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107화 (107/115)

107.

“저기…….”

두세 명의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몸을 굳힌 채 눈만 도륵 굴려 상황을 살폈다.

“세 분이서 오셨어요?”

“네? 네… 그런데요.”

“와, 진짜 잘생기셨다.”

“아니, 진짜 세 분 다 너무 잘생기셨어요. 어떻게 이런 얼굴을 몰랐지 우리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혹시라도 정말 얼굴을 알아볼까 봐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누구 닮았는데.”

“누구더라, 나도 기억 날 것 같은데.”

“아니, 그 헌터 중에 진짜 잘생긴 사람 있잖아.”

“아! 유현재!”

“진짜 유현재 닮으셨어요, 미친.”

유현재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은 유현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학생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함께 합석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합석할 계획이 없다고 겨우 사람들을 돌려보내고서야 우리는 숨을 돌렸다. 고한결이 장난스레 유현재의 어깨를 툭 쳤다.

“유현재 닮으시긴 했네요.”

“놀리지 마.”

유현재의 귀가 붉어졌다. 다시 고개를 든 나도 재밌다는 듯 유현재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았다. 더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대학생 되면 진짜 인기 많겠다?”

“아냐, 무슨 인기야.”

“입학하면 진짜 잘생기고 이쁜 애들 많을 텐데.”

“…….”

“그럼 나는 생각도 안 하는 거 아냐?”

내가 말을 내뱉고 다시 소주를 원샷했다. 유현재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대답 없는 건 진짜라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유현재가 갑작스레 목소리를 키웠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왐마야… 고한결이 어이없다는 듯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너 취했냐?”

“에이……. 우리 셋이 이제 한 병 마셨는데.”

“안 취했어. 그리고 난 대학 안 갈 거거든. 찬희 없으면.”

“내가 이젠 너의 그 미친 발언에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다.”

“찬희 너도지?”

“어? 어…….”

유현재가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으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척 올리고 턱을 괴었다. 유현재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자세히 보니 반쯤 풀려 있다. 나와 눈을 마주치니 유현재가 씩 웃었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긴 한데 묘하게 졸린 것도 같고, 나른한 것도 같고…….

“…취한 거 맞지?”

“한 잔 마신 것 같은데, 얜.”

“진짜 못 마시나 보다.”

“그러게. 더 먹이면 안 되겠다.”

“나도 술 많이 마셔 본 건 아니지만 얘만큼 못 마시는 사람 처음 봤네.”

그러는 나도 그렇게까지 주량이 센 건 아닌지, 고작 세 잔을 마셔놓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한결이 자연스럽게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갑자기 유현재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 바람 좀.”

“어? 바람 쐬겠다고?”

“응.”

“같이 가 줄까?”

“응.”

“……둘이 가라. 난 여기 있을 테니까.”

고한결이 얼른 썩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나는 살짝 비틀거리는 유현재를 따라 걱정스레 천막 식으로 되어 있는 주점 밖으로 나왔다. 유현재가 이렇게까지 술이 약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성인이 되어 같이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웅. 괜찮아.”

발음이 뭉개지는 유현재는 생각보다 귀여웠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대니 유현재가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웃으니까 좋다.”

“네가 너무 웃겨서 그렇잖아.”

“안 웃겨도 가끔씩 웃으면서 살자.”

“뭔 그런 소리를 갑자기 이런 데서 하냐.”

“그으냥. 찬희랑 이렇게 술 마시고, 대학생처럼. 이러니까 너무 좋아서.”

밤공기인지 술 때문인지 코가 빨개진 채 유현재가 예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장르가 무엇이든 간에 감독이 어떻게든 피사체를 아름답게 보이고자 최대한 노력했을 그런 씬. 나는 감독이 바라는 대로, 그 얼굴을 마음껏 감상했다. 유현재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대로 팔을 벌렸다. 코트 자락이 활짝 벌어졌다. 내가 뭐냐는 듯 가만히 쳐다보니 유현재가 손을 팔락였다.

“들어와.”

“뭐야, 이런 데서.”

“얼른 와. 추워.”

“아, 됐어. 남들 이상하게 봐.”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어?”

유현재가 다시 한번 손을 팔락였다. 나는 그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유현재의 품으로 들어갔다.

“행복하다.”

“정말?”

“응. 행복하다.”

유현재가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나는 양팔을 유현재의 허리에 감쌌다.

“그래서 무서워.”

유현재가 내 머리를 감싸고 꽉 안으며 웅얼거렸다. 유현재의 입술이 움직이는 촉감이 그대로 이마에 전해졌다.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 무서워.”

“…….”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감싼 유현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썩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진 않았다. 당연했다. 현재조차 불행한 삶만을 살아오다가, 현재라도 행복한 삶을 가지게 된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불안해하는 유현재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를 달래 주었다.

“괜찮아.”

“응.”

“지금만 행복하면 돼.”

“응.”

“그러기에도 바쁘잖아.”

유현재의 심장 소리가 바로 귀에 전해졌다. 쿵쿵대며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나는 차분해졌다. 내가 코트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유현재의 볼을 잡아당겼다.

“술 한 잔 마시고 취해서 이러냐. 완전 애네.”

“나 진짜 술이 약한가 봐.”

“어지러워?”

“어지러워.”

유현재가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리곤 응석을 부리듯 내 어깨에 얼굴을 푹 묻었다. 유현재의 키가 더 컸던 터라 다소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됐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야, 하고 유현재의 어깨를 잡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잠드는 거 아니지?”

“아냐, 안 자. 오늘 안 잘 거야.”

“오늘 안 잔다고?”

“오늘 우리 대학생처럼. 이렇게 막, 술도 같이 먹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냥 학생같이 있는 게…….”

“엄청 좋았나 보네.”

“응. 대학교 오고 싶다.”

“그랬다간 센터에서 가만 안 둘걸.”

“너는…….”

“나?”

“너는 대학교 갈 거라며.”

“난 가야지. 이제 마나까지 없으면 그냥 빈털터리 고안데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 대학생들이 몇 명 짝을 지어 앉아 있었지만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듯했다.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노래 좋다.”

“응. 구경하러 갈까?”

“고한결 저기다 두고 가게?”

“아, 맞다.”

유현재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고 있을 때쯤 갑자기 눈앞에 다시 상태창이 불쑥 나타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나에게만 보일 그 상태창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목표까지 95%, 달성까지 5% 남았습니다!]

[달성까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목표를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미친.”

“어?”

유현재가 나를 보며 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러게. 너 저번에 그 시끄러운 노래만 좋아하는 것 같더니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시끄러운 노래? 너 지금 락 무시한 거냐?”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이거 고한결한테 가서 바로 말해야겠다. 너는 락으로 몰매를 좀 맞아 봐야…….”

유현재가 나를 잡고 확 끌어안으며 말렸다.

“이거 놔.”

“봐주라, 응?”

“뭐야? 애교 부리는 거야?”

“웅.”

유현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깔깔 웃었다. 이 순간만큼은 뭐래도 괜찮았다. 내 죽음까지의 시간이 단 5%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더 이상 이 행복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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