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벌게진 얼굴과 눈으로 자리에 돌아오니 두 사람은 제법 당황한 눈치였다.
“체했나 봐요.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이제 막 메인 요리가 나오던 참이었다.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상을 보고도 나는 아무런 식욕이 들지 않았다. 고급스러운 음식 냄새가 모두 쓰레기같이 느껴졌다. 할 수 있다면 그저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병원이라도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일단 병원이라도 가 보거라.”
“아니에요. 그냥 이따가 집에 가서 쉬면 될 것 같아요.”
김구현이 아쉽다는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무언가 목적한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소개해드리고 싶은 헌터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찬희 군의 컨디션 때문에 안 되겠네요.”
“……마음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나는 물잔에 담긴 물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찬 기운이 끔찍하리만치 소름끼쳤다. 당장이라도 손을 쑤셔 넣어 이 답답한 무언가를 꺼내 버리고 싶었다.
“아버지.”
마치 내 의지가 아닌 것처럼 말이 토해져 나왔다. 아버지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순전한 충동으로 만들어진 단어가 입 밖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불러낼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김구현이 느릿하게 하던 수저질을 멈추었다.
“형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겠죠?”
“…갑자기 무슨 말이냐.”
“정말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있을까요?”
“갑자기 네 형 얘기는 왜…….”
“두려워서요.”
“대체 무슨.”
“형이 살아 있지 않은 것을 감사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 때문에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왜 그러셨어요?”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구나. 지금 많이 아파서 그런 거냐?”
“왜 그러셨냐고요.”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부러 모호하게 내뱉고 있는 말들 사이로 나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애써 눌러 참았다.
“네가 또 무슨 말을 듣고 와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에는 대개 거짓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이 자리라는 게 그런 거고.”
“아버지의 자리가 뭔데요?”
“찬희 군, 일단…….”
“아버지가 어떤 자리에 앉아 권력을 누리고 있든 간에.”
목소리 끝이 잘게 떨려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제겐 더 이상 그게 중요하게 보이지 않아요.”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나는 이런 눈빛을 알고 있다. 자신의 약점을 들키기 전에 짓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행동.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의 치부를 건드리려 할 때 과민할 정도로 공격적인 사람의 얼굴. 아버지에겐 자신이 앉은 자리가 곧 그 자신의 역린이자 버튼이 될 것이었다.
“그만.”
나는 대답 대신, 똑같은 눈빛으로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누구냐.”
“뭐가요.”
“너한테 이상한 말을 지껄인 인간이.”
“누구라고 말하면 어쩌게요? 저한테 사람이라도 붙이시게요?”
“유찬희!”
아버지가 순식간에 눈에 핏줄을 세운 채 소리 질렀다.
“한성이냐?”
“뭐라고요?”
“한성 한재민이냐 물었다.”
나는 아버지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름에 놀라 잠깐 주춤했다. 한재민과의 관계를 아버지가 아예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나올 인물은 아니었다.
“제 인간관계도 뒷조사하세요?”
“부모로서 기본적으로 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부모로서?”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부모로서, 라는 말을 내뱉는 그 입이 불구덩이보다도 더 지독한 지옥 같아 보였다. 당신의 욕심으로 그 부모를 잃은 사람이 바로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어떻게 부모라는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있는 걸까. 그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조차 사라진 살인자들이라면 당연히 할 법한 생각인 걸까.
“네가 나에게 이렇게까지 반항할 정도라면 웬만한 소문은 아니겠지.”
아버지는 턱을 살짝 들어 마치 내리까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내용인지 말해 봐.”
“싫습니다.”
“싫다고?”
“네. 싫어요.”
“내게 말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로 네 애비에 대해 단정 짓는 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냐?”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가 정말로 무결하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으시냐고요.”
“무결?”
아버지가 실소했다. 옅게 진 주름 사이로 어두운 기운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결하다는 건 인간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뻔뻔하시네요.”
