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할 얘기가 있다고?”
“응. 중요한 거야.”
나는 조금 의아하면서도 살짝 불안한 얼굴로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할 얘기란 게 뭐지? 언제부턴가 유현재가 내게 내어줄 시간을 부탁할 때, 기쁘거나 설레는 마음보단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많이 중요한 거야? 나 치킨 먹고 싶은데…….”
유현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살짝 화난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시무룩한 것 같기도, 또 어떻게 보면 섭섭한 것 같기도 한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럼 같이 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슬쩍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아까 전의 표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가는 유현재는, 글쎄. 여태까지 봐온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
한바탕 세수를 하고 팔다리까지 물을 끼얹었지만 찝찝한 몸은 어쩔 수가 없었다. 훈련을 받고 나면 체육관 옆에 딸린 샤워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었는데, 치킨을 먹는다고 앞뒤 없이 달려 나간 탓에 씻을 기회도 놓쳤다. 그대로 수업을 들으면서도 나는 연신 교복을 펄럭였다. 고한결도 마찬가지인지 아예 공책을 부채로 만들어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바빴다.
나는 유현재의 그 ‘중요한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연신 유현재가 있는 쪽을 흘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두어 번 눈이 마주치긴 했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어 더 불안했다.
“저기.”
가방을 싸던 유현재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 조금만 기다려 줘. 나 이것만 넣고.”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유현재가 가방의 지퍼를 닫다 말고 몸을 아예 내 쪽으로 돌렸다.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괜히 몸을 움츠리며 나는 천천히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까 전 점심 때 말인데.”
“아, 그거.”
유현재는 여상한 얼굴로 아, 하며 살짝 입을 벌렸다.
“아무래도 중요한 말인 것 같아서.”
“이제 들어 줄 여유가 생긴 거야?”
나는 잽싸게 변명했다.
“아니, 여유가 아니라 그땐 고한결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고…….”
“그래?”
유현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고한결이 있으면 왜 나랑 따로 얘기할 수 없는데?”
“어? 그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그에 상응하는 정답이 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현재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 듯했다.
“대답을 못하네.”
“아니, 그게 아니고.”
“더 싫어.”
나는 유현재의 입에서 나온 ‘싫어’라는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법 단호하게 ‘싫어’를 발음한 유현재가 내 손목을 잡고 문 밖으로 나를 이끌었다.
“뭐야, 뭔데 대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구석이었다. 유현재가 내 손목을 놓고 입을 앙다물었다.
“찬희 너.”
유현재가 한숨을 내쉬며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을 꺼내기가 힘든 건지, 혹은 꺼내고 싶지 않은 건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유현재의 표정을 계속해서 살폈다.
“내 눈치 그만 봐도 돼, 찬희야.”
“내가 언제 눈치 봤다고 그래.”
“본 거 같은데…….”
“그래서 할 말이 뭐야, 대체?”
유현재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화가 나거나 억울하다기보단 조금은, 슬픈 얼굴이었다.
“우리 대체 어떤 사이야?”
“엥?”
나는 유현재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난 너랑 내가 서로 마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했어.”
새삼스러운 말을 하는 유현재의 얼굴이 제법 결연해 보여, 나는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우물거렸다.
“그렇지……. 근데 갑자기 왜…….”
“그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뭐, 뭘…….”
“너랑 단둘만 있자고 한다거나.”
아, 나는 그제야 점심시간에 내 손을 붙잡은 유현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애들이랑은 스킨십 하지 말라고 한다거나.”
“야! 내가 언제 그랬…….”
“너는 모르겠지만, 찬희야.”
“…….”
“너 진짜 손 많이 타.”
내가 손을 많이 탄다고? 나는 바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한결이 워낙 곰살맞기도 했고 얼마 없는 인맥 중에서도 어깨동무나 머리를 쓰다듬는 일 정도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였으니까.
“그래서 너무 싫어.”
