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해담이면 우리 아버지랑도 같은 소속이네.”
“아, 우리 아빠랑 너희 아빠는 딱히 만난 적 없을 거야. 직급도 완전히 다르고.”
고한결이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한결의 아버지가 해담 소속 헌터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넌 아버지 때문에 헌터가 되기로 결심한 거야?”
고한결이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래서 실더에서 헌터로 바꾼 건 줄 알았는데.”
“아, 응.”
대외적으로는 그런 거나 다름없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날 학교는 하루 종일 유현재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웃긴 건, 유현재와 가장 가까이 사는 나에겐 아무도 그의 1급 소식에 대해 물으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덕분에 시끄러운 학교 한가운데서도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휩싸인 유현재를 보며 이제야 조금 원작 같아진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급 축하해.”
그래서 그런가. 이주현이 직접 우리 반으로 찾아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땐 다소 떨떠름하기까지 했다. 유현재가 아니라 왜 나한테?
“너도 축하해.”
“사실 가장 의외는 너나 내가 아니지만.”
이주현이 유현재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의외의 인물의 선방에 흥미가 생긴 듯했다.
“같이 훈련이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
이주현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한참을 내 표정을 관찰한 이주현이, 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좋은 거 맞지?”
의미심장한 물음이었다. 아마 나와 유현재의 관계에 대해 아직까지도 의문을 가진 모양이라 생각했다. 대외적으론 그렇게 보이는 편이 훨씬 나았으므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핸드폰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기다렸지만, 기다리지 않은 연락이었다.
[한재민: 우리]
[한재민: 만날 때 되지 않았어?]
나는 말없이 답장을 적어 보냈다. 그래. 그렇지.
*
모든 수업이 끝나고 다들 정신없이 짐을 싸고 있을 때쯤 유현재가 천천히 내게로 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집에 가자, 찬희야.”
나는 오늘도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오늘 좀 피곤했겠더라.”
“조금?”
“인기의 맛을 보니까 어때?”
유현재가 웃음을 터트렸다.
“찬희 네 마음을 잘 알겠던데.”
“그치? 이제 내가 맨날 피곤해한 이유를 알겠지?”
우리는 교실 문을 나와 복도를 걸어 계단 쪽으로 나갔다. 뒤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한결이 내 옆에 합류했다.
“현재 너랑은 오늘 처음으로 말하는 거 같다.”
“그래?”
“축하해.”
고한결의 순수한 축하에 유현재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관 계단을 내려가 교문으로 걸어가니 학생들 무리 사이로 다소 이질적인 고급 외제차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대번에 누가 보낸 차인지 눈치챘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도 이쪽을 발견한 모양인지 문을 열고 내려 천천히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국장님께서 귀가는 차를 타고 오라고 하셔서요.”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고한결을 보내고서, 나는 유현재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는 내내 놀라울 정도로 머리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나올까? 분명 유찬희도 1급을 받긴 받았는데, 눈엣가시 같은 유현재마저 뜬금없이 1급을 받았으니 아버지의 뒤틀린 속은 말도 아닐 거였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 있는 아버지와 마주했다.
“웬일로 이 시간에 계세요?”
아버지는 심기가 불편한 듯 입술을 꽉 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계속해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유찬희.”
아버지가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현재는 방에 올라가 있거라.”
유현재가 미동도 하지 않자 나는 손가락으로 툭툭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들어가.”
유현재가 당황한 얼굴을 하더니, 느릿하게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유현재가 사라지고 나서야 아버지는 다시 입을 뗐다.
“어떻게 된 일이냐?”
“현재가 1급 받은 거 말씀이신가요?”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본인의 미간을 잡고 눌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제 각성한 건지는.”
아버지가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결국 제가 1급 받은 거면 됐잖아요.”
물론 아버지의 유현재에 대한 감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아버지가 유현재에게 가진 분노나 복수심 같은 것은, 누가 봐도 유치하게도 아들뻘 되는 사람에게 가질 법한 정당한 감정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기에 설령 유현재가 진짜 유도현을 죽인 진짜 범인일지라도 유도현의 유언이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이상, 절대 유현재를 쉬이 버리지 못했을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저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뜻밖에도 유현재가 1급을 땄을 뿐, 나 역시 아버지의 뜻대로 1급을 거머쥐어 주었다. 나는 이것이 아버지의 자존심 높은 분노를 잠재울 명분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네 생각은 그렇단 말이구나.”
