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못 믿겠어.”
유현재가 뒷걸음질 쳤다. 애써 자제해 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듯 동공과 입술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못 믿겠다기보다는 믿고 싶지 않다에 가까운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유현재에게 더 큰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찬희야.”
“…….”
“못 믿겠다니까. 응? 대답 좀 다시 해 줘.”
“……미안.”
유현재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치다가 마른세수를 연거푸 했다.
“내가 유일하게 너한테 할 수 있는 말은,”
“…….”
“최대한, 내 아빠를, 내 가족을 이용하고 빼먹으라는 거야.”
유현재가 뭐라 대답하려 한 순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평소와 같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안정이 될 때까지 여기 있거라. 경호는 충분히 붙여놨으니 혹여나 허튼 행동 같은 건 하지 말고.”
“……네.”
아버지가 하얗게 질린 채로 옆에 서 있는 유현재를 힐끗 바라보았다.
“현재도 여기 계속 있을 거냐?”
“……아니요.”
“그럼 지금 나오거라. 집에 바로 갈 테니.”
유현재는 순식간에 내 앞에서 사라졌다. 닫힌 문 너머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이런 말을 한 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이미 지나버린 일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최선의 선택을 고려할 시간 따위 주지 않으니까. 더 늦었더라면 더 괴로웠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뜨거워지는 눈가를 꾹꾹 눌렀다.
*
유현재가 떠날 때까지 우리는 의식적으로 서로를 멀리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현재는 내게 그런 말을 들었단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은 듯 했다. 유현재 본인이 아닌 이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내 말을 들어준 것이길 빌었다.
[한재민: 전화 받아.]
더불어 한재민의 연락을 무시한 것도 똑같이 한 달이 다 되어 갔다. 유현재에게 가장 큰 비밀도 밝혔고, 그의 정보를 이용해 유도현을 불러내기까지 했다. 평생 그를 피해 다닐 자신은 없었지만 당분간 병결로 학교도 가지 않아도 됐기에 나는 하루 종일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자퇴서를 제출한 유현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은 층을 쓰면서도 절대 마주치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했다. 적어도 유현재는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의 행동에 나를 맞췄다. 유현재가 차가운 표정으로 내 쪽을 보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재민: 그게 네 선택이야?]
유현재의 출국일 전날이었다. 늘 그렇듯 한재민에게서 협박성 문자가 왔다. 나는 그 내용을 읽고 화면을 껐다. 내일이 되면 유현재는 대한민국을 떠난다. 적어도 몇 년간 우리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벌여놓은 업보는 그동안 처리해두면 됐다.
[한재민: 세상에서 네가 제일 힘들고 나락인 것 같지?ㅋㅋㅋ]
한재민이 나를 도발하듯 문자를 추가로 보내왔다.
[한재민: 유현재도 이제 없고, 죽을 날만 받아놨는데 기분은 어때?]
개같아. 그럼 뭐, 어떡할 건데.
[한재민: 이제 다 끝난 거 같아?]
제발 끝이 나면 좋겠다. 죽고 나서 다시 지긋지긋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한재민: 말했잖아, 나는 너희를 가장 불행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여기서 더 불행해질 수 있어? 내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었다.
[한재민: 내일 학교 잘 다녀오고.]
[한재민: 곧 보자. ^^]
병결로 처리할 수 있는 날짜를 모두 쓴 터라 나는 내일 학교에 가야 했다. 하필 유현재의 출국일과 겹친 기묘한 우연이었다. 학교 측에 미리 손을 써둔 건지, 아버지는 경호팀과 함께 이동하라 말했다. 거절할 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잘 다녀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2층 거실로 나왔다. 테이블로 걸어가는데 때마침 타이밍 좋게 유현재가 캐리어를 끌고 방을 나왔다. 부쳐놓은 짐들을 제외한 남은 짐을 미리 차에 실어놓기 위함인 것 같았다.
유현재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컵에 물을 따랐다. 유현재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물을 마시며 그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유현재가 다시 올라와 방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잘 있어. 내일 새벽에 출발할 것 같아서 미리 말하는 거야.”
나는 물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응, 잘 다녀와.”
“네가 말한 대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고작 이런 거라서 따르는 것뿐이야.”
“……응.”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맞으니까.”
