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78화 (78/115)

78.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교무실에서 교사들이 쏟아져 달려 나왔다. 무너진 과학실 입구를 보고 교사 몇 명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교사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 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많이 다쳤어? 정신은 멀쩡하고?”

“네, 전 괜찮은데, 얘가…….”

유현재는 제법 큰 타격을 입은 모양인지 찌푸린 얼굴을 펼 생각을 못했다. 나는 정신없이 말을 내뱉었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가, 시계 소리 같은 게, 갑자기 커지더니……. 내 말을 듣던 몇 명의 교사가 나를 진정시키며 몸을 일으켰다.

“걸을 수 있겠니?”

“네. 전 걸을 수 있어요, 근데 현재가…….”

유현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는 정도인 듯했다.

“도대체 이게 왜…….”

“누가 이런 데에 이걸 설치한 건지…….”

나는 어느새 멀리 나가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단 한 통도 오지 않는 문자. 하지만 명백히 이것은 한재민의 소행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버지는 완전한 방패막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공식이었다.

*

“이제 좀 진정이 됐니?”

보안과 담임이 우리를 향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나와 유현재는 나란히 누워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경찰이 밖에 와 있는데 간단한 질문을 할 거래, 가능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재에 비해 비교적 경미한 부상을 입은 내가 주로 경찰의 질문에 대답했다. 할 수 있는 말은 한정적이었다. 땡땡이를 치러 둘이서 과학실에 갔는데, 누군가 밖에서 문을 잠갔고. 전등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기계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폭발했다. 땡땡이를 쳤다, 라는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근데 왜 하필 제조과학실이죠? 두 층이나 아래에 있잖아요? 다른 동에 간다거나, 더 가까운 음악실 같은 곳도 있었을 텐데요.”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냥이에요.”

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냥.”

유현재가 나를 쳐다보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지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별다른 추가 질문이 있지는 않았지만, 경찰은 나와 유현재가 그렇게 썩 믿음직한 증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시 평소에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있으신가요?”

“저희 아빠가 전투국 보안국장이세요.”

“아.”

경찰의 표정에 낭패가 서렸다. 이러한 어른의 반응은 자주 보던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평온하게 그 허둥거림을 받아주었다.

“아이고, 몰랐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당연히 모를 만하시죠. 아버지 위치가 그러시다 보니 저도 사실 자주 이런 일을 겪곤 했어서요. 특정인이 딱히 떠오르진 않아요.”

“좋은 증언 감사합니다.”

경찰은 메모장에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는 나와 유현재에게 살짝 목례를 했다. 한바탕 인사가 지나가고 나서야 나와 유현재는 병실에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 아마 이것 또한 아버지의 영향일 터였다.

“찬희야, 괜찮아?”

“너나 걱정해.”

“진짜 위험할 뻔했어.”

“난 조금밖에 안 다쳤어.”

유현재가 온몸을 칭칭 동여맨 붕대를 내려다보며 멋쩍게 웃었다.

“한재민이겠지.”

말할 것도 없이 한재민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사실 추측하지 않아도 뻔했다. 경고다. 일종의 경고. 이 사고로 내가 생명에 지장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연락을 받으라는, 누군가는 좋은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용건도 한재민은 오로지 폭력으로 드러냈다.

“찬희야, 그렇다고 너 이상한 생각하진 마.”

“뭐? 내가 한재민 찾아가는 거?”

유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일부러 크게 웃었다.

“내가 바보야? 지금 가면 그냥 죽은 목숨인데.”

“죽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어.”

“죽는 것보다 위험한 게 어딨냐?”

“넌 죽는 거 안 무서워하잖아.”

날카로운 놈. 지나치듯 했던 말도 모두 기억한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그래도 죽는 게 제일 무섭지.”

“그래. 그러니까 한재민한테 절대 가지 마.”

“……알겠어.”

“너 진짜 말 꼭 들어.”

“알겠다구.”

“……가더라도 나 데리고 가든가.”

“갈 거 알고 하는 말 같다?”

“그냥 여태 네가 한 행동들을 통계 내려 본 값이야.”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다시 뉘었다. 아버지가 들이닥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버지의 뒤에는 김구현, 그리고 전정우가 대동해 있었다. 아주 왼팔, 오른팔 다 데리고 왔군. 나는 무표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며 오셨어요, 따위의 태평한 말을 내뱉었다.

“미친놈의 자식. 학교까지 건드리다니.”

“한재민이 뭐, 학생이라고 학교는 안 건드리고 그럴 인물인가요?”

“분명 제대로 경호를 붙였을 텐데.”

“경호요?”

아버지는 나를 흘끗 쳐다보곤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아버지 쪽에서도 학교에 누군가를 붙인 건가?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쪽저쪽에서 아주 제대로 감시받는 삶이네. 나는 이제 스파이를 색출해내는 이 작업마저 지겨워져 더 이상 아버지에게 캐묻지 않았다.

