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나는 또 꿈 안에서 눈을 떴다. 꿈인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왜? 나는 내가 느끼는 행복감의 근원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꿈일지라도 왜 행복한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나’의 감정의 줄기를 따라갔다. 역시 꿈답게 답은 쉽게 나왔다. 어느새 내 옆에 누워 있던 유현재의 존재 덕분이었다. 우리는 언젠가 내가 꿨던 꿈처럼 성인의 모습을 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고요하고 따뜻한 아침이었다. 나는 유현재를 굳이 깨우지 않고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섰다. 집은 그때 꿈에 나왔던 것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거실로 걸어간 나는 꼼꼼히 쳐져 있던 커튼을 조심스레 걷었다. 날은 화창하고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자연스레 나를 안아왔다.
-혼자 일어나서 뭐 하고 있었어?
나는 가슴께에 놓여 있는 유현재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냥 행복을 느끼는 중이었지.
-일상을 즐기는 중이었단 거네.
-그런 건가?
나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행복이 일상인 이 세계는 분명히 꿈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유현재는 나를 여전히 품에 안은 채 뒤뚱거리며 욕실 쪽으로 걸어가 칫솔을 들었다. 거울에는 까치집 머리를 한 우리가 퉁퉁 부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현재 넌….
-응?
-부어도 잘생겼네.
-뭐야. 아침부터 낯간지럽게.
-뭐래. 짜증 난다는 뜻인데.
그래? 유현재가 귀엽게 웃으며 내 입에 칫솔을 물려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양치를 하며 잔뜩 웅얼거리는 대화를 나눴다. 오늘 무엇을 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마 오늘은 우리 둘 다 쉬는 휴일인 모양이었다.
-공원에서 운동 좀 할까?
입을 헹군 유현재가 내게 제안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휴일까지 몸을 써야겠어?
-운동은 그냥 하는 거지 뭐.
-아니. 난 그냥 일하면서 몸 움직이는 걸로 충분해.
-유찬희 게으름뱅이.
-그래, 나 게으르다.
그러니까 운동은 패스. 유현재는 더 이상 태클을 걸지 않았다. 우리는 몇 번의 상의 후에 그냥 집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전히 잠옷 차림으로 각자 식빵을 하나씩 입에 물고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영화는 평범한 로맨스 장르였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길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말없이 오랫동안 서 있었다. 별다른 대사는 없었지만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었다. 유현재가 내 어깨로 몸을 기대 왔다.
-재미없다.
-재미없다고?
-응. 너랑 얘기하고 노는 게 훨씬 재밌을 것 같은데.
-맨날 얼굴 맞대고 살면서 뭔 얘기를 하고 놀아.
유현재가 갑작스레 내 앞으로 다가와 입술을 꾹 누르고 떨어졌다.
-이렇게 놀자는 거지.
-황당하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나는 유현재의 입술에 자연스럽게 내 입을 맞췄다. 잠시 닿아 있던 입술은 곧 벌어져 질척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손이 자연스럽게 유현재의 목을 둘렀다. 유현재 또한 내 등을 감싸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다. 상체가 맞닿은 상태로 점점 몸이 뒤로 기울었다. 소파에 누운 자세가 되자 키스는 더더욱 본격적으로 변했다. 옷 안으로 손이 들어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여기서 하게?
-새삼스럽게 질문하네. 부엌에서 하는 것보다는…….
유현재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손을 들어 입술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
유현재가 웃으며 내 얼굴을 아프지 않게 꽉 잡았다.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이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아, 너무 짧다. 그냥 이대로 여기에 살고 싶다. 나는 유현재의 옷자락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 보내지 마.
유현재의 표정이 묘해졌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 놓지 마.
유현재가 내 팔을 꽉 잡았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당연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었으니까. 나는 무슨 생각으로 내뱉는지도 모르는 채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안해. 다 숨긴 거. 말 안 한 거. 뻔뻔하게 나 사랑해 달라고 한 거.
-뭐가 미안해.
-미안해, 현재야.
나 용서하지 마.
-그래도 용서해 줘. 옆에 있게 해 줘.
생각과 말은 다르게 나갔다. 유현재가 눈을 깜빡이다 느리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입모양으로 내용을 해석하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꿈에 머무를 수 없었다. 눈을 떠야 했다. 다시 익숙한 약품 냄새가 나는 차가운 방 안으로.
