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2년 간 바뀐 것은 많았다. 일단 차혜련, 차수현과의 교류는 완전히 끊어졌다. 한재민 쪽에서 아예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한때 뜻을 같이했던 차수현은 더 이상 나와 마주치고 싶지도 않아 했다. 일방적으로 그의 뒤통수를 친 건 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김구현은 전투부 임시 보안국장을 하다가 지원부서 쪽으로 좌천당해 소식이 뜸해졌다. 가끔 연락이 왔으나 내 쪽에서 무시했다. 과연 연락을 해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볼 정도는 아니었다.
자선행사가 끝나고 나는 결국 고한결의 집에 가지 못하고 다시 한재민의 차에 올라탔다. 한재민이 비꼬듯 내게 말했다.
“성질 좀 죽일 수 없냐?”
“이 정도면 많이 죽인 건데, 왜.”
“타고났네, 아주.”
“고마워.”
“천만에.”
한재민이 시트에 편하게 누운 채 아무렇지 않게 툭 말을 던졌다.
“유현재 곧 귀국이다?”
“뭐?”
다시 이어폰을 끼려던 내가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운전을 하던 문 비서가 놀라 어깨를 떨었다.
“깜짝이야.”
“왜 말 안 했어?”
“나도 어제 알았어.”
“구라 치지 마, 네가 뭘 어제 알아.”
“진짜라니까?”
“유학 3년이잖아, 그런데 왜 벌써…….”
“오면 직접 물어봐, 왜 일찍 귀국하냐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쉽사리 유현재에게 달려가 왜 벌써 왔냐고 물어볼 낯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이 땅을 떠나자마자 나는 죗값을 물기라도 하는 듯 부모를 잃었고, 한재민의 손아귀에서 한성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부끄럽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왜, 만나기 싫어? 사랑해 죽겠으면서 왜 보기 싫은데?”
“말 함부로 하지 마.”
“네 대단한 사랑을 내가 말하니까 싫어?”
“입 다물라 했지.”
“그렇게 대단한 사랑인데 유현재는 너한테 2년간 연락도 안 했어?”
“…….”
“아무리 네가 미워도 그렇지, 나라면 메일 한 통은 보내겠다. 아니면 영국 생활이 너무 잘 맞아서 네 생각이 안 나기라도 했나.”
나는 이제 한재민의 말을 무시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2년간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사실이기도, 거짓이기도 했다. 나는 핸드폰 통화 기록에 찍힌,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여러 연락 기록들을 쭉 훑어보았다. 수십 통의 미확인 발신 번호 중 가장 최근에 찍힌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처음 발신자를 알 수 없는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대번에 상대가 유현재라는 것을 눈치챘다. 유현재는 내게 전화를 걸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주변조차 고요해 가만히 있으면 내가 그냥 전화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
“…….”
몇 분이 흘렀을까. 수화기 너머의 유현재가 작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희미하지만 분명 유현재의 숨소리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들렸을까? 들렸을 수도 있다. 유현재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잠재우며 계속해서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전화는 십여 분이 지속되다 스르르 끊겼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너무 뜸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자주도 아닌 간격으로 유현재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서로 숨만 내쉰 채로 생사를 확인했다. 먼저 말이라도 해 주면 억지로라도 대답을 해볼 텐데 2년 동안 유현재는 단 한 마디도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것 또한 연락이라고 한다면 유현재와 나는 그래도 꾸준히 연락은 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돌아오는 대로 만나게 되어 있을 거야.”
“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라고 미리 말해 주는 거니까 고마워해.”
“뭔 말인데? 너 또 유현재한테 뭐 했어?”
“뭘 해. 넌 내가 틈만 나면 너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불안한 얼굴로 차창 너머를 응시했다. 유현재와의 재회는 분명히 떨리면서도 다시 시작될 두려움의 도화선이 될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
이태원 부근에서 열린 a급 게이트는 근방 500m의 모든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할 정도로 큰 재난이었다. 2급 이상의 랭커로 꾸려진 헌터팀이 선두에 서고, 실더들은 공간적 피해를 위해 최대한의 보호벽을 쳤다. 보호벽 바로 앞에는 늘 그랬듯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촉망받는 1급 헌터 유찬희는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의 선두에 서 지휘를 맡았다.
