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게이트가 다시 돌아올 며칠간 나는 쥐 죽은 듯 집에서 지냈다. 유현재가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두근대다가도, 이후에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생각하면 막막해지곤 했다.
“내일 오후 3시쯤, 강남역 부근에 게이트 생성된대.”
며칠 만에 집에 방문한 한재민은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내게 툭툭 던져주었다.
“그러면, 미리 가 있으면 되는 거야?”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원래는 헌터들이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라고 지시할 계획이었는데.”
“근데?”
“강남이면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어차피 전방 통제 되잖아.”
“되겠지. CCTV도 다 관리할거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하면 되긴 하는데.”
“그럼 뭐가 문젠데?”
“그전까지는 적당히 입막음하면 됐어. 어차피 사람들은 게이트 토벌에 성공했다는 사실만 초점을 맞추고 지나가 버리니까 굳이 CCTV, 이런 거 확인할 필요가 없었지. 그렇지만 이번엔 네가 게이트에서 난동을 피웠고 헌터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문제’가 생기잖아? 그러면 인간들은 쥐 잡듯이 그 상황을 보려고 난리를 칠거라고. 아무리 이쪽에서 데이터 수정을 싹 돌려도 방구석 해커들이 쪽수로 밀어붙이면 분명 한계가 있단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해결책은 있을 거 아냐.”
“그럼. 간단해.”
“뭔데?”
“네가 퍼포먼스 랭커였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거야.”
“뭐?”
“과도한 불법 약물 복용으로 마나 통제 불가. 랭커들 사이에선 자주는 아니라도 꽤 있는 일이잖아? 욕심 부리려다 모든 걸 망쳐버린 랭커. 한성은 도저히 이 사실을 계속 가지고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고하는 형식으로 갈 거야.”
“대단하네. 정말.”
“그리고 너의 그 열등감의 시발점이 갑자기 나타나는 거지.”
“하…….”
“유현재가 나타나면 어차피 넌 자연스럽게 묻힐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 신약 개발이 성공하면 너도 확실하게 복귀시켜 줄 테니까.”
“이미 지랄 원맨쇼한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혔는데 어떻게 복귀시킬 건데?”
“영업 비밀을 한 번에 많이 알려주면 안 되지.”
“영업 비밀? 웃기고 있네.”
급격히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말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여기 있어.”
“뭐, 기자들 여기로 몰려오게 하게?”
“정답. 확인사살 시켜 줘야지. 사실 유찬희는 게이트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전투를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지 방에서 배나 긁으면서 콩고물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표현 한번 개 같네.”
“그전까지 유현재 만나는 건 자제해. 세상에 눈이 너무 많아. 연락도 하지 말고.”
나는 대답 대신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던져 누웠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얌전히 여기 있을 테니까 이제 가라.”
“유찬희 참 많이 변했다. 이제 주제 파악도 제법 빠르네.”
한재민이 웃으며 다시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가 나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나는 온몸에 힘을 풀었다. 이제 내일이면, 며칠 전과 다른 의미로 내 얼굴이 포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었다. 스무 살에 사회면에 이렇게 자주 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주인데. 그래도 더 이상 이런 바보 같은 눈속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
모든 것은 늘 그랬듯 한재민이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이뤄졌다. 게이트가 열리고 삼사십 분이 지나자 기자들은 우리 집 앞에 진을 쳤고, 나는 대충 머리를 빗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채 문 밖을 나섰다. 모두가 내게 질문을 쏟아부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왜 이렇게까지 퍼포먼스 랭커로서 눈속임을 하려 하신 거죠?”
그러게요. 저도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불법 약물을 투약한 건은 사실입니까?”
약물만 투약했겠어요. 금단술까지 써서 죽은 사람도 불러냈는데.
“2년간 보호자 역할을 해 준 한재민 이사님께 하실 말씀 없습니까?”
있을 리가요. 나는 그 자식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건데. 나는 최대한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랭커 분들, 그리고 시민 여러분들께 진심을 다해 사과 말씀 드립니다.”
