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이번 건도 고생했어, 유 팀장?”
“아닙니다. 그리고 아직 팀장이 아니라서요, 그렇게 부르시는 건 곤란합니다.”
“아이고. 뭘 그렇게 유도리 없게 굴어. 어차피 팀장은 따놓은 당상인데.”
“지금은 1팀 팀원으로서의 성과를 보고하러 온 겁니다.”
“알겠네. 알겠어. 하여간 꽉 막혀 가지고.”
부장은 내용도 읽지 않고 정리된 서류에 사인을 휘갈겼다. 유도현은 그것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받아 들었다.
“어쨌든 이번 게이트 토벌 건은 자네밖엔 참작될 사람이 없어.”
“네. 알겠습니다.”
“뭐야, 웬일로 아무 말 없지?”
“맞는 말이라 그렇습니다.”
“그래? 거 한 팀장이 어지간히 일 못했나 보네. 유도현이 입에서 이런 말도 나오고.”
“여기서 제가 의견을 말해야 합니까?”
“아니. 됐어. 이미 전해졌어.”
“한 팀장님의 평소 능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번 토벌에서만큼은 아쉬운 성과를 내셨다는 말입니다.”
“자네는 참 솔직해서 좋단 말이지.”
칭찬인지, 비꼼인지 모를 말이 부장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유도현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인이 완료된 서류를 들고 유도현이 부장실을 나가려 했다.
“괜찮은 팀원 있으면 구성해놔. 고려할 테니까.”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었나요?”
“일단 해 놔.”
유도현은 아무 대답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앞뒤 꽉 막힌 사람인 것임은 틀림없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길게 유도현의 성격을 파악한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유도현은 바로 전투부로 내려가 서류를 팀장에게 제출했다. 팀장은 서류를 받고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했어야 했는데.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괜찮습니다. 치료에만 전념하시죠.”
자세히 보니 팀장 (아마 아까 불렸던 한 팀장)은 다리와 팔에 깁스를 두르고 있었다. 유도현이 잠시 깁스를 두른 다리를 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고생했어.”
유도현은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휴게실로 향했다. 커피를 한 잔 내린 유도현이 천천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10여 년 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때 유도현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수현. 간결하게 적힌 세 글자였지만 유도현은 조금 망설였다. 아마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여보세요.”
-형!
“지금 근무 중인데.”
-잠깐만 전화하자. 나 진짜 완전 좋은 소식 가져 왔단 말이야.
“……잠깐 정도는 괜찮을 것 같네.”
차수현의 목소리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 뒤에 나올 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유도현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그가 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나 해담 합격했어!
“……축하해.”
-내가 합격한다고 했지? 한다면 하는 놈이라 했지?
“그러게. 축하한다.”
-형은 그렇게밖에 축하를 못하냐?
“이따가 밥 먹자.”
-진짜? 시간 돼? 야근 안 해도 돼?
“게이트 토벌 어제 끝나서 오늘은 여유 있어.”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
전화를 끊은 유도현이 작게 웃었다. 나는 그 즈음 이상한 것을 느꼈다. 분명 유도현이 죽은 건 차수현이 열일곱 살 때다. 미성년자가 길드에 입단할 수는 없으니, 적어도 차수현은 이미 수능을 친 고3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치면 시간상 전혀 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이 있나 싶어 계속해서 유도현의 시점을 따라 지켜보기로 했다.
“도현 씨!”
유도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유도현의 직장 동료로 추정되는 낯선 얼굴이 유도현에게 손짓했다. 유도현이 천천히 그에게 걸어갔다.
“이거 다음 주까지 작성해서 주세요. 인사과에서 갱신해야 한다고 해서요.”
상대가 건넨 종이를 받은 유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도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헌터도 전투부 소속이 되면 앉아서 사무 일을 하는군.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 광경을 기묘한 시각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유도현의 시선이지만 유도현을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도현 씨, 오늘 회식 어때? 한 팀장님이 카드 주셨는데.”
“아, 선약이 있어서.”
“그래? 도현 씨는 맨날 선약 있더라. 언제 같이 회식할 수 있는 거야?”
