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유도현에 대해 검색했다. 관련된 기사나 문서들은 모두 내가 알고 있던 내용들뿐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영웅일지라도 시간 앞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는 모양인지 유도현에 대한 기사는 전부 오래 전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처음 이곳으로 ‘빙의’하였을 때 찾아봤던 그 내용들을 다시 훑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가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죽은 지 2시간 만에 발견되었고, 사인은 날카로운 흉기에 의한 외인사인 것까지 모든 사실들을 재확인했을 때쯤 특이한 제목의 게시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유도현의 죽음은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그 게시글을 클릭했다. 누군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였다. 닉네임이라든가 글을 써 둔 모습만 봐도 상당히 외골수 타입의 인간인 것 같았다. 그의 취미는 역대 상위 랭커들의 죽음을 상세히 고찰해 보는 것인 듯했다.
-모든 언론과 측근들은 유도현이 동거인이었던 유현재(이하 유 군)의 목숨을 구하다 죽었노라 입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 인간의 생각은 이랬다. 첫 번째, 유도현은 일반적인 흉기에 찔려 어이없이 죽기엔 너무나도, 지나치게 강하다. 두 번째, 누군가를 구해내는 데 익숙한 유도현이 어린아이 하나 때문에 빈틈을 보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그가 그저 조회수를 노리는 흔하디흔한 음모론자일 것이란 생각에 도달했다.
-또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인물은 유 군 하나만이 아닌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충 읽고 창을 끄려 했던 나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낯선 사실에 눈을 찡그렸다.
-우리는 유도현을 살해했던 김 씨가 데리고 왔던 인질
글쓴이는 독자들의 흥미라도 유발하려는 건지 엔터를 점점 길게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또 열심히 드래그 해 주었다. 드래그가 끝난 곳에는 짤막한 문장이 있었다.
-유도현의 친동생, 유찬희가 있었단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름에 화들짝 놀라 온몸이 굳어버렸다.
*
이곳에 빙의했던 처음, 내 머릿속으로 밀려왔던 기억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었었다. 전날 저녁 메뉴가 무엇이었는지, 유치원 졸업 학예회 때 무슨 공연을 했는지,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내부의 디퓨저는 어떤 꽃의 향이었는지.
하지만 이 수많은 기억들 중에도 유도현의 죽음에 대해선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에 대한 이유는 그저, 유찬희에게 유도현이란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이 차 많이 나는 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꾸준히 자라오면서 이 생각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그랬기에 유현재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죄책감이 섞인 배려를 태연하게 받아치며 그와 함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생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유현재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 주었다. 형이 죽은 건 너의 탓이 아니고, 모든 건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라고. 유현재는 그 말을 듣고 그저 나를 빤히 쳐다보았었다.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아주 깊고 오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한 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유현재의 방까지 빠르게 걸어가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문을 활짝 열었다. 유현재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항상 재미없는 취미 생활만 가진 녀석다웠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리고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유현재.”
유현재가 놀란 기색도 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나만 물어볼게.”
“…뭐가?”
“형에 대해서.”
유현재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마치 알고리즘을 입력해놓은 기계처럼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놓았다.
“나 때문이야.”
“뭐?”
“도현이 형은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계속 유현재를 바라보았다.
“난 그걸 물은 게….”
“그래야.”
아마 유현재는 살짝 불안한 듯했다.
“이 집에 있게 해 준다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가 더 필요해?”
유현재의 말에 나는 한참 그를 쳐다보다 결국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네가 죽인 거야?”
“응.”
“아니잖아.”
“사실이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이 없어, 나는….”
“내가 결정한 거야. 혹시 동정하는 거면 그러지 마.”
장난질 같은 대화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 세계가 거짓말투성이란 것을 확인 사살 받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결국 바보처럼 다시 유현재를 등지고 문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유도현의 죽음은 유현재 때문이 아니다. 아마도… 나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렇다면 내가 읽은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그 소설에서 유도현은 분명… 유현재 때문에 죽었었는데.
*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유현재, 그리고 내가 빙의되기 전의 유찬희. 거기에 굳이 더하자면 가해자의 자식인 한재민밖엔 없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재민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기엔 리스크가 너무나도 컸다. 유현재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나는 불현듯 단어 하나를 떠올랐다.
강령술.
죽은 사람이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은 분명 유도현이었다. 더불어 유찬희는 유도현을 불러내기 위해 한재민과 협조 중이었으니 곧 그 결과물이 나올 것이었다. 나는 언데드를 불러낸 인간들의 최후를 알고 있다. 금단의 술(術)을 사용하는 데엔 반드시 대가가 따랐다. 소설에서의 유찬희는 망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로 흡수되었다. 이전의 아홉 번의 삶 동안은, 오로지 그 결말만은 막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 쳤었다.
“하하….”
아까부터 터지려던 웃음이 결국 흘러나왔다.
“존나 웃기네….”
그냥 처음부터 알아서 시키는 대로 했으면 여러 번 뒈질 필요도 없었을 텐데. 괜히 살겠다고 설쳐서 괜히 유현재랑 연애 같은 거나 해버리고.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죽음들이었다. 한 번이면 될 것을 열 번이나 죽는 짓을 하는 건 아마 앞으로도 나밖에 없을 거였다.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미리보기로 뜬 발신인의 이름은 한재민이었다.
[한재민: 어때?]
[한재민: 약빨 죽이지?]
[한재민: 아니면 진짜 개병신 됐나?]
나는 핸드폰을 들어 답장을 보냈다.
[형 만나면 사과나 할까봐]
[한재민: ㅋㅋ 또라이]
나는 뒤에 온 대답을 보고 또 웃음이 터졌다.
[한재민: 죽여놓고 미안하면 다야?]
거봐. 내가 죽인 거 맞다니까. 한재민의 비웃음이 더 이상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짜여진 소설 속에서 제일 나쁜 놈은 한재민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재민은 연이어 사진을 몇 장 보냈다.
[한재민: 이거 누구게]
나는 몰래 찍은 듯 살짝 흔들린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한재민은 내 대답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혼자 자문자답을 했다.
[한재민: 얜 언제 또 체술 같은 발칙한 걸 배웠지?]
사진 속의 유현재는 강아지를 안은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본 밝은 웃음이었다. 뒤이어 오는 메시지들을 무시하고 나는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손이 다정하게 머리를 짚던 대상이 나였던 적이 있었다. 찬희야, 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웃고 내게 어깨를 빌려주던 유일한 아군이자…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젠 희망조차 걸지 못하게끔 원죄의 주인이 된 나는, 이렇게 사진 속 유현재만 바라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었다. 문득 울컥하리만치 억울해졌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하지만 동시에 억울할 수 없단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유찬희라는 가죽을 입은 대가로 유현재와 만날 수 있었다. 이젠 정말 ‘나’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내게 이 세계와 무관한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준대도 유현재를 두고 갈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게 남은 건 모두 거짓말투성이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 나의 것이지 않은 몸,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운명. 그리고 스스로 끌어안고 싶었던 사랑까지도, 모든 게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온몸에 치덕치덕 묻은 거짓과 위선이라는 단어들을 닦아내면 뼈조차 남지 않을, 그런 사람.
나는 천천히 보던 사진을 저장했다. 몇 없는 사진첩 가장 위쪽에 유현재의 얼굴이 떴다. 나는 쭈그려 앉은 채 하루 종일 그 사진만을 바라보았다.