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수 분 정도 지나자 게이트는 확장을 멈추었다. 막 마나에 집중하려는 찰나, 갑자기 시스템창이 내 눈앞에 떴다.
<고급 기술 ‘강령술’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실패 확률: 0.01%, 실패시 리스크: 사망>
마나 수련 퍼센트도 모두 시스템으로 기록되는데 스킬 사용도 뜨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 기술 ‘강령술’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최초로 이 기술을 사용하였으며, 성공할 경우 유일무이한 강령술의 마스터가 됩니다.>
유일무이하다는 건 이 세계에 아무도 강령술을 마스터한 사람이 없다는 걸까? 글쎄. 솔직히 말해서 믿기진 않았다. 얼마나 넓은 세상인데, 이거 하나쯤은 마스터한 사람이 있었겠지. 금지된 기술이라 모두에게 잊힌 것일지라도.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강풍기 두 대를 맞서 세워놓은 것처럼 어느 한 지점에서 바람이 부딪혀 흩어졌다. 시든 풀과 낙엽들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흩날렸다. 나와 한재민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게이트를 지켜보았다.
“찬희야, 네 형 왜 이렇게 꾸물대니.”
한재민이 장난스레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마나에 집중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집중하지 않았어도 대답하지 않을 실없는 질문이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이 스킬이 성공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재민도 그걸 느낀 건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저기로 가.”
한재민이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어느 순간부터 게이트가 마나를 흡수하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마 나를 완전히 ‘구슬’로 인식하는 듯했다. 이제는 내가 아닌 게이트가 힘을 쓸 차례였다. 나는 여전히 몸에 힘을 풀지 않은 채 게이트 안을 쳐다보았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빛? 빛이 나오던가? 나는 책 내용을 복기하며 계속해서 그 빛을 바라보았다. 빛 속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점처럼 보였다.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실루엣은 점점 가까워져 사람의 형태를 띠었다. 나는 온몸에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채 훔쳐낼 생각도 못한 채 계속 그 곳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드디어.
유도현을 만난다. 나는 유도현의 원래 얼굴을 기억하려 했다. 집 안 가족 액자에도 걸려 있고, 아버지의 집무실에도 있던, 인터넷에 이름 세 글자만 쳐도 바로 뜨는 그 유도현의 얼굴을.
“뭐야.”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왜? 기억 속 가족사진에서 유도현의 얼굴만 블러 처리를 한 것처럼 희미했다. 아버지의 집무실에 있는 사진 또한 그 부분만 문지른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생각해 보니, 그때 쓰러진 것도 유도현의 사진을 보고서였던 것 같다.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한재민이 보면 알아보겠지. 나는 내가 유도현의 얼굴을 왜 기억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구심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 중요했다. 드디어 사람의 형체를 갖춘 실루엣이 천천히 게이트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유도현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를 보자마자 내 몸은 숨이 멎을 듯 떨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말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뒷걸음질 치자 한재민이 내 등을 떠밀었다.
“물어볼 게 있잖아.”
“아니, 아니야…….”
“무슨 소리야. 다 불러 놓고. 이제 와서 뭐가 아닌데?”
“실패야. 저건…… 유도현이 아니잖아.”
한재민이 황당하단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스킬 쓰다 정신 나갔니?”
“아니야, 진짜 아니야. 저건…….”
“유도현 맞다고!”
한재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과부하가 온 머리를 붙잡고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쭈그려 앉은 나를 한재민이 계속해서 재촉했다.
“빨리 질문해!”
“저게 유도현이 맞다고?”
“그래. 넌 네 형 얼굴도 모르냐?”
“그럴 리가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얼굴인데 왜 네가 몰라.”
한재민의 말에 나는 확인사살을 당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자는 유도현이 아니다. 저 얼굴은…….
“찬희야!”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에 묻혀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유현재의 목소리였다.
“네가 어떻게 알고…….”
“찬희야!”
유현재는 마냥 내 이름만 부르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거센 바람에 항상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유현재의 머리칼이 나부꼈다. 나는 차마 그의 이름도 부르지 못한 채 내 앞까지 다가온 그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찬희야, 괜찮아?”
내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유현재는 아마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듯했다. 유현재가 천천히 내 어깨를 감싸 일으켰다. 나는 유현재에게 몸을 기댄 채 겨우 일어났다.
“현재야.”
내가 겨우 입을 떼 작게 말했다. 유현재는 그 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응, 하고 대답했다.
