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순간적으로 당황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 라는 말만 반복했다.
“저 열일곱인데…….”
“나이가 많다고 나오는데?”
“아니에요, 저희 열일곱 맞아요.”
유현재가 옆에서 거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찜찜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기른 손톱 끝이 우아하게 마지막 카드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니?”
“네. 진짠데.”
“근데 카드에는 왜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보통이라면 당연히 타로 같은 건 거짓이니까 그렇겠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겠지만 나는 어쩐지 좀 찝찝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아주머니가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먼저 분위기를 풀었다.
“뭐, 믿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
아주머니는 마지막 카드를 쳐다보고는 가볍게 말했다.
“상실.”
“상실이요?”
“그래. 중요한 걸 상실했어.”
“좀…… 그렇네요.”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유현재 또한 계속해서 이상한 말이 나오니 좋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미래의 상실이 아니라 과거의 상실이니까.”
“과거?”
“과거에 뭔가를 크게 잃은 적이 있나 본데. 잘 생각해 봐. 예컨대 가족이라든가.”
“저희 부모님은 다 살아 계신데…….”
“아니면 역시, 사랑?”
아주머니의 시선이 유현재를 향해 흘끗 돌아갔다.
*
“되게 돌팔이 같다, 그치.”
유현재가 먼저 입을 뗐다. 나는 살짝 생각하는 척하다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확실히 짜 맞추면 맞는 면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누구나 내뱉을 수 있는 말들 같기도 했다.
“나이도 못 맞춰. 무슨 타로가.”
“내가 말했잖아. 그런 거 다 미신이라고.”
뒤가 꿉꿉한 타로점을 모두 보고 밖을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집에 갈까 고민하던 도중 유현재가 갑작스럽게 나를 불러 세웠다.
“찬희야.”
“어?”
“사실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어.”
뭔가 결심한 사람처럼 굳게 말을 내뱉는 유현재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저녁 식사까지 돌아오라는 엄마의 당부가 생각났지만 솔직히 얌전히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딘데?”
“가 보면 알아.”
“아니, 미리 말해 줄 수도 있잖아.”
유현재가 진짜 알고 싶냐는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히 몰아붙이지 않는 이상 알려 주지 않을 심산인 듯했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 유현재가 잡아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도착한 곳은 어느 좁은 골목의 작은 가게 앞이었다.
“뭐야, 이게?”
“보이는 대로야.”
“이걸 만들자고?”
“응. 아, 혹시 좀 그래?”
유현재 은근 이런데 관심이 많구나…….
“아니, 난 뭐 좋지.”
“다행이다.”
유현재가 내 손을 이끌고 가게로 들어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애들 두 명이서 오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야, 근데 좀 낯간지럽다.”
“그거 다 편견이야.”
유현재가 단호하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끌고 카운터 쪽으로 갔다.
“반지 만들러 왔어요?”
나는 조금 민망한 얼굴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쭈뼛거렸다. 유현재는 제법 뻔뻔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네. 저희 둘이 만들 거예요.”
사장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꺄르르 웃었다.
“알겠어요, 얼른 준비할게요.”
사장이 안내한 테이블에 앉아 나는 괜스레 주변만 쳐다보았다.
“신기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하네…….”
내가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유현재가 웃으며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대담한 구석이 많구나. 나는 문득 내가 점점 유현재의 소설과는 다른 모습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기묘하면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
“잃어버리면 어떡해?”
내가 물어보자 유현재가 음, 하고 고민하는 척하더니 명쾌하게 대답했다.
“같이 가서 다시 만들면 되지.”
“와, 난 다신 못 가겠던데. 오글거려서.”
“오글거릴 게 뭐가 있어.”
우리는 반지를 각자의 왼손 약지 손가락에 끼고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지자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기분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뭐라 하진 않겠지?”
“에이. 아줌마가 그걸로 뭐라 하시진 않잖아.”
나는 괜스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대문을 열었다. 다행히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외출이라도 나간 건지, 1층 거실과 부엌은 깜깜했다.
“아줌마 어디 가셨나 본데?”
“그러게. 뭐 약속이라도 생겼나.”
어차피 가족 간에 서로 크게 일정을 공유하는 타입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유현재는 별말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예상과 다르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우리의 인기척이 들리자 내 방에서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왜 거기에…….”
“왔니?”
엄마는 평소 같은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는 뭔가 찝찝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나오기 전에 비해 바뀐 것도 없어 보였다. 뭐라도 훔쳐본 걸까? 강령술에 관한 책들을 미리 한재민에게 돌려준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는 가방을 침대에 던져놓았다. 방에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 몰아세우고 싶진 않아 그만뒀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나는 문득 반지 생각이 나 왼손을 허공으로 들었다.
“신기하네.”
각인이 새겨진 반지는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났다. 크게 튀는 디자인은 아니었음에도 제법 예뻐 보였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멋대로 시간은 돌려대면서, 어떻게 멈출 수는 없는 걸까. 물론 시간이 돌아가는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다.
“시스템.”
나는 나지막하게 시스템을 불렀다. 방 안은 조용하고 잠잠했다.
“나와 봐.”
나는 치근거렸다. 달래는 말투로 해야 나오려나.
“어떻게 시간 좀 멈춰 줘 봐.”
시스템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알려 주거나 통보해야 할 일이 아니면 원래부터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나 좀 행복하게 만들어 주든지.”
더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나는 들고 있던 왼손을 내리고 몸을 웅크렸다. 피곤했다. 그렇게 돌아다녔다고 피곤해지는 꼴이라니. 주마다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단 게 우스웠다.
하지만 이제 일주일 남았으니까. 나는 벽을 바라보며 괜스레 무늬의 개수를 세어댔다. 일주일 남았으니까, 그동안 조금이라도 행복해야지. 이제 남은 행복은 지금 이 순간뿐이니까.
*
일주일은 바보 같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한재민과 만나기 바로 전날 아침, 내게 짤막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한재민: 준비 끝냈어.]
나는 메시지를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동소리가 다시 울렸다.
[한재민: 답장은 안 해도 되는데]
[한재민: 내일 도망치거나 안하겠다고 뻗대면]
[한재민: 그땐 면담 좀 해봐야 할 것 같네]
면담, 이라는 말이 가히 협박성으로 들려왔다. 나는 그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거실 소파에 유현재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다렸어?”
“아니. 나도 이제 막 끝냈어.”
“가자. 지각하겠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