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아버지는 내 모든 말을 듣고 심각한 표정에 빠졌다. 물론 여기서, ‘모든 말’이란 한재민과의 대화를 어느 정도 필터링했다는 뜻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 쪽도 절 죽일 생각이 없고 저 또한 거기에 협력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근본적으로 가 보자꾸나.”
아버지가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짧은 새 많이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가 여느 중년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네가 한때의 치기로 한성과 모종의 거래를 맺었다는 것은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분명히 오갔다는 것도 알겠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하나일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거래한 거냐?”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말할 수 없는 게 많아질수록 나는 그자들에게 약점이 많아진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 못 드립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네.”
“불법적인 일을 통해 마나를 증폭시킨 건 맞니? 내 말은, 내가 커버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이냐는 말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물론…… 아버지의 선에서 절대 처리할 수 없는 불법적인 영역의 일임은 확실했다. 강령술이라는 것은 국가를 떠나 전 세계적인 규정으로 금지된 행위이므로. 하지만 커버해 줄 수 없다고 말하더라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불안해하는 것 이외에는.
“아버지가 커버하지 못할 것도 있나요? 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아버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현재 유학이나 잘 준비해 주세요.”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게냐?”
“그럼요.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요.”
“……너 설마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냐?”
“뭐가요? 정신 못 차렸다는 건 무슨 뜻인데요? 제가 유현재랑 뭐, 연애라도 하는 거요?”
“유찬희!”
“어차피 안 될 거 아시잖아요? 아버지가 유현재한테 한 짓을 생각해보세요. 그걸 알고 나면 유현재가 제 털끝이라도 보려 하겠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걔랑 그렇게 깊게 갈 생각도 없구요.”
“나는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잖느냐.”
“그런 말이 뭔데요. 어차피 전 여차하면 죽는 몸이고, 제가 죽든 죽지 않든 아버지가 그 애한테 한 짓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텐데요.”
“유찬희.”
“왜요? 직접 해놓으시고는 자식이 그걸 아니까 두려우세요?”
“넌 왜 그게 그때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최선이요? 그게 최선이라구요? 최선이면 왜 저는 유현재를 볼 때마다 죽고 싶은 거죠?”
“지금 많이 흥분한 것 같구나. 일단 진정해라.”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고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아무튼 제 말 이해하셨으면 현재 유학은 무조건 잘 챙겨 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나는 아버지의 뒷말을 듣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성큼성큼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걸어가려다 말고 발을 멈췄다. 그곳에는, 목석처럼 굳은 채 나를 바라보는 유현재가 서 있었다.
“너…….”
“…….”
“들었어?”
“무슨 뜻이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유현재가 계속해서 뭔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 아직도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그게,”
“변명 말고 확답을 해 줘.”
“…….”
“있냐고.”
“있어.”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거짓말할 수 없었다. 그게 나와 유현재 사이에 마지막 남은 룰이었다.
“뭔데. 그게.”
“뭔지는…… 유학 다녀오면 말해 줄게.”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길래.”
“…….”
“아저씨까지 협박할 수 있을 정도야? 그렇게 큰 문제를 나한테 계속해서 숨겨온 거야?”
“숨긴 게 아냐 현재야, 나는…….”
“그만하자.”
“유현재.”
“핑계는 나중에 들을게. 비밀을 털어놓는 게 아니면 그냥 무의미할 것 같아서 그래.”
유현재가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유현재가 그 끔찍한 진실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속도로, 누구보다 빠르게.
내가 꾸는 꿈과 시간이 날 때마다 드는 망상, 혹은 상상. 계산. 그 모든 것엔 ‘유현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이 전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꿈과 망상, 상상, 계산은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흘러갔다. 꿈을 꾸면 악몽이 되었으며, 망상을 하면 눈물이 났으며 계산을 하면 늘 마이너스가 끝없이 이어졌다.
너 참 이기적이네.
한재민이 보냈던 한 줄의 문자는 이제 모두의 목소리로 읽혔다. 유현재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한재민의 목소리, 그리고 꿈에서 나오는 유도현의 목소리.
“알고 있어.”
나는 그렇게 읊조리곤 천천히 빈 계단을 올라섰다. 이젠 정말 유현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
답답한 시간이 지속되었다. 예컨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서로를 피하는 우리라던가. 유현재가 자퇴서를 내고 온 날, 학교는 한바탕 뒤집어졌다.
“너 유학 간다고?”
“응.”
