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마나였다. 마나를 사용했다는 표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유현재에게 대뜸 손가락질을 했다. 유현재 또한 놀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라 더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몬스터들이 다시 몰려왔다. 징그러운 덩어리들을 쳐내가면서도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전문 헌터들 덕분에 사건은 일단락됐다.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정리한 뒤 게이트 주변을 정리했다. 나는 다친 곳을 지혈하며 간단한 응급 처치를 받았다. 내 뒤에 선 유현재는 다소 초조한 표정이었다.
“너 얼마 전에도 마나 사용했잖아.”
내 직설적인 말에 유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는 써 본 적 없어?”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역시 유현재는 모의 전투에서 본능적으로 마나를 운용한 후 계속해서 수련을 한 모양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놀라는데?”
“실전에선 처음이니까….”
“야, 누군 실전이 처음 아닌 줄 알아?”
“다칠 뻔했잖아.”
“누가.”
“네가.”
허어.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유현재를 바라보았다. 얜 뭔데 이렇게 유죄 발언이지. 지금 우리 관계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어중간한 그 즈음 아닌가.
“너도 참 한결같다.”
“뭐가?”
“됐다.”
나는 붕대를 감은 배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배도 한결같이 매 생애 수난을 당하는 중이고. 나는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구급 대원의 권유를 무시한 내가 유현재에게 눈짓했다. 그냥 집에 가자는 뜻이었다. 유현재는 얌전히 내 뒤를 따랐다. 어쩐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괜히 큼, 하고 헛기침을 하며 유현재 쪽을 돌아보았다.
순간 게이트 바로 앞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온 전문 헌터인 것으로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눈을 피하려는 그때, 남자가 나에게만 보일 정도로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뭐….”
그 표정이 제법 재수 없다고 느끼며 지나가려던 찰나 남자가 내 몸을 잡아당겼다. 어쩔 겨를도 없이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게이트가 바로 코앞이었다. 뒤이어 누군가 내 팔을 잡아 줄 새도 없이 새까만 심연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잠깐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나는 어느 공간에 토해졌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량하고 척박한,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사막 같아 보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채 부서지지 못한 자갈들과 흩날리는 흙먼지들뿐인 곳. 여기는 언젠가의 꿈속에서 유도현이 된 내가 홀로 서 있던 그 장소와 매우 흡사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없을 것을 알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뒤에 서 있던 유현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나는 계속 허공을 바라보며 유현재를 찾았다. 이것이 다소 허황된 행동이란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일주일가량 후 출구가 생성될 것이다. 그동안 살아남을 확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갑작스레 몬스터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스템.”
나는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공에 시스템을 불렀다. 늘 그렇듯 시스템은 한 번에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야, 시스템.”
<용무를 말씀하십시오.>
제법 인간적인 대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뜬 그 글자만으로도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돌발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나.
“네가 짠 소설대로 가고 있지 않잖아, 지금.”
<가능하지 않은 기능입니다.>
“뭐가 가능하지 않단 거야. 진짜.”
나는 짜증을 내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티끌 하나라도 기댈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시스템의 기능뿐이었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건 맞아?”
<알 수 없는 기능입니다.>
“또 죽어야 돼?”
<세이브 하시겠습니까? Y/N>
“안 한다니까. 미쳤어? 여기서 세이브 하게.”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시스템은 세이브 창을 띄워놓은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하긴, 시스템 따위로 내가 뭔가를 얻은 적이 없는데 기대를 한 게 잘못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람 피를 말리는 그놈의 루트 진입 안내와 세이브 얘기뿐이니까.
조용하던 시스템의 글자가 바뀌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특수 공간 진입! : 세이브한 기억을 불러오시겠습니까? Y/N
나는 방금의 문장과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른 이 물음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뭘 불러온다는 거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어 머뭇거리고 있으니 시스템의 글자가 점점 진해졌다. 마치 정해진 답을 선택하라는 강요 같아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사막의 지평선 저 멀리로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게이트 안에서 나 말고 다른 존재란 게 몬스터 말고 있을 리가 없었다. 시스템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여차하면 뛰어버릴 속셈으로 몸을 굽혔다. 동그랗게 말린 등줄기를 타고 미지근한 땀이 흘러내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상은 오직 하나였다.
