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납득하려 애썼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유를 알아야 했다. 유도현이 왜 ‘나’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만약 이유가 있다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사실 아까 유현재와의 대화와는 다르게 유도현은 유찬희와 제법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삶에서 차수현이 나를 보며 유도현을 떠올리던 것이 생각났다.
“진짜 개등신 같다…….”
왜 유추해내지 못했을까. 왜 생각해 보지도 않은 걸까. 그야,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늘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몇 번의 생애를 날렸다. 왼쪽 팔로 얼굴을 덮자, 어둡던 시야가 더욱더 까매졌다. 차라리 이대로 평생 아무것도 없는 검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니.
사실은 아니라는 게 웃겼다. 정말 유현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인 걸까? 도대체 나와 유현재가 유도현에게 저지른 짓이 무엇이기에. 그의 삶에 어떻게 개입했기에.
*
우습게도 우리는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등교했다. 어제까지 피범벅이 되어 서로를 향해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모습은 잊어버렸다는 듯 말이다. 나는 가방을 메고 교복 매무새를 다듬은 뒤 방을 나섰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등교를 대문 바깥까지 배웅해 주었다.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냥 기사님 차 타고 가지. 왜 맨날 버스 타고 가는 거니?”
“눈에 띄는 거 진짜 너무 싫어요.”
엄마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조차 지겨워져 유현재를 이끌고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학교 학생들로 가득 찬 버스에 잔뜩 붙어 선 채 살짝씩 손을 잡고 놓는 건 나름대로 재밌는 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 멀리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한결이었다.
“우리 뒤졌다. 진짜.”
“왜?”
“그저께 땡땡이 친 거 담임이 알았음.”
아, 그래. 그랬었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유현재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땡땡이 쳤었지. 새삼스럽게 그때를 기억하며 내가 아, 소리를 냈다.
“아는 뭐가 아야. 우리 죽었다니까.”
“큰일 났다. 그치.”
유현재가 내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고한결이 어처구니없어 죽겠다는 듯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너네 미쳤냐? 벌점 까여서 집에 전화가 가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건 좀 그렇다. 차라리 맞고 말래.”
“요즘 선생들 안 때려. 애초에 니들 같은 1급 때렸다가 뭔 일 당할 줄 알고.”
심각한 고한결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 웃자, 고한결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우리를 미친놈들 취급했다. 교실에 들어서고 조례가 시작되자마자 담임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알아서 나와.”
우리는 머쓱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갔다.
“유찬희. 너는 알 만큼 아는 놈이 왜 이놈들 땡땡이에 따라 껴? 유현재. 너도 마찬가지야. 어른스러운 놈인 줄 알았더니 똑같아.”
“선생님, 왜 저한텐 어른스럽다고 안 하세요?”
고한결이 그 와중에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딱 봐도 각 나와. 네가 얘네 꼬셨지?”
“그, 아니.”
“맞구만, 뭘.”
“전 그냥 슬쩍 물어본 거예요.”
“슬쩍? 얼씨구. 퍽이나 슬쩍 물어보셨겠다.”
“진짜에요. 야, 니들도 얘기 좀 해봐.”
“어……. 한결이가 가자고 한 건 맞지만 엄청나게 조른 건 아니긴 해요.”
“어쨌든 가자고 한 거네?”
“아! 선생님!”
“너네 각각 벌점 3점이야. 고한결 너는 4점.”
고한결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 선생님을 향해 발을 동동 굴렸다. 아니 똑같이 땡땡이쳤는데 왜 난 4점이야. 1점만 더 깎이면 집에 전화 가잖아. 나와 유현재는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킥킥거렸다.
*
“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결국 전화는 안 갔잖아.”
“아니 1년 동안 1점도 안 깎일 자신이 없다니까?”
“그래, 한결아.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니고. 고작 벌점이잖아.”
“고작? 고오오작? 너는 지금 그 비유가 맞다고 생각하냐?”
“아니, 맞는데 왜. 야, 그냥 그렇게 생각해. 아, 죽는 것보단 이게 낫지. 그럼 좀 사람이 긍정적이게 되고, 어?”
“유찬희 너까지 왜 이러냐? 평소엔 존나 쓸데없이 냉정하더니 갑자기 존나 감성적이고 지랄.”
“나 개 감성적인데? 나 슬픈 노래 들으면 눈물 흘리고 막 그러는데?”
“놀리냐?”
고한결이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나와 유현재가 크게 웃었다. 니들 다 꺼져 진짜. 고한결이 진짜 삐친 듯 먼저 걸어갔다.
“야! 매점 가자며!”
“꺼져, 니들끼리 가.”
“한결이 진짜 삐쳤나 본데?”
“냅둬. 알아서 풀리겠지.”
나는 유현재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아직 점심시간 30분이나 남았잖아. 거기 가자.”
