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김구현은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나를 이상하단 듯 쳐다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벌레라도 닿은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김구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나는 제발 바로 직전의 삶처럼 그가 조금의 기억이라도 떠올리고 있길 바라며 간절하게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유현재의 표정은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겠다는 듯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러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너와 나를 동시에 두 번이나 죽이려 했고, 죽인 그 남자라고 유현재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찬희 군, 괜찮습니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김구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죄송해요.”
그리고 떼어지지 않는 입으로 억지로 말을 이었다.
“제가…… 뭘 좀 착각해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구현은 이내 다시 2층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주로 나에게 말을 건넸지만, 내가 경계심을 표현한 이후론 조금 찜찜했는지 유현재에게도 종종 대화를 걸었다. 나는 두 사람의 뒤에 서서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김구현과 유현재. 아버지와 김구현. 도대체 이 기묘한 관계는 어디부터 알아봐야 하는 걸까. 추도 공간 옆 휴게실에선 직원 몇 명이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세미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맨, 누가 봐도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들이었다. 김구현이 휴게실로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아마 모두 전투부 소속인 모양인지 김구현은 익숙한 표정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뒤에 계신 분들은….”
“아. 국장님 자제 분. 인사해.”
나보다 한참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내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건 몹시 불편했다. 그건 유현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두 분 다 국장님 닮으셔서 너무 훤칠하시네요.”
아마 평소 오지랖이 넓다고 많이 듣고 다녔을 것 같은 남자 직원 하나가 오버스럽게 말했다. 옆에 있던 여자 직원이 그의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아악.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남직원에게 유현재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국장님 아들이 아니라서….”
남직원은 그제야 박 터지는 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 건물에 근무하는 인간들이라면, 유 국장의 집에 얹혀산다는 ‘그’ 객식구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아휴, 아무튼 두 분 다 너무 잘생기셨습니다.”
남직원의 수습 멘트는 이 분위기엔 크게 먹히지 않은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직원들은 각자 마시던 커피를 든 채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잠깐 휴게실을 구경하다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4층에서 6층은 전투국, 7층에서 8층은 보안국입니다.”
김구현은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배치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9층은 관리과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내가 9층을 본다는 걸 알아챘는지 김구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9층이 가장 관심이 가시겠죠?”
“저기가 어딘데요?”
“관리과는 전국 랭커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유현재도 살짝 고개를 돌려 9층이라 쓰인 작은 글씨를 쳐다보았다.
“선별전 같은 연례행사들을 모두 맡고 있죠.”
때마침 9층에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나는 문 너머로 여느 회사들과 다름없어 보이는 그 회색빛의 황량한 공간을 바라보았다.
“선별전 한 달 전부터 관리과는 폐쇄됩니다.”
선별전 한 달 전. 그건 내일이었다.
“정말 타이밍이 좋네요.”
“뭐, 그렇죠.”
비꼬는 듯이 말한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김구현이 가볍게 받아쳤다. 어차피 김구현이 얼마나 가까운 아버지의 측근이던 간에 아버지는 절대 집안 사정 따위를 주변인에게 구구절절 말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 나는 그저 복 받고 자란 주제에 삐뚤어지게 생각하는 철없는 도련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지. 우리는 천천히 관리과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 맞은편으로 누군가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다.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던 터라 나는 그들이 제법 가까워져서야 누군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차혜련. 전투국과 보안국 각각의 국장이 관리부에 있었다.
“어머, 찬희야!”
차혜련이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그 여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차혜련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아버지가….”
“잠깐 일이 있어서 오라고 했지.”
아버지가 내 말을 끊고 대답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 후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과 합류해 다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10층에 있는 국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10층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이 차혜련의 사무실, 오른쪽은 모두 아버지의 사무실이었다. 각각의 비서들이 일어나 우리를 맞이하자 차혜련은 활기차게 웃으며 비서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전에 한재민을 따라 갔던 크러시의 이사실과 크기가 비슷했다.
“찬희는 유 국장님 직장 처음 오는 건가?”
“네.”
“아버지가 워낙 공사 구분이 뚜렷하시다 보니.”
차혜련이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비서들이 따뜻한 차를 내오고, 아버지와 김구현은 시시콜콜한 일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눈으로 사무실을 훑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액자 하나와 꽃병을 발견했다. 액자 속 주인공은 예상대로 유도현이었다. 내 눈이 머무는 것을 봤는지 차혜련이 살짝 낮아진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유 국장님, 아직도 가끔 액자 앞에 서서 한참을 있으시더라니까.”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차혜련에게 대충 대응을 해 주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나는 오히려 내 왼쪽에 앉아 있는 유현재가 더 신경 쓰였다. 유현재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차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우리의 대화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잠깐 가서 보겠니?”
나는 거절하고 싶었다. 지금 이러한 구도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던 장면이었다.
“저, 그게….”
“찬희야.”
차혜련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도 많이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
나는 커다랗게 비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더욱 더 고개를 푹 숙였다. 차혜련이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민망할 정도로 유현재에게서 등을 진 상태였다. 나는 차혜련 너머에 앉아 있는 유현재를 보다가, 그제야 우리가 9층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유현재는 계속해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억울하게 죽은 형이… 얼마나 안쓰럽겠어.”
그들에게 유도현의 사인은 유현재였으니까. 영웅을 죽게 한 악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유현재니까. 나는 결국 차혜련의 손에 이끌려 유도현의 사진 앞으로 갔다. 유도현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어쩐지 몹시 불쾌했다. 그의 인상은 항상 흐릿했고, 뒤돌아서면 항상 디테일한 모습을 잊어버렸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돌려 꽃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유현재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강렬하게 찌르는 듯한 두통이 나를 덮쳐왔다. 단순한 두통을 넘어선, 머리를 옥죄어 터트리려는 듯 거센 악력으로 짓누르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이 통증은 ‘유찬희’의 몸에 막 들어왔을 때 느껴 본 이후 처음이었다. 토기가 치밀어 올라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다들 놀라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차혜련. 김구현. 그리고 가장 뒤에 서 있는 유현재. 나는 유현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려 줘. 이후로 시야가 점멸했다. 그렇다고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다. 아주 생소한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곧 그것이 ‘기억’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유현재가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장면, 내게 다가와 안아 주는 장면, 키스를 나누는 장면. 모두 꿈에서나 본 허구의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잡히지 않을 그 환영 같은 것들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허우적거리는 손끝에 누군가의 머리칼이 살짝 닿은 듯도 했다. 그리고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시스템의 기계음을 마지막으로 나는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