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75화 (75/115)

75.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유현재 방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 안 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야, 학교 가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다소 초췌하고 부은 듯한 유현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교 갈 준비는 진작에 마쳐 놓은 건지 이미 가방까지 얌전히 매고 있었다.

“갈까?”

유현재의 목소리는 다소 많이 잠겨 있었다. 분명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몰골이었음에도 나는 무슨 일이냐는 형식적인 물음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 그건 가식일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떤 답변을 하던 내가 생각하는 두려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찬희야.”

하지만 유현재는 나와는 명백히 다른 사람이었다. 집 밖을 나오자마자 유현재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내가 어제 아저씨한테, 어떤 말을 들었는데.”

“……응.”

“아무래도 너한테 확실하게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제법 똑 부러지는 대사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한없이 떨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

유현재는 다음 말을 꺼내는 데에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조용히 유현재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소리, 두런두런 대화 소리만이 백색 소음처럼 주변을 유영했다.

“……죽어?”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유현재를 올려다보니,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 감정에 동화되는 것을 느끼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랬어.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랬고…….”

“찬희야.”

나는 횡설수설 내뱉던 변명을 삼켰다. 유현재가 다시,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건…… 그러니까, 네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냐는 사실이야.”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재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펴지길 반복했다.

“왜.”

“…….”

“왜 말 안했어? 이게 네가 숨긴 거야?”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큰 일부이긴 했다.

“무서워서 그랬어.”

“뭐?”

“너한테 말하고 네가 힘들어하는 게 무서워서…….”

“그게…… 네 이유야?”

“어, 나는 정말…….”

“그래.”

유현재는 천천히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학교에 도착하고 수업을 듣는 내내 우리는 그에 대한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유현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내내 초조했다. 그의 입에서 끝내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올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유현재가 그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나 또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우리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벌써 자리를 잡은 각 반 학생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반장이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와 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다.

“니들 1등 해야 해.”

“뭐야, 새삼스럽게.”

“9반 새끼들이 우리 존나 도발하고 갔단 말이야.”

“도발?”

“이주현이 유찬희 너는 꼭 이기겠다고 말하고 다녔다잖아.”

“나를?”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반장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1급 놈들 속을 모르겠다느니, 이미 잘난 놈들끼리 왜 그렇게 경쟁의식이 강하냐느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말들이었다.

“너 이주현한테 지고 싶냐?”

“글쎄…….”

“글쎄? 글쎄에에에?”

반장이 내 손과 유현재의 손을 잡아채더니 억지로 잡게 시켰다.

“너네 저기로 가서 순서 될 때까지 연습만 해.”

“아니, 좀 쉬다가 해야지.”

“쉬어? 쉬어? 죽으면 존나 오래 쉬어. 지금은 빡세게 해.”

‘죽으면’ 이라는 말에 유현재의 손이 살짝 떨렸다. 나는 상황을 빨리 피하기 위해 일부러 오버스러운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알겠어, 이래놓고 니들은 망치면 진짜 죽는다.”

“니들 빼고 존나 무슨 소림사처럼 수련했어. 니네 걱정이나 해.”

우리는 결국 체육관 뒤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서로의 발목을 끈으로 동여매는 일은 언제 해도 무언가 우스웠다.

“좀 더 기대.”

몸을 일으키자 유현재가 불현듯 내게 말했다. 나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어? 하고 반문했다.

“몸 더 기대라고.”

“어, 응.”

조용한 연습이 지속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텐션이 오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자꾸만 유현재의 행동을 의식하다 보니 발이 꼬이는 일이 잦아졌다. 유현재는 몇 번 나를 붙잡아 주며 조심하라는 경고를 했다. 발은 더더욱 꼬여 갔다. 결국 유현재가 내 어깨를 꽉 붙들고 끌고 가듯 걷기 시작했다.

“아니, 나도 걸을 수 있어.”

“그냥 이게 낫잖아. 같이 맞출 필요도 없고.”

