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왜, 라는 말을 끝으로 방 안은 한참 정적만 맴돌았다.
“한 대표와 어울릴 때 말리지 않은 이유는 네게 이익이 될 거라 생각해서였다.”
“이익이요?”
나는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이익. 아버지는 오로지 손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았다. 엄마가 느꼈던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감정과는 양극단에 있는 인간.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남자가 엄마와 결혼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버지가 오로지 손해뿐인 그 감정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 본 적이 있을 지 의문스러웠다.
“어떤 관계는 맺는 것만으로도 정치성을 띠지.”
“그럼 저와 한재민이 교류하는 걸 가만히 둔 이유는 아버지의 정치성 때문인가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버지가 가장 잘 알 텐데 왜 제게 여쭤 보세요.”
“한재민이 이루려고 하는 것.”
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거다. 내겐 그럴 만한 정치성이 없기 때문이지.”
“의외네요. 아버지라면 없던 정치도 직접 만들 줄 알았는데요.”
“네가 나를 그렇게 봤기 때문에 여태껏 모든 걸 숨긴 거겠지.”
“아, 아뇨. 그건 착각이에요. 전 그냥 아버지와 비밀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거든요.”
이번엔 아버지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허공에서 마주친 눈빛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찬희야.”
나는 그 이상한 기분을 피하려 결국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 엄마에게서 느낀, 메슥거리는 감정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네가 엮이게 된다면 나 또한 달라진다.”
“…….”
“네 비밀을 온전하게 공유해 달라는 게 아니야. 그저 너의 안전을,”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끊고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저는 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는데요. 아니, 저는 아버지가 싫어요.”
“그게 네가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야?”
“네. 제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그렇군.”
아버지는 수 초간 아무 말도 없었다.
“전 박사가 아까 말하더구나. 너는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그런가요?”
“무섭지 않니?”
“모르겠네요.”
죽음이라는 것이 무섭고 두렵기엔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마모된 상태였다. 나의 태연한 표정을 보고 아버지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나는…… 무섭다.”
“네?”
의외의 대답에 반사적으로 의문형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버지가 내뱉은 ‘무섭다’라는 말이 정말이지 이질적이고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네 엄마는 이 사실을 알면 정신이 온전치 못할 거다.”
“…….”
“내가 왜 무섭겠니?”
이에 대한 질문엔 보통 아주 보편적인 대답이 통용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나의 부모님이란 존재에게서 이 보편적인 대답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유찬희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 터였다. 아버지의 기준으로서 효용성 없는 행동들을 종종 내게 베풀곤 했으니까. 분명히 자식으로서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부모들의 부피와는 현저히 다를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네 형을 잃고 우리는 많은 것이 무너졌단다.”
“……왜 제게 감정을 호소하는 거예요? 아버지야말로 그러지 않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분명 그랬지. 네 형을 잃기 전까진 그랬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버지의 과거를 안 순간부터, 나는 가족이라는 형식적인 틀에 갇힌 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저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살인자.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분명히 처음부터 내가 유찬희였던 것은 아니므로, 나는 그들을 무 자르듯 그렇게 분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너도 잃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구나.”
“…….”
“더 이상 한성과 교류하지 말거라. 전 박사가 해결 방안을 빠르게 찾겠다고 했으니 그들에게 협조하고.”
“아버지는 제가 어떻게 마나를 증폭시켰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방법이 궁금하겠니?”
“네?”
“방법이 궁금했다면 진작에 스스로에게 실험해 봤겠지. 내가 지금 궁금한 것은 너의 생사와 안위다.”
“그치만.”
“절대 교류하지 말거라. 내 선에서 모든 처리가 가능하니 연락도 하지 마.”
한재민이 과연 아버지 선에서 처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두 사람을 각각 양팔 저울의 끝에 놓고 무게를 재 보았다. 한재민이 등에 업고 있는 것은 수없이 많았다. 각종 정재계 인사들과 잠재적인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의 능력과 정보. 수십 명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내게 강령술을 요구했던 성정. 그에 반해 아버지의 약점은 너무 컸다. 아버지는 방금 내게 가족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건 한재민에게 너무나도 당연히 인질이 될 텐데. 과연 아버지가 한재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장담은 못 하겠어요.”