“다시 되물어 보마.”
“…….”
“너는 무결하느냐?”
“…갑자기 왜,”
“고작 열일곱 살인 너조차 무결하냐는 질문에서 해답을 명쾌히 내릴 수 없으면서, 너의 곱절 이상을 살아온 이 애비에게는 어떻게 무결을 요구하는 거지?”
“그럼 무결하지 않은 건 아버지에게 아무런 흠도 되지 않는 거네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를 똑바로 마주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안광을 형형히 빛낸 채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흠이 나지 않은 인간이란 게 존재한다면 어디 데리고 와 보렴.”
“유치한 대답이네요.”
“흠이 나지 않은 인간의 주변에는 보통.”
“…….”
“흠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큰 폭력과 강압이 가득 차 있지. 그 한 사람을 무결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여전히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인 거고.”
“아.”
나는 웃었다. 한 가지의 감정으로 정의하기엔 어려운 웃음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이런 뜻이었다.
“아버지가 무결하지 못한 건 저 때문이란 거네요.”
“내가 그걸 너에게 탓하더냐?”
“끔찍해요.”
아버지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아까 전 깊게 가라앉은 표정과는 달리, 조금은 가라앉은 듯 요동치는 얼굴이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강압 아래에 강제로 무결했던 제가 끔찍해요.”
“유찬희!”
“당신의 그 비뚤어진 비호가 없었어도 나는 충분히 끔찍했는데.”
“너!”
“이미 충분히 최악이었는데 왜 그러셨냐고요. 형이나 나나 이미 최악이었는데!”
아버지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뺨이라도 한 대 후려맞을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불쾌한 일이었다. 진짜로 아버지가, 그 말도 안 되는 부성애 따위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것만 같아서.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을 바로잡아가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다시 죽을까? 다시 죽는다면, 나는 고작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갈 뿐이다. 운이 좋아 여덟 살 꼬마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내 힘으로 주워 담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하….”
한마디로 내 하찮은 죽음 따위는 유현재에게 나의 가족이 저지른 원죄의 아주 일부도 갚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내 양 어깨에 손을 얹은 아버지가, 숨을 한 번 들이켠 뒤 침착하게 말했다.
“도대체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뭐냐.”
“…말씀드리기 싫다고 했잖아요.”
“찬희야.”
아버지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읊었다.
“말해 다오.”
“말씀드리면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니.”
“달라지지 않아요.”
“단정 짓지 말거라.”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웃기게도 아직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입 밖으로 밝혀내고 추궁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원죄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아직 내 입으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유현재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거라는 허튼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장님, 찬희 군.”
나는 그제야 한쪽에 앉아 있던 김구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주모자와 공모자가 함께 있는 자리였다. 김구현은 당황스럽지만 최대한 침착하고자 하는 얼굴로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재하려는 듯 몸을 일으키는 김구현의 행동에서, 나는 또다시 조소를 흘리고 말았다.
“부장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찬희 군, 도대체 무슨 사실을 알고 이렇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찬희 군의 아버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자, 김구현이 천천히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30여 년을 살아온 제게 기회를 주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해 준 분입니다.”
“…김 부장.”
“찬희 군에게 어떤 큰 충격을 줬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국장님께서는 누군가를 구하기도, 살리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살려요?”
“네.”
“그쪽을?”
“만약 국장님이 아니었다면 전 없는 목숨이었을 수도 있죠.”
“아하.”
나는 피식 웃었다. 아버지의 손이 내 어깨에서 스르륵 내려갔다.
“그래서 부장님이 아버지의 개가 되신 거군요.”
“…유찬희!”
“개로 보였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옆에서 보필하는 것으로 은혜를 갚는 거니 비슷한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전 잘 모르겠어요.”
“무엇을 말입니까.”
나는 김구현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저는 아끼는 개가 있으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것 같은데, 아버지는 아닌 것 같아서요.”
김구현의 표정이 아버지처럼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