나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같이 맞출 필요가 없는, 일방적인 관계 정립의 스타트는 내가 끊었다. 그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재야.”

“왜.”

“너는 내가 죽는 게 무서워?”

유현재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다, 황당하단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너는 진짜…….”

“나는 내가 죽는 것 보다 네가 날 떠나는 게 더 무서워.”

“…….”

“죽으면…… 죽어도 나는 너랑 떨어지지 않아. 그런데 네가 가버리면 그건 정말 떨어져 버리는 거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나보다 네가 더 중요한 거라고.”

“네가 죽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널 떠나기라도 한단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찬희야, 나 더 화나려고 해.”

“이왕 죽을 거면 끝까지 네가 행복해 보이는 게 낫잖아. 힘들어하는 것보다.”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유현재가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죽게 되면 지금의 유현재는 떠나고 새로운 유현재가 다시 내게 다가오겠지. 그 유현재가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는 온전히 내게 달렸다. 나는 더 이상 그 지리멸렬한 행위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오랜만에 주변을 감싸는 배경이 빠르게 회색조로 변했다. 시스템의 출현이었다.

나는 여전히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유현재를 여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붉은색 빛이 사방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

“내가 모르는 건 딱 하나야.”

“무슨…….”

“너.”

“그러니까,”

끽끽대는 마찰음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머리를 옥죄어오듯 짓눌리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살짝 감싸 쥐었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

“괜찮아?”

“응.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자마자 통증은 수그러들었다. 시스템의 경고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네가 힘들어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단 게 너무…… 화가 났어.”

“그랬구나.”

“무능력자에서 랭커로 각성했을 때, 분명 나는 내 세계가 모두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나에 대한 유현재의 이야기는 전 생애를 통틀어 처음 듣는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유현재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그땐 이상한 사명감이 있었어. 내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그럴 만했다. 원래의 유현재는 그러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므로.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모호한 감정은 사라지고 딱 하나 또렷한 것만 생각나더라.”

그게 뭔데? 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유현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영원히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야. 내 목표는 어느 순간 단 하나로 정해졌는데.”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유현재. 잔인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정이 아닌 진실이기도 했다.

“아저씨가 나를 불러서 네 얘기를 하는데.”

“…….”

“내가 있으면 너한테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대.”

“……아버지가?”

“어. 처음엔 아니라고 생각했어. 분명히 도움이 될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오늘 아침 너랑 대화하는데 알겠더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

유현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영국 다녀오면, 그러면. 나도 여기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가기로 했어?”

유현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으면? 그러다 내가 죽어버리면?”

“나는…… 네가 죽을 때까지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게 더 싫어.”

“왜 네가 아무것도 못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찬희야.”

다소 흥분한 나를 유현재가 차분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유현재는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내 어깨에 자신의 양손을 올렸다.

“네가 아까 말했잖아. 죽어도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

“그 말 믿을게.”

“무슨 근거로 그걸 믿어, 네가. 무슨 이유가 있다고.”

“네가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나를 증오하던 유찬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거.”

“…….”

“어떤 비논리적 이유인지 몰라도 너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유찬희가 아니었다는 거.”

“……그건…….”

“근거가 빈약한 내 감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다 했는데 정답은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어.”

나는 차마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스템은, 내가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딱히 주의를 주지는 않는 듯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현재야.”

“근데 그게 맞다면 너는 이 껍데기를 쓰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게 네가 한 말의 뜻 아니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추측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말이긴 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유현재는 ‘소설 속 인물’로서의 사고를 벗어나 유찬희가 어느 시간을 기점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까지 추리했다.

“내가 정말 강해질게.”

유현재가 반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현재는 정말로 그럴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져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유일한 전제. 유현재는 강해질 것이다. 그 계기는, 모순적이게도 소설과 똑같이 유찬희의 죽음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몸에 힘이 탁 풀렸다. 대체 뭘 원하는 걸까,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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