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2차 선별전은 모든 학생들이 최대한 비슷한 규모의 훈련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중요했다.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3차 선별식이 있다 쳐도, 김구현의 말대로 대개의 랭커들은 아주 큰 실력의 변동이 없는 이상 2차의 등급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전투부 지하구나.”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하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전투부 제1 전투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제1 전투장은 유현재와 내가 모의 전투를 벌였던 곳이었다. 도심 한가운데를 컨셉으로 잡고 있는 훈련장은 곳곳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자동차까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어 척 봐도 엄청나게 공을 들인 장소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훈련장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찬희 너는 여기 와 본 적 있어?”
내 옆에 앉아 있던 고한결이 모니터를 보다 말고 질문했다. 와 본 적이 있을 뿐 아니라, 매번 훈련까지 했다. 아마 여기에 있는 다른 녀석들이 알게 된다면 형평성 문제로 항의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긴. 아무리 아버지가 전투부 간부여도 이건 좀 아니지?”
난감한 상황을 타개해 주려는 듯, 다행히 선생님이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대로 들어가서 전투한다.”
선별전의 내용은 1:1로 훈련용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죽이는 것뿐만이 아닌,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하는지도 면밀히 살펴보았기 때문에 1급을 얻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위험한 일이 생길 경우 반드시 무리하게 진행하지 말고 중단 요청을 해야 해.”
“점수에 지장 생기는데 누가 중단해.”
고한결이 선생님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실제로 높은 등급을 얻기 위해 무리를 하던 학생들이 다치거나, 심하면 죽는 사례는 빈번히 있어 왔다. 애초에 랭커라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었으므로 감안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위험한 테스트로 몰아넣는다며 선별전은 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넌 몇 급이 목푠데?”
고한결이 입술에 힘을 주고 음, 소리를 냈다.
“최소 3급? 그 이하면 나 일반반으로 옮겨야 돼.”
“그래?”
“찬희 너야 뭐 1급은 맡겨 놓은 거나 다름없지 않냐?”
부럽다아. 진심으로 말하는 고한결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시선의 끝에는 자연스럽게 유현재가 걸렸다. 유현재는 이번 선별전에서 1급을 받게 될까? 각성을 하게 되었으니 분명히 1급을 딸 텐데도 괜한 걱정이 들었다. 유현재가 내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살짝 웃어 주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너무 간지러운 웃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어?”
고한결의 물음에 내가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고한결 또한 유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랑 현재는 친한 거야, 안 친한 거야?”
“뭔 소리야, 갑자기.”
“아니. 어쩔 때 보면 무슨 사귀는 사이 같다가도 어쩔 때 보면 아닌 것 같고.”
“고한결!”
훈련장 입구 쪽에서 선생님이 고한결의 이름을 외쳤다. 아, 미친. 고한결이 머리를 헝클이며 몸을 일으켰다. 모니터에는 이제 훈련장의 모습이 보이는 대신, 대기 순번을 알리는 화면만이 떠 있었다.
*
예상대로 선별전 자체는 김구현과 한 모의 훈련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몬스터 또한 똑같은 종류였기에, 너무나도 쉽게 대상의 급소만을 노릴 수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순조로운 과정이었다. 마치 유찬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1급을 받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지시대로 세상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출구로 나가면 된다.”
훈련장에 배치되어 있던 가드 중 한 명이 내게 출구를 안내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 밖을 나섰다. 출구는 바로 바깥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와 이어졌다. 이름 순서대로 시험이 진행되었으니 아마 이 다음은 바로 유현재 차례일 것이었다.
로비에는 바로 귀가하지 않은 아이들 몇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나를 보고 옆에 있는 아이의 팔을 팔꿈치로 툭툭 쳤다.
“유찬희!”
너댓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앞에 우뚝 섰다.
“왜?”
“너 과외 받았다며?”
한 명이 날카롭게 질문했다. 질문이었지만 이미 정답이 확실하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였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과외 받은 게 왜? 너희도 다 한 거잖아.”
