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84화 (84/115)

84.

“돌아……가셨다고요?”

-그게, 방금 발견이 되긴 됐습니다만…….

“지금 기사 난 거 전부 사실이에요? 집에 불이 났다고요?”

-네. 지금 최대한 인력을 동원해 진압하고 있기는 한데 어렵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아직 행방불명이시고요.

“대체 왜요? 왜 불이 났는데요?”

교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아마 다른 아이들도 기사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김구현을 추궁했다.

-모릅니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구조가 1순위이다 보니……

“아니, 도대체 왜…….”

불현듯 한재민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한재민이 이런 짓까지 벌였을까 싶어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어제 문자의 내용까지 겹쳐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김구현과 전화를 끊고 가방에 처박아 두었던 한재민의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재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 전화를 걸었음에도 한재민이 받지 않자 나는 결국 가방을 챙겨 복도를 나섰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한 것을 경호원이 잡아 주었다. 상상치도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왜? 집 쪽으로 달려가는 동안에도 나는 쉼 없이 발을 헛디뎠다. 집 근처 골목에 진입하자마자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이미 집주변은 기자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저 이 집 가족이에요.”

“국장님 자제분이십니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 몇 명이 그제야 길을 터 주었다. 나는 겨우 바리케이트가 쳐진 안쪽을 볼 수 있었다. 이송대 위에 누워 천으로 덮어진 저 사람이 아마 아버지일 것이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직접 확인했다. 얼굴까지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지만 아버지가 확실했다. 순간적으로 구토가 올라와 입을 막았다. 구급 대원들이 달려와 내 안위를 걱정했다.

“괜찮으세요? 어지러우신가요?”

“네. 괜찮아요.”

나는 몸을 돌려 아버지의 시체가 있는 곳을 등졌다.

“……저 혹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을까요?”

“네. 일단 근처 호텔 잡아놓을 테니 거기에서 대기하시죠.”

김구현이 옆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뭐라뭐라 지시했다. 지시를 들은 그가 내게로 빠르게 뛰어왔다. 나는 그를 따라 바리케이트 밖으로 빠져나갔다.

“유규환 국장 아들이신가요?”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확실합니까?”

“지금 심정은 어떠세요?”

“한 마디만 해 주십쇼!”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와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힘없이 바닥만 본 채 경호원에게 거의 안기듯 걸어갔다. 플래시 세례에 눈이 멀 것 같았다.

“바로 호텔로 갈 겁니다. 안내 받고 절대 객실에서 나오지 마십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 내부가 조용했다. 아직까지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고 어지러웠다. 순식간에 부모가 죽었다. 집은 모조리 타버렸다. 가지고 있던 것들이, 네가 가진 건 원래부터 허상이었다는 듯 모래알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자 운전을 하던 직원이 백미러로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웃기게도 그렇게까지 증오스러웠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반복 재생되었다.

*

“현재가 떠나면 넌 정신 더 바짝 차려야 한다.”

“왜요? 걔가 제 총알받이였는데 사라져서요?”

내 쏘아붙이는 듯한 대답에 아버지는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착잡한 듯한 얼굴이었다.

“사고가 이젠 그렇게밖에 흘러가지 않는 거냐?”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아, 그래요?”

내가 조소했다.

“근데 왜 그렇게 멀쩡한 부모 자식 관계를 갈라 놓으셨을까요.”

아버지는 쓰고 있던 교정용 안경을 벗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몹시 후회하고 있단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모르게 놀라 눈만 깜빡였다.

“당시엔 최선이라 여겼던 일들이.”

“…….”

“이제 모두 그게 최선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어.”

“…….”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다고요?”

놀랐던 감정이 추슬러지고 이젠 기가 찼다. ‘그때로 돌아간다는 것’의 무게는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그때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채로… 현재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으세요?”

“…….”

“시간이 되돌려졌다고 해서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이 과연 아버지를 옥죄어오지 않을까요?”

“…….”