“저것 좀 봐 줘.”
유현재는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이제야 발견한 듯했다. 유현재가 흠칫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도현이 형…….”
유현재의 입에서마저 그 이름이 나오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유도현’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오로지 나만 바라보았다. 강령술은 죽은 자를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의 사념과 생전의 실체를 섞어 하나의 조악한 물건을 만드는 일입니다. 책에 있는 것을 상기하며 나는 겨우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와 ‘유도현’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바람은 더욱더 거세졌다. 그는 텅 빈 눈으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마치 나의 모든 것을 꿰뚫을 것처럼, 아주 깊게, 길게 쳐다보았다. 준비된 질문을 해야 했음에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찬희!”
한재민이 소리 질렀다.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정신 차려! 똑바로 물으라고!”
나는 유현재의 품에서 천천히 벗어나 그를 마주 보았다. 유현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안 해도 돼, 찬희야.”
그게 뭔 줄 알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걸까. 유현재는 직감적으로 내가 그 말을 하면, 위험해질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 마. 찬희야.”
나는 유현재의 손을 꽉 잡았다 놨다. 유현재가 다시 내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 손을 피해 옆으로 물러섰다.
“찬희야, 제발…….”
“형.”
나는 더 이상 마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 유도현을 불렀다. 유도현은 의외로 자상하게 대답했다.
“응, 찬희야. 많이 컸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형은…… 누가 죽였어?”
한재민이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던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현재가 내 어깨를 다시 붙잡아왔다.
“찬희야, 찬희야. 그걸 왜 물어봐. 찬희야, 나 봐.”
“똑바로 말해 줘. 형은 누가 죽였냐고.”
유도현의 손이 허공을 가로질러 올라가더니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너잖아.”
유도현은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처럼 평화롭게 대답했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거야?”
이쯤 되니 울컥하는 마음에 절로 소리가 커졌다. ‘그’ 유찬희가 진짜 내가 아님을 알면서도, 유현재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확인사살당하는 게 싫어서. 그런 쪼잔한 마음일 수도 있었다.
“그럼 형이 도망갔으면 됐잖아!”
“어린애 둘을 두고?”
“그래! 살고 싶었으면 그냥 도망가지 그랬어! 왜 나 때문에 죽었냐고!”
유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기계처럼 대답했다.
“싫어서.”
“뭐?”
“네 행복이 싫어서.”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유도현은 자연스레 뒷말을 이어 갔다.
“내가 가지지 못할 행복은 너도 가지지 마. 찬희야.”
“뭐……?”
“넌 내 동생이잖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나 대신 유현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도현의 얼굴이 처음으로 내가 아닌 타인에게로 돌아갔다.
“현재구나.”
“형이 불행했다고 왜 찬희도 불행해야 해요?”
“너도 싫어.”
유도현이 다소 유치한 대답으로 유현재의 질문을 받아쳤다.
“너네 둘이 함께 행복해지는 게 싫어.”
나는 더 큰 목소리를 내려는 유현재를 겨우 제지했다.
“사랑하는 게 싫었어.”
“나랑 유현재가?”
내가 묻자 유도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템포 쉰 뒤 다시 질문을 건넸다.
“나랑 유현재가.”
“…….”
“사랑할 거란 걸 형 네가 어떻게 알았는데?”
유도현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게이트에 종속된 사념은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게 되어 있었다.
“왜 몰라. 다 봤는데.”
“뭐라고?”
“다 봤는데. 내가 왜 몰라.”
네가 어떻게 알아, 나와 유현재가 사랑할 거란 걸. 원작 소설에는 있지도 않은, 심지어 이곳이 정해진 소설이라 해도 네가 죽고 몇 년 후에나 있을 그 일을 어떻게 아느냐고. 나는 모든 걸 쏟아붓고 싶었지만 한재민의 외침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게이트 닫히잖아, 미친 새끼야!”
한재민의 말대로 게이트는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무릎까지 보이던 유도현이 이젠 허벅지까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흡수해!”
나는 고민했다. 찜찜함과, 방금 전의 대화가 남긴 그 혐오스러움이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서.
“말하라고! 유찬희! 지금 네가 안 하면 어떻게 될지 알잖아!”
나는 퍼뜩 눈을 치켜떴다. 사실이었다. 내가 한재민과의 딜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그는 어떤 수를 동원해서라도 나와 내 주변을 무너트릴 것이었다.
“형.”
“그래, 찬희야.”
“이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