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실제로 처음 사용해 보는 유찬희의 능력은 몇 주간의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그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가볍게 김구현의 공격을 피한 후, 들고 있던 양손검을 휘둘렀다. 양손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조준은 더더욱 까다로웠다. 한 번의 공격이 불발된 후 나는 몸을 날려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제3 훈련장의 배경은 비탈진 야산이었다. 발을 잘못 디뎌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자, 김구현이 기민하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달려오는 그 인영을 보며 순간,
진짜로 찔러버릴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본능적인 결론이었다. 아직은 그럴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도. 칼을 들고 달려오는 저 모습이 너무나도 끔찍했던 그 순간과 겹쳐 보였다. 결국 나는 제때 몸을 피하지 못하고 검기가 실려 있지 않은 무딘 칼을 그대로 받아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날아간 칼을 주우며 김구현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구현이 입구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밤이었던 내부는 순식간에 낮처럼 밝아졌다.
“…선별전까지 이제 삼 주군요.”
김구현은 칼들을 전용 캐리어에 넣고, 잠금을 걸었다.
“국장님께 들었습니다.”
“…….”
“1위가 되고 싶으시다고.”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털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말 닮으셨네요.”
“…네?”
“도현 군과.”
나는 피곤한 표정으로 눈을 쓸어내렸다. 이 또한 지긋지긋한 이야기였다. 그와 나의 공통점을 찾자면 끝이 없었다. 일단은 형제이므로.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유찬희는 짧은 일생 동안 유도현의 형제라는 꼬리표를 절대 떼지 못할 것이었다.
“별로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네요.”
“그렇습니까.”
“차라리 유현재가 더 형을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말을 끝낸 후 김구현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현재 군과는 아직도 사이가 좋지 않으신가 봅니다.”
“뭐, 가정사니까.”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구현이 처음으로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나 보군요.”
“그럼요. 뛰어나신데요.”
“과찬이십니다.”
“1위라는 게 쉽게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부장님도, 그 자리에 온전히 실력만으로 가진 않으셨을 테고요.”
진실을 몰랐기에 던진 모호한 말이었지만 김구현은 저 나름대로 뭔가를 해석해 본 듯했다. 순간 적의가 느껴졌지만 그는 특유의 신사적인 미소로 자신을 다시 깊게 감추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
며칠 후 유현재가 내 방문을 세게 두드렸을 때, 나는 다행히 평온한 얼굴로 그를 맞이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름대로 해본 연습의 성과였다. 아마 유현재는 이미 아버지든, 김구현이든 누군가를 통해 내 요구를 전해 들었을 것이었다. 그 짧은 새 조금 더 자란 모양인지 유현재의 얼굴은 예전보다 더 높은 시야에 있었다.
“무슨 의도야.”
유현재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유현재의 눈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말 그대로야.”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서로 좋잖아. 선별전에도 도움 될 거고.”
“유찬희.”
“왜.”
유현재가 한숨을 내쉬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며칠 전 했던 의미심장한 대화는 모두 꿈인 것처럼 우리 사이는 지나치게 냉랭했다. 한숨으로는 전혀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유현재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벽에 기댔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유현재는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니까.
“도대체 뭐야?”
“말했잖아. 몰라도 된다고.”
“진짜 이기적인 거 알지.”
“알아.”
“미리 말해 주면 덧나?”
“내가 말했지. 우리가 그런 사이까진 아니라고.”
“내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아니.”
나는 최대한 뻔뻔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현재를 응시했다.
“나도 원래 하던 대로 살자고 대답했었어.”
유현재는 더 이상 화내지 않고, 여전히 벽에 기대선 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불편한 적막이 지속되었다. 나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진짜 말해 줄 생각 없어?”
유현재의 말이 뒤통수로 날아와 꽂혔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가만히 서서 대답을 골랐다. 유현재는 내 대답보다 먼저 말을 이었다.
“잘 때마다.”
“…….”
“내 이름은 왜 부르는 건데, 그럼.”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것 때문에 나의 변화를 눈치챘던 거구나.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피 한 방울 없는 것처럼 새하얘졌다. 유현재는 내 대답을 한참 기다리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슬로우 모션을 걸어둔 듯 느릿한 그 소리가 사라지고서야 나는 겨우 손에 힘을 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었다. 오늘은 울지 않아서. 다리가 저릴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까, 갑작스레 핸드폰에서 메신저 알림음이 들렸다.