“어디로? 아니 왜 진작 말을 안했어? 진짜 개 섭섭하다.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친구냐고.”
“미안. 너무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까. 영국으로 가.”
“유찬희 너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면서 그러는 거 아니다 진짜.”
“……본인이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그랬어.”
“출국이 언젠데?”
“다다음주 수요일.”
“뭐라고?”
고한결이 입을 쩍 벌리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의 입에서 갖가지 욕설들이 튀어나왔다. 주로 배신감, 어이없음, 황당함 이런 류의 것이었다. 유현재는 난처한 얼굴로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 틈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둘러싸인 유현재의 모습은 어쩐지 굉장히 신선한 장면이었던지라 나는 조심스러움도 잊고 흥미로운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근데 왜 찬희 너는 안 가고 현재만 가?”
“왜, 나도 갔으면 좋겠나 보네?”
“그런 뜻이겠냐?”
얼버무리긴 했지만 고한결을 다소 미심쩍은 듯해보였다. 전교생 중에 나와 유현재의 이 기이한 관계를 모르는 이는 아마 단 한 명도 없을 것이었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사고했을 때 좋은 기회의 유학이라면 당연히 유현재가 아닌 내가 선순위가 되는 게 맞았다. 유학에 담긴 의도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괜히 우스갯소리로 유현재를 유배 보내는 게 아니냐고 떠들어댔다.
“세상에 이렇게 호화스러운 유배가 어딨겠어.”
유현재는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능청맞게 대답했다.
“말이 그렇단 거지. 애들 수군거리는 거 다 듣고 있지 마.”
고한결이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쑤셔대며 대충 둘러댔다. 같이 맞장구 쳐 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마디 거들었다.
“봤잖아, 나 특관 수업에서도 낙오된 거. 가서 내 할 일도 제대로 못해.”
되레 더 곤란한 대사를 쳐버린 나 때문에 고한결은 완전히 망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현재가 무감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희 또 싸웠냐?”
고한결이 지겹다는 듯 말했다.
“싸웠냐고?”
“그래. 니들 시도 때도 없이 드럽게 째려보다가 갑자기 사이좋아지면 끌어안고 온갖 염병부르스는 다 추잖아. 또 싸웠냐고. 언제 화해할 건데? 시간 정확하게 말해 주면 난 그때 다시 올게.”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나는 휙 가버린 고한결을 쳐다보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잔뜩 오버한 고한결 때문에 분위기는 아까보단 조금 더 풀려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지 않는 한 유현재의 화는 풀리지 않을 터였다.
“얘기 좀 하자.”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유현재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를 피해 우리는 복도 가장 끝 계단 앞에 서서 이야기를 했다.
“떠날 때까지 이럴 거야?”
“뭐가?”
“너 지금 나한테 냉랭한 거.”
“네가 솔직하면 나도 솔직해. 서로 숨기는 것 없이.”
“그것 말고는 답이 없는 거야?”
“어. 그 외의 것들은 전부 핑계 같아.”
핑계가 맞았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만 약속해 줘.”
“뭔데?”
“유학은 그대로 가.”
“……듣게 되면 내가 유학도 가지 않을 문제인 거야?”
“내가 아는 너는 그럴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장담하긴 어려워.”
“우리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거, 최대한 가지고 가.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많이.”
“이미 그러고 있잖아.”
“아냐, 아니.”
나는 올라오는 울컥함을 참고 차분히 대답했다.
“저번에 갑자기 집 나가려고 한 게 이거랑 연관이 있어?”
처음 아버지가 유현재의 부모님을 죽이라 사주했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던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응.”
“그때 내가 말했지.”
유현재가 내 손을 잡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결정하면 따라 줄 수는 있는 문제냐고.”
“응.”
“그리고 나는 너한테 가지 말라고 말했어. 넌 그냥 따라 준 거고.”
“그거랑은 달라, 현재야. 그땐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잖아. 알고 나서는 분명히 다를 거야. 내가 말하는 것조차 너무 뻔뻔스럽고 미친놈 같을 정도로.”
“찬희야.”
격양되어 가는 나의 말투와는 다르게 유현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갑고 무거워져 갔다. 나는 찬희, 라고 나를 부르는 그 두 글자의 무게조차 견딜 수가 없어 몸부림을 쳤다. 방어적인 내 행실이 이 상황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사실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해결 방안을 찾으면 되는 게 맞을지도 모르는데도. 오로지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유현재에게.
“그건 내가 결정할게.”
유현재의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언제 고인 건지 모를 눈물이 볼을 타고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