이런 말을 내뱉는 나 자신조차 제법 모순적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모두 싫어하면서도, 역시 나를 이용하려는 한재민보다는 지키려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었다. 역시 이 또한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
“아버지가 한재민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거든요.”
“오로지 그 이유 때문이냐?”
“다른 이유가 있더라도 결론적으로 중요한 건 그 사실 아닌가요?”
“그래. 알겠다.”
아버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숨을 토해내듯 대답했다.
“제발 노력해다오.”
“…….”
“장담할 수 없더라도.”
“…….”
“네 형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다오.”
“……네.”
불가항력적인 대답이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침에 들끓어 오르던 그 자극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의 고통이었다. 비논리. 비이성. 나는 왜 항상 그것에 목을 매달고 질질 끌려다니는 걸까. 그들은 내 진짜 부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층에 올라가니 거실에는 당연하게 유현재가 앉아 있었다. 유현재는 조금 지친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려가 유현재를 끌어안았다.
“힘들다.”
“……힘들어?”
“어. 코피 좀 났다고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코피 좀 난 거야, 고작?”
“……응.”
나는 유현재가 나를 마주 안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유현재의 목소리는 늘상 그랬듯 다정했지만, 그 다정한 말 사이사이에 조금씩 벽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현재를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습관처럼 내뱉던 거짓말이 이제야 싹을 틔우고 덩굴처럼 몸을 감싸왔다.
“찬희야.”
“응.”
“나는 그냥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응.”
“왜 너는 매일 조금씩 사라지지.”
“현재야.”
“또 기다리면 돼?”
“…….”
“그냥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너 이게 얼마나 고문인지 모르지.”
유현재의 목소리가 반 톤 정도 올라갔다. 나는 유현재의 품에서 빠져나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매일 기다리고. 그런데 언제 올지 몰라서 걱정하고. 오면, 네가 어떻게 힘든지 아픈지 괴로운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안아 주기만 해야 돼.”
“……미안해.”
“내가 듣고 싶은 답이 그게 아닌 거 알잖아.”
“…….”
“대체 넌 뭐야? 유찬희가 맞아?”
“어?”
“그냥 유찬희의 껍질만 쓴 다른 사람인 거 아니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유현재는 여전히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무 웃길 것 같아. 내일 당장 유찬희의 껍질을 쓴 다른 사람이 와서 거짓말이라도 모든 걸 말해 준다고 하면.”
“…….”
“그럼 그걸 믿을 것 같아. 아닌 걸 알아도.”
하루 동안 휘몰아친 감정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내겐 항상 그 정리 방식이 유현재라는 존재였다. 비논리적, 비논리의 최종점에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유현재는 어쩌면 나의 이기적인 손익 계산 아래 설계된 가장 이기적이고 논리적인 관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게도,
“미안해.”
라는 말뿐이었다. 유현재는 잠시 올라오는 감정을 삼키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뜨고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제야 유현재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책자 몇 개와 프린트된 종이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영어로 되어 있어 해석이 필요하긴 했지만 내용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유현재는 내가 오기 전까지도 고민했던 것이다. 나를 떠날 것인지 떠나지 않을 것인지. 그리고 나는 유현재의 그 손을 놔버린 셈이었다.
*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관계를 유지했다. 똑같은 대화, 똑같은 등하교, 똑같은 웃음. 빠진 것은 단 하나, 살과 살이 맞닿는 스킨십뿐이었다. 고한결이 우리에게 다가와 여상한 표정으로 연습은 많이 했냐는 질문을 할 때까지, 나는 현실과 한 꺼풀 단절된 어떤 공간을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연습?”
고한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뭐 코피 좀 나더니 기억이라도 잃었냐? 내일 체육 대회잖아.”
“아.”
아. 라고 말하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대회라는 우스운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가 문득 부유하던 몸이 바닥에 닿았음을 느꼈다. 아직은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내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