유현재가 못 이기는 척 내 팔에 끌려 질질 따라왔다. 벚꽃나무 길까지 걸어가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밀 통로를 통과하자마자 그저께 봤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새삼스럽지만 그대로네.”
“고작 이틀밖에 안 지났어.”
“고작 이틀?”
“2년 같은 이틀이긴 했지만.”
우리는 나란히 누웠다. 잠깐 하늘을 바라보다 내가 벌떡 일어나 아빠다리를 했다. 나는 내 허벅지를 탕탕 두드리며 유현재에게 말했다.
“벌레 물린다. 내 무릎에 누워.”
유현재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시 허벅지를 두드리며 재촉하자, 슬금슬금 다가와 가리킨 곳에 얼굴을 뉘었다. 나는 유현재의 머리에 붙은 풀 조각들을 떼어 주었다.
“너.”
유현재가 햇빛 때문에 살짝 눈을 찌푸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잘생겼냐?”
“어?”
“솔직히 너도 느끼지. 거울 보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유현재가 웃으며 화제를 넘기려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캐물었다.
“너 같은 얼굴로 살면 무슨 느낌이야?”
“너도 잘생겼는데…….”
“못생긴 거 아닌 건 아는데, 솔직히 네가 더 잘생겼잖아.”
“아냐, 찬희야. 진짜 내 눈엔 네가 제일 이뻐.”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대답해 봐. 어떤 느낌이냐고.”
“글쎄…….”
“너 길 가다가 번호 몇 번 따여 봤어? 솔직히 말해 봐.”
“넌 왜 그런 걸 묻고 그러냐…….”
“와, 이거 봐. 따이긴 따였단 거네?”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돼.”
“너 길거리 캐스팅 뭐 이런 것도 받아 봤지. 그치.”
연신 쏟아지는 내 질문 폭격에 유현재가 민망한 듯 내 상체 쪽으로 얼굴을 묻었다. 나는 유현재의 몸을 흔들며 계속해서 대답을 재촉했다. 끝까지 대답을 듣지 못하니 조금 오기가 생겼다.
“왜 말 못해? 너 켕기는 거 있어?”
“켕기는 거라니. 찬희야, 나 진짜 아무것도 없어.”
유현재가 다시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며 허겁지겁 변명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도리어 더 심술이 났다.
“그럼 왜 말 못해?”
“그야, 민망하니까…….”
“짜증 나.”
내가 툭 내뱉자 유현재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혹시 질투 나?”
나는 참, 내. 하며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질투? 내가 질투?”
“어, 어어, 아닐 것 같았어. 화내지 마.”
“질투?”
“괜한 걸 물어봤네. 아니야, 찬희야.”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치 자문자답하듯 다시 자연스럽게 뒷말을 이었다.
“질투 맞나 봐.”
“어?”
“질투하네, 나.”
유현재는 쿨하다 못해 찬 기운까지 올라오는 내 말에 오히려 자신이 더 당황한 듯했다. 나는 그런 유현재의 양 볼을 짓누르며 일부러 심술궂게 말했다.
“너, 나보다 더 귀엽거나 잘생기거나 이쁜 애가 번호 물어보면 줄 거냐?”
“아니. 절대 아니.”
“그럼, 길에서 연예인 해볼 생각 없냐면서 번호 달라 하면 줄 거야?”
“아니!”
“그럼 나랑 헤어져도 새 사람 안 만날 거야?”
유현재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반대로 내 볼을 양손으로 잡고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말 하지 마.”
“어?”
“하지 마. 진짜, 그런 말. 생각만 해도 싫어.”
“어어…….”
어영부영 대답하자 유현재가 다가와 입술에 힘을 주고 꾸욱 내 입에 도장을 찍듯 눌렀다.
“절대 안 헤어져.”
다시 뽀뽀.
“절대로.”
다시 뽀뽀.
“대답 왜 안 해?”
나는 그제야 유현재의 어깨를 잡고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 안 해, 진짜 안 해.
“진짜지?”
“응.”
“너도 약속해.”
“뭘?”
“나 말고 더 좋은 애 생겨도 절대 보지 마.”
“너 말구 좋은 애가 어딨어.”
“분명 있을 거란 말이야.”
“없어.”
“아무튼! 나보다 잘생겼거나 뭐 예쁘거나 능력 좋거나 그래도 걔네 쳐다보지도 말라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재가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헝클이고 다시 이마에 뽀뽀를 했다. 그 촉감이 나쁘지 않아, 아니 굉장히 좋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영원할 거야.”
유현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유현재의 이 단호한 말이 현실이 되길 바랐다. 디스토피아 한가운데서 꾸는 달콤한 꿈처럼, 아주 어두운 세상이었기에 내게 유현재란 존재는 더욱더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