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너무 급작스러운 거 아니에요? 저희 이제 입학했잖아요.”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 분위기를 알고 있다. 그 누구도 꺾지 못하는, 늘 우위를 점하며 살아온 권력자의 기묘한 압박, 그리고 숨 막히는 공기. 과연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유현재를 설득했는지, 혹은 협박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막 입학했으니까 오히려 더 잘됐지. 더 늦으면 교육 과정 따라가기도 어려워.”
“아니, 말이 돼요?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가요, 거길.”
“왜 아무것도 없어? 아버지가 후원 다 해 주신다는데.”
어머니가 걱정 말라는 듯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대가 없이, 그것도 유현재를? 유도현의 유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살고 있는 눈엣가시를 후원한다고?
“그럼 저도 갈게요.”
“넌 안 된다.”
아버지가 바로 대답했다.
“왜요? 좋은 기횐데 왜 전 못 가는데요?”
“안 돼.”
“왜 안 되냐고요. 이유를 말해야 납득을 하죠.”
“네가 외국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빨리 잃은 건 네 형 하나로 족하다.”
내가 황당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득이 되는 이유가 아니라는 거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유찬희!”
“왜요. 저도 더 공부해서 뛰어난 랭커가 되고 싶다는데, 왜 반대하시냐고요.”
“애비 말에 일일이 대꾸하는 건 대체 누가 가르친 버릇이냐?”
“누가 가르치다뇨?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고 계시네요.”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했지만 쉽사리 무언가 제스처를 취하진 못했다. 당연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저 사람의 가장 큰 비밀을 알고 있으니까. 동시에 웃겼다. 열일곱 먹은 자식조차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경계한다는 저 작자가 너무나도 우스웠다.
“찬희야, 지금은 너무 감정적이니까 화를 좀 식히고 다시 이야기하자.”
엄마가 유현재에게 눈치를 줬다. 유현재가 천천히 일어나 내 팔을 살며시 잡았다.
“찬희야, 일단 2층으로 가자.”
“유현재.”
잠긴 목소리 때문에 평소보다 낮은 톤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유현재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내 뒷말을 기다렸다.
“나랑 같이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어?”
유현재는 잠시 동안 답이 없었다. 나는 아직 앉아 있었던 터라 나보다 훨씬 위에 있는 유현재를 올려다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나랑 같이 유학 안 가고 싶냐고.”
유현재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언제 봐도 깊고 처연한 눈동자였다. 끝이 살짝 내려가 붓으로 그린 것처럼 길게 빠진 눈꼬리는 그 오묘한 눈동자를 더욱더 신비롭게 만들어 주었다. 유현재가 천천히 입술을 떼고 말했다.
“나도 너랑 함께 학교생활 하고 싶어.”
내가 입꼬리를 올려 살짝 미소 지었다.
“그치만 찬희야.”
유현재는 바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 전에 네가 안전했으면 하는 것도 내 마음이야.”
“너까지 왜 이래?”
“아까 전에 아저씨가 말씀 다 해 주셨어.”
“뭘.”
나는 엄습하는 불안함에 눈을 찌푸렸다.
“네가 한성 그룹의 반정부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아. 나는 한숨을 내쉬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언젠가 유현재의 귀에도 들어가겠구나 짐작은 했었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유현재의 손에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갔다.
“…유현재.”
“응.”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 자세하게.”
“네가 아는 게 내가 아는 걸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이전, 아니 가짜 유찬희가 가졌던 그 악랄한 목적까지 들었는지를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에 유현재가 그걸 알았다면.
그래서,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이제서야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싫어?”
“네가?”
“응.”
“아니.”
유현재는 무덤덤했다. 지나치리만큼 무감해서 오히려 더 감정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다, 라는 마음.
“아저씨께서는 네가 그 단체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라셔.”
“아버지 말은 믿지 마.”
“네가 믿지 말라면 안 믿어, 다만.”
유현재가 한 번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나도 똑같은 생각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거야.”
“거기는 내가 알아서 정리가 가능해. 생각보다 그렇게 깊게 연이 닿은 것도 아니고.”
“이미 그쪽 임원이랑도 연락을 하는 사이라며.”
“그건…….”
내가 말을 흐리자 유현재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나는 커다란 손의 온기를 그대로 받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만 무사하면 돼.”
