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납치쇼까지 벌인 것치고는 너무 순순히 풀려났다. 교복도 갈아입어야 했고 얼른 집에 가서 얼굴 도장이라도 찍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급하게 집으로 달려갔다. 웃기게도 그 중년 여성의 다정한 배웅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찬희야!”
엄마가 쏟아지듯 뛰어왔다. 나는 조금 퀭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유현재를 확인했다. 모두 그대로였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한재민은 [앞으로 연락 제때제때 잘 받아] [진짜 짜증나면 나도 내가 뭘 할지 몰라] 하고 기분 나쁜 문자를 보냈다.
“저 없을 때 무슨 일 있었어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긴 뭐가 있어. 네가 제일 문제였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결국 등교 금지령이 내려졌다. 더 이상 등교를 시키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판단 때문이었다. 유현재도 자연스럽게 집에서 쉬게 되었다. 나는 일단 방으로 올라가 눈을 붙이기로 했다. 병원에서 주사 받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속이 좋지 않았다.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멀미가 나는 것처럼 세상이 꿀렁거렸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침대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희야, 찬희야!”
누군가 내 몸을 격하게 흔드는 느낌에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유현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깨웠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핑 도는 머리를 감싸 쥐기도 잠시, 티셔츠며 침대에 잔뜩 묻은 핏물들을 보고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 일단 계속해서 피가 나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처음 피가 났을 때보다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 계속 이랬어?”
“방금 들어왔는데 계속 피 흘리고 있었어.”
“……어쩐지 자기 전부터 몸이 안 좋더라.”
“그런 말을 왜 그렇게 태연하게 해.”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고꾸라질 뻔해 유현재의 품에 풀썩 안겼다.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 장면이 굉장히 순정 만화 클리셰 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내 유현재의 흰 티셔츠가 피로 물들었다.
“아, 이거 새 옷 아냐?”
“그게 중요해?”
“일단…… 거기 연락해야 할 것 같아. 국마연.”
“네 핸드폰에 저장돼 있어?”
“응. 전정우 박사.”
유현재가 빠르게 내 통화기록을 확인하고 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또다시 똑같은 병실에 누운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전정우를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도대체 뭘 한 거죠?”
“뭐가요?”
“마약이라도 하셨습니까? 자극제라도 넣었어요?”
“학생한테 못하는 말이 없으시네요.”
“제 말은 왜 진정되어 가던 마나가 다시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느냔 말입니다.”
옆에 서 있던 유현재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어제…… 찬희가 잠깐 납치를 당했어요. 한재민 쪽이요.”
전정우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그럼, 한성 병원으로 갔습니까?”
“네. 아마도요. 거기 환자복 입었었으니까.”
“그럼 거기에서 유찬희 군을 대상으로 연구도 진행했나요?”
“……연구는 모르겠고요, 링거를 엄청나게 많이 맞았어요. 발등까지 죄다 바늘을 꽂았으니까.”
전정우가 군데군데 멍든 내 팔다리를 확인했다.
“아마 주사한 것이 검증되지 않은 실험 약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돼요? 애초에 불법 아니에요?”
물으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이라 생각하긴 했다. 애초에 동기 자체가 불법이고, 연구 목적 자체도 비밀에 가까운데. 그쪽에서 먼저 나라는 실험체를 데리고 가서 어떤 연구를 하든지 내 쪽에선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불법이든 아니든 간에 앞으로 최대한 그쪽과는 엮이지 마시죠.”
“혹시 아버지랑 얘기 못 나누셨어요?”
전정우가 안경 너머로 날카롭게 나를 쳐다보았다.
“저도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게 안 될 뿐이지.”
전정우는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귀찮다, 라기 보단 피곤한 것에 가까운 얼굴이긴 했지만.
“찬희 군이 개인적으로 그쪽과 얽히는 것엔 전혀 관심 없습니다. 다만, 연구 대상으로써 본인의 육체 보존에 힘을 쏟아 달라는 말이죠.”
“엮이기 싫다는 말 못 들었어요?제가 전 박사님 연구 하나를 위해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찬희 군. 잊고 있는 게 있는데 찬희 군은 지금 이 증상이 낫지 않으면 죽습니다.”
전정우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을 살려야 하는 것이 적어도 지금의 제 직업적 의무와 가장 일맥상통하고요.”
그럼 내가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럼 순순히 나에 대한 관심을 끄고 놔줄 건가? 사실은 본인의 연구 성과를 위한 이기심인 걸 아는데?
“……알겠어요.”
하지만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옆에 유현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전정우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팔에 꽂혀 있는 바늘과 연결된 기계를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입을 뗐다.
“지금은 무조건적으로 안정을 취하세요.”
