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선별전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찬희 군이 1급을 받을 확률은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구현의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볼 때마다 총을 들고 서 있던 그 모습이 떠올라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글쎄요.”
내 모호한 대답에 김구현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랭커들의 90%가 2차 선별전의 등급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네.”
“열일곱 이상이 되면, 그만큼 능력치를 올리기가 전보다 힘이 든다는 말이죠.”
“…알고 있어요.”
“저는 국장님의 아드님이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지니고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니 김구현의 손이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나는 김구현을 따라 전투부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지하에 있는 훈련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저, 김 부장님.”
불현듯 무언가 생각난 나는 다급하게 김구현을 불렀다.
“괜찮다면 형에게 한 번 갔다가 와도 될까요.”
김구현이 살짝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휴게실 한쪽을 메우고 있는 추모 공간은 전투부 활동으로 인해 사망한 랭커들의 이름을 모두 새겨 두고 있었다. 나는 슬쩍 김구현의 눈치를 보고 전사자들의 리스트를 훑기 시작했다. 일전에 보았던 유도현의 이름이 가운데에 보였다. 아마 그보다도 훨씬 전일 테니, 좀 더 구석에 있는 리스트를 찾으면 될 터였다. 유도현 이전에 죽은 김 씨, 그것도 팀장 직급의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김현민….”
전투국 게이트 관리부 1팀 팀장 김현민. 나는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그 글자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마도 김구현이 총구를 겨눈 그 사람이 맞을 것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김구현을 쳐다보았다. 김구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김 부장님.”
“네.”
“전사자는 빠짐없이 모두 여기에 기록되나요?”
김구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망설이던 나는 질문을 조금 더 돌려서 해 보기로 했다.
“혹시 여기에 김 부장님 동료들도 계시나요?”
김구현이 멈칫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리스트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저 궁금증이 많은 랭커 지망생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없지는 않죠.”
“보통은 몬스터에게 당해 죽는 경우가 가장 많죠?”
“그렇긴 합니다만, 예로부터 항상 국가가 랭커를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은 꼭 있었던지라… 그들의 손에 죽은 사람도 많죠. 예를 들어 도현 군 같은 경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도현이 반정부 단체의 손에 죽은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니 놀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행을 벌인 것이 한재민의 부모님이라는 건 아마 크러쉬 내부 몇 명만 아는 비밀일 것이었다.
“반정부 단체에 대한 관심이 생기셨나요?”
김구현은 단순히 학구적인 관심을 말하는 듯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순진한 척 고개를 저었다.
“그냥 죽은 사람들의 사연이 문득 궁금했을 뿐이에요.”
나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대며 김구현의 관심을 이곳으로 모았다.
“형처럼, 몬스터가 아닌 타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하고요.”
거짓말이다. 나는 그들의 억울함 따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저승에서 증오하고 있을 반정부 단체의 일원이었다. 나 또한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게 얼마나 가증스러운 짓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엔 늘 억울한 사람이 존재하죠.”
“그런 사람이 줄어들 순 없을까요?”
하지만 나만큼이나 김구현도 지레 찔리는 마음이 있어야 할 터였다.
“글쎄요. 세상이 나아지면 좀 더 좋아지지 않겠나요.”
웃기는 소리였다. 세상이 나아지고 억울한 사람이 줄더라도 가해자는 그대로 남아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이 결국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이었으니까.