“그지. 근데 너, 여기서 받았다며.”
“누가 그래?”
“우리 형이 전투부 소속 공무원인데, 너 봤다고 했어.”
“온 적이야 있지. 아버지 회산데.”
“그래? 그냥 단순히 오기만 한 거야? 진짜로?”
“무슨 대답을 원하는데?”
나는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며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불합리한 과외였으니 이런 말이 나올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알려질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힘을 이용해서 전투부 내에서 과외를 한 게 절대 아무렇지 않다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말이 나올 수 있겠다는 염려도 했고, 더더군다나 유찬희가 혐오하는 아버지의 힘으로 편법을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도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이 삶의 의문을 풀 수 있으니까.
“난 네가 적어도 남들과 동등하게 실력만으로 1급을 따낼 줄 알았어.”
누군가의 말에 나는 자제할 새도 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뭐라고?”
“꼬우면 니네도 과외 받았어야지.”
“야. 너 그게 할 말이냐?”
“왜. 너네도 내 얘기 들은 거 많을 거 아냐.”
녀석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일 게 뻔한 나에 대한 소문은, 굳이 귀로 전해 듣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 법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더 이상 말 걸지 마”
“찬희야.”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재가 성큼성큼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다음 순서였던 것치고도 제법 빠르게 시험을 끝낸 것 같았다.
“무슨 일이야?”
유현재가 분위기의 심각함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내게 상황을 물었다.
“현재 너도 과외 받았니?”
“무슨 소리야.”
“너도 여기서 과외 받았냐고. 찬희처럼.”
유현재가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
“왜 너는 안 받았대? 진짜 소문이 사실인가 봐. 둘이 사이 안 좋은 거.”
유현재가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헛웃음을 지으며 맞은편에 서 있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남의 집안 사정에 더럽게 관심 많네.”
“뭐?”
“어차피 소문 같은 걸로 사람 판단하는 네 수준이나 이쪽이나 뭐가 다른가 싶어서.”
유현재의 말에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은 아이들이 결국 우리를 등지고 로비를 나가버렸다. 나는 괜히 볼을 긁적이며 유현재에게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괴롭힌 건 사실 아냐?”
“그럼 거기서 ‘응, 사이 안 좋아.’ 이럴까?”
“저기.”
나는 유현재를 다시 불렀다. 두 눈동자가 차분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안해.”
“뭐가?”
유현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나는 망설이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야 과거에 있었던 것들.”
“과거?”
“응. 괴롭혔다거나, 뭐 그런 거….”
“솔직히 말하면 진심으로 기억이 잘 안 나.”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걸까? 나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있었던 일은 맞는데.”
유현재가 난감하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마주 보았다.
“그때의 감정을 모두 잊어버린 느낌이야.”
“…….”
“좀 이상하지?”
나는 멍하니 그런 유현재를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기묘한 직감이 머리를 타고 맴돌았다.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이렇게 쉽게 마모되고 변형될 수 있는 것이었나? 나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방문을 열고 싸늘하게 나를 바라보던 유현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한 모습의 유현재만이 남아 내 앞에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기억을 지운 것처럼.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팔뚝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만약, 내가 시스템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처럼 유현재 또한 무언가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나에 대한 기억이 급작스레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라면.
“사실 요즘 매 순간이 꿈같긴 해.”
“…왜?”
“갑자기 마나가 뚫린 것도 그렇고, 뭔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날 돕고 있는 기분이야.”
“그래…?”
나는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현재가 내게서 느끼고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 무언가의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감정은 오롯이 유현재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걸 아무런 부담 없이 받아낼 자격이 있는 사람인 걸까? 아무것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때맞춰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인은, 늘 그랬듯 한재민이었다. 나는 천천히 메신저 창을 켜 한재민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한재민: 찬희]
[한재민: 요즘 현재랑 사이가 많이 좋아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