“그 녀석과 연락했어?”

“아뇨. 전혀요.”

아버지는 간단명료한 내 대답을 듣고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려 했다. 나는 나가려는 세 사람을 불러 세웠다.

“아버지, 현재가 저 구해 줬어요.”

아버지는 그대로 멈춰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래서?”

“목숨을 바쳐서 아들을 구해 준 사람인데,”

“…….”

“부모님으로서 고맙다는 말씀도 안 하시는 게 좀 이상해서요.”

전정우가 먼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싸늘한 얼굴이었지만 당황스러운 낯빛은 감출 수 없는 듯했다.

“그래.”

장시간의 정적 후에 아버지가 입을 뗐다.

“고맙다, 현재야.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아버지의 말에 유현재가 도리어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유학 건은 더 세심하게 챙겨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찬희 너는 퇴원하는 대로 국마연으로 가라. 차 준비시켜 놓을 테니.”

아버지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작게 욕설이 들려오는 듯했지만 나는 모른 척 산뜻한 표정으로 유현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네.”

“그러게, 참…… 신기하네.”

“그래도 우리 아버지 용서하지 마.”

“어?”

“용서하지 말라고. 평생.”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유현재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윽고 의사가 찾아와 간단한 진료를 볼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확실히 정신적으로 불안하면, 마나도 어지러워집니다.”

전정우가 여전히 차트에 눈을 고정시킨 채로 말을 이어 갔다.

“불안하신가요?”

“아뇨.”

“생체 반응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그걸로 확인해 보죠.”

“생체 반응으로 알아보실 거였으면 왜 물어본 거예요?”

“그야 그게 인간적이니까요.”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얼굴로 인간적임을 말하는 전정우는 말 그대로 흡사 안드로이드 같았다. 미래에 안드로이드가 나온다면 분명 저런 외모로, 저런 행동을 할 것 같은.

“여전하네요, 섞이지 않는 건.”

“비눗물을 들이 붓는데도요?”

“모든 말은 이론적일 뿐 응용은 다르니까요.”

“박사님은 좋으시겠어요. 저 같은 좋은 실험군이 공짜로 굴러 들어왔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운이 좋았죠.”

“한성병원에 가지 않고 여기로 와서요?”

“한성병원은 아무래도 기업 조직의 일부이기 때문에, 국가 자산으로서 일하는 이곳과는 연구 목적도, 치료 목적도 달랐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나는 얌전히 혈관을 찔러오는 바늘을 받아들였다. 링거 때문에 드는 멍이 아물기도 전에 뚫리고, 다시 또 뚫렸다. 어떤 날은 붉은색 액체를, 어떤 날은 투명한 액체를, 또 어떤 날엔 노란색 액체를 팔뚝에 주입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액체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첫 연구 때처럼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도 있었고, 다음 날 갑자기 피를 쏟을 때도 있었으며, 혹은 링거를 맞다 구토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 같이 누워 있던 친구가 유현재 군인가요?”

“네. 이름까지 아시네요.”

“그럼요. 국장님께서도 자주 말씀하셨고.”

“아버지가요?”

“네. 업무 용도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유현재가 도대체 왜 업무 용도로 언급되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각별한 사이 같아 보이던데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으니까요.”

“제가 알기론 함께 살게 된 동기가 그다지 각별하진 않던데.”

“무슨 의도로 물어보시는 거예요?”

전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간에 알려진 이슈에 대한 궁금증일 뿐입니다.”

“우리 형이 걔 때문에 죽었단 거요?”

“그렇죠.”

전정우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치 일상을 말하듯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그거 다 뻥이에요.”

“예?”

“뻥이라고요. 형이 죽은 건 저 때문이에요.”

“……처음 듣는 정보네요.”

“당연하죠. 현재가 저희 집에 살고 유학까지 가는 이유가 뭐겠어요?”

전정우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차트를 접고 링거액의 떨어지는 속도를 확인했다.

“역시 세상의 모든 호의는 대가를 동반하는 게 맞는 모양입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실천하실 것 같은 분인데.”

“전 생각보다 인간적입니다.”

“그래요? 그게 더 놀랍네요.”

“인간적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겁니다.”

“가령 제가 살지 못하면 박사님에게 저희 아버지가 어떻게 할지, 라든가 말이죠.”

전정우가 살짝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는 모르죠.”

“삽니다.”

“와, 진짜 확신하시네.”

“당연하죠. 실패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엇인지 몰라도 아주 두둑한 대가를 받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웬만한 공직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정우 역시 그쪽으로 야망이 있는 거겠지. 나는 흥미가 떨어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

“저는 한숨 잘게요. 좀 피곤하네요.”

“주사가 끝나는 대로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버릇없는 축객령에도 전정우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가 주었다. 나는 링거액이 떨어지는 내내 복잡한 생각에 잠겨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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