*
‘김현민’이란 사람은 생각보다도 더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알아낸 것이라곤 12년 전, ‘신의주 게이트 참사’ 사건에서 전사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 그 당시 게이트 토벌에 참여했던 사람은 모두 죽고 단 한 명만이 살아 빠져나왔다고 기사는 말해 주고 있었다. 단 한 명,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당시 신의주 게이트의 등급은 B등급으로, 구성되었던 팀원으로 아주 손쉽게 토벌할 수 있는 난이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운 좋게 살아남아 유일하게 게이트를 빠져나온 K씨는 ‘A등급 게이트보다도 훨씬 더 난이도 있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이후 전투부 내부 개혁이 일어나며 게이트 등급이 조금 더 세분화되기도 했는데요. 출구를 빠져나오지 못하면 영원히 생사를 알 수 없게 되는 게이트의 특성상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지만, 여전히 ‘신의주 게이트 참사’는 우리에게 규격화된 등급으로 난이도를 가늠하고 규정 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선례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나는 오래된 뉴스 영상을 정지시켰다. 모자이크가 되어 있었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K씨’는 누가 봐도 김구현이었다. 사건에 관한 실마리는 해당 영상이 전부였다. 가끔 대규모 전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신의주 게이트 참사’가 언급되었지만 그게 다였다. 팀장인 ‘김현민’에 대한 언급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누군가 억지로 막은 거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한재민 쪽에 도움을 요청했을 테지만 며칠 전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인지 연락을 하기가 애매했다. 전혀 흥미롭지 않은, 무감한 표정으로 유현재를 좋아하냐고 묻던 한재민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날 그에게서 받아온 <강령술의 응용>을 펴 보았다. 기초 서적보다 더 전문적인 마나 운용법이 책에 쓰여 있었다.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책은 이거 하나뿐일걸.’
한재민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였다. 강령술은 전문 헌터 커뮤니티에서조차 언급되지 않는 금기 중의 금기였다. 아니, 금기라기보단 그냥 고대 전설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실제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구전 설화 같은 행위.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무작위에 가까운 마나 운용만 봐도 그랬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혹은 김구현에게서 조언받는 마나 운용과는 기초 상식부터가 달랐다. 아마 유찬희가 타고난 1급 랭커가 아니었다면 따라할 수조차 없을지도 몰랐다.
<고급 기술 ‘강령술의 응용’을 시작하였습니다. 최초의 소환까지 약 70%>
나는 벌써 70%까지 차오른 퍼센트 게이지를 보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언젠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음에도 역시나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그 뒤로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시간을 보냈다. 선별전 준비와 강령술 체득, ‘김현민’이란 인물을 조사하는 것까지. 가끔 유현재와 거실에서 마주쳐도 짧게 대화만 하고 끝나기가 부지기수였다. 나는 선별전 전에 꼭 유현재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었으므로 그에게 멀리 있는 카페로 함께 나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선별전 준비는 잘 돼가?”
유현재가 살짝 생각하는 듯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어.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야 당연했다. 유현재는 남들과 달리 아주 뒤늦게 마나 각성을 했고, 그것에 대한 운용법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원래 소설에서 유현재는 내가 죽은 후 각성하기 때문에, 여러 동료를 만나며 점점 힘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미 또다시 달라진 이야기에서 유현재의 주변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또다시 변화시켜 버린 이 삶이, 이전의 삶과 다름없이 죽음으로 귀결될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안심이 되었다.
유현재가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유현재는 알까. 자기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내가 너와 있었다는 걸.
나는 유현재가 마시고 있는 말차 라떼를 쳐다보았다. 유현재와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한 우리는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시켜 마시고 있으니 그때와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요즘 많이 바빠 보이던데, 너도.”
“과외 때문이지 뭐.”
“힘들어 보여.”
“그래?”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같이 해 줄래?”
“같이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
“사실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유현재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아버지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유현재는 따로 더 묻지 않고 대신 내게 말했다.
“널 돕고 싶어.”
“왜?”
“내가 말했잖아. 내 감정의 이유를 찾을 거라고.”
“응.”
“찾아가는 과정인 거야. 너랑 있는 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유현재의 말이 낯간지러웠던 탓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건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그렇게 대답했지만 나는 유현재가 ‘김현민’이란 사람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아니, 당연히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유현재의 세계에서 유의미한 사람은 나뿐일 테니까.
“응. 나중에 필요하면 말해.”
유현재가 빙긋 웃었다. 나는 마주 웃으면서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내 모든 행동들이 유현재의 기억에 오롯이 남아 죽을 때까지 온전히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