“되돌려진 건 시간일 뿐이지 아버지가 아닌데요. 아버지는 과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두 번째 삶을 살게 되는 것뿐이에요.”

“네 말에 무척 감정이 실려 있구나. 마치 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잘 알죠. 그래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아버지는 그냥 평생 사람을 죽인 살인자예요.”

“그래. 맞다.”

“…….”

“그리고 넌 그 아들이고 말이지.”

허공에서 아버지와 시선이 부딪혔다. 회한에 가득 찬 듯한 아버지의 표정조차 나는 보기 힘들었다. 그 후회가 진심처럼 느껴져서 더더욱 화가 났다.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던 유현재의 삶을 아버지가 모두 책임지길 바랐다.

“그래도 안심하셨겠어요.”

“뭐?”

“아버지 아들이, 눈엣가시 같은 놈이랑 정분나는 건 막을 수 있었어서요.”

“……유찬희!”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라도 현재가 저희 쓰레기 같은 가족들에게서 멀어질 수 있어서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복도에는 어머니가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희야, 아버지랑 싸우는 것 같던데 도대체…….”

“안 싸웠어요.”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하고 계셔, 그러니까 용서해 줄 순 없겠니? 엄마가 이렇게 부탁할게.”

“엄마.”

내가 우뚝 멈춰 서서 엄마를 내려다보았다.

“엄마가 뭐라고 제가 부탁을 들어드려요. 똑같은 공범이신데요.”

“찬희야, 엄마는 그게…….”

“아버지가 그런 짓을 하는 걸 아셨으면 신고라도 하시죠. 아니, 이혼이라도 하시던가요. 저는 방 한 칸짜리 지하방에서 살아도, 차라리 아버지와 남남이었으면 이런 최악의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거예요.”

“찬희야…….”

“돈 많은 집안에서 자랐으면 뭐 합니까? 평생 살인자 아들 딱지나 붙고 살 텐데.”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저릿해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아버지를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

“유현재가 제대로 강하게 클 때까진 머리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아버지 돈으로 최대한 편하게 공부해야죠.”

“신고라니, 찬희야.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엄마.”

“…….”

“제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이라도 남게 해 주세요.”

엄마가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나는 천천히 발을 움직여 복도를 빠져나갔다. 내 방으로 올라간 후 나는 일부러 부모님과 동선이 겹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2층에서 해결했다.

그러니까, 그게 부모님과의 마지막이었다.

*

호텔에 들어간 나는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져 누웠다. 몸이 좋지 않았다. 잠이라도 자야 할 것 같았지만 심하게 뛰는 가슴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가방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게 한재민의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

-와.

“너 미쳤어?”

-한 달 내내 그렇게 전화를 해도 집 안에 처박혀서 받질 않더니.

“미쳤냐고! 사이코패스 새끼야!”

-집을 태우니까 전화를 받네. 다음에 전화 안 받으면 호텔에 불을 지를까?

“씨발 새끼야! 너 뭐야?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응. 무사해.

“세상이 네 거야? 네 멋대로 해도 되는 게 세상인 줄 아냐고!”

-지금은 아니지만 곧 내 거 될 텐데.

“진짜 씨발 새끼야. 너는.”

-씨발 새끼는 너고, 찬희야.

“진짜, 개새끼야…….”

-다 너 때문이잖아.

“…….”

-너희 아버지가 현재 고아로 만든 거? 너 때문이잖아. 너 먹여 살리려고. 유도현이 죽은 거? 그것도 너 때문이지? 너희 엄마아빠가 죽은 거?

“…….”

-그것도 네가 계약 위반해서잖아. 그냥 계약의 대가야, 이건.

“…….”

-이게 사회야, 찬희야. 네 좆대로 구는 게 사회가 아니라. 알겠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한재민의 논리는 비약이 많았지만 결론만 보면 틀린 것은 또 아니었다. 나 때문에 다 죽었다. 라는 것은 틀렸지만 맞는 말이었다.

-이제 알았으면 입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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