“랭커 생활은 지속할 수 있으신가요?”
나는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몸을 돌리는 순간,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그건 분명 유현재였다. 유현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말할 수 없는 민망함에 발끝이 저려왔다. 별생각 없이 숙였던 허리가, 내뱉었던 말들이 모두 후회로 돌아왔다.
“……계속해야죠.”
치기 어린 대답이었지만 기자들은 놓치지 않고 바로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플래시 세례에 시큰해진 눈을 깜빡이며 다시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재민: 당분간 집에 있어]
[한재민: 어디 나갈 생각 하지 말고]
나는 답장하지 않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들어오기 전 마주쳤던 유현재의 눈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집 안 배경이 모두 회색으로 변했다. 나는 이 현상을 알고 있었다. 시스템의 출현. 2년간 종적을 감추고 한 번도 눈앞에 나타난 적이 없던 시스템이 갑자기 바로 앞에서 창을 띄웠다.
[관리자 모드로 전환합니다.]
[관리자님, 접속을 환영합니다.]
[현재 모든 설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목표 달성율을 보시려면 1번, 유저의 크리티컬 수치를 보시려면 2번, 목표를 수정하시려면 3번, 유저의 설정 관리를 하시려면 0번, 나가시려면 나가기를 불러 주세요.]
나는 멍하니 허공에 떠 있는 그 글씨들을 바라보았다. 관리자? 오랫동안 시스템을 경험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화면이었다. 글씨는 마치 연결이 불안정한 화면처럼 멈췄다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일단 아무 번호나 내뱉었다.
“1번……?”
[1번, 목표 달성율을 브리핑합니다. 현재 유저의 목표 달성율은 70%, 최종 목표인 ____까지 30% 남았습니다. ____는 목표 수정란에서 다시 수정할 수 있습니다. 단, 목표를 수정할 경우 달성율은 0%로 리셋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목표를 확인하시려면 0번, 유저의 설정 관리에서 목표 입력란을 확인해 주세요.]
나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채 0번을 나지막이 불렀다.
[0번, 유저 설정 관리로 접속합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유저 지정과 유저의 커스텀 등을 관리합니다. 무엇을 확인하시겠습니까? 1. 유저명 2. 유저의 신상 정보 3. 유저의 목표 4. 유저의 능력]
“넷 다 알려줘.”
[1번, 유저명부터 브리핑 시작합니다.]
[유저명 유찬희.]
[2번, 유저의 신상 정보를 브리핑합니다.]
[유저는 당신의 ____입니다. 유저는 당신을 맹목적으로 따릅니다. 유저는 당신의 유일한 ____으로, 선량하고 따듯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유저의 삶은 당신의 행동에 따라 많은 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신중하게 설정해 주세요.]
나는 2번의 내용까지 읽고 갑자기 올라오는 구토감에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눈앞이 까맣게 점멸했다. 3번이 브리핑 되려다 순간 글씨가 꺼졌다.
[관리자 탐색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유저 모드로 돌아갑니다.]
나는 얼굴이 축축해질 정도로 피를 흘리고 나서야 겨우 기침을 멈췄다. 시스템이 ‘유저 모드’에 진입하고 나서는 다행히 통증이 사라졌다. 나는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시스템에게 캐물었다.
“관리자 모드가 뭐야?”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방금 떴잖아! 관리자 모드가 뭐냐고!”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알 수 없는 방식의 접근입니다.]
나는 턱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유저 모드’의 창을 깜빡이며 움직였다. 그러더니 소리 없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게 뭔데…….”
나는 거실에 주르륵 주저앉아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오자마자 마주했던 이 ‘시스템’은 관리자라는 인물이 존재했고, 그 관리자가 나를 ‘유저’로 선택했다. 나는 그가 선택한 유저라는 이유로, 시스템의 이 좆같은 행패를 견뎌야 했다. 관리자는 도대체 누구길래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