“일주일 전쯤 미리 말씀해 주시면 맞춰 보겠습니다.”
유도현스러운 대답이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쯤 유도현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 종이를 보았다. 미리 써두고 가려는 것 같았다. 펜을 든 유도현이 공란을 천천히 채우기 시작했다. 이름 유도현, 나이 스물셋. 직업 헌터. 해담 길드원이자 전투부 소속 3년차. 모두 뻔한 것들이었다. 가장 아래에는 가족 관계를 쓰라는 칸이 있었다.
아버지, 유규환. 직업, 전투부 보안국장.
어머니, 이주화. 직업, 가정주부.
여기까지 적은 유도현이 펜을 내려놓았다. 나는 뒤에 나와야 할 사람이 적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유찬희가 없다. 아무리 어린 동생이더라도 가족 관계는 모두 적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점점 이상함을 느끼며,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유도현을 따라 전투부 건물 밖을 나갔다.
“형!”
지금보다 조금 더 캐주얼한 옷을 입은 차수현이 손을 흔들었다. 평소의 인상보다는 훨씬 차분한 얼굴이었다.
“빨리 내려왔네?”
“정각 맞춰서 내려왔어.”
“그게 빨리 내려온 거지. 형 나 배고파. 밥 먹자.”
“……뭐 먹고 싶은데?”
“고기.”
“넌 그 대답만 하더라.”
“그게 제일 맛있는 걸 어떡해. 형은 싫어?”
“아니. 가자.”
유도현과 차수현은 나란히 유도현의 차로 갔다. 유도현의 차 내부는 심플했다.
“근데 어떻게 일주일을 게이트에 있다 왔는데 바로 일을 시키냐?”
“근무 시간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난 전투부 일은 안 해야겠다. 그냥 길드에서 헌터나 뛰어야지.”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해담에 속한 이상 전투부 일에 차출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고…….”
“아, 아, 알겠습니다~ 그만하세요~!”
차수현이 유도현의 얼굴을 밀었다. 누군가 손을 대면 극도로 싫어할 것만 같은 유도현도 차수현이 손을 대는 것은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도 제법 긴밀한 관계로 발전한 듯했다.
“고모가 자꾸 형한테 도움 받으라고 하는데, 형한테도 그런 말 하지?”
“응.”
“나 그런 거 싫어하니까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것 정도는 봐줄게.”
“와, 갑자기 엄청 빽 생긴 것 같다.”
차수현과 유도현은 은근히 끊이지 않고 대화를 이어 갔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이 신기했다. 둘 다 내겐 너무나도 부정적인 얼굴과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것이,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게 말이 안 됐다. 애초에 진작에 죽은 사람과 영국으로 갔어야 할 놈이 이렇게,
“행복하네.”
행복해하는 게.
유도현과 차수현은 정말 평범한 고깃집에 가서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정말 평범하게 식사를 했고 술까지 한잔했다. 유도현은 간간이 웃었고 차수현은 계속해서 쫑알거렸다. 나는 이 광경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리고 이질적이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물론 현실이 아니긴 했지만- 현실 속에 갇혀 있는 느낌.
대리 기사를 불러 차수현을 데려다준 유도현이 이제 집으로 향했다. 나는 내심 집도 달라졌을까 싶어 긴장했지만 다행히 가는 길은 익숙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 유도현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텅 빈 복도는 집이 불타기 전 내가 봤던 구조와 똑같았다. 지나치게 어두운 것마저.
“왔니?”
깜빡 잠들었던 건지 엄마가 졸린 눈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우습게도 엄마의 얼굴을 보자 조금 울컥했다.
“네. 제가 깨웠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얼른 주무세요.”
“하나뿐인 아들 오는 건 보고 자야지.”
유도현이 웃으며 엄마를 돌려보냈다. 나는 울컥한 마음도 잠시, 다시 싸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엄마는 분명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집의 아들은 유도현 하나뿐이라는 것. 실제로 유도현이 쓰는 2층엔 그 누구의 인기척도 없었다. 심지어 유현재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