐 나도 어렸고, 아는 것이 많이 없었지.”
“그럼……. 교수님은 제 과거를 모두 기억하신다는 거예요?”
“사람은 기억할 수 없어도 물건은 기억하지. 나는 물건을 다루는 일을 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가…….”
“네 형은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했다. 그 이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단 걸 깨닫고 나서 미쳐갔어. 그 이후로는 세상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관망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지. 그것만이 삶의 낙인 것처럼.”
“그래서 저도 죽인 거고요.”
“동생 둘을 죽였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너였구나. 나는 경고했어. 이렇게 죄를 쌓을 경우, 네 병은 더더욱 악화될 뿐이라고. 네 형은 비웃으며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지만.”
“형의 목표는 궁극적인 행복이었어요. 그 행복은 죽지 않은 것이었고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
내가 한재민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교수는 커져가는 게이트를 마치 액자 속 그림 바라보듯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네 형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죽은 거다.”
너무나도 잔인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행복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유도현이 끊임없이 진창 속에서 발버둥 쳤다는 것이.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잔인함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게까지 괴로워하고 아파했던 그 힘을 제 동생에게 넘겨버렸다는 것까지 끔찍했다.
“도대체 왜 형에게 그런 일이 생긴 거죠? 왜 형이…….”
“마나라는 건 타고나는 거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아. 네 형이 타고나길 누구보다 뛰어난 마나 운용력을 지녔던 것처럼, 그냥 그것도 네 형에게 주어진 어떠한 힘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형에게만 가냐구요!”
“신에게 물어보렴.”
교수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내 볼을 쓸어 내렸다. 동정과 연민이 가득한 손길이었지만 나는 전혀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형이 불쌍하니?”
“…….”
“난 네가 제일 불쌍한데.”
“동정은 왜 하시나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으니. 네 운명은 이게 아니었는데.”
“…….”
“형을 불쌍하게 여기지 마. 그를 평생 악랄하게 여겨. 그래야만 네 분이 풀릴 거다.”
유도현을 증오하는 마음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유도현과 나의 다른 점은 그것을 밖으로 분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쾅 소리와 함께 폭발음이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나와 교수가 일제히 방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이제 곧 오겠군.”
교수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교수가 주머니에 있던 또 다른 돌멩이를 게이트 안으로 집어 던졌다. 게이트는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돌멩이를 꿀꺽 삼켰다.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해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곧 만날 거다.”
“…….”
“네 형을. 물론 가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