“싫은 건 또 뭐야.”
“질투난다고.”
발끝부터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단도직입적인 유현재의 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원래 이런 애였나? 이렇게 솔직하고 직접적인 사람이었던가? 잘 모르겠다. 언제나 내 기억 속의 유현재는 힘들어하거나, 다소 지쳐 있거나, 늘 나와 눈을 마주치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애라서.
“그니까 내가 산책 가자 하면 가 주고.”
“응.”
“내가 단둘이서 밥 먹자고 하면 그래 주고.”
“응.”
“내가 가지 말라 하면 가지 말아 줘.”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유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또 한재민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내게 모진 말을 할까 두려워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산책하자고 하면 갈 거고, 단둘이 밥 먹자고 하면 그래 줄 거고, 가지 말라 하면 가지 않을 거야.”
“응, 고마워.”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모든 음절에 힘을 줘 대답한 탓에 마지막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일부러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마운 게 아니잖아. 원래 그래야 하는 건데.”
“응, 근데. 그냥 고마워.”
고마워, 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유현재는 이해해 줄까? 아니,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고 나면 유현재와 나는 절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미안해.”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너는 내가 의심스럽지 않아? 너와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내가 반정부군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평생을 괴롭히다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네게 잘해 주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에 잠겨 우울의 바다를 허우적대는 내가.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신기했다. 아마 어쩌면 유현재는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좋아해.”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유현재가 웃으며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유현재의 얼굴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에 내려앉는 부드러운 감촉이 오늘따라 더욱더 달았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그래서 매일 네게 모든 걸 숨기는 내가 날이 갈수록 미워진다고. 그런 생각조차 숨기는 내가, 숨긴 채 너의 사랑을 받으려 이기적으로 구는 내가 싫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주 가늘고 연약한 이 관계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어리석은 선택인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그날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나눈 키스는 조금 씁쓸한 맛이 났다.
*
<고급 기술 ‘강령술의 응용’을 진행 중입니다. 최초의 소환까지 약 99%>
나는 며칠째 99%에서 머물러 있는 퍼센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가 이 숫자를 100으로 올리는 순간 반드시 이 기술은 내 소유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전지전능한 ‘시스템’께서 친히 알려 주시는 힌트이므로. 자신의 능력치를 정확히 퍼센트로 환산하여 측정하기 어려운 일반 랭커들과는 다르게, 시스템은 늘 특별했다.
특별하다는 것. 특이하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99퍼센트에서 멈춰 둔 숙련도의 숫자를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내가 이 기술을 완전히 익히는 것을 늦출 수 있는 것도 이 개 같은 시스템 덕분이니까.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들어 메신저 창을 내렸다. 연락을 나눈 지 꽤 오래되어 한재민의 이름은 대화창 내역의 제법 아래에 있었다. 천천히 그 이름을 누르고 문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심플했다.
[다 됐어.]
그 세 글자를 보내기가 어려워 나는 30분이 넘게 지난 대화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정말, 소설대로 유도현에게 잡혀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신기한 건, 내가 또다시 죽음을 맞이할까, 이 죽음이 진짜 마지막 죽음일까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유현재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떡할까, 라는 생각이 더 머릿속을 지배했다는 데 있었다. 실소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세상은 정말 모순투성이구나. 나는 새삼스러운 생각을 다시 복기했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확인 표시는 늦지 않게 떴다. 나는 핸드폰을 뒤집어 두고 답장을 나중에 확인할까 했지만 그냥 창을 켜놓은 채 기다리기로 했다. 보낸 글만큼 심플한 답장이 왔다.
[한재민: 어때?]
어떻냐고?
[개같아]
한재민이 채팅창을 키읔으로 가득 채웠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영양가 있는 말을 기다렸다.
[한재민: 언제가 좋을까?]
[한재민: 역시 다음 주?]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쳐다보았다. 다음 주에는, 유현재의 생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