“유찬희 헌터! a급 게이트는 세 번째 출정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건물이 많이 밀집된 곳이라 최대한 2차 피해가 없게끔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번 게이트의 실효 기간은 어떻게 된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a급인 만큼 최소 사흘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습니다.”
나는 출전 직전 문 비서에게 받은 브리핑을 그대로 읊었다. 내 모습은 아마 저 카메라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동영상 플랫폼들에 생방송 되고 있을 것이었다.
“이 이후로는 민간인 통제 구역이므로 오지 마십시오.”
나는 기자들 무리에서 충분히 멀어진 후 홀로 무리를 빠져나왔다. 어차피 게이트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라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실제로 게이트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찬희 님.
“아, 문 비서님. 저 4번지 건물 뒤에 있어요.”
-알겠습니다. 게이트 사라지고 30분 정도 후에 차량이 갈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어요.”
짧은 전화를 끊고 나는 건물 1층의 카페에 앉아 드러누웠다. CCTV는…… 한재민이 알아서 하겠지. 곧이어 게이트에서 나오는 기운들이 점점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게이트의 문이 닫힌 것이었다. 나는 게이트가 있을 골목 너머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다 핸드폰을 켰다.
“웃기네, 진짜…….”
포털 사이트에는 대문짝만하게 내 얼굴이 걸려 있었다. ‘이태원 1동 부근에 개방된 a급 게이트에 1급 헌터 다수 차출…… 유찬희 포함’ 기사를 읽을까 하다가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하아…….”
그러니까 적지 않은 1급 헌터 중에서도 늘 내가 이슈가 되는 건 역시 한성을 등에 업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를 잃은 불운의 아이이기 때문일 텐데. 나는 이 비밀이 도대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났을까, 바깥에서 부드럽게 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도착한 차를 맞이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뭔 고생을 해요. 웃기는 소리인 거 아시죠?”
“……뭐, 거짓말이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힘을 소비하니까요.”
“그건 인정.”
나는 선팅이 짙게 된 차 뒷문을 열고 빠르게 몸을 집어넣었다. 차는 자연스럽게 골목을 빠져나가 도로에 합류했다. 이제 한동안 또 집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반 감금 생활을 해야 할 것이었다.
“게임기 넣어 줘요.”
“게임 하실 시간 없으십니다.”
“왜요, 또 그 사람들 와요?”
“네. 이번에 개발한 신약 투약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 죽이겠네, 또.”
나는 별 감흥 없는 목소리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나를 잠재우고 몸에 완벽히 적응시키기 위한 실험 아닌 실험도 벌써 2년째였다. 애당초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기간의 두 배를 살았지만, 이게 과연 성공으로 가는 실험인지는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연구원분들은 6시 경에 오시기로 했으니 그 전까지 휴식하시면 됩니다.”
“한재민은 뭐 하는데요?”
“이사님께서는 잠시 지방 쪽에 가 계십니다.”
“지방?”
“네. 오늘 중으로 돌아오실 예정입니다.”
“알겠어요. 웬만하면 처박혀 있는 동안은 연락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바로 집으로 들어간 나는 문을 걸어 잠갔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 동안 나는 이곳에 존재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태원에서 쇼 아닌 쇼를 하는 동안 집 안 청소라도 한 모양인지 부엌은 나가기 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음식들을 보니 배가 고팠지만, 대개 투약 전 음식을 섭취하면 모조리 토해냈기 때문에 식사는 이후에 하기로 했다. 거실에 뒀던 핸드폰에 알림음이 울렸다.
[고한결: 찬희.]
[고한결: 너 게이트 간 거 이제 봤다]
[고한결: 돌아오면 이든사우스 사인 씨디 줌]
[고한결: 잘 다녀와라]
이든사우스 사인 씨디는 도대체 어떻게 구한거지. 나는 미리보기로만 연락을 확인한 후 다시 핸드폰을 덮었다. 쇼파에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내 누군가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치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왔다. 가운을 입고 각종 장비를 든 연구원 몇 명이었다. 나는 가만히 누운 채 그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