“알겠어요.”
“그러려면…… 현재 군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전정우가 유현재를 흘끗 쳐다보곤 말했다. 유현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대 옆의 의자를 끌어와 털썩 앉았다. 묘하게 우스운 구도였다.
“적어도 지금 안정을 취할 동안은 서로 나쁜 이야기보단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네요.”
전정우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밖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버지를 응대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병실 문 앞을 지키고 섰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엿들으려 노력했지만 지나치리만큼 철저한 방음 덕분에 두 사람의 대화는 웅얼거림 정도로만 들릴 뿐이었다.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유현재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처음에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유현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여기에 네가 혼자 있기엔 너무 위험해.”
“이제 알았어? 왜 새삼스럽게 그래.”
“나는 아저씨가 한재민에게서 무조건적으로 널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바보 같은 생각이었네.”
“……그래.”
유현재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유학은 못 갈 것 같다.”
“어?”
“도저히 너 두고 못 가겠다고.”
“어차피 네가 여기 있어도 아무것도 못할 거라며.”
“내 눈앞에 있는 거랑, 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다른 거잖아.”
나는 차분히 유현재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할 건데? 그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기회인데 왜. 나는 무조건 살아남아. 한재민은 나 안 죽여. 그러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하고 싶은 거?”
“그래. 하고 싶은 거.”
“너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지.”
유현재의 나지막한 질문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그게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너는.”
“그거야…….”
강해지는 거, 라며. 나는 순간 강해지겠다고 말하던 그 때의 유현재를 상기했다. 강해지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나…….”
나 때문에. 그러니까, 결국 내가 살아야만 모든 것이 성립될 수 있는 것.
“그동안은 네 말을 전적으로 믿었어. 그러려고 노력했고.”
“…….”
“네가 살아남는다고 하면 살아남을 거라 믿었고, 죽더라도 떨어지지 않는다 했을 때도 그렇다고 믿었어. 왜냐하면 너는…… 진짜 유찬희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뭔가의 확실하고 안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은?”
“지금?”
유현재가 작게 실소했다.
“널 못 믿겠어.”
‘못 믿겠어’라는 말에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입을 잘못 벌리면 그 밖으로 심장이 튀어나와버릴 정도로, 그만큼 몸속에 지진이 난 것처럼 장기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못 믿겠으니까 그냥 네 곁에 24시간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못 믿겠으니까?”
“못 믿겠으니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재의 그 불신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내 자신의 감정이 비참해지든, 나락으로 떨어지든 간에 유현재의 불신에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건드릴 자격이 없었다. 유현재는 내가 가만히 그 말을 받아들이니 오히려 놀란 눈치였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 잠긴 목소리로 조건을 덧붙였다.
“한 가지만 듣고 결정해 줘.”
“한 가지?”
“네가 계속 듣고 싶어 했던 비밀.”
“…….”
“그걸 듣고도…… 여전히 내 곁에 남고 싶은지. 결정해.”
유현재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이후의 결정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할게.”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은 장소와 똑같은 상황, 똑같은 시간이었다. 이젠 그냥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피할 수 없는, 불편하고 잔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할 순간이 왔다. 이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했을 때부터 해온 수많은 상상들이 떠올랐다. 냉정한 표정으로 진실만을 나열하는 나, 울면서 용서를 빌고 제발 버리지만은 말아 달라고 떼를 쓰는 나. 그 모든 것은 그저 상상일 뿐, 현실은 지금 눈앞에서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재민이 말했지.”
“…….”
“아버지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고, 사이코패스라고.”
“…….”
“맞아. 사실이야. 그리고 난 그 사람 아들이야. 그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야.”
유현재의 눈은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챈 것처럼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떨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짓누르며 한 자 한 자 토해내듯 말을 내뱉었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어.”
두근거림이 심해졌다. 손등부터 시작해 팔다리가 새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자식을…… 데리고 와서 키우고 길렀어.”
나는 땅에 처박힐 정도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핏기 하나 없는 손등에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쓸데없이 몸에 잔뜩 힘을 준 탓이었다.
“형도 알고 있어서인지, 그저 우연인지 나는 몰라.”
“……이해했어.”
“나는…… 알게 됐을 땐,”
“그만 말해도 돼.”
“알게 됐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만해.”
“정말이야. 나는 진짜로 아무것도 몰랐어. 할 수 없었어. 무력했어.”
유현재가 충격적인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허공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우리 사이엔 한없이 무겁고 어두운 정적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 수많은 상상 중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동을 실행했다.
“미안해.”
유현재는 내 말에도 반응하지 않고 여전히 텅 빈 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계속해서 응시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아니 내가. 아니, 유현재가. 그리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설령 내가 죽어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