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나와 눈이 마주친 이주현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숟가락도 내려놓은 채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주현은 고한결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 네가 유찬희?”
나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주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워낙 유명해서. 평소에 많이 들었다.”
“신기하네. 너희 학교에선 내가 진짜 유명했나 봐?”
이주현이 하하 웃었다. 고한결의 말에 따르면 이주현은 중학교에서 유일한 1급이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나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유찬희의 열일곱 이전의 삶 따위를 알 도리가 없는 나로선 어색하게 마주 웃어 주는 일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보기와 다르게 이주현은 내게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했다. 인사만 하고 갈 줄 알았던 이주현이 아예 맞은편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실더에서 헌터로 전향했다며?”
“소문 참 빠르네.”
“네 생각보다 더 빠를걸.”
“유명한 건 우리 형이랑 아버진데 말이야.”
“그것만 유명한 건 아니지.”
이주현이 내 옆에 앉아 있는 유현재를 흘끗 쳐다보았다. 나에 대해서 안다는 건 유현재에 대해 안다는 것도 될 것이었다. 이주현이 한 말은, 단순히 유도현과 아버지의 명성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얽힌 이 유현재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일 터였다. 두 사람의 첫 조우를 눈으로 직접 보니 상당히 복잡미묘했다. 마치 있어선 안 될 곳에 끼어 있는 기분이었다. 원래라면 두 사람은 유현재가 한재민을 죽인 후 헌터 활동을 하면서 만났을 테니, 첫 만남에서는 ‘유찬희’가 없는 상태인 것도 맞았다.
“아무튼,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 듣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
“그래? 그래서 어떤데. 이야기 나눠 보니까.”
“상상했던 대로야. 좀 의외인 것도 있지만.”
“의외?”
“예를 들어 인간관계 같은 거.”
그 말을 하고 또 유현재를 쳐다본 것을 보니 아마 이주현도 나의 명성과 함께 유현재와의 불화를 소문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으나 나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의외가 아닐 걸. 난 너랑 다르게 좀 성격이 더러워서.”
“내 성격이 좋단 건 누가 말해줬는데?”
나는 턱으로 고한결을 가리켰다. 고한결은 멋쩍은 듯 씩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데 잘 지내보자.”
나는 이주현이 내민 손을 망설이다 맞잡아 주었다. 어차피 선별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옮겨 갈 이목이었다. 가짜 천재 유찬희가 아닌, 진짜 주인공 유현재로. 나는 그렇게 되기 전까지만 이런 관심을 감당해 보기로 했다. 실제로 소설의 흐름을 따라 이주현이 유현재와 친해질 수도 있었고.
“선별전 기대할게. 진심으로 네 실력이 궁금해서.”
“너도 열심히 해.”
“말이라도 고맙다.”
이주현이 성격 좋은 웃음을 지으며 멀어졌다. 옆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고한결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벅찬 얼굴로 내게 말했다.
“졸라 멋있다, 너네.”
“…뭐?”
“너도 열심히 해. 완전 여유로워 보였어. 가진 자의 여유.”
나는 황당한 얼굴로 고한결을 쳐다보았다. 옆에 앉아 있던 유현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풋 소리를 낸 뒤 팔로 입을 가렸다. 유현재까지 웃는다니.
“현재 넌 그렇게 생각 안 했어? 나만 그렇게 느낀 거야?”
“아냐, 나도 멋있다고 생각했어.”
“그치? 아니 진짜 구라 안 치고 짱 멋있다니까.”
“응. 찬희 진짜 멋있어.”
갑자기 유찬희 칭찬 타임이 된 식사 자리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지금 겪는 학교생활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 삶에서 평화란 늘 불행의 전조 증상과 같았기 때문에.
*
김구현과의 실전 과외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잘 따라오는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김구현은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했다. 김구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최대한 그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나는 그의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으니까. 나는 최대한 모범적인 학생인 척 단정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이제 마나 운용은 거의 헌터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군요.”
“그런가요?”
“앞으로도 제가 말씀드린 것만 기억하며 운용하시면 됩니다.”