“응.”
“그러니까 더 강해져서 올 거야.”
“응. 꼭 그렇게 해.”
“근데, 이제 그게 너 때문은 아니야.”
“…….”
“네가 원한 거지, 이게?”
유현재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무거워진 발을 이끌고 내 방으로 몸을 옮겼다. 내가 원한 건 이게 맞으니까 별다른 할 말도 없었다. 당연했다. 모든 진실은 유찬희의 나락을 요구했고, 유현재의 독립을 지향했다. 시스템이 지향하는 결말은 이런 것일 수도 있었다. 일찍 죽어버리는 것 따위보단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것이 유찬희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도 길게 돌고 돌아 나를 괴롭혀 왔던 거겠지.
나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짤막한 꿈이었다. 나와 유현재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성인이 된 모양인지 승무원에게 맥주를 주문해 가볍게 마셨다. 유현재는 이내 내 어깨를 베고 곯아떨어졌다. 나는 편안한 자세로 비행기에서 서비스되는 영화를 보았다.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시간이었다. 눈을 뜨고 나서야 나는 제법 예전에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유현재는 이미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며 몸을 일으켰다. 유현재가 없는 대한민국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
“어제 유현재한테 문자 왔더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한바탕 환대를 받고서 나는 내 자리로 무사히 돌아가 앉을 수 있었다. 고한결이 핸드폰을 보여주며 내게 쫑알거렸다.
“맨날 간다, 간다 하긴 했는데 진짜 가냐.”
“그럼 진짜로 가지, 가짜로 가?”
“생각할수록 당황스러우니까 그렇지. 일언반구도 없이.”
“돈 많은 집 애들 유학 가는 게 한둘이야? 새삼스럽게 구네. 너희 누나도 지금 미국이라며.”
“야! 이거랑 그건 상황이 다르지.”
“뭐가 다른데? 비슷하구만.”
몇 마디 말이 오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버린 유현재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나는 유현재의 빈자리를 슬쩍 바라보곤 교과서를 폈다. 오랜만에 듣는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지만 또 묘하게 반가웠다. 한 달 내내 집 안에만 있었던 게 어지간히 지겹긴 했던 모양이었다.
학교의 보안도 한층 더 강화되었다고 했다. 이전의 과학실 사건과 아버지의 특별 부탁으로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경호가 상시 배치되었고, 보안 장치도 가장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되었다고 했다. 테러를 한 주동자는 결국 잡을 수 없었는데, (당연했다. 한재민이니까.) 학부모들에게 항의가 많이 들어와 결국 제조과학실은 폐쇄되었다고 했다.
“그럼 이제 제조반은 어디서 수업해?”
“몰라, 따로 건물 짓는다고는 하던데.”
“그래? 돈도 많네.”
“뭔 소리야. 100% 국가 전액 부담이라던데.”
“아, 그래?”
“뉴스 좀 봐라, 아무리 보안국장 아들이래도 말이지.”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볼 여유 없어.”
“잘났다.”
아마 여기도 아버지의 힘이 닿은 모양이었다. 학교 사업에 어떻게 국가 돈을 쓰게 됐는지는 몰라도 썩 좋은 루트는 아니었을 것 같아 다소 찝찝했다.
고한결이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 창을 슥슥 내리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멈췄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야, 찬희야…….”
“왜.”
“이거…… 뉴스, 이거.”
“아, 뉴스 싫다고.”
고한결은 바싹 굳은 얼굴로 파랗게 질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을 해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뭔데? 심각한 기사라도 떴어?”
“이거…….”
고한결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내게 내밀었다.
“너희 아버지…… 아니셔?”
내가 막 자세히 기사를 읽으려던 찰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김구현이었다. 나는 다소 의외의 인물의 전화에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여보세요?”
-……찬희 군?
“네. 말씀하세요.”
-지금 오셔야겠습니다.
김구현의 목소리에 적잖은 당황이 서려 있었다. 이 정도로 놀란 김구현의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요? 저 학교에요. 아버지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데.”
-국장님께서,
“…….”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제야 들고 있던 고한결의 핸드폰 화면 속 내용을 읽어 보았다.
[속보] 유규환 現전투부 보안국장 자택 원인 불명의 화재로 구조 작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