“타이밍 좋게 깼군요.”
전정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눈을 뜨고 나서야 유현재가 마지막에 한 말을 해석할 수 있었다.
“기다릴게…….”
“네?”
“기다린다고 했어요.”
“꿈이라도 꾸신 건가요?”
“……네.”
“슬픈 꿈이었나 보네요.”
전정우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티슈곽에서 휴지를 몇 장 뽑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 들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슬픈 꿈 아니라 진짜 행복한 꿈이었는데.”
“행복에서 벗어나야 할 때 사람은 종종 슬프곤 하죠.”
나는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을 휴지로 거칠게 닦아냈다. 팩에 담겨 있던 액체는 이미 몸 안에 모두 들어가 사라진 상태였다.
“꿈까지 꿀 정도로 깊이 잠드신 거면,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나 보네요.”
전정우는 열심히 차트를 휘갈기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나는 여전히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좋은 시작이네요.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계속해서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까딱이곤 문을 가리켰다. 이제 가도 좋다는 제스처였다. 나는 바늘을 꽂았던 부위를 소독 솜으로 대충 문지른 후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복도를 빠져나가던 와중에 가방에서 진동이 계속해서 울리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내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받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새것과 다름없는 핸드폰. 발신인과 수신인은 단 하나뿐인 그 핸드폰. 나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와, 이제 받네.
“…자고 있었어.”
-침대 되게 좋은가 보네. 아무래도 정부 지원 팍팍 받는 연구소라 그런가.
나는 걸음을 멈췄다. 한재민은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찬희가 국마연에 갈 이유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거든?
그래. 핸드폰에 위치 추적 어플 같은 게 안 깔려 있는 게 이상하겠지. 나는 말없이 한재민의 뒷말을 기다렸다.
-너도 숙주가 되기엔 그다지 좋은 몸이 아니구나?
“그건.”
-능력도 모자란데 심지어 허락도 없이 내가 준 힘을 국가한테 등신같이 퍼 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어.”
-어쩔 수 없는 상황?
한재민이 핸드폰 너머로 코웃음을 쳤다.
-이래서 너 같은 꼬맹이들이 싫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
“……뭘 원하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널 해부해 봐야겠지.
잔인한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는 한재민이 웃었다.
-내일 모시러 갈게. 기다려.
나는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택의 순간이 또다시 찾아왔다. 내가 지킬 것인지, 내가 보호받을 것인지. 나는 좀 지친 상태였다. 아마 꿈이 너무나도 생경하고 또 행복해서였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
내가 당신의 말을 듣는 건 오로지 나를 위해서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세요.
*
“오늘은 차 타고 학교 갈 거야.”
항상 버스를 타고 가던 등굣길이었지만 오늘만은 아버지의 지시를 따르는 게 옳았다. 나는 유현재를 잡아끌고 대문 앞에 서 있는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최대한 평소와 똑같이 행동해라. 분명 학교에서도 널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나는 그 말을 상기하며 교과서를 꺼내 수업을 들었다. 정말 평범한 하루였다. 고한결은 쉼 없이 떠들어댔고 유현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내게 와서 일부러 말을 걸었다. 하교를 할 때쯤이 되어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감정을 유지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흘러갔다.
대문 앞에는 약속한 대로 아버지가 보낸 차가 서 있었다. 분명 여기서 한재민이나 그의 측근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의 차에 올라탔다. 집에 도착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재민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너 참 이기적이네]
답장을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그 뒤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자려고 불까지 끈 상태였지만 어쩐지 다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조용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 나는, 거실 한가운데 목석같이 앉아 있는 유현재를 발견했다. 언뜻 보이는 유현재의 표정은… 착잡함 그 자체였다. 뭘 하고 있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유현재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울고 있는 유현재의 뒷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지쳐 보였다. 왜, 왜 우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원인은 높은 확률로 나일 것이었다. 왜 우는 걸까. 당장 달려가서 물어볼 수 있었음에도 나는.
조용히 뒤돌아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너 참 이기적이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기적이네. 그렇지만 이미 두려움이란 감정을 너무나도 깊이 이해해버린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연약해져 버렸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