그건 아닌데. 나는, 나는 괜찮지 않아도 너만 무사하게 하기 위해 살고 있는데. 그러려고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건데. 왜 왜 너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걸까.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한참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유현재를 유학 보내려는 이유는 뻔했다. 아마 내가 아버지에 대한 ‘약점’을 알아낸 통로가 한재민이고, 알고 있지만 묵인해 주던 크러시와의 소통이 탐탁찮아졌을 것이다. ‘유찬희’가 크러시에 입성한 이유는 오로지 유현재를 누르기 위한 것뿐이니, 차라리 그 대상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이번 10번째 회귀는, 내가 읽었던 소설 속 상황 그대로의 17세 유찬희로 시작했다. 이전 아홉 번의 삶으로 만들어낸 ‘내’ 상황이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 세계의 유찬희.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뭔가 달라질까? 수백 번을 생각하고 또 실망했던 그 가설이 다시 머릿속을 스멀스멀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하지만. 그러나.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구들이 다시 긍정적인 문장들을 덮어 눌러왔다. 무언가가 개입했거나 뒤틀렸기에 나올 수 있는 이상한 현상들이 이번 삶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나를 저주하던 유현재는 과거를 잊었고, 게이트 안에서 아버지의 비밀을 보게 되었으며,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 나와 유현재를 ‘일상’으로 진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현상은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세계는 왜 갑자기 내게 너그러워진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엎치락뒤치락 싸워대는 두 관점을 계속해서 상기하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세계의 모든 것이 나와 유현재를 돕더라도 결국엔 내가, 내 가족이 그에게 저지른 원죄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전에 누리는 행복은 모두 거짓된 가짜라는 것을.
*
불편하지만 행복한 일상은 계속되었다. 이후 가족 중 그 누구도 유현재의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리지 않았다. 유현재는 여전히 나와 함께 등교했으며 고한결과 함께 밥을 먹고 가끔 이주현을 끼워 피시방이나 노래방 같은 곳도 갔다. 정말이지 평범한 고등학생의 생활, 그 자체였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추후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 될 인재들이다.”
캡 모자를 눌러쓴 특관 담임이 외워둔 대사를 읊듯 말했다. 막 체력 단련 훈련을 끝낸 터라 체육관은 온통 열기와 습기로 가득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가슴만 들썩였다. 어린 시절부터 체술을 남몰래 습득해왔던 유현재만이 끔찍한 체력 단련 일정을 모두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국가의 자산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너희는 다르다.”
특관 담임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는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
모두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할 텐데 담임은 끊임없이 말을 했다.
“국가를 보호하지 않는 랭커는 뭐가 될까. 고한결. 대답해 봐.”
“네?”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고 있던 고한결이 대뜸 들어온 질문에 놀라 눈을 키웠다.
“그, 글쎄요……. 아무래도 법적으로 벌을 받지 않을까요… 아무튼 국가에서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니까.”
고한결의 자신 없는 대답에 담임이 혀를 찼다. 고한결이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궁시렁댔다.
“비슷한 맥락이야. 반역죄가 적용되니까.”
“아…….”
“다만 그건 전쟁이나 게이트 출몰 같은 전투 내에서의 행동으로 주로 판단이 되고, 평소 국가를 보호하지 않는 무능한 랭커는 그저.”
“…….”
“세금 도둑.”
세금 도둑이란 말에 몇몇 녀석들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네 이름 세 글자가 박힌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은 죄다 악플로 도배되는 거야.”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까지 그런 것들에 대한 실감이 없기도 했고, 엄중하게 말했던 시작치고는 결말이 허무했기 때문이었다.
“뭐 모든 랭커가 그런 건 아니지만, 랭커가 되면 공인이 되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몇몇 녀석들이 웃음기를 지우고 눈을 반짝였다. 사실, 세계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이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었다. 그런 걸 걱정하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실제로 국내에서는 게이트나 전투 관련해서 근 십여 년간 큰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사화될 텐데, 그때도 고작 체력 단련 몇 십 분으로 헉헉대는 모습을 보일 거냐?”
그러니까 결론은 아직까지 니들은 엄청나게 나약하다는 거잖아. 나는 잔뜩 눈치를 주는 담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좀비처럼 일어난 아이들이 똑같은 루틴을 다시 반복하라는 담임의 지시를 듣고 야유했다. 두 배로 늘리기 전에 얼른 해. 고한결은 나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담임 지는 한 루틴도 못할 것 같은 몸맨데.”
“야, 들리겠다.”
나는 괜스레 담임 쪽을 쳐다보며 고한결을 다그쳤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찬희야.”
그때 바로 뒤에서 유현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줄 똑바로 서서 가야 돼.”
“어? 어어…….”
유현재가 내 팔뚝을 잡고 고한결 옆에 있던 내 몸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곧 다시 지옥 같은 체력 단련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단련하다 죽은 사람도 있어요? 없어 인마. 훈련이 계속되자 쓰잘데기 없는 대화조차 사라졌다.
겨우 훈련이 끝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고한결이 헉헉대며 내게 말했다.
“이거 급식으론 절대 안 돼. 나가서 치킨 먹고 오자.”
나도 오늘 식단이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려 했는데 옆에서 유현재가 끼어들었다. 유현재는 우리와 다르게 땀도 그다지 흘리지 않은 깨끗한 모습이었다.
“찬희 나랑 할 얘기가 있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