손톱만큼 작던 형체는 점점 커져 선명해져갔다. 그건 아까 전 강당에서 보았던, 혹은 언젠가의 꿈속에서 보았던 몬스터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사람이었다. 나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뜻밖의 존재에 놀라 숨조차 쉬지 못했다.
사람, 그러니까 남자는 나를 가뿐히 무시하고 멀찍이 서서 뻣뻣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예의를 차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기, 저기요.”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내 그를 불렀다. 그에겐 여전히 내 목소리 따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잠시 여기 좀 봐 주실래요.”
“명령입니다.”
남자가 갑작스럽게 허공을 향해 말을 건넸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아까완 다르게 시건방진 느낌까지 들었다.
“저는 명령을 받고 이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남자가 주머니에 있던 권총을 꺼냈다. 아마 일반 권총이 아닌, 마나로 된 탄환이 나오는 헌터용 권총일 것이었다. 남자는 아무도 없는 바닥을 향해 비스듬히 총구를 겨눴다.
“…알고 계시면서 왜 물으시는 거죠?”
남자는 조소했다. 그리고 또 아무도 없는 상대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듯했다. 이 모든 행동들은 마치 잘 짜여진 1인극 같았다.
“김 팀장님. 저에게 아무리 하소연하셔 봤자 소용없습니다.”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총구를 겨눴다, 거뒀다를 반복하며 지껄여댔다.
“아, 그렇죠. 이제 5년차라고 하셨나요. 결혼 생활 그것 참 좋을 때죠.”
남자가 웃었다.
“저는 결혼을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김 팀장님을 보며 한 번쯤은 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은 했었습니다.”
남자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손등에 땀이 잔뜩 맺힌 채였다. 아마 보이지 않는 이 대치가 굉장한 체력 소모를 야기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움직이는 것도 잊은 채 남자의 정제된 행동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이제 와서 인생 얘기나 하자는 건 아닐 테고요.”
남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약간 마음이 약해진 것도 같았다. 아마 남자는 누군가의 사주로 보이지 않는 상대를 죽이기로 했으며 ‘김 팀장’이라 불리는 상대 또한 반쯤은 포기한 상태인 것 같았다.
“아들이요.”
남자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표정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했다.
“다섯 살이겠죠? 유 팀장님 둘째 아들 분과 동갑이라는 얘긴 들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남자가 말하는 대상이 유찬희의 설정값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십 분여가량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후 천천히 총구가 어느 지점을 향해 단단히 고정되었다. 번쩍, 하고 총 끝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마 상대방을 쏴 죽이는 데에 성공한 것 같았다. 남자는 발로 허공을 툭툭 건들며 생사 여부를 확인했다.
나는 시스템이 말한 ‘기억’이 바로 이것임을 눈치챘다.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서 유도현이 되어 사건을 겪어 본 적은 있어도 완벽한 타인의 기억을 형상화해 엿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시스템이 나에게 이 기억을 보여준 저의조차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기억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시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를 쳐다보았다.
“아들이라…….”
남자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말이 이쪽을 쳐다본 것이지, 그냥 이쪽에 있는 허공을 바라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김….”
남자는 아직 젊은 듯한 얼굴에, 숨기지 못한 야망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뛰어와 내 배에 낯선 쇠붙이를 쑤셔 넣던 남자, 운전석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어린아이를 차로 쳐버리는 남자. 친절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마나의 운용법을 가르쳐 주던 남자.
“구현….”
김구현은 들고 있던 권총을 바닥에 버리고 발로 차 멀리 보내버렸다. 게이트는 대개 일회성이므로 아마 저 권총은 김구현이 이 게이트를 나가고 나면 영원히 인멸될 것이었다. 덧붙여 보이지 않는 시체까지.
나는 이 기억이 진실이든 아니든, 김구현이 과거에 나나 유현재가 아닌 또 다른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단 사실이 끔찍하리만치 소름끼쳤다. 그리고 그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나라는 존재가 튀어나왔단 것도 찝찝했다. 시스템의 목적이 오로지 내게 의미 없는 고통을 주는 데에 있다면 아주 성공적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 기이한 기억의 소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