“…네.”
“알겠다.”
아버지가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 고비는 넘겼다. 이제 또다시 다른 산을 넘어야 했다.
*
“1급 축하해. 찬희야.”
온화한 얼굴로 축하의 말을 내뱉는 한재민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재수 없었다. 나는 옆에 서 있는 차수현을 흘끔 바라보며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너 축하해 주려고 수현이도 불렀어.”
“고맙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한재민이 제 앞에 놓인 차를 천천히 마셨다.
“그래서.”
적막이 흘렀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 메시지는 왜 보낸 건데?”
“메시지?”
한재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 하고는 남의 일 얘기하듯 웃었다.
“내용 그대로잖아.”
“그러니까 왜 남의 생활을 마음대로 훔쳐보냐고.”
“와, 훔쳐본다는 말은 좀 그렇다, 찬희야.”
한재민이 팔뚝을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뭐 너 스토킹 하는 줄 알겠네.”
“스토킹 아니야? 이게 스토킹이 아니면 뭔데?”
내가 화를 억누르며 말하자 한재민이 꼬고 있던 다리를 천천히 풀었다. 얄미울 정도로 태연자약한 모습이었다.
“이것도 뭐 아무도 못 믿어서 저지르는 일이야?”
“기억력 좋네. 찬희.”
“그럼. 네가 분명히 말했지. 거래란 건 서로를 믿고 하는 게 아니라고.”
“그랬지.”
“나도 너 안 믿어. 이따위 스토킹 붙이는 새끼랑 협업하고 싶은 마음 절대 없어.”
“그래? 어떡하지, 그럼?”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네가 그랬잖아? 거래로 인해 나올 결과만을 본다고.”
“그럼 찬희 네가 원하는 결과가 뭔데?”
한재민도 더 이상 듣고 있지만은 않았다.
“분명 처음 나에게 왔을 땐, 유현재를 없애고 싶어서라고 하지 않았나?”
나는 한재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빤히 마주 보았다. 그리고 툭 내뱉었다.
“바뀌었어.”
“뭐?”
“바뀌었다고.”
한재민의 입꼬리가 사정없이 비틀려 올라갔다.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만 올라가는 꼴은 기이할 정도로 인위적으로 보였다.
“그럼 한번 들어 볼까. 새로운 목표를.”
“유도현.”
갑작스럽게 내 입에서 튀어나온 유도현의 이름에 차수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유도현 불러내는 거.”
“그게 최종 목표라고?”
“아니.”
“그럼?”
“그 인간 힘을 내가 가지는 거.”
차수현이 티 나지 않게 눈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런 차수현의 얼굴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럼 어찌 됐든 너랑 내 목표는 아직 동일한 거잖아. 넌 나를 이용해서 유도현을 불러내고 싶어 했으니까.”
“그럼 너는 내가 원하는 걸 가져다줄 수 있는 건가?”
“내가 유도현을 불러내기만 한다면.”
한재민이 아직까지도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다시 차를 들이켰다. 나는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 난 뒤라 숨을 세게 몰아쉬었다.
“그래서 유현재는 이제 네 목표에는 없는 거야?”
내 목표에 없는 거냐고? 나는 실소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어. 이제… 별로 신경 안 써.”
아니. 내 삶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그 애의 인생으로 돌아가는데 어떻게 내 목표에 걔가 없을 수 있겠어. 유현재는 이제 내게 더 이상 어떠한 수단이 아니었다.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한재민이나 차수현은 상상할 수 없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나와 유현재 둘만의 것을 지켜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고작 한재민이라는, 아버지라는 산뿐만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함정 또한 또다시 힘겹게 넘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걸어가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복잡한 표정의 차수현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수현이 형은 나 도와주려고 들어온 거니까.”
“…….”
“뭐든 상관없지?”
차수현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차수현은 달랐다. 차수현은, 유찬희를 이용해 유현재를, 아니 유도현을 죽인 사람을 없애려 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