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38화 (38/115)

38.

아버지의 입김 때문인지 사건의 화제성 때문인지 나는 잠깐 응급실에 있다가 빠르게 1인 병실로 몸을 옮겼다. 다인용 소파와 옷을 걸 수 있는 납작한 장롱, 그리고 침대로만 구성된 1인실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생각에 잠기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나는 제발 혼자 있기를 바라며 침대 옆에 서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에게도 할 말이 있었지만 그건 생각 정리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두 분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내가 멀쩡하게 돌아왔음을 어필해야 했다. 한참 진을 빼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비춘 건 차수현이었다.

“아, 수현이 왔구나.”

“네. 찬희랑 할 말이 있어서요.”

바로 전 차수현과 신명나게 싸웠던 전적이 있어 어머니는 조금 찜찜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아버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주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얼굴만 돌려 차수현을 올려다보았다. 나름대로 여유를 표현하기 위한 방어적인 행동이었다.

“할 말이 뭔데? 설마 사과?”

“말하지만 그땐 정당방위였어.”

나는 입꼬리를 올려 비웃었다. 정당방위라니. 누가 보면 내가 먼저 선빵이라도 친 줄 알겠다.

“내가 왜 왔는지 알잖아?”

“모르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

차수현은 조금 초조한 모습이었다. 사실 차수현의 만남 요청은 그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다. 첫 번째 생애에서 이미 알고 있었듯 그는 다소 집요한 면이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졸업식이 정상적으로 끝났다면 바로 나를 불러 잡았을 것이었다.

차수현의 울타리는 마치 자라나고 있는 가시넝쿨과도 같아서, 건드리는 사람의 피를 끝까지 보고야 마는 제 주인의 성정을 그대로 쏙 빼닮았다. 그리고 그 가시넝쿨이 감싸고 있는 유도현이라는 역린은 차수현의 입장에선 그 누구라도 건드려선 안 되는 영역일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를 유도현의 분신 그 어디쯤으로 생각하고 죽여 버린 광기가 나올 수 있었겠지. 나는 아직도 차수현과 있으면 그의 손 밑에서 숨을 다해가던 그때가 떠올랐다. 불쾌한 느낌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알게 된 이상 그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

“너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

“누가 말해 줘. 별것도 없어. 그냥 내 직감이야.”

“직감?”

“왜 못 믿어? 직감이라는데. 그것 말곤 없어.”

차수현이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차수현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얽혔다. 진의를 읽으려는 독사 같은 시선이 한참 내 근처를 맴돌더니 거두어졌다.

“목적을 들켰으니 더 명확해졌네.”

차수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오싹하리만치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는 부디 차수현이 본인이 내 트라우마의 자극제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유현재를 왜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지 이제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게서 동시에 안쓰러움을 느낀다는 건 어떤 걸까. 적어도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설명해 줄 수 없는 기분은 더더욱.

“여태까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느라 고생 많았어.”

“비꼬는 거치곤 친절한 어투네.”

“너는?”

차수현이 갑작스레 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역질문을 해왔다. 아마 나 또한 유현재를 힘으로 눌러 버리겠다는 그 마음이 그대로인지 물어보는 것일 터였다. 나는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유현재가 널 부르는 목소리가 제법 애틋하던데.”

“착각이겠지.”

“그래?”

차수현은 말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처음 귀국했을 때 널 보고 사실 좀 놀랐어. 중간 중간 만났을 때나, 계속해서 연락할 때와는 뭔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거든.”

정답일 것이다. 나는 실제로 바뀌었으니까.

“뭐. 질풍노도의 시기잖아?”

차수현이 헛웃음을 쳤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 대답인 듯했다. 계속해서 문 앞에 서 있던 차수현이 천천히 걸어가 소파 한 가운데에 착석했다.

“게이트. 어땠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일부러 들어간 거잖아.”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차수현을 쳐다보았다. 차수현 또한 눈썹을 찡그리며 나를 마주 보았다.

“내가 게이트를 왜 일부러 들어가냐.”

“한재민이랑 얘기된 거 아니었어?”

“한재민?”

이번엔 나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한재민 쪽에서 게이트를 만들었다고? 인공 게이트는 작정한다면 만들어내지 못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실제로 몬스터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마나석이 부족할 땐, 나라의 허가 아래 비교적 쉽게 토벌할 수 있는 게이트를 생성할 수도 있었다. 물론 토벌이 비교적 쉽다는 거지 허가를 받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게이트를 열었다간 마나석의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공 게이트를 만들어 토벌할 땐 반드시 반경 3km이내에 인가가 없는 지역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랭커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인공 게이트를 왜, 하필 학생들이 득시글한 학교 졸업식장 입구에다 설치했을까, 그것도 한재민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애초에 그런 말 없었잖아, 나한테.”

“너한테 말을 안 했다고?”

“넌 알았어?”

“어제 말해 줬어.”