“차수현….”
나는 그가 두서없이 보내는 말들을 힘없이 내려다보았다. 횡설수설했지만 결국 왜 헌터로 전향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차수현은 알고 있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수현은 한재민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유현재가 함구하고 있는 이 비밀을 모두 알고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절대 아닐 것이다’였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유도현이 미스터리한 집단에 피습당했으며, 유현재를 구하다 죽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 착각이 그 자신의 무의미한 복수심의 원동력이 되고 있을 것이었다.
답장을 하지 않자 이젠 전화가 왔다. 몇 번 받지 않으니 오기가 생긴 듯 계속해서 걸려왔다. 나는 결국 통화 아이콘을 슬라이드 했다.
-미친 새끼.
“너한테 욕 들을 기분 아닌데.”
-너 그때 이후로 이상한 짓만 한다며.
“이상한 짓?”
-갑자기 유현재 데리고 소꿉놀이라도 하고 싶었냐?
“내가 생각하기에 고상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야.”
-넌 내가 한국 가면 제대로 조져 줄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달력을 확인했다. 차수현이 귀국하기까지도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선별전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아마 딱 그 정도일 것이었다. 차수현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 일단 한재민과의 결탁이 더욱 더 강화될 것이다. 차수현은 내 일을 도와준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유도현의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다. 만일 유도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치명적인 원인이 유현재가 아닌 나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나올까? 그간 유현재를 원망하고 질책했던 마음의 화살이 그대로 내 쪽으로 오는 건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알량한 복수심일까. 안 그래도 복잡한 일들 사이로 차수현까지 끼게 된다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야.”
-뭐.
“내가 만약 다음 주에 유현재를 바로 죽이면 어떨 거 같아?”
수화기 너머로 허, 하고 헛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기는 듯했다. 실제로도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했지. 갑자기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무슨 개소리냐, 너. 미쳤어?
“하긴 네가 어떻든 전혀 상관없지만.”
-야 무슨 소리야, 야!
차수현이 수화기 너머로 빽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따져대는 놈을 더 이상 받아 주기 힘들어 통화를 종료했다. 순식간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통화를 종료한 후 다시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와 있었다. [차주 화요일 저녁 7시입니다.] 나는 그 번호를 따로 저장하거나, 답장하지 않고 대신 연락처에서 다른 이를 찾았다. 지금도 이 방법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보세요?
“나야.”
-찬희가 웬일로 먼저 전화를 하지.
“미리 말해놓을 게 있어서.”
나는 무능력자 유현재를 죽일 것이다. 바로 다음 주에.
*
한재민은 별다른 태클 없이 그러라고 말을 했지만, 썩 마음이 편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유찬희는 유현재의 천부적인 재능을 진작에 알아보고 그를 없애려 한 인물이다. 쉽사리 이런 서열 정리를 시도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그 나이 소년의 치기 어린 질투.
“선별전 전에 기를 죽여놓고 싶어.”
-너 진짜 유치하다.
“유치하다고?”
내가 코웃음을 쳤다.
“체술까지 익혔다며.”
-왜, 불안해?
“불안?”
나는 오버스럽게 대답했다.
“불안한 게 아니라 미리 눌러 주려는 거야. 수준을 알려 주는 거라고.”
-찬희답지가 않네.
“곧 차수현까지 오면 나 혼자 걜 누를 타이밍도 없어져.”
-찬희야.
한재민이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너 진짜 유현재 죽이고 싶은 거 맞아?
“무슨 소리야.”
-지금 이건 고작 애들 장난질이 아니야.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네 행동은 지금 딱 그 나이대 놈들의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잖아.
“하지 말란 거야?”
한재민은 아무 말이 없더니,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치면 계획했던 일도 모두 어그러져.
“알고 있어.”
나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대화에 조금 안심했다. 한재민에게 굳이 이 소동을 알리는 이유는 오로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강령술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무모한 작전.
“다칠 일 없어.”
-그래.
그러고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크게 푹 내쉬었다. 한 가지 밑밥은 깔아 두었다. 나는 유현재와의 모의 전투를 통해 여러 가지의 상황을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다른 밑밥 또한 안전히 깔리길 바라며 침대에 털썩 몸을 뉘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유현재의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고 벌이는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