김구현이 말해 보라는 듯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을 줄줄이 읊었다.
“얼마나 민첩하게 대상에 다가가느냐, 얼마나 강하게 상대를 타격하느냐.”
김구현의 표정이 흡족해졌다. 그의 표정이 좋아질수록 내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더러워졌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서 얼마나 허점을 보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1급을 받으려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완벽해야 한다고 하셨죠.”
김구현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제3 훈련장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가 다음에 내뱉을 말을 기다렸다.
“2차 선별전이 어떻게 치러지는지는 알고 계시겠죠.”
“물론이죠.”
2차 선별전은 기계에 가볍게 손만 대면 끝나는 1차와는 아예 방법이 달랐다. 기본적인 마나량으로 등급이 정해졌던 1차와는 다르게, 2차에서는 실전에서 사용해야 하는 전투 실력 또한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졌다. 즉, 타고난 마나량으로 1급을 받은 뛰어난 천재일지라도 운동 신경이 없으면 바로 3~4급으로도 내려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첫 번째 삶에서의 유현재처럼, 흔친 않아도 2차 선별전을 끝낸 상위 등급은 바로 토벌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기에 실전 감각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학생들이 더 높은 등급을 따내기 위해 훈련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저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찬희 군을 상위 4%로 만들어야 하는 거고요.”
“생각보다 의무감이 깊으시네요.”
“국장님께서 부탁하신 일이니까요.”
“너무 지나친 충성심 아니에요?”
“그래 보이나요?”
김구현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무표정한 낯빛이, 어쩐지 조금은 차가워 보였다.
“저희 아버지와 도대체 어떤 관계세요?”
내 질문에 김구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죠.”
내가 뻔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거라 느꼈는지 그는 팔짱을 낀 채 뭔가를 조금 생각하는 척했다.
“물론 이 정도 직급과 연차가 되면 어느 정도 유대감이 더 쌓이긴 합니다.”
“유대감?”
“그럼요. 직장 동료도 결국 인간관계인데, 오래 만날수록 서로를 더 잘 알 수밖에 없죠.”
“제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김구현이 뒤에 올 내 말을 기다렸다.
“저희 아버지가 유대를 느낄 만한 분이신가요?”
“국장님이요?”
“제가 보기에 전혀 아니라서요.”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김구현이 최대한 나를,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가진 사춘기 소년쯤으로 봐주길 바랐다.
“그럼요.”
“…….”
“찬희 군의 아버님은,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분이십니다.”
나는 조소를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
김구현의 그 말로 나는 그가 분명 아버지의 밑에서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고,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가 맹목적으로 아버지를 따르게 된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앞만 보고 걷고 있자, 유현재가 불쑥 질문했다.
“꽃 좋아해?”
나는 멈칫하곤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저냥.”
“좋아했던 것 같은데.”
“네가 좋아한 걸 착각했겠지.”
나는 그 언젠가 꽃을 꺾어 내 방 앞에 매일 놔두던 유현재를 떠올렸다. 가슴 한 켠이 울렁거렸다. 설마 그때의 기억이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 유현재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그런가?”
“갑자기 왜?”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유현재의 반대쪽 손에서 예쁘게 포장된 꽃 한 송이가 튀어나왔다. 나는 눈앞에 놓인 꽃이 너무나도 낯설어 눈을 깜빡였다. 유현재가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선별전 준비 열심히 했잖아. 내일 열심히 하라고.”
“…언제 준비한 거야?”
“그냥. 너 안 볼 때.”
“너 되게 웃긴다.”
“그래? 나 안 웃긴데.”
유현재가 내게 얼른 받으라는 듯 꽃을 흔들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꽃을 받아 들었다. 옅은 노란빛을 띤,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모양의 꽃이었다. 고작 한 송이에서 그렇게 진한 향기가 날 리는 없었는데도 나는 코끝을 꽃송이에 묻고 숨을 들이켰다. 유현재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다치지 마.”
“그건 잘 모르겠네.”
“내 감정이 느끼는 대로 말해 봤어.”
“…….”
“다치지 마, 알겠지?”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지는 해가 더욱 더 붉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