나는 당장이라도 한재민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왜 한재민이 이곳에 게이트를 설치해 나를 곤란하게 했는지부터 따져 보아야 했다.

“너한테 말하지 않았다 이거지?”

“어. 단 한 마디도 한 적 없어.”

마치 우리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핸드폰 액정 위에 한재민의 이름이 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그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텍스트만으로도 그 야비하면서도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듯했다.

[한재민: 찬희야]

[한재민: 네가 들어가면 어떡해]

“유현재 넣으려고 한 거였어?”

“그거 아니면 무슨 이유로 만들겠어?”

“아니, 논의도 없이 지 멋대로 학교에다 이런 걸 설치하는 게 말이 되냐고!”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내던졌다. 날아간 핸드폰이 발 쪽에 안착했다.

“글쎄.”

차수현은 나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였다.

“네가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한 모양이네.”

나는 이마를 짚고 세게 마른세수를 했다.

*

그날 밤 나는 계속해서 한재민이 학교에 게이트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추론했다. 차수현의 말대로 한재민이 나를 아직까지도 제대로 믿고 있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가능성이었다. 한재민은 독단적으로 유현재를 게이트에 집어넣고 싶어 할 정도로 ‘유찬희’의 개인적인 목표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었던가? 한재민은 그저 전투국장의 아들인 유찬희를 자신의 편으로 얻고자 그의 목표에 협조하기로 한 정도가 아니던가?

그게 아니라면, 혹시 한재민이 곤경에 빠트리고 싶었던 건 나인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한재민 또한 소설에 나오는 단편적인 반정부 분자 정도가 아닌, 어떠한 사연을 갖고 움직이는 인물일 거라는 가정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진 이야기는 뭘까. 유현재 혹은 유찬희를 이렇게까지 급하게 몰고 가려 했던 그 심리는 대체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아버지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했던 와중에 숙제가 하나 더 얹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몸을 뒤집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거운 숨이 얼굴에 훅 끼쳐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갔다.

등 뒤에서 철컥거리는 문고리 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가 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본 채 서 있었다.

“…유현재?”

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유현재가 쭈뼛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밤의 병실에서 보는 유현재는 어쩐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파리한 얼굴로 내 안색을 살피던 유현재가 천천히 속눈썹을 깜빡였다. 아주 뜬금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 아줌마가 없을 때는 지금뿐일 것 같아서.”

나는 유현재에게 간이침대에 앉으라고 권했다. 우리는 한동안 정적을 유지했다. 서로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고르는 것 같았다. 십여 분이 지나고 먼저 입을 뗀 건 유현재였다.

“갑자기 그렇게 돼서… 너무 놀랐어.”

“실수였어. 다행히 게이트 안엔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허공을 향해 총을 쏘던 젊은 김구현과, 내 볼을 쓰다듬던 20대의 유현재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다행이다.”

다시 정적. 유현재가 의미 없는 손장난을 쳤다.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던 터라 나보다 아래에 있었는데도 어쩐지 이전보다 몸집이 더 커 보였다. 자라는 걸까. 하긴. 유현재는 계속해서 자랄 것이었다. 열일곱은 유현재에게 고작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더욱더 성장하고 커져서 유도현이 가지고 있던 랭킹 1위의 자리를 가뿐히 거머쥐게 될 것이었다.

“저기, 찬희야.”

“…응.”

“네가 힘든 거, 나는 모를 거라고 했잖아.”

나는 아까 전 강당에서 내가 유현재에게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지.

“혹시 내가 알아도 될 게 있을까?”

나는 침묵했다. 무엇이 유현재가 알아야 할 것이고, 무엇이 몰라야 할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지금 유현재와 내가 지켜야 할 게 있다면 다시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1순위였다.

“네가 생각하는 건 뭔데?”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유현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어, 나는 순간 숨이 멎었다.

“네가 달라졌어.”

“그건 말했던 거잖아.”

“아예 다른 사람이 몸에 들어온 것처럼.”

“그것도 똑같은 뜻이잖아.”

“근데 웃긴 건 너를 대하는 나도 그때부터 달라진 것 같다는 거야.”

유현재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묘한 눈맞춤이 계속되었다. 눈을 먼저 피한 것은 나였다.

“분명 싫어하는 감정만 가득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널 보고 있으면 이상해져.”

유현재의 목소리는 전혀 달콤함이 담겨 있지 않았음에도 간지러웠다. 나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혹시 너도 그래?”

“나도 그러냐고?”

“응. 너도 혹시 이런 상태냐고 묻는 거야.”

아니. 그건 급작스러운 감정이 아니야. 언제부턴가, 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내가 몇 번을 죽어가며 만들어냈던 결과물이었고 그때의 우리는 분명히 사랑하고 있었어. 너는 이전의 삶에도, 그 이전의 삶에도 이런 식으로 내게 혼란을 줬고 나는 항상 네 말에 넘어가 주었어.

‘예, 아니오’로 대답하기엔 어려운 감정